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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국내

2021. 3/4 목포 근대역사관 2관

새샘 2021. 3. 11. 14:54

목포시 번화로(중앙동)의 '목포근대역사문화공간'에 자리잡고 있는 '목포근대역사관 2관'일제강점기 때 경제 침탈을 목적으로 1920년 경 신축된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건물이었다.

 

'척식拓殖'이란 국외의 영토나 미개지를 개척하여 자국민의 이주와 정착을 정책적으로 촉진한다는 뜻을 가진 말로,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든 일제는 한반도의 경제를 독점·착취하기 위해 1908년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설립하고 1897년 개항된 목포에 지점을 설치하였다.

 

일제강점기 시절 사리원지점과 함께 가장 중요했던 지점이었으며, 현재 남한에서 건물이 남아 있는 곳은 부산과 이곳 목포 두 곳뿐이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때 대표적 수탈기관으로서의 역사성과 시대성을 가지고 있으며, 근세 서양건축 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는 석조건물로서 1999년 전라남도 기념물 제174호로 지정되었다.

 

방문 당시 목포근대역사관 2관은 보수하는 중으로서 비계와 보호막이 설치되어 있었다.

 

건물 앞길 번화로 맞은 편에 빨간 간판이 달린 단층 기와집은 카페 'MOK PO 1897'

 

목포근대역사관 2관은 1층의 1전시실과 2층의 2전시실이 있다.

1전시실에서는 1920년대 말 목포의 거리와 건물, 생활상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고, 2전시실에는 <영웅, 그날의 기억을 걷다>라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어 1920년대 민족 독립운동사와 함께 독립운동가들의 얼굴과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목포근대역사관 2관 정문

 

1층의 1전시실

유달산에서 내려다 본 목포 시내 전경 비교 - 위 사진은 1920년대, 아래 사진은 현재

 

1전시실 복도 양쪽 벽에 걸린 전시물들

 

2층으로 올라가 <영웅, 그날의 기억을 걷다>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2전시실을 둘러본다.

 

1906년 진도에서 발견된 동학농민지도자의 유골에는 '한국 동학당 수괴 수급 韓國東學黨首魁首級'이라 씌여 있다.

 

일제의 식민 야욕을 보여주는 2개의 비.

7대 조선 총독 미나미 지로(남차랑南次郞)의 친필 '팔굉일우비八紘一宇碑'.

팔굉은 전 세계를, 일우는 하나의 집을 뜻하는 말로, 전 세계를 하나의 집으로 만들려는 일본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합리화하기 위한 구호다.

 

초대 총독 데라우찌 마사다케(사내정의寺內正毅)가 제3수원지[현 무안 소재] 착공 기념 식수비 

 

미래 100년을 꿈꾸는 영웅들의 함성을 배경으로 만든 태극기

 

태극기 옆에 걸린 목포 출신 항일운동가들 초상

 

정명여학교에서 만든 3·1 독립선언서(오른쪽 위)

 

1919년 4월 8일 목포의 3·1 독립만세운동

 

이난영이 노래한 '목포의 눈물' 2절 첫 번째 가사인 '삼백연 원안풍'은 원래 '삼백년 원한품은'이란 가사였는데, 검열을 피하기 위해 변경한 가사였다고 한다.

원래 가사 '삼백년 원한품은'은 삼백여 년 전인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짚으로 유달산 노적봉을 덮어 군량미처럼 보이게 해 일본군을 물리친 전설을 빗대어 일제 강압과 수탈에 신음하던 조선 백성들의 울분을 나타낸 것이었다는 것. 

 

광복이 멀지 않았다는 글귀 '불원복不遠復'을 적어 넣은 태극기는 전남 구례 일대에서 활약하던 고광순 의병장이 사용하였다.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사용했던 금고

 

2021. 3. 11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