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

자연발생설과 파스퇴르의 백조목플라스크 실험

새샘 2025. 1. 18. 20:32

고대 사람들은 세상의 다양한 생명체를 보면서 그것들이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했다.

그리고 생명체 기원에 대한 신화가 만들어졌다.

문화권에 따라 다양한 신들이 존재하지만 대개 하늘의 신과 땅의 신이 등장한다.

하늘의 자연현상과 땅의 생명현상을 설명하기 적절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도 하늘의 신 우라누스 Uranus와 땅의 여신 가이아 Gaia가 등장한다.

두 신의 결합으로 나온 자식들 중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가 흙으로 인간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리스 신화보다 의학과 과학에 더 큰 영향을 준 것은 바로 성경의 '창세기創世' 신화다.

창세기에서는 하느님이 세상을 6일 만에 창조하고 마지막 날 인간을 포함한 수많은 생명을 만들었다.

하지만 하느님이 인간과 생명체들을 만들었다면 하느님은 어떻게 탄생한 것인가?

다소 불경스러운 이 질문은 생명의 기원에 대한 종교적인 관점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무조건 믿어라'하고 주장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믿는 신을 누가 창조한단 말인가?

 

고대에도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순순히 종교적 창조론을 믿지 않았다.

스스로 생명의 기원을 찾기 위해 자연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인 '자연발생설自然發生說 spontaneous generation theory'이었는데, 신이 생명을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이 생명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자연발생설에 따르면 땅속에서 벌레, 두더지, 뱀이 부모 없이 저절로 생기고, 호수 밑바닥에서 물고기와 개구리가 저절로 생긴다.

물론 썩은 동물의 시체에서 날파리도 저절로 생겼다.

고대 그리스 ancient Greece 최고의 과학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영어 Aristotle)(서기전 384~322)도 자연발생설을 믿었다.

우리가 지금은 비과학적이라 생각하는 자연발생설이 당시에는 종교적 창조론과 대비되어 오히려 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자연발생설은 19세기 중반 근대 과학의 시대까지도 지지를 받았다.

근대 과학자들이 자연발생설을 지지했던 이유는 나름대로 실험을 통해 그 설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떤 실험이었을까?

17세기 벨기에 Belgium 화학자인 얀 밥티스타 판 헬몬트 Jan Baptista van Helmont(1579~1644)의 실험을 살펴보자.

그는 자연발생설을 증명하기 위해 땀으로 더러워진 옷에 각종 영양소(기름, 우유, 쌀가루)를 뿌려 창고 안에 두었다.

다음 날 창고를 들여다보았더니 옷 주변에 쥐가 돌아다니는 것을 발견하고 쥐가 자연적으로 발생했다고 생각했다.

대충 봐도 매우 허술한 실험이었다.

 

 

자연발생설을 부정하는 레디의 실험(출처-출처자료1)

 

헬몬트가 사망하고 난 뒤 자연발생설을 부정하기 위한 제법 과학적인 실험이 등장했다.

교과서에 실려 있어 유명한 '레디의 실험'이다.

이탈리아 Italia 의사 프란시스코 레디 Francesco Redi(1626~1697)는 1665년 자연발생설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두 가지 상황을 만들어 비교하는 대조 실험을 했다.

레디는 2개의 병(A와 B)을 준비해 각각 죽은 생선을 넣었다.

병 A에는 뚜껑을 덮지 않고 파리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했고, 병 B는 거즈 gauze를 덮어 공기는 통하되 파리가 병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최초의 과학적 대조 실험에 빛나는 레디의 실험이었지만 피할 수 없는 오류가 발생할 수 있는 실험이기도 했다.

당시의 기술로는 죽은 생선이 미생물이 기생충 같은 것에 오염되어 있는지 여부를 미리 확인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실험 결과도 다소 엉뚱했다.

 

실험 결과 뚜껑이 없어 파리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던 병 A에서는 생선에 구더기가 생겼다.

파리가 들어가 알을 낳은 것이다.

대조적으로 파리가 드나들 수 없었던 병 B에서는 구더기가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을 두고 기다리자 두 병 모두에서 기생충이 생겼다.

실험에 사용한 생선들이 이미 기생충에 오염된 상태였던 것이다.

레디는 어떻게 결론을 내렸을까?

그는 파리와 기생충을 각각 분리해 생각했다.

파리가 알을 낳지 못했던 병 B에서 구더기가 발생하지 않았으므로 파리는 자연발생하지 않으며 알에게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병에서 모두 발생한 기생충은 자연발생하는 것으로 결론 내릴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구더기들은 생선의 표면에 있는 알에서 생겨난 반면, 기생충은 생선의 내부에서 생겨났으니 그의 결론은 타당해 보였다.

오늘날 기준으로는 잘못된 결론이지만 자신의 실험 결과에 따라 객관적으로 판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레디의 과학적 사고였다.

 

알을 낳는 곤충은 자연발생하지 않지만 기생충 같은 작은 생물 즉 미생물은 자연발생한다는 생각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질 때, 1660년대 후반 네덜란드 Netherlands의 레벤후크 Leeuwenhoek(1632~1723)를 필두로 하는 현미경 기술이 발달하면서 자연발생의 연구 대상이 미생물로도 확장되었다.

자연발생설에 대해 살펴볼 세 번째 실험은 영국의 존 니담 John Needham(1713~1781)이 했던 고기 육수 가열 실험이다.

