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5/9 798차 한양도성길 낙산구간-흥인지문구간
산행로: 한성대입구역 5번-혜화문-한성대입구역-삼선교로4길-서울성곽-장수마을입구-낙산순성길-암문-낙산공원-낙산성곽서길 이화동마을박물관-이화동벽화마을-이화장앞-성곽지하보도-낙산성곽길-동대문성곽공원-흥인지문-청계천오간수교와 오간수문-동대문역사문화공원-광희문-장충동족발골목(5km, 2시간15분)
산케들: 智山, 百山, 松潭, 丈夫, 斗杠, 凡中, 元亨, 새샘 (8명)
뒤풀이: 素山, 김주병(2명)
오늘은 한양도성길을 트레킹한는 날이다.
사적 제10호로 지정되어 있는 서울 한양도성은 조선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외부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성.
태조 5년(1396)에 백악(북악산), 낙타(낙산), 목멱(남산), 인왕의 내사산 능선을 따라 축조한 이후 여러 차례 개축하였다.
성의 평균 높이 5-8m, 전체 길이 18.6km에 이르는 한양도성은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랫동안(1396-1910, 514년) 도성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한양도성에는 4대문과 4소문을 두었다.
4대문은 북쪽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숙정문, 흥인지문, 숭례문, 돈의문이며, 4소문은 서북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창의문, 혜화문, 광희문, 소의문이다.
이 중 돈의문과 소의문은 멸실되었다.
또한 도성 밖으로 물길을 잇기 위해 흥인지문 남쪽에 오간수문과 이간수문을 두었다.
한양도성의 복원사업은 1975년부터 시작되어 2014까지 12.8km, 전체 길이의 70%가 복원 정비되었다.
1994년 남산의 도성길이 정비되고 전면 개방되었고, 1996년 김영상 정부때 인왕산 전면 개방, 2006년 노무현 정부때 백악길이 열렸다.
2008년 숭례문 방화사건을 계기로 시민들의 관심은 폭발적으로 늘어남으로써 한양도성을 도는 시민들이 급증하였고 자발적인 봉사단체가 전문해설을 곁들여 도성탐방을 주도했다.
한양도성길은 모두 6개의 구간으로 나뉜다.
백악구간은 창의문에서 혜화문까지의 4.7km 3시간 거리이며, 모두 6개의 코스가 있다.
이 중 성곽길은 3개 코스로서 1 창의문코스는 창의문-백악곡성 1.7km 1시간 20분(주요 명소: 창의문, 백악마루, 백악곡성), 2 숙정문코스는 백악곡성-와룡공원 1.8km 1시간(주요 명소: 숙정문, 말바위안내소, 북촌한옥마을), 3 와룡공원코스는 와룡공원-혜화문 1.2km 40분(주요 명소: 북정마을, 간송미술관, 혜화문)이다.
나머지 3개코스는 성곽길 주변코스로서 2-1 삼청각코스, 2-2 말바위코스, 2-3 삼청공원코스이다.
낙산구간은 혜화문에서 흥인지문까지 2.1km 1시간 코스로서 모두 성곽길(4코스)이다.
이 구간은 성곽 안길과 바깥길 2개가 있어 암문을 통해 양쪽길을 번갈아 가면서 걸을 수 있다.
주요 명소는 낙산공원, 이화마을, 이화장, 한양도성박물관(서울디자인지원센터), 동대문성곽공원 등이 있다.
낙산공원놀이마당을 둘러볼 수 있는 4-1코스도 있다.
흥인지문구간은 흥인지문에서 장충체육관까지 1.8km 1시간 거리이며 성곽이 없는 구간이 대부분이다.
흥인지문에서 광희문까지의 5 흥인지문코스, 광희문에서 장충체육관까지 6 광희문코스로 나뉜다.
주요명소는 흥인지문, 청계천 오간수문터와 이간수문, 동대문역사문화공원, 광희문 등이다.
남산구간은 장충체육관-백범광장의 4.2km 3시간이며, 3개코스로 나뉜다.
