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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후 서울에서 발굴된 유적들 17: 노원구, 도봉구, 동작구, 마포구, 서대문구 지역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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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후 서울에서 발굴된 유적들 17: 노원구, 도봉구, 동작구, 마포구, 서대문구 지역

새샘 2022. 11. 21. 21:25

 

<2000년 이후 발굴조사 목록-노원구, 도봉구, 동작구, 마포구, 서대문구 지역>

 

○노원구 지역

 

노원구에서는 상계4동 산155-1번지 일대에 국지성 집중호우에 대비하여 댐 형태로 물을 가둬두는 동막저류지 건설 계획을 세우면서 이 지역에 대한 시굴조사를 2009년 4월 6일부터 29일까지 실시하였다.

발굴보고서를 확인하지 못해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발굴 연표에 조선시대로 표기한 것으로 보아 관련 유구와 유물이 확인된 듯하다.

그러나 이후 노원구의 동막저류지 건설 계획은 시민들의 반대와 서울시의 사업 재검토 권고로 철회되었다.

 

 

초안산 분묘군 석물전시장에는 발굴과정에서 확보한 문인석, 동자석, 망주석 따위를 전시하고 있다.(사진 출처-출처자료1)

2010년에는 초안산楚安山 분묘군墳墓群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이 분묘군에는 여러 계층의 분묘가 있지만 특히 내관內官(내시內侍)의 분묘(무덤: 송장이나 유골을 땅에 묻어 놓은 곳)가 많아 유명하다.

조사지역은 2002년 서울 초안산 분묘군이란 이름으로 사적 제 440호로 지정된 곳이다.

2000년의 지표조사를 통해 초안산에 방치된 분묘 및 폐묘와 돌거리(석물石物: 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물건을 말하며, 석인石人, 석수石獸, 석주, 석등, 상석 따위)에 관해 조사가 이루어진 적이 있는데, 1천여 기 이상의 고분과 몇 백 기의 돌거리가 남아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번 조사는 초안산 근린공원 조선시대 분묘군 정비공사의 일환으로 총 9개 구역 가운데 7구역 일부분 지역에 대한 것이었다.

이 발굴을 통해 5기의 분묘 조사와 더불어 새로 확인된 비석과 상석에 새겨진 비문 내용을 확인하여 피장자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자 했다.

그러나 5기의 봉분을 조사한 뒤 매장주체부까지 파 내려가면서 총 5기의 분묘를 추가 확인할 수 있었다.

기존 5기의 분묘는 모두 회곽묘灰槨墓(무덤구덩이 안에 석회층을 만들어 관과 곽을 안치한 묘)이고, 새롭게 확인된 5기의 묘 중 1기는 회곽묘, 나머지 4개는 널무덤(토광묘)이다.

이런 양상으로 보아 초안산에 조성된 분묘는 현재 봉분이 남아 있어 개체수를 확인할 수 있는 것 외에도 추가로 확인될 분묘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발굴단은 확인된 10기의 분묘 가운데 회곽묘 5기와 합장묘인 1기의 널무덤만 조사대상으로 삼았는데, 회곽의 조성방식이나 매장주체부의 형태 및 출토유물로 보아 조선 전기부터 후기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추정했다.

 

2013년에는 중계동 산42-3번지 일대에 조성하는 노원구 자연마당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조사지역은 불암산 둘레길의 남동쪽 지역으로 해발 45~55m 내외의 능선 자락에 해당하며,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지형이다.

발굴 결과, 통일신라시대 돌덧널무덤(석곽묘) 1기, 조선시대 널무덤 65기, 회묘灰廟(회격묘와 회곽묘) 26기, 가마 2기, 매납유구埋納遺構(여러 가지 유물들이 묻혀 있는 옛 묘지 흔적) 1기가 확인되었다.

이 가운데 23호로 이름 지어진 회묘는 조선 중기 이후 조성된 회격묘로서 그 구조 특성과 부장품으로 보아 조선시대 지배층 묘제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발굴단은 보았다.

 

 

○도봉구 지역

 

도봉서원 터 발굴지역 모습(사진 출처-출처자료1)

도봉구 지역에서는 2011년부터 2012년까지 실시된 도봉서원 터에 대한 발굴조사만이 확인된다.

도봉서원은 조선시대 조광조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1574년(선조 6)에 창건된 서원이다.

그 위치는 도봉산의 주봉 자운봉에서 남동쪽으로 뻗은 주맥에 있다.

1871년 서원철폐령으로 헐려버렸지만 서원이 드문 서울 지역에 있었던 서원으로 그 역사적 가치가 높은 유적이다.

 

조사지역에서 확인된 유구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말기까지 조성된 석축과 암거배수시설을 비롯하여 중정中庭(집 안의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마당)을 포함한 11동의 건물 터와 천랑穿廊(2개의 건축물을 중간에서 연결하는 복도) 2기, 구들과 석렬 각 1기 등이다.

서원의 전체 배치는 파악할 수 없었지만 중정을 중심으로 배치하는 보통 서원과 같은 것으로 파악되어 도봉서원 건물들의 구조와 배치가 일부분이나마 밝혀졌다고 할 수 있다.

 

도봉서원 터의 5호 건물 터 기단 안에서 촐토된 금동으로 만든 불교용구인 금강저(왼쪽)와 금강령(우). 불교의식에서 금강저는 마음의 번뇌를 없애주는 상징적 도구이고, 금강령은 소리를 내어 중생들을 성불의 길로 이끌어주는 도구로 사용되었다.(사진 출처-출처자료1)

도봉서원에 대한 발굴 결과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서원 복원을 위한 조사이지만, 조사 결과 도봉서원 아래층에서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에 해당하는 절터가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문헌기록에 영구사寧國寺 옛 터에 도봉서원이 창건되었다 하였고, 또 발굴조사에서 '도봉사道峯寺'가 새겨진 청동 제기祭器까지 출토되었으니 조사지역의 성격이 더욱 혼란스러워진 것이다.

