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

나와 남은 언제 결정되는가?

새샘 2025. 5. 31. 10:41

피터 메더워(출처-출처자료1)

 

1941년 영국 생물학자 피터 메더워 Peter Medawar(1915~1987)는 군인들의 피부 화상을 연구 중이었다.

처음에 그는 화상을 입지 않은 정상 피부를 잡아당겨 화상 부위를 덮으려 했지만 화상 부위가 넓으면 그 방법을 쓸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피부를 환자의 화상 부위에 이식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수술이 잘 되었는데도 10일 정도 지나자 거부반응이 일어나 이식한 피부가 모두 손상되어버렸다.

메더워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같은 기증자의 피부로 이식 수술을 다시 해보았는데 특이하게도 재수술을 한 경우에는 거부반응이 더 빨리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왜 재수술에서 거부반응이 더 빨리 나타나는 것일까?

메더워는 '면역학적 반응'을 떠올렸다.

 

어떤 미생물이 처음 우리 몸에 침투했을 때 우리 몸의 면역세포는 며칠에 걸쳐 그 미생물을 물리치고 미생물에 대한 정보를 우리 몸에 저장한다.

그래서 다음에 같은 미생물이 다시 침입했을 때는 즉각적으로 대응한다.

메더워는 미생물에 대한 면역세포의 반응과 피부 이식 수술 이후 발생하는 거부반응이 같은 면역반응에 따른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메더워의 주장은 의학계에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장기 이식 수술이 실패하는 이유가 수술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면역반응의 문제였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환자의 면역계가 기증자의 장기를 외부의 침입자로 인식하고 공격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쌍둥이는 일란성과 이란성이 있다.

일란성 쌍둥이는 하나의 난자와 정자의 수정으로 만들어진 수정란이 생명 탄생 과정에서 분리되어 두 명의 아이로 자라는 것이어서 그들은 유전적으로 동일하다.

반면 이란성 쌍둥이는 두 개의 난자와 두 개의 정자와 각각 수정되어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같이 자리 잡고 자라는 것일 뿐, 유전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두 생명이다.

메더워는 자신의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송아지 일란성 쌍둥이와 이란성 쌍둥이의 이식 수술을 연구하기로 했다.

일란성 쌍둥이는 면역학적으로 동일한 생명체이기 때문에 서로의 이식에 당연히 거부반응이 없을 테지만, 이란성 쌍둥이는 면역학적으로 완전히 다른 생명체여서 이식 때 거부반응이 발생해야 했다.

그런데 결과는 메더워의 예상과 달랐다.

일란성, 이란성 모두 피부 이식 후 거부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피부 이식 후 이란성 쌍둥이 송아지에게서 거부반응이 나타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어미 자궁 속에서 같이 자라는 동안 앞으로 서로에 대해 면역반응을 일으키지 않기로 약속이라도 한 것일까?

메더워는 이런 현상을 '후천(획득) 면역관용 acquired immune tolerance'이라고 이름 지었다.

면역관용 현상은 사실 당연히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면역계가 자시 자신을 공격하면 그 생명체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생명이 만들어지는 어느 순간 앞으로 면역반응으로 공격하지 않을 세포를 기억하고 확정하는 단계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란성 쌍둥이까지 거부반응이 생기지 않은 것을 보면 자신의 세포가 아니더라도 생명 발생 단계에서 만나는 남의 세포에도 면역관용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메더워는 실험을 통해 자신의 가설을 증명하기로 했다.

 

 

낯선 세포를 만난 태아 쥐는 그것 역시 자신의 세포로 받아들였다. 적응면역의 특징인 관용은 후천면역임이 밝혀진 것이다.(출처-출처자료1)

 

메더워는 임신한 쥐를 이용했다.

임신한 어미 쥐 A의 태아 쥐 B에 다른 쥐 C의 세포를 주입했다.

그렇게 되면 태아 쥐 B의 몸에는 자신이 원래 갖고 있던 세포와 외부에서 주입된 쥐 C의 세포, 두 종류가 있게 된다.

뱃속에 있던 태아 B가 태어나 성장한 뒤 쥐 C의 피부를 B에게 이식하면 어떻게 될까?

결과는 놀라웠다.

이식 거부반응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태아 쥐는 어미 뱃속에 있을 때 갑자기 만난 다른 쥐의 세포에 대해 태어난 뒤에도 면역반응을 나타내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것은 면역계가 나와 남을 결정하는 단계가 생명체의 발생 어느 순간에 존재한다는 대단한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후천 면역관용 이론을 실험을 통해 증명한 메더워는 196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출처
1. 김은중, '이토록 재밌는 의학 이야기'(반니, 2022)
2. 구글 관련 자료
 
2025. 5. 31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