장충체육관에서 국립극장까지의 7 장충체육관코스는 1.6km 45분 거리이며 암문을 통해 성안길과 바깥길을 모두 걸을 수 있다.
국립극장에서 남산공원까지의 7-1 국립극장코스는 1km 45분 구간.
남산공원에서 백범광장까지의 7-2코스는 1.6km 1시간30분이며 백범광장은 성곽 안길과 바깥길이 타원형으로 연결되어 있다.
주요명소는 장충단공원의 장충단비와 수표교, 국립극장, 남산골한옥마을, 남산공원의 석호정, N서울타워, 팔각정, 목멱산 봉수대터 등이 있다.
숭례문구간은 백범광장에서 돈의문터까지 1.8km 1시간 걸리는 8코스의 단일코스이다.
이 구간은 성곽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시가지이다.
주요 명소로는 숭례문을 비롯하여 남대문시장, 정동교회, 소의문터, 구 러시아공사관 등이 있다.
인왕산구간은 돈의문터에서 창의문에 이르는 4km 2시간30분 거리이며, 성곽구간은 2개 코스로 나뉜다.
돈의문터에서 인왕산곡성까지 2km 1시간의 9 돈의문터코스와, 인왕산곡성에서 창의문까지 2km 1시간30분 걸리는 인왕산코스이다.
성곽 가까이에 있는 사직근린공원을 걷는 9-1코스도 있다.
주요 볼거리는 돈의문터, 경교장, 인왕산, 윤동주문학관이다.
오늘 트레킹은 한성대입구역에서 출발하여 한양도성길 중 낙산구간과 흥인지문구간을 연결해서 걷게 될 것이다.
먼저 길 건너 저멀리 보이는 혜화문을 보려고 길을 건넌다.
혜화문을 오르는 계단 앞에 표석이 있고, 이 표석 자리가 혜화문 즉 당시의 홍화문이 서 있던 홍화문터.
혜화문惠化門-서울성곽의 사소문 중 북동방향의 성문.
서울성곽이 축성된 태조때인 1396년에 지어졌으며 축성 당시 이름은 홍화문弘化門이었다.
그러나 창경궁의 동문 이름도 홍화문이어서 혼동을 피하기 위해 중종때인 1511년 혜화문이 되었다.
속칭 동소문東小門이라고도 부른다.
일제강점기에 전찻길 때문에 성문조차 헐렸던 것을 1992년에 복원하였다.
이 때 도로로 인해 원래 자리에서 약간 북쪽으로 옮겨 지었다.
혜화문 앞에서 산케들의 인증샷
혜화문 앞 큰길에서 동쪽의 창경궁 방향을 바라보면 길건너 서울성곽이 보인다.
창경궁로를 건너 삼선교로4길의 계단을 올라 서울성곽에 이른다.
서울성곽에 올라 오른편을 바라보니 북한산과 도봉산 능선이 시원스레 한눈에 들어온다.
성 밖에서 본 서울성곽.
조선왕조별 성곽축성기법이 달랐다.
아래 사진에서 보면 낙산 서울성곽은 세종 때 쌓은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별 한양도성 축성기법
장수마을 입구
뒤돌아본 낙산 서울성곽과 북한산
암문을 통과하여 한양도성 안으로 들어간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성곽 바깥길은 성곽동길이고, 성곽안길은 성곽서길이다.
이곳은 숙종 때 축조된 도성.
암문을 통해 도성 안으로 들어가면 낙산에 조성된 낙산공원이다.
낙산駱山(126m)은 주산인 북악산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내사산의 하나로서 산의 모습이 낙타등처럼 볼록하게 솟았다고 해서 낙산 또는 낙타산으로 불렸다.
낙산공원에는 봄꽃이 만발하고 있었다.
이팝나무.
매자나무
낙산 서울성곽에서 도성 안을 정면으로 보았을 때, 중앙의 푸른숲은 창경궁, 오른편 나무 뒤에 보이는 산은 북악산이며, 그 뒤로 우뚝 솟은 봉우리는 북한산이다.
