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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2/4 남인도-스리랑카-홍콩 여행 2일째 첫글: 인도 뭄바이1-도비가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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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2/4 남인도-스리랑카-홍콩 여행 2일째 첫글: 인도 뭄바이1-도비가트

새샘 2014. 4. 16. 22:24

남인도 여행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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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도는 뭄바이 Mumbai와 비슷한 위도상의 인도대륙 중부의 데칸고원 Deccan Plateau 이남지역을 말하지만 사실상 북인도의 아리아인 Indo-Aryan들이 자신들보다 문화수준이 낮다고 치부하는 이질적인 드라비다인 Dravidian 문화를 낮춰 부르는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남인도는 다시 데칸중심 지역과 그 이남의 타밀 Tamil 지역으로 나뉜다. 남인도는 마우리아와 굽타 왕조시대에도 완전히 정복되지 않은 채 어느 정도 독립된 권한을 유지하고 있어 나름대로 독자적인 드라비다인 문화를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기원전 1,200년 경 바다를 통해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팔레스타인 등과 교역을 하였고, 기원전 3세기 경 북인도의 아리아인 문명과의 접촉이 시작되었다. 기원전 1세기에는 로마제국과도 독자적으로 해상무역을 하였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상당히 풍요로웠다고 한다.

 

남인도의 주민은 대부분 드라비다(타밀)인이었지만 마우리아 왕조의 통일제국 이후 점차 아리아인의 문화에 영향을 받았고, 종교는 힌두교보다 아쇼카왕의 불교 전파로 불교와 자이나교의 영향을 먼저 받았다. 타밀 중심의 남인도가 인도 역사에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낸 것은 기원전 2세기 로마제국과의 무역이 시작되면서 촐라, 체라, 판드야의 세 왕국이 형성되면서부터였다. 이들 세 왕조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언어인 타밀어를 사용했으며, 코끼리를 이용한 전쟁을 하였다고 한다. 사탕수수, 과일, 후추 등을 경작하면서 비교적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하였다.

 

이 세 왕조는 후에 팔라바왕조 로 대체되면서 9세기까지 지속된다. 철저한 힌두교도였던 팔라바 왕조는 남인도에 거대한 제국을 형성하였으며, 6세기 후반 싱하 비슈누 왕 때가 전성기였다. 많은 사원을 건립하고 힌두교와 산스크리트어를 권장함으로써 남인도가 힌두사상을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비해 데칸지역에는 사타바하나왕국이 등장하여 인도 전역을 지배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면서 남북인도의 중개자 역할을 담당하였다. 남인도에 최초의 제국을 이룩했던 이 왕조는 특히 쿠산왕조의 남인도 진출을 저지하는 한편 페르시아만의 해상권과 자바와 수마트라 등의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아시아 해상무역을 독차지하였다. 대중적인 종교는 힌두교와 불교였기는 하지만 타종교에 대해서만 관대하였다고 한다.

 

남인도가 여행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인도에서 탄생한 힌두교 Hinduism 미술의 진수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힌두교 신자들은 자신의 종교를 힌두교라고 부르지 않고 '영원한 다르마'라는 의미의 사나타나 다르마 Sanatana Dharma라고 부른다. 힌두교의 발생은 고대인도의 종교사상인 베다 Veda에서 비롯되며, 베다의 사상은 기원전 1500년 이전에서 시작되었는데, 오늘날 종교로서 글로서 남겨진 문학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힌두교는 여러 신들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다신교적 일신교(택일신교 또는 일신숭배)로서 교주 즉 특정한 종교적 창시자가 없는 것이 그 특징이다.

 

남인도 여행의 첫발은 지리적으로 남인도가 시작되는 뭄바이 Mumbai.

인도 제1의 경제도시인 뭄바이는 우너래 포르투칼령이었는데 1661년 포트투갈의 공주가 영국의 찰스2세에게 혼수로 들고 가 버리면서 영국령으로 변신하였다. 홍콩과 마찬가지로 영국은 불모지였던 뭄바이를 세계적인 항구도시로 변신시킨 것. 특히 수에즈운하가 개통되면서 더 이상 아프리카 희망봉으로 우회하지 않아도 되자 뭄바이의 항구적 중요성은 더욱 커져버린 것이다.

 

지금도 인도 농촌의 누군가는 뭄바이행 열차에 몸을 싣고 가난으로부터 카스트의 사슬로부터 탈출하는 꿈을 꾼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인도인들은 뭄바이를 '꿈의 도시'라는 의미의 사쁘네 까 사하르라고 부르고 있다.

 

오늘 02:00경 도착해서 둘러보지 못했던 숙소인 페닌슐라그랜드 Peninsula Grnad 호텔을 오늘 구경을 떠나기 전에 안팎을 한번 주욱 둘러본다.

 

0840 에어콘이 되는 토요타 택시를 1일 대절하여 첫번째 목적지로 정한 남쪽의 도비가트 Dhobi Ghat로 향한다. 택시 오른쪽의 인도인이 택시기사.

 

택시는 뭄바이 서쪽 해안 마힘만 Mahim Bay의 북쪽 반드라와 남쪽 월리을 연결하는 해양사장교 Sea Cable-stayed bridge인 반드라-월리 해양대교 Bandra-Worli Sea Link를 지난다. 이 다리의 공식명칭은 Rajiv Gandhi Sea Link이며, 8차선 도로 중 4차선이 2009년에 먼저 개통되었고, 나머지 4차선은 2010년 개통.

 

다리를 건너 도비가트 가까이에서 본 인도 교통경찰

 

뭄바이 도비가트 Dhobi Ghat는 세계에서 가장 큰 빨래터.

매일 약 5천명의 세탁노동자들이 1천개가 넘는 세탁조에서 옷을 빨고 있다. 도비 Dhobi란 인도와 파키스탄에서만 볼 수 있는 직업군으로 신분 이동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인도에서는 일종의 유사카스트로 정착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땀과 같은 체내배출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는 힌두교 교리상 도비들이 사회적 대접을 받기는 극히 어려운 상태이기 때문. 도비 가트의 주요 고객은 호텔, 병원, 학교와 같은 대형사업체들이다.

 

뭄바이 도비가트는 영국식민지 시절 군대에서 나오는 군복을 전문적으로 세탁하기 위한 곳에서부터 출발하여 12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큰 도로에서 내려다 본 도비가트

 

도로에서 계단을 내려가 도비가트 내부로 들어가는 길

 

가까이에서 본 도비가트

 

2014. 4. 16 새샘,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