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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후 서울에서 발굴된 유적들 12: 강남구 지역

새샘 2022. 9. 26. 23:15

 

<2000년 이후 발굴조사 목록-강남구 지역>

 

지금의 강남구와 서초구 지역은 1966년 영동1지구와 영동2지구로 구분되어 개발이 시작되었으며, 오늘날 강남구 지역인 영동2지구는 1971년부터 본격적으로 개발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강남구 지역은 1970년대 잠실지구에서 실시된 발굴조사와는 달리 전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2000년 이후에도 강남구 지역에서의 적극적인 발굴조사는 그리 많지 않았다.

 

 

현재의 강남구 삼성동 힐스테이트 아파트(사진 출처-출처자료1)

강남구 지역에 대한 발굴조사는 2004년 강남구 삼성동의 영동차관아파트 재건축 부지에 대한 시굴조사가 처음이다.

발굴 결과 유구는 확인된 것이 없고, 구석기 및 신석기시대 석기와 빗살무늬토기 등이 확인되었다.

이 아파트는 이후 재건축되어 현재의 삼성동 힐스테이트 아파트가 되었다.

 

 

수서동 유적의 조선시대 기와가마(사진 출처-출처자료1)

이후 강남구 세곡동과 수서동 일대의 보금자리주택지구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실시되었다.

먼저 2010년부터 2011년까지 세곡동·자곡동·율현동 일대에 들어서는 강남보금자리주택지구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발굴 결과, 1지점에서는 집터 25기와 우물 및 추정 도로 1기씩이 확인되었다.

마을 규모는 같은 시기에 최대 15~21개의 집터가 군락을 이루었으며, 평균인구는 약 75~105명 정도로 발굴단은 추정하였다.

돌방무덤(석실묘石室墓)은 2지점에서 6기가 확인되었는데, 대체로 지면과 수평으로 판 길을 통하여 널방으로 들어가는 굴식(횡혈식橫穴式) 돌방무덤으로서 네모난 형태의 시신을 안치하는 널방(현실玄室, 곽실槨室, 묘실墓室, 광실壙室)과 부장품을 넣는 방을 포함하는 매장 주체부, 고분 입구에서 널방까지 들어가는 널길(연도羨道), 시신을 놓는 시상대屍床臺 등을 설치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발굴단은 돌방무덤의 구조로 보아 신라가 한강유역에 진출하고서 이른 시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고려시대 유적은 2지점에서 건물지 9동이 확인되었다.

구조와 출토유물로 보아 일반민가보다는 관영 건물 터에 가까울 것으로 추정되었다.

조선시대 유적은 7지점에서 분묘 116기를 확인하였다.

 

 

수서동 유적에서 출토된 범어문 수막새(사진 출처-출처자료1)

2012년부터 2013년까지는 세곡동 보금자리주택지구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위치는 수서동 일대로 대모산 북동쪽이다.

발굴 결과, 건물 터 12동, 건물 터 부속 유구 11기, 기와가마 4기, 가마 부속유구 6기 등 33기의 유구가 조사되었다.

여기서 발굴된 유물과 기와가마 안에서 확인된 목재와 목탄 등을 분석한 결과, 15세기 중반부터 16세기 초반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발굴단은 출토된 기와·자기의 성격과 대칭으로 나타나는 건물 터들의 규칙적인 배치 등을 볼 때 종교 관련 시설로 판단했다.

예전부터 이 지역은 절이 있던 절골(사곡寺谷) 터로 오랫동안 알려져 왔으며, 발굴조사 과정에서 처마 끝에 놓는 기와인 연꽃무늬(연화문蓮花紋) 막새(막새기와)와 범어문梵語文(산스크리트어 문자) 막새 등이 확인된 것으로 미루어 사찰 유적일 가능성이 높다.

발굴단은 금석金石이나 그릇 따위에 새겨 놓은 글인 명문銘文 등이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기록상 대모산 북쪽의 봉헌사奉獻寺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그리고 전용 기와가마를 설치하여 건물들을 유지·보수했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성격의 유적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발굴 이후 건물 터들은 현지에 흙을 덮는 복토보존, 기와가마들은 이전복원이 결정되었다.

 

※출처

1. 서울역사편찬원, '서울의 발굴현장'(역사공간, 2017)

2. 구글 관련 자료

 

2022. 9. 26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