왼쪽에 남산 N서울타워가 보인다.
도성 안에서 성곽 바깥으로 눈을 돌리니 오른쪽에 동대문 두타빌딩이 우뚝 서 있다.
이화동마을박물관을 거쳐 이화동벽화마을로 내려간다.
이화동마을박물관은 이화동에 있는 몇개의 박물관을 통틀어 부르는 이름이다.
지금 열리는 '이화동 마을박물관 2015'는 이화동 주민, 마을에 거주하는 문화예술계 종사자와 작가들이 참여하여 자신들의 작품과 소장품을 마을 곳곳에 있는 박물관, 갤러리, 공방 등에서 전시하는 예술행사.
이화동 마을은 조선 한양도성의 동쪽인 낙산성곽 안쪽에 자리한 마을로서, 낙산의 아늑한 산세와 함께 옛부터 수려한 경관과 맑은 물이 흘러 사대문안 양반들이 풍류를 즐겼던 곳이었다.
현재의 이화동마을은 1950년대 말 이화동 국민주택단지가 원형으로 구릉지에 조성된 것.
1970년대 동대문시장이 활성화되면서 마을에는 소규모 봉제공장과 미싱공의 주거지가 형성되었고, 그후 도시화가 되지 못해 낙후된 동네로 인식되었다.
2006년 문화관광부와 함께 벌인 공공미술프로젝트로서 마을벽화가 조성되면서부터 서울의 대표 벽화마을로 자리매김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벽화마을을 지나 이승만 전대통령의 거처였던 이화장 도착.
하지만 문이 굳게 닫혀 있다.
벽에 붙은 공고문이 있어 읽어보니 2011년에 내린 집중호우로 크게 훼손되어 지금도 복원공사 중.
굳게 닫힌 철문 위로 들여다보니 이승만 전대통령의 동상 상반신만이 보일 뿐이다.
성곽 암문을 통해 다시 도성 밖으로 나간다.
이곳 성곽 역시 낙산공원의 성곽과 마찬가지로 숙종때 축조.
낙산성곽동길을 따라 흥인지문으로 향한다.
길 주변에 활짝 피어 좋은 향기를 풍기는 찔레꽃
흥인지문과 두타빌딩이 보이는 흥인지문사거리 도착
흥인지문興仁之門-한양도성의 동대문.
현재의 흥인지문은 고종 때인 1869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조선 후기건축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어 보물 제1호로 지정되었다.
한양의 지세는 서고동저西高東低로서 동대문이 가장 취약하였다.
그래서 동대문 바깥쪽으로 옹성을 하나 더 쌓은 것이다.
1970년에 좌우 성벽이 헐려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흥인지문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동대문성곽공원이다.
이화여대부속병원이 있던 자리에 한양도성박물관을 지었으며 동쪽으로 서울성곽을 끼고서 이 공원을 조성하였다.
동대문성곽공원의 성곽 바깥으로 교회 첨탑이 보인다.
동대문성곽공원에 설치된 미술작품 'REVIVE'(한진연 작)'.
가볍과 일회성을 가진 비닐은 다양한 형태를 가지는 동시에 고정적이거나 영속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성질을 이용하여 작가는 비닐에게 일회용품이 아닌 작품으로서의 새로운 역할과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비닐로 자신이 닮고 싶은 형태를 제작하여 이미지나 정신을 되새기는 작업을 해 나가고 있다.
REVIVE 작품은 독수리 형태의 구조를 만든 뒤 비닐을 씌워 새로운 조형물을 만들어 낸 것이다.
비닐이라는 재료가 지닌 속성을 생명력이 강한 독수리에 비유해 만든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이에게 희망과 꿈을 안겨주고자 한다.
2015 종로 도시갤러리프로젝트 아트윈도우 전시물.
동대문성곽공원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두타빌딩을 지나 동대문지하쇼핑센터 8번 출입구 부근에 화강암 표지석이 서 있어 들여다 보니 이 자리가 대중교통수단이었던 전차 차고터였단다.