니담은 육수를 넣은 플라스크 flask를 일정 시간 끓여 육수 안의 미생물을 모두 죽이고 나서 뚜껑을 열어둔 채 상온에서 식힌 뒤 코르크 cork 마개로 밀봉했다.

그리고 밀봉한 육수에서 미생물이 발생하는지 현미경으로 관찰했다.

예상대로 밀봉한 육수에서 미생물이 관찰되자 니담은 "현미경으로만 관찰 가능한 미생물도 자연발생을 한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니담의 실험은 단계별로 반박되었다.

첫째, 미생물이 죽을 정도로 충분히 뜨겁게 가열하지 못했을 수 있다.

둘째, 뚜껑을 열고 식히는 과정에서 미생물에 오염될 수 있다.

셋째, 플라스크 자체가 미생물에 오염되었을 수 있다.

넷째, 코르크 마개가 밀봉되지 않았을 수 있다.

니담의 실험은 이래저래 빈틈이 많았다.

 

이탈리아 박물학자 라차로 스팔란차니 Lazzaro Spallanzani(1729~1799)는 니담의 실험에서 특히 코르크 밀봉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니담의 실험을 반복하면서 플라스크 입구를 코르크 마개로 막지 않고 아예 용접을 해버렸다.

그리고 펄펄 끓였다.

그랬더니 미생물이 생겨나지 않았다.

하지만 자연발생론자들의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용접을 해버리니까 아예 생명의 기운 breath of life까지 들어갈 수가 없잖아"라고 항변했다.

생명이 발생하는 데 생명의 기운이 필요하다는 생기론生氣論을 당시의 많은 과학자들이 여전히 믿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스팔란차니의 실험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그가 고온으로 끓임으로써 미생물을 사멸시키는 멸균 sterilization 요법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이 방법을 다른 방향으로 이용한 요리사가 있었다.

프랑스 France의 니콜라 아페르 Nicolas Appert(1749~1841)였다.

아페르는 식품을 오래 보존하는 방법을 연구하다 조리한 식품을 병에 넣고 오랫동안 가열한 뒤 밀봉하는 방법을 고안했는데, 이것이 바로 최초의 통조림이었다.

똑같은 실험을 통해 스팔란차니는 자연발생설을 논박하고, 아페르는 통조림을 만들었다.

그들은 미생물을 고온으로 가열해 사멸시킴으로써 음식물을 미생물 감염으로부터 보호했는데, 두 학자 모두 자신의 실험이 의학의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깨닫지 못했다.

하여튼 자연발생설에 대한 찬반양론의 대립은 지속되었고, 이 모든 것을 해결할 학자가 필요했다.

드디어 루이 파스퇴르 Louis Pasteur(1822~1895)가 등장할 차례다.

 

 

파스퇴르의 백조목플라스크 실험(출처-출처자료1)

 

파스퇴르는 생명의 기운 즉 공기는 들어오면서 외부 미생물은 못 들어오는 특별한 장치를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백조목플라스크 swan neck flask'다.

백조목플라스크의 실험 순서는 3단계로 이루어진다.

먼저, 고기 육수를 플라스크에 넣고 가열해 육수 안의 미생물을 모두 살균한다.

이어 플라스크의 목 부분을 불에 가열해 S자 형태의 유리관 모양으로 만든다.

그러면 공기는 들어오지만 S자로 휜 부분에 고이는 물 때문에 미생물은 못 들어오는 백조목플라스크가 만들어진다.

마지막으로, 잘 만들어진 백조목플라스크를 장기간 보존하면서 육수 안에 미생물이 번식하는지 지켜본다.

실험 결과는 명확했다.

백조목플라스크에 든 고기육수에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미생물이 번식하지 않았다.

또한 백조목플라스크의 S자 유리관을 제거하자 플라스크에 다시 미생물이 생겼다.

플라스크 안으로 미생물이 유입된 것이다.

이로써 미생물에 의해서만 미생물이 번식한다는 확실해졌고, 자연발생설은 부정되었다.

 

파리 파스퇴르연구소에 전시된 파스퇴르가 사용했던 백조목 플라스크 실물(출처-나무위키 https://namu.wiki/w/%EC%9E%90%EC%97%B0%EB%B0%9C%EC%83%9D%EC%84%A4)

 

이렇게 자연발생설에 종지부를 찍고, 생물속생설을 확립하는데 기여했던 파스퇴르가 당시 실험에 사용했던 백조목플라스크는 실물은 현재 파리에 있는 파스퇴르연구소 Institut Pasteur 연구소에 전시되어 있다.

바로 위 사진에서 보듯이 왼쪽의 백조목이 잘려진 플라스크에 담긴 고기육수는 부패되어 검게 변한 반면, 오른쪽의 백조목플라스크의 고기육수는 아직도 부패되지 않고 맑은색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생명체가 저절로 생겨난다는 자연발생설이 부정되고 생명은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어미가 있어야 한다는 개념이 자리를 잡았다.

이것을 '생물속생설生物續生說 biogenesis'이라 한다.

생물은 부모와 자식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면서 존속한다는 이론이다.

생물속생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도대체 의학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 부분은 파스퇴르의 이야기를 마무리할 때 다시 이어나가도록 하자.

 

※출처
1. 김은중, '이토록 재밌는 의학 이야기'(반니, 2022)
2. 구글 관련 자료
 
2025. 1. 18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