 

도봉서원 터 5호 건물 터 기단에서 출토된 불교용구(법구法具)는 금동제 금강저金剛杵와 금강령金剛鈴을 비롯하여 모두 77점에 달한다.

발절라跋折羅 또는 벌절라伐折羅라고도 부르는 금강저는 마음의 번뇌를 깨뜨리는 상징적 도구로서 보리심菩提心을 상징하는 법구이고, 금강령은 금강저의 한쪽 끝에 달린 방울로서 수행할 때에 부처를 경각시키거나 기쁘게 하기 위하여 울리거나 중생들을 성불의 길로 이끌기 위해 울리는 법구이다.

특히 출토된 금강령에는 오대명왕상五大明王像과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런 문양은 국내에서 처음 확인되었을 뿐만 아니라 출토된 금강령 가운데 가장 정교하고 뛰어난 수작으로 평가되었다.

 

이에 발굴단은 문헌기록과 발굴조사를 토대로 도봉서원, 영국사, 도봉사와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영국사는 세종 때부터 성종 때까지 존속하다가 이후 쇠락했으며, 도봉서원은 영국사의 옛 터에 창건되었는데, 그 위치가 바로 이번 발굴조사 지역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도봉사는 고려 전기부터 존재했으며 영국사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아마도 영국사 건물 조성 당시 종교적 제의행사 때 도봉사의 제기들을 이용하고 매납했던 것으로 추정했다.

결론적으로 도봉서원 터는 이전에 존립하고 있던 영국사를 파괴하고 조성된 조선시대 건물 터로 그 성격을 규정할 수 있다.

 

흙으로 덮어 보존하고 있는 도봉서원 터(사진 출처-출처자료1)

 

도봉서원 터에 복원된 도봉서원(사진 출처-국가문화유산포털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2331100280000)

이후 2013년 도봉서원 전체 배치와 범위를 확인하기 위해 추가 부지에 대한 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지역은 발굴 조사가 끝난 지역의 남동쪽에 인접한 곳이다.

조사 결과 조선시대 건물 터의 일부로 추정되는 석렬 4기와 석재가 확인되었다.

그러나 발굴단은 확인된 석렬이 도봉서원 건물 터와 연관되는 것인지는 판단할 수 없다고 했다.

 

 

○동작구 지역

 

동작구 지역에서는 2009년 흑석동 237-12번지 일대의 흑석 제6구역 주택재개발지역에 대한 시굴조사만이 확인된다.

2009년 5월 11일부터 22일까지 실시되었는데, 발굴조사보고서를 확인하지 못해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고,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발굴 연표에 유적 연대를 고려~조선 시대로 규정하였다.

 

 

○마포구 지역

 

마포구 지역에서는 먼저, 2004년 12월 8일부터 2005년 1월 7일까지 창전동 403-1번지 일대 공동건설주택 부지에 대한 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발굴보고서를 확인하지 못해 자세히 알 수는 없고,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발굴 연표에 유적의 시대를 구석기 및 조선 시대로 규정하고 있다.

 

2009년 9월 6일부터 2010년 3월 1일까지는 아현동 684-1번지 일대인 아현 제3구역 주택재개발사업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역시 보고서를 확인하지 못했으며,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발굴 연표에는 유적의 시대가 조선~현대로 되어있다.

 

 

○서대문구 지역

 

옛 서대문형무소 취사장은 현재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뮤지엄샵으로 사용되고 있다.(사진 출처-출처자료1)

 

옛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부속창고 부지 발굴지역 모습(사진 출처-출처자료1)

1988년 '서울 구 서대문형무소'란 이름으로 사적 제324호로 지정되어 1998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개관한 서대문형무소에 대한 발굴조사는 1990년에 이미 실시되었다.

그때 발굴조사 구역은 유관순 열사가 옥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옛 여옥사 일부와 중앙사였다.

이후 서대문구에서는 2009년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보존 및 활용계획을 수립하고 2009년에 취사장 터, 2014년에는 여옥사 부속창고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이는 각 발굴 건물 터에 대한 복원공사의 기초자료로 활용하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2014년 12월 6일에 새샘이 찍은 서대문형무소 보안과 청사로서 지금은 역사전시관이다.

현재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은 당시 형무소 망루를 비롯한 대부분의 건물과 시설들이 복원되었고, 수감 도중 사망한 순국선열에 대한 추모비도 세워졌다.

복원된 형무소 건물과 시설들은 일반에게 공개되었으며, 역사전시관을 비롯한 다양한 전시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출처

1. 서울역사편찬원, '서울의 발굴현장'(역사공간, 2017)

2. 문화재청 새소식 보도/설명, 서울 도봉서원 터 출토 불교용구 공개, 2014. 8. 21 (https://www.cha.go.kr/newsBbz/selectNewsBbzView.do;jsessionid=LuD1fzeZj3F6WptKb4nUbcm390xZnoibpPa16pPSdjTaxvm4JYS9DaASapPeoBEz.cha-was02_servlet_engine1?newsItemId=155698857&sectionId=b_sec_1&pageIndex=390&mn=NS_01_02&strWhere=&strValue=&sdate=&edate=)

3. 새샘 티스토리, '2014. 12/6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https://micropsjj.tistory.com/17039055)

4. 구글 관련 자료

 

2022. 11. 21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