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과거를 찾아가는 고고학
고고학자로 살면서 가장 행복한 시간은 새로운 유물과 유적을 만날 때다.
필자가 고고학에 빠지게 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흑백의 우중충한 교과서들 속에서 총천연색의 화려한 지도들이 실린 사회과부도에 시선이 꽂힌 것이다.
사회과부도 속 수많은 미지의 땅과 역사를 꿈꾸면서 고고학에 입문했고, 결국 평생의 직업이 되었다.
그리고 반백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필자는 새로운 유물과 유적들을 만나기를 꿈꾼다.
또 얼마나 많은 새로운 유물이 발견될까 기대감을 품고서...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기원을 찾아가는 고고학이야말로 가장 미래지향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필자의 생각에 공감하지 못하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과거를 발굴하면서 수많은 유물을 발견해나가면 기존의 역사를 새롭게 쓸 수밖에 없다.
그걸 해내는 학문이 바로 고고학이다.
흔히 우리는 역사를 공부하면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고고학도 마찬가지다.
고고학자는 과거를 발굴하지만, 그 목적은 단순한 과거 자료의 수집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새로운 발견에 있다.
고고학은 크게 보면 역사학의 범주이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역사학과는 다르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고고학이 다루는 자료에 있다.
지금도 매일 몇백 건의 고고학 논문이 발표되고 몇만 건의 유물이 출토된다.
그러니 매일 우리가 다루는 자료는 급격하게 바뀌고 있는 것이다.
반면 문헌을 중심으로 하는 고대사는 큰 줄기에서 그 내용이 바뀌기는 어렵다.
50년 전만 해도 남한의 청동기시대는 서기전 7세기부터 시작했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그보다 거의 700년이나 빠른 서기전 15세기부터 시작했다고 여겨지고 있다.
대부분의 독자는 역사책에서 '구석기시대에 토기는 없었다'고 배웠을 것이다.
하지만 30여 년전부터 구석기시대 토기들이 사방에서 발견되었고, 지금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은 아직 빙하기였던 2만 년 전부터 토기를 사용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거가 바뀌었을까?
그렇진 않다.
객관적인 과거는 변하지 않는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가 느끼고 배우는 과거는 변한다.
200년 전만 해도 많은 서양 사람들이 인류의 역사는 6,000년이고 이 세계를 하나님이 창조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미개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보면 모두가 틀린 사실들이다.
어떤가?
생각이 열리는 기분이 드는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과거의 모습이 밝혀질지 모른다.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바로 이 점이 고고학과 역사학의 가장 큰 차이다.
물론, 역사학에서도 새로운 문헌 자료가 등장하고, 또 이미 알려진 문헌을 다르게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고학만큼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자료가 등장하는 일은 정말 드물다.
지금도 고고학계에서는 우리를 둘러싼 물건과 역사에 대해서 새로운 기원을 제시해주는 유물이 등장한다.
그렇게 새로운 기원을 찾아가는 과정은 언제나 즐겁다.
얼마 전 답사를 끝내고 식사를 하던 중 한 학생이 뜬금없이 필자에게 물었다.
"유적들을 다 발굴하고 나면 미래의 고고학자들은 뭘 먹고 살죠?"
필자는 곧바로 대답했다.
"걱정마세오. 그때쯤 되면 학생도 나도 모두 유물이 되어 있을 겁니다. 그러니 행복하게 오래 살면서 후대의 고고학자에게 많은 유물을 물려주면 됩니다."
지겨울 틈 없이 새로운 자료를 찾고 이야기를 이어가는 고고학자야말로 진정 미래를 꿈꾸는 직업인 것 같지 않나요?
앞으로도 흥미진진한 고고학자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출처: 강인욱 지음, 세상 모든 것의 기원, 흐름출판, 2023.
2025. 6. 4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