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5 648차 하남 남한산 벌봉 산행기
산행로: 하남시 서부농협-선법사입구-위례둘레길입구(객산)-선법사갈림목-객산(301)-사미고개-막은데미고개-새바위-상사창동갈림목-바람재-법화골갈림목-가지울갈림목-벌봉암문-벌봉(512)-봉암성-남한산성제3암문-현절사-남한산성안 종로(10km, 5시간)
산케들: 牛岩이학기, 又耕강용수, 大仁조민규, 素山이승무, 새샘박성주, 회산박문구, 百山이주형, 智山방효근, 民軒김기표(9명)
몇년전만 해도 매월 1번은 갔었는데 간만에 산행코스로 잡힌 남한산 벌봉 산행날이다. 금요일까지만 해도 55년만에 가장 추운 기온을 기록했었는데 토요일부터 풀려 산행날인 일요일 아침은 많이 풀렸다. 낮기온이 영상이라니까 바람만 불지 않는다면 땀을 흘리는 푸근한 산행이 될 것 같다.
잠실역 7번출구에 모인 아홉 산케 가운데 번둥회장과 장산대장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회산을 일일산행대장으로 만장일치 추대.
30-5번 하남행 버스에 올라타고 하남 서부농협에서 하차. 회산과 우암은 길건너 농협하나로마트에 정상주와 안주를 준비하러 가고 나머지는 버스정류장 벤치에서 기다리면서 스틱을 빼고 파카를 벗는 등 산행을 준비한다.
선법사 입구를 향해 걸어가면서 눈이 하얗게 덮힌 밭 너머로 솟아 있는 객산을 바라본다. 저곳을 지나 남한산 벌봉으로 갈 것이다.
선법사입구로 우회전하여 산행들머리로 향한다. 그런데 1년 전에는 아무 표지판도 없이 작은 도랑만 흐르던 산행들머리가 산뜻하게 정비되어 있다. 산행지도가 걸린 안내판과 이정표가 세워져 있고 도랑도 정비되어 석축을 쌓아 배수로로 변했다. '위례둘레길'이란 이름도 새로이 붙었다.
들머리에서 간단한 맨손체조로 몸을 푼 다음 산행 시작.
첫 오름길을 따라 700m 정도를 오르면 객산 능선에 도착하는데 이곳 이름이 '선법사 갈림목'으로 붙어 있다. 항상 여기에서 첫번째 휴식을 취하곤 했다. 오늘도 역시 이곳에서 목을 축이고 과일을 먹으면서 얘기를 나눈다. 여기서부터 객산 정상까지는 300m, 남한산성까지는 4.8km.
선법사갈림길에서부터 산행로는 하얗게 변했다. 이런 정도라면 푹신한 산행길이 되지 않을까 기대된다.
객산客山은 해발 301m로 이곳에 올라서면 동으로 검단산과 예봉산, 서로는 금암산과 서울시가지, 남으로는 남한산성, 북으로는 한강을 끼고 있는 하남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여기서부터 남한산성까지는 완만한 능선길로 비탈진 곳이 별로 없는 그야말로 평지 둘레길이다. 객산이란 이름은 옛날 마귀할멈이 한양에 남산을 만들려고 이천의 도드람산을 치마폭에 싸서 오던 중 너무 힘이 들어 이곳에 그냥 놓고 가는바람에 생긴 산으로 객지에서 왔다고 하여 붙었다는 전설이 있다. 또 다른 전설로는 그 옛날 근처를 지나는 길손이나 관아를 찾아왔던 사람들이 묵었던 객사가 산아래 고을에 있었기 때문에 붙었다고 한다. 객산 정상에서 산케들은 항상 출석부를 만들곤 했다. 내림길이라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아이젠 착용.
객산 동쪽의 예봉산(왼편)과 검단산(오른편)
객산 서쪽의 서울시가지 너머로 보이는 금암산
객산 북쪽의 한강변의 하남시
객산 정상에서의 출석부
사미고개는 하사창동의 골말과 하산곡동을 오가는 고개로 새미재 또는 삼외고개라고도 부른다. 직진하면 남한산성, 우회전하면 골말, 좌회전하면 하산곡동의 산곡초등학교로 이어진다. 객산과 남한산성을 연결하는 주능선 중 가장 지대가 낮은 곳으로서, 고골사람들이 광주나 이천의 소시장에서 소를 사가지고 올 때 이 고갯길을 주로 이용했다고 한다.
막은데미고개는 산이 앞을 막은 듯하게 생긴 고개라고 붙여졌다고 하며, 막은데미 마을은 산곡초교 건너편 산동네인데 이 고개가 마을을 막아주고 있다.
새바위와 개구리바위 갈림목에서 평탄한 왼편길인 새바위 쪽으로 들어선다. 바위 앞쪽에 약간 튀어나온 모습이 새의 부리와 닮았다.