청계천 오간수교
오간수문터五間水門址(사적 제461호).
이 부근은 서울에서 가장 낮은 지대로 내사산에서 내려온 물이 모두 이곳을 거쳐 도성 밖으로 흘러나갔다.
성벽이 청계천을 만나는 위치에는 수문들이 이어져 있었다.
동대문운동장 관중석 밑에 매몰되어 있다가 발굴된 이간수문은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오간수문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다만 오간수문 즉 5칸의 수문(수문 5개)이 있던 자리만이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을 뿐.
오간수교 아래 청계천에는 제법 큰 물고기가 헤엄쳐 다닌다.
옛 동대문운동장터에 조성된 공원인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조선 후기 이곳에 훈련도감의 별영인 하도감과 화약제조관서인 염초청이 있었다.
1925년 일제는 일본왕세자 결혼기념으로 이곳에 경성운동장을 지었는데 성벽을 이용하여 관중석을 만들었다.
해방후 경성운동장은 서울운동장으로 개칭되었다가 88올림픽 때 다시 동대문운동장이 되었다.
근현대 한국스포츠의 중심지였던 이 운동장이 헐린 것은 2007년.
당시 철거과정에서 땅속에 묻혀 있던 성벽 일부와 두칸짜리 수문 즉 수문 2개인 이간수문, 치성雉城(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적을 방어하기 위한 시설물), 하도감으로 추정되는 건물 유구 등이 대거 모습을 드러냈다.
현재 이간수문은 원자리에 있으나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자리에 있던 건물 유구는 공원 안으로 옮겨졌다.
이 자리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내 동대문역사관에서 볼 수 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알림터/아트홀
이간수문二間水門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백장미길-진짜 백장미인줄 알았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조화!
한양공고앞사거리는 퇴계로에서 을지로가 갈리는 지점이다.
여기서 서쪽으로 퇴계로 입구를 바라보면 왼쪽에 광희문이 있고 그 맞은 편 모퉁이에 아리움 arium 아리움이란 간판이 붙어 있는 다소 이색적인 형태의 건물이 보인다.
이 건물을 보자마자 바로 생각이 떠올랐다.
다름아닌 지난 4월 중순 안양예술공원 김중업박물관에서 보았던 건축가 김중업이 1965년 설계한 서산부인과건물!
광희문光熙門은 한양도성의 동남쪽에 있는 문.
이 문을 통해 시신가 나간다고 해서 시구문屍口門 또는 물이 빠져나간다고 해서 수구문水口門이라 불렀다.
일제강점기에 일부 무너지고 1960년대에 퇴계로를 내면서 반쯤 헐렸던 것을 1975년 원 위치에서 남쪽으로 15m 떨어진 현 위치에 중건하였다.
광희문은 백성들도 출입하기를 꺼리는 문이었으나 이 문을 이용한 왕이 있었다.
인조는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군사가 예상보다 빨리 도성에 접근하자 이 광희문을 통해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였다.
한편 광희문 밖은 노제장소였기 때문에 무당집들이 많아 신당리神堂里라고 불렸는데, 갑오개혁 이후 신당리新堂里로 바뀌었다.
광희문 앞에서 산케들의 기념촬영
김중업이 설계한 서산부인과 건물
광희문 서울성곽-맨 오른쪽의 광희문과 연결된 성곽은 네모진 큰돌로 되어 있어 순조 때 축조된 것이고, 그 왼쪽 성곽은 보다 작은 돌이므로 숙종때 성곽이며, 그 왼쪽은 다시 순조 때 성곽.
이렇게 한양도성은 여러 왕에 걸쳐 정비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도성 안 서울성곽 모습
장충동 족발골목으로 가는 도중 장충단로8가길을 통과한다.
오늘 트레킹의 종착지인 장충동 족발골목의 원조1호 장충동할머니집에서 뒤풀이를 벌인다.
소산회장과 김주병 동기회장도 이 자리에 와서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
2015. 7. 16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