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2000년 이후 서울에서 발굴된 유적들 24: 종로구 지역4-탑골공원, 관훈동, 낙원동, 관철동, 공평동, 인사동, 서린동, 묘동, 관수동 본문

글과 그림

2000년 이후 서울에서 발굴된 유적들 24: 종로구 지역4-탑골공원, 관훈동, 낙원동, 관철동, 공평동, 인사동, 서린동, 묘동, 관수동

새샘 2023. 2. 6. 23:27


<2000년 이후 발굴조사 목록-종로구 지역4: 탑골공원, 관훈동, 낙원동, 관철동, 공평동, 인사동, 서린동, 묘동, 관수동 유적>



2002년에는 탑塔골공원 안 원각사 터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서울시가 사적 제354호 탑골공원 성역화사업을 하면서 조선 초기 사찰인 원각사 터의 유구 존재 여부 및 문화재의 확인과 보존 차원에서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것이다.

 

원래 이름은 파고다 공원이긴 하지만 탑(원각사지 십층석탑)이 있는 공원이라서 탑곡塔谷공원이나 탑塔골공원으로 불렀다고 한다.

한편 원각사지 십층석탑이 길죽한 뼈 모양이라고 해서 탑골塔骨공원이라 불렀다는 설도 있다.

탑塔골공원이 정식 명칭이 된 것은 1991년.

 

1890년대에 만들어진 탑골공원은 서울 최초의 근대식 공원이자 한국인이 조성한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식 공원이기도 하다.

 

지금의 탑골공원 모습(사진 출처-출처자료1)

원각사圓覺寺는 고려 말기에 세워졌다가 폐사된 흥복사興福寺를 조선시대 세조가 1465년 중창하면서 이름이 원각사가 되었다.
원각사 권역은 창건 당시 지금 탑골공원 면적의 몇 배에 이를 정도로 넓었다.

현재 탑골공원 안에는 국보 제2호 원각사지 십층석탑과 원각사의 창건 내력을 적은 보물 제3호 대원각사비大圓覺寺碑가 있다.

 

조사 결과, 석렬 6기, 돌무지층 7개소, 적심(건물 붕괴를 막기 위해 주춧돌 밑에 자갈 등으로 까는 바닥다짐 시설)  4기, 우물 2기, 기둥 주춧돌(주초석柱礎石: 기둥 밑에 기초로 받쳐 놓은 돌) 2기, 진단구鎭壇具(건물 등을 지을 때 나쁜 기운이 근접하지 못하도록 땅에 묻는 물건) 5기, 담장 2기, 그리고 연못 터, 속도랑(암거暗渠), 목재시설, 석축이 각각 1개소 확인되었다.

 

조사 지역이 전체적으로 많이 교란된 상태로서 원각사와 직접 관련된 유구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원각사의 주요 건물은 탑골공원 경계 바깥에 존재했을 가능성이 크며, 회랑回廊(가장 주된 집채 즉 정당正堂 좌우에 있는 긴 집채) 등 건물의 기둥주춧돌이 확인됨으로써 탑골공원이 원각사 터였음을 방증傍證(간접적 증거)하는 것으로 발굴단은 보았다.

 

발굴단은 이번 원각사 터 발굴조사는 서울 도성 안의 조선 초기 절터에 대한 첫 발굴조사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말했다.

 

 

2007년과 2008년에는 종로2가 40번지 일대의 육의전 빌딩 신축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육의전六矣廛(육주비전六注比廛)이란 조선 시대에, 전매 특권과 국역 부담의 의무를 진 서울의 여섯 시전인 비단 파는 선전縇廛, 무명 파는 면포전綿布廛, 명주 파는 면주전綿紬廛, 종이 파는 지전紙廛, 모시베 파는 저포전紵布廛, 어물 파는 내외어물전內外魚物廛을 이른다.

 

육의전이 있던 자리에 짓는 육의전 빌딩 조사지역은 탑골공원과 인접해 있어 지표조사 때 원각사 영역 또는 시전행랑 터로 추정되어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 결과, 종로 큰길을 따라 동서 방향으로 연결되는 시전행랑 유구와 그 앞쪽 도랑, 뒤쪽의 피맛길과 더불어 건물 터 4동이 확인되었다 .

발견된 시전행랑 유구는 신축된 육의전 빌딩 지하에 있는 육의전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2010년부터 2011년 사이에는 종로6가에 있는 동승호텔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지역은 발굴 당시 동대문종합상가의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었으며, 주변에는 흥인지문, 한양도성, 청계천 유적 등이 있다.

이 지역은 일제강점기부터 1968년까지 전차 차고지가 있었던 곳이다.

발굴 결과, 근현대 건물 터와 전차 선로가 확인되었을 뿐 조선시대 유구는 확인할 수 없었다.

 

 

2012년에는 관훈동 155-2번지의 복합시설 신축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있었다.

조사 지역인 관훈동 주변에는 우정총국과 조계사가 있고, 북동쪽에는 충훈부忠勳府(조선 시대에, 공신의 훈공을 기록하는 일을 맡아 하던 관아) 터와 안동별궁安洞別宮(세종 막내아들 영응대군 저택) 터가 자리하고 있다.