상사창동 갈림목의 능선에서부터 남한산성의 토성과 토루가 나타난다. 토성土城이란 자연지형의 산능선에 흙을 쌓아 올려 만든 성이다. 토성은 산성 안쪽인 춘궁동의 능선은 그대로 두고 바깥쪽인 산곡동은 경사가 급해지도록 흙을 깎아 성벽처럼 만들거나, 능선과 능선 사이의 좁은 협곡에 흙을 다지고 쌓아올려 성벽처럼 만든 방어용 군사시설이다.
토루土壘는 남한산성으로 통하는 길목을 지키기 위하여 설치한 인위적인 방어용 군사시설이다. 적이 쉽게 침입하거나 공격할 수 없도록 능선을 깎거나 흙을 쌓아올려 적군에게 불리한 지형이 되도록 'S'자 형태의 협곡을 만든 것이 토루다. 토루의 협곡 위 높은 곳에서 매복하고 있다가 접근하는 적을 쉽게 공격하는 것이다.
벌봉암문을 약 300 m 남겨둔 능선지점에서 왼편으로 평탄하고 너른 공터가 있다. 산케들의 공식 정상주 자리다.
법화골 갈림목을 지난다. 법화골法華谷은 병자호란(조청朝淸전쟁) 당시 청나라 태종의 매부인 양고리가 조선의 원두표 장군에게 패하여 전사하자 전쟁이 끝난 후 양고리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남한산성 밖에 양고리의 고향인 법화둔의 지명을 따서 세운 법화암이란 암자가 있었던 골짜기라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이다. 지금 법화암 절터에 3개의 부도가 남아 있다.
가지울 갈림목-골짜기가 마치 나뭇가지처럼 많이 뻗어 있는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을 가지울 또는 가지동이라 부른다.
능선 끝으로 남한산성과 벌봉암문이 보인다. 왼편의 솟은 봉우리가 벌봉.
암문을 통과하여 왼편에 우뚝 솟은 벌봉 정상을 오른다. 대개 벌봉은 오르지 않고 그냥 지나쳤는데 오늘은 이 코스를 처녀산행한 회산, 대인, 우경, 우암을 위해 벌봉을 오르는 것이다. 벌봉은 해발고도 512m로서 남한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다. 벌봉은 큰 바위덩어리인데 암문 밖에서 바라볼 때 벌처럼 생겼다해서 붙은 이름이다. 그런데 벌봉 바위를 가까이에서 보면 벌집과 같이 표면이 울퉁불퉁한데 그래서 붙은 이름이 아닌가도 싶다. 산성이 벌봉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벌봉바위가 산성의 일부로 되어 있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대가 이곳에 망루를 세워 놓고 성 내부를 감시하였다고 한다. 벌봉에서 인증샷.
오른편으로 내려와 아래에서 올려다본 벌봉.
봉암성 가는길의 남한산성과 봉암성蜂巖城-남한산성은 단순한 하나의 성곽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본성, 봉암성, 한봉성, 신남성과 5개의 옹성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구조의 성곽이다. 봉암성은 본성의 동쪽인 동장대 부근에서 북동쪽의 능선을 따라 벌봉 일대를 포괄하여 쌓은 외성. 병자호란 당시 벌봉을 청군에게 빼앗겼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숙종때인 1686년 성을 쌓기 시작하였고, 1705년에는 포루를 증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봉암성은 남한산성의 본성에 비해 새로 쌓은 성이어서 신성新城, 또는 본성의 동쪽에 있는 성이어서 동성東城이라고도 부른다. 봉암성의 총길이는 2,120m.
남한산성의 또 하나의 암문을 지난다. 전에는 이 암문(남한산성 제3암문)을 지나면 막걸리를 팔고 있었는데 오늘 보니 정비가 되어 그 자리에 휴식을 위한 탁자와 의자가 설치되어 있다.
북문을 거쳐 서문에서 마천동으로 내려가는게 원래 코스였는데, 암문에서 북문으로 가다가 길을 잘못 들어선 탓에 산성안 현절사가 나타난다. 벌봉으로 오르지 않고 바로 북문으로 향한 지산과 통화하여 우리는 산성 종로에서 버스로 내려가기로 하고, 지산은 예정대로 마천동으로 내려가 가락시장역 부근 목욕탕에서 만나기로 약속. 현절사는 병자호란때 청나라에게 항복을 거부했던 삼학사(홍익한, 윤집, 오달제)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
산성안 포장도로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아이젠을 벗고 스틱을 접어 넣는다. 한옥체험가옥 앞 소나무 가지에는 고드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종로의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도중 왼편에 산성안 성당과 가톨릭의 무명순교자를 기리는 큰 현양비가 있다.
기념비가 종로에서 버스로 산성역으로 이동한 후 지하철로 가락시장역 도착. 목욕 후 회산의 안내로 단골집 가락시장 안 춘향골 남원추어탕에서 생선회로 즐겁고 행복하게 뒤풀이.
2012. 2. 6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