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국내

2018. 11/16 홍천 공작산 수타사

새샘 2019. 1. 26. 19:20

강원 홍천군 동면 수타사로(덕치리)에 위치한 공작산孔雀山 수타사壽陀寺는 조계종 사찰로서 신라 성덕왕 때인 708 원효 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원효 스님이 686년 입적했으므로 창건자와 연대 중 어느 하나는 잘못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창건 당시 이름은 우적산 일월사였지만 조선시대에 현 위치로 옮기면서 공작산 수타사水墮寺(지금의 수타사와는 한자도 뜻도 다름)라고 하였다.

옮긴 시기는 수타사 홈페이지에 선조 때인 1568으로, 네이버 지식백과에는 수타사 홈페이지와 같은 1568년으로 기록된 백과사전과 세조 때인 1457이 기록된 백과사전이 모두 수록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 불타 40년을 폐허로 있다가 인조 때인 1636년 중창되기 시작하여, 순조 때인 1811년 사찰 이름을 아미타불의 무량한 수명을 상징하는 지금의 壽陀寺로 변경하였고, 1992년에 원통보전을 세우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수타사 북쪽으로는 북한강 지천인 홍천강으로 흘러드는 덕치천이 흐르고 있으며, 가장 가까운 산봉우리는 동쪽의 약수봉(559m)으로 여기서 북동으로 뻗은 능선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정상인 공작산(887m)이 나온다.

그래서 수타사를 인근의 가장 높은 산봉우리인 공작산의 이름을 붙여 공작산 수타사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수타사 가람 배치도

 

 

수타사로 들어가는 덕치천 다리인 공작교를 건너기 전에 바라본 수타사 전경

 

공작교를 건너 수타사로 향하면서 바라본 수타사 전경 - 오른쪽 붉은 문이 경내로 들어가는 봉황문이며, 왼쪽 누각은 범종각이다.

 

수타사로 들어가는 봉황문으로 다가간다.

 

봉황문 앞에서 찍은 수타사 파노라마 - 봉황문 오른쪽의 기와 건물은 수타사 보물을 전시하는 성보박물관 보장

 

수타사 정문 역할을 하는 봉황문 안에는 소조사천왕상(강원 유형문화재)이 있으므로 이 문은 천왕문에 해당한다.

수타사 기록에 따르면 조선 현종 때인 1674년에 봉황문을 세웠고, 2년 뒤인 숙종 때인 1676년 사천왕상을 만들었다.

 

나무를 기본형태로 하여 새끼줄을 감고 그 위에 진흙을 발라 빚은 봉황문 소조사천왕상 중 왼쪽 깃대를 든 서방광목천왕과 오른쪽 비파를 든 북방다문천왕 

 

봉황문을 지나서 계단 위에서 찍은 수타사 파노라마 - 사진 왼쪽부터 지붕 끝자락만 보이는 봉황문, 범종각, 지붕만 보이는 화장실, 식당인 공양간, 종무소와 불교대학이 있는 백련당, 한가운데 흥회루, 천막 뒤가 원통보전, 나무 뒤의 심우산방, 그리고 오른쪽 끝의 불교용품점

 

봉황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정면 맞배지붕 가람의 현판에는 절의 이름인 '壽陀寺'라고 씌여있다. 

그런데 그 현판 아래로 뚫린 창문을 통해 안을 들어야 보면 '흥회루興懷樓'란 현판이 보이고, 현판 아래는 기둥만 있고 문이 없기 때문에 흥회루와 마주보고 있는 대적광전은 물론 안에 봉안된 비로자나불후불탱화까지 보인다.

 

흥회루는 조선 효종 때인 1658년 지은 앞면 5칸 옆면 3칸의 직사각형(장방형) 평면으로 된 강원도에서 가장 오래된 보기 드문 누각 형태의 강당 건물로서, 이름으로만 보면 2층 누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진에서 보듯이 단층 건물로서 뒤쪽에 마주보고 있는 수타사 주불전인 대적광전을 향해 예배를 드리거나 설법을 위한 강당 및 대규모 불교 의식을 거행하던 장소로 활용되었다가 지금은 주로 방문객의 휴식장소를 이용되고 있는 듯하다.

흥회루처럼 사찰의 중심 공간으로 들어가는 누각 형태의 건물은 1층에 기둥만 서 있어 누각 밑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통이지만, 수타사의 흥회루는 단층 건물이기 때문에 오른쪽으로 돌아서 사찰 중심 공간으로 들어가도록 만든 독특한 진입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흥회루는 기본적인 평면과 구조, 공포와 가구, 세부 형식 등에 있어 창건 당시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으면서 조선후기 건축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는 건물로서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흥회루 안에는 용이 아닌 물고기가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목어와 용 무늬가 그려진 법고가 보관되어 있다.

 

대적광전 앞마당으로 들어가서 보면 2층 누각 형태의 건물인 것 같은 흥회루

 

봉황문 왼쪽(북쪽)의 범종각 - 단층이며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동종銅鐘이 보관되어 있다.

