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2008. 1/31 중국 베이징 여행 사흘째-천안문광장_자금성_왕부정_이화원 본문

여행기-해외

2008. 1/31 중국 베이징 여행 사흘째-천안문광장_자금성_왕부정_이화원

새샘 2008. 8. 24. 12:09

1/31(수) 영하의 추운 날씨가 계속.

 

1. 10:00 천안문(텐안먼, 天安門) 광장-동서 500m, 남북 800m, 면적 44만 평방미터 크기로 100만명을 수용하는 광대한 광장으로서 중국 현대사를 지켜 본 현장; 1919년 5·4 운동, 1949년 10월 1일 모택동이 성루에서 새로운 중국 창건 선포; 1974년 주은래를 매도하는 4인방에 맞선 시위; 1989년 호요방 사망 후 4월 15일 호요방 명예회복과 민주화 요구 대규모 시위가 천안문사건의 시발로 6월3일 인민해방군의 무력진압이 있기 전까지 두 달 가까이 100만 명 시위대 집결

 

천안문(텐안먼, 天安門)-베이징의 중심부에 위치; 원래는 명청시대의 황성인 정문승천문(정먼청톈먼, 正門承天門); 명 영락제(1417년) 건립되어 청 순치(1651년) 개건하면서 이름을 천안문으로 고침

 

 

천안문광장

 

인민영웅기념비(런민잉슝지녠비, 人民英雄紀念碑)와 마오주석기념당(마오주시지녠당, 毛主席紀念堂)-1952년 건립된 37.9m 높이의 화강암과 백옥으로 만들어진 기념비로 비석 위에는 '人民英雄永垂不朽(인민영웅은 썩지 않고, 영원히 잠들뿐이다)'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기념당은 정사각형 건물로서 모택동(마오쩌둥, 毛澤東)의 시신 안치

 

인민대회당(런민다이후탕, 人民大會堂)-중국 국회의사당이자 외국 원수 접대하는 정치 일번지; 정면에 25m 높이의 12개 대리석 기둥; 1만명 동시 수용 및 5천명 동시 연회

 

국가박물관(궈자보우관, 國家博物館)-인민대회당 건너편 건물; 2003년 역사박물관과 혁명박물관이 합쳐져 생겼음; 기원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물기록 전시

 

2. 10:25 자금성(쯔진성, 紫禁城)=고궁(구궁, 故宮)-천안문을 지나면 자금성 시작; 정식명칭은 고궁이며 자주색이 금지된 성이라서 자금성이라는 별칭; 명의 가장 위대한 황제인 영락제에 의해 설계 건설되어 남경(난징)에서 이곳으로 천도; 자금성의 건물은 남쪽 오문(午門), 북쪽 신무문(神武門), 동쪽 동화문(東貨門), 서쪽 서화문(西貨門)으로 둘러싸인 4각의 공간을 말함

 

오문(우먼, 午門)-자금성 남문

 

금수교(진수이차오, 金水橋)-오문을 지나 자금성을 건너는 다리로 5개가 있다

 

태화문(타이허먼, 太和門)-자금성 삼대전(태화전, 중화전, 보화전)으로 들어가는 문

 

중화전(중허뎬, 中和殿) 내부-황제의 휴식공간이자 황제가 궐내 제사 지내던 곳

 

보화전(바오허뎬, 保和殿)-대신들과 학문을 논하고 과거 급제자를 접견하던 곳

 

대석조(大石雕)-보화전 뒤에는 방산에서 옮겨 온 200여 톤에 이르는 거대한 옥돌로서 빼어난 황실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건청문(쳰칭먼, 乾淸門) 앞에서-황제가 숙소가 있는 건청궁으로 들어가는 문

 

 

물항아리-건청문 앞에 있는 화재를 대비한 물탱크로서 금으로 도금

 

건청궁(쳰칭궁, 乾淸宮)-황제의 숙소인 침궁으로 왕위를 둘러싼 암투가 끊임없었던 비극의 무대. 명나라부터 청나라 4대 황제까지는 침궁으로 쓰이다가 청 5대 옹정제부터 '정대광명'이라는 편액을 걸고 정무를 보는 시작. 편액 글자와 아래의 용은 모두 금이다. 편액이 걸려 있는 기둥 뒤에 황제가 후계자가 될 아들 즉 황자의 이름을 적은 종이를 밀봉하여 숨겨두었다고 한다. 이를 태자밀건법(太子密建法)이라 부른다.

 

퇴수산(두이슈산, 堆秀山)-황가의 화원인 어화원(위화위안, 御花園) 가운데 가장 높은 정자로서 9월9일 중양절에 황제가 오른던 행사을 하던 곳이며, 구중궁궐 속에서 바깥을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

 

호성하(후청허, 護城河)자금성을 빙 둘러싸고 있는 52m의 강으로서 적의 침입을 막는 해자 역할

 

신무문(선우먼, 神武門)-자금성 북문

 

3. 11:30 왕부정 거리(왕푸징다제, 王府井大街)-우리나라 서울의 종로, 명동에 해당하는 거리로 중국 쇼핑문화의 중심지로 차 없는 보행자 거리; 황실에 필요한 물건 공급하며 상인들의 거주 공간; 이 곳에 물맛이 좋은 우물들이 있었기 때문에 왕가의 우물 즉 '왕부정'이라 명명

 

4. 13:25 이화원(이허위안, 和園)-중국에서 보존이 가장 잘 되고 규모가 가장 큰 황실 정원으로서 서태후가 사랑한 여름 별궁; 1750년(건륭15년) 건륭제 어머니 효성황태후의 환갑을 축하하기 위한 청의원 건조를 시작으로 하여 15년 만에 완성; 금나라 이래 역대 황제의 원림이며, 청나라 때는 별궁; 1860년 프랑스와 영국 연합군의 북경 침공때 소실된 것을 서태후가 1885년부터 개축 시작하여 3년 뒤 완공하면서 청의원에서 이화원으로 이름 변경; 1900년 8개국 연합군 공격으로 다시 파괴된 후 현대 공산당 중국정권이 들어서면서 대대적인 보수 공사 끝에 현재의 모습으로 재탄생; 인공산인 만수산(원래의 산 이름은 옹산)을 배경으로 인공호인 곤명호(원래의 호수 이름은 서호)가 있는 등 "사람의 손으로 천연의 극치를 이룬다"는 중국 원림 예술의 전형.

 

이화원 입구인 동궁문(둥궁문, 東宮門)

 

인수전(런서우뎬, 仁壽殿)-서태후가 수렴청정을 하던 곳

 

곤명호(쿤밍후, 昆明湖)와 만수산(완서우산, 萬壽山)-곤명호의 물이 꽁꽁 얼었다

 

장랑(창랑, 長廊)-728m에 달하는 긴 복도로 천장에는 각종 그림이 그려져 있다

 

장랑에서 바라본 곤명호-곤명호 안의 섬이 남호도(南湖島)이고 섬으로 연결된 왼쪽에 보이는 다리가 십칠공교(十七孔橋: 교각 사이의 아치 개수가 17개)

 

(베이징 여행 사진 끝)

 

2008. 8. 24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