오른쪽의 기와집은 화장실.

 

보물 제11-3호 수타사 동종(출처-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imgHeritage.do?ccimId=1616241&ccbaKdcd=12&ccbaAsno=00110300&ccbaCtcd=32)은 조선 숙종 때인 1670년 당시 승려이자 뛰어난 장인인 사인비구思印比丘가 제작한 것으로서 전통적인 신라 종의 제조 기법에 독창성을 더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동종은 사인비구가 만든 종 가운데 보물 제11-2호 문경 김룡사 동종과 함께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 주변에 굴곡진 화문을 첨가한 독특한 당좌로 표현하여 완숙미와 독창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김룡사 동종과 같은 해인 1670년에 제작되었으며 김룡사 동종보다는 3개월 늦게 완성되었다.

 

흥회루 오른쪽을 돌아 들어가 대적광전 앞마당 입구에 서서 왼쪽으로 본 불전들과 지붕 위로 보이는 산 능선 - 왼쪽부터 지붕만 보이는 흥회루, 종무소가 있는 백련당, 그 오른쪽으로 지붕 끝 일부분만 보이는 지장전, 오른쪽 대적광전

 

백련당 쪽으로 조금 더 걸어들어가 바라본 위 사진의 불전들 - 왼쪽부터 지붕만 보이는 흥회루, 백련당, 대적광전, 삼성각, 오른쪽 지붕만 보이는 원통보전

 

백련당대적광전

 

백련당白蓮堂은 종무소와 불교대학본부가 있으며, 요사채로도 이용되고 있는 가람으로서 본전인 대적광적전에 봉안된 비로자나불이 바라볼 때 서쪽에 해당하는 오른쪽에 위치하므로 서선당西禪堂이라고도 부른다.

 

대적광전大寂光殿은 수타사의 주불 主佛인 비로자나불을 모신 수타사의 주불전본전本殿이다.

임진왜란 때 불타 버린 것을 인조 때인 1636년 다시 지었다.

앞면과 옆면이 각 3칸 규모의 단층 겹처마 팔작지붕(옆에서 볼 때 팔자 모양의 지붕)을 가진 다포양식(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양식) 건물이다.

조선 중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공포와, 균형이 잘 잡혀 있는 조선 후기 불전 건물로서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대적광전의 주불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우주 만물의 창조주로서 진리의 빛을 비추는 부처이며, 과거·현재·미래의 삼세三世에 걸쳐 항상 진리만을 설법하는 법신불法身佛에 해당하는 부처, 그래서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신 불전을 (대)적광전, 대광명전, 비로전, 화엄전, 보광(명)전 등으로 부른다]과 후불 탱화로서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영산회상도 靈山會上圖.

 

후불이란 불전 안에 모신 본존상 뒤에 걸어둔다는 것이고, 탱화畵란 족자나 액자의 형태로 만들어 걸어두는 불화를 말하므로, 후불탱화란 아래 사진에서와 같이 본존불인 비로자나불상 뒤에 걸린 탱화이다.

 

영산회상도란 석가모니 부처가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고 있는 장면을 그린 불화를 말한다.

바로 아래 사진은 새샘이 찍은 대적광전에 걸린 후불탱화로서 비로자나불처럼 지권인을 하고 있다.

 

반면 두번째 사진인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에 실린 영산회상도의 부처는 바로 아래 사진과는 달리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 석가모니불이며, 설명도 석가모니불에 대한 것이다. 

보물 후불탱화는 훼손이나 도난을 우려하여 성보박물관인 보장각에 보관하는 대신 후불탱화를 다르게 그려서 걸은 놓은 것으로 보인다.

 

대적광전에 걸린 비로자나불 후불탱화 영산회상도 - 불화 속 부처는 앞에 있는 비로자나불 수인처럼 지권인을 하고 있으므로 석가모니불이 아닌 비로자나불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에 실린 대적광전 후불탱화 영산회상도(출처-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21,01220000,32#)는 성보박물관인 보장각에 보관되어 있으며,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고 있는 항마촉지인의 석가모니불 그림이다. 

그림 아랫 부분에 영조 때인 1762년 금어 진찰 등이 그렸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비단 바탕에 그렸으며 크기는 세로 278×가로 263㎝이다.

 

대적광전 오른쪽에 있는 원통보전 앞에서 찍은 수타사 불전 파노라마 - 왼쪽부터 천막 뒤 지붕만 보이는 흥회루, 백련당, 대적광전, 삼성각, 한가운데 원통보전, 심우산방

 

대적광전 오른쪽에 위치하며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신 불전 원통보전圓通寶殿은 앞면과 옆면이 각각 3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안에는 목조관음보살좌상과 후불탱화가 걸려 있다.

 

원통보전 내부 파노라마 - 가운데에 목조관음보살좌상(강원 유형문화재)후불탱화가, 그 좌우로 작은 크기의 부처 좌상 천 개를 말하는 소천불좌상小千佛座像이 배열되어 있으며, 좌우 벽에는 불화가 걸려 있다.

 

강원도 유형문화재인 목조관음보살좌상과 후불탱화(출처 -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5457679&memberNo=383392)

 

새샘이 찍은 목조관음보살좌상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에 실린 홍천 수타사 목조관음보살좌상(출처 - http://www.heritage.go.kr/heri/cul/imgHeritage.do?ccimId=3783446&ccbaKdcd=21&ccbaAsno=01760000&ccbaCtcd=32#) - 이 불상의 배 안을 뜻하는 불상복장佛像腹藏에서 발견된 유물(강원 유형문화재)인 조성발원문에는 1758년에 홍천 공작산 수타사 옥수암에서 승려 화가(화승畵僧) 순경과 덕순에 의해 제작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원통보전 팔작지붕 양옆에 생기는 공간인 사람 인人 자 모양을 이룬 합각合閣에 그려진 이자삼점伊字三點 - 큰 원인 원융圓融 안에 정삼각형의 삼각 지점에 그려진 3개의 점으로서 산스크리트어 즉 범어 梵語이다.

그 의미는 열반의 삼덕인 법신, 반야, 해탈이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뜻으로 불교 선종 禪宗의 표지이다.

원이삼점圓伊三點, 열반삼사涅槃三事, 삼덕三德 등의 용어로도 불린다.

 

대적광전과 원통보전 사이의 뒤쪽에 있는 삼성각과 대적광전 왼쪽 뒤에 있는 지장전

 

삼성각三聖閣은 1977년에 중창한 앞면 3칸, 옆면 1칸의 맞배지붕 불전으로 안에는 1895년 봉안한 칠성탱화를 중심으로 1900년에는 그 좌우에 산신탱화독성탱화를 봉안하였다.

 

대적광전 왼쪽 뒤에 있는 지장보살을 모신 지장전地藏殿은 2017년에 지은 불전으로서 지옥을 관장하는 염라대왕 등 10왕 즉 시왕도 봉안하고 있어 시왕전十王殿, 명부전冥府殿 등으로도 불린다.

 

지금은 성보박물관인 보장각에 보관되어 있지만 원래는 지장전에 걸린 불화인 것으로 보이는 강원 유형문화재 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imgHeritage.do?ccimId=1638180&ccbaKdcd=21&ccbaAsno=01230000&ccbaCtcd=32)는 조선 영조 때인 1776년 화승 비구 설인 등이 그렸다.

크기는 세로 186 × 가로 205 ㎝.

 

대적광전과 지장전 사이에서 앞쪽으로 내려다 본 수타사 가람과 주변 산세 - 왼쪽부터 차례로 지붕 반쪽만 보이는 대적광전, 백련당, 공양간, 지장전

 

지장전에서 대적광전 앞마당으로 내려가 종무소가 있는 백련당과 마주보고 있는 가람인 심우산방尋牛山房으로 향한다.

이곳은 주지스님이 거처하는 요사채로서 대적광전 주불인 비로자나불이 바라볼 때 왼쪽에 해당하는 동쪽에 위치하고 있어 동선당東禪黨으로 부르기도 한다.

 

심우산방 앞에 서서 오른쪽 길 건너에 위치한 성보박물관 건물인 보장각을 바라보면 건물 앞쪽에 두 그루의 나무가 서 있다.

왼쪽은 소나무이고 오른쪽은 나무껍질 즉 수피가 붉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 주목朱木이다.

이 주목은 500여년 전 수타사가 지금의 자리로 옮겼을 때 절의 큰 스님이 들고다니는 지팡이인 법장法杖으로 샘물을 찾아 그 자리에 꽂았는데, 그 지팡이가 자라 주목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나무를 삽목해서 키운 새끼 주목이라고 한다.

천년을 산다는 500여년 전의 주목은 이미 고사목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성보박물관인 보장각寶藏閣은 2005년 개관한 건물로서 수타사가 소장한 보물을 보관하기 위해 지었다. 

보장각에는 현재 수타사의 가장 귀중한 보물인 월인석보月印釋譜(보물 제745호)를 비롯하여 앞서 언급된 강원 유형문화재들인 영산회상도지장시왕도 등의 불화와 관음보살좌상 복장유물인 사리함 등이 보관되어 있다.

 

보장각 왼쪽 건물 이름은 장판각藏板閣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목판이 꽂혀 있는 걸로 보아 불경을 새긴 목판 등을 보관하는 곳인 듯하다.

 

보장각 앞에서 봉황문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봉황문 직전에 불교용품 판매점이 있는데, 출입문 위 현판에는 '상락아정常樂我淨'이라고 적혀 있다.

상락아정이란 말은 불교의 법신과 열반의 네가지 덕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열반사덕 또는 법신사덕이라고도 하며, 사덕이라 줄여서 말하기도 한다.

이란 영원하여 변하지 않음, 은 고통이 없는 안락함, 는 진실한 자아, 그리고 은 번뇌의 더러움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2019. 1. 26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