조사 결과, 조선시대 건물 터의 기초유구들이 확인되었고, 유물로는 백자 조각과 분청자기 조각 등이 소량 출토되었다.

 

 

2013년에는 관훈동 196-10번지 일대의 근린생활시설 신축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 지역은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이 기거했던 사동궁寺洞宮의 남동쪽 부분에 해당하는 지역으로서 조선~근현대 건물 터와 배수로 유구가 노출되었지만, 사동궁과 관련된 유구나 유물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었다.

 

 

2014년에는 관훈동 16-1번지 일대의 통인가게 증축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지역 일대는 일제강점기부터 골동품상점이 들어서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관광객이 붐비는 곳으로, 이른바 서울 도심에서 전통공예품을 판매하는 상점과 음식점이 많은 관광명소이다.

발굴 조사 결과, 조선 후기 건물 터 2동과 조선 후기~근대 건물 터 2동만이 확인되었을 뿐이다.

 

 

2012년에는 낙원동 142번지 호텔 신축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있었다.

조사 지역은 최근까지 주차장으로 사용되었된 곳으로, 낙원동 일대는 탑골공원과 종묘를 비롯한 많은 조선시대 문화유적이 분포한 곳이다.

발굴 결과, 조선 전기 건물 터, 석렬, 구덩이 등과, 조선 후기 건물 터 4동과 석렬 1기, 기둥 기초시설 3기가 확인되었는데, 유구 상태는 불량하였다.

이 지역에는 현재 호텔 컬리넌 Cullinan 종로가 들어서 있다.

 

 

2013년부터 2014년에는 낙원동 59-1번지 일대의 숙박시설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 지역은 돈화문로와 삼일대로 사이이며, 주변에는 소규모 주거 및 상업 시설이 섞여 있다.

지형상 서쪽 경복궁과 동쪽 종묘 사이의 평탄지 자리이며, 남쪽에는 탑골공원이 있다.

발굴 결과, 조선~근현대 건물터 8동과 배수로 및 석렬 등이 확인되었다.

 

 

2014년에는 낙원동 108-1번지의 숙박시설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지역 서쪽에는 낙원상가, 동쪽 약 500m 거리에 종묘, 그리고 남서쪽으로는 탑골공원이 각각 자리하고 있다.

이 조사 지역에서는 조선~근현대 건물터 6동과 석렬 2기가 확인되었다.

 

 

2014년에서 2015년에는 낙원동 132-2번지의 건물 신축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있었다.

조사 지역은 동쪽 약 300m 거리에 종묘가 있고, 주변에는 철종의 큰형 영평군이 거처했던 누동궁樓洞宮 터와 인조의 잠저潛邸( 임금이 되기 전에 살던 집)로 사용된 어의궁於義宮 터가 있다.

주변 지역에는 낙원동 악기상가를 비롯한 3~7층 규모의 상가건물과 숙박시설이 밀집해있다.

발굴 결과, 조선 전기 석렬 유구 2기, 조선 후기 석렬 유구 1기, 근대 건물 터 1동이 조사되었다.

 

 

관철동 35-2번지 근린생활시설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는 2006년 실시되었다.

조사 지역은 청계천 수표교 터와 인접하고 있다.

발굴 결과, 조선시대 건물 터 3기와 석렬 3기가 조사되었고, 붉은벽돌과 시멘트로 지은 근현대 건물 터 1기와 기둥주춧돌, 추정 배연시설 등이 확인되었다.

 

 

2009년에는 관철동 5-13번지 일대의 다이렉트코리아 종로사옥 신축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청계천 북쪽에 인접한 조사 지역에는 조선 초기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문화층이 켜켜이 형성되어 있었으며, 조사 면적이 작았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유구의 잔존 상태가 매우 좋았다.

건물 터, 추정 배연시설, 담장, 우물 등을 확인했다.

지금의 파고다 어학원 종로타워 빌딩이다.

 

 

2015년에는 관철동 19-10번지의 근린생활시설 신축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있었다.

조사 지역은 종로와 청계천 사이이며, 주변은 도심지에 조성된 상업시설 지역이다.

발굴 결과, 조선시대 석렬 4기와 우물 터 1기가 조사되었다.

 

 

하늘에서 바라본 공평구역 조사지역 모습. 왼쪽 맨 아래쪽이 종각사거리이다.(사진 출처-출처자료1)

 

공평구역 발굴조사 모습(사진 출처-출처자료1)

2014년에는 공평동 61번지 일대 공평구역 제1·2·4 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지역은 한양도성의 중심부로서, 북동쪽 약 75m 지점에는 순화궁順和宮(중종 딸 순화공주의 거주지) 터, 서쪽 약 40m 떨어진 곳에는 의금부 터, 남쪽 약 145m 지점에는 보신각 등 조사 지역 주변에는 도성의 주요 시설들이 위치하고 있다.

 

공평구역에서 출토된 진단구(사진 출처-출처자료1)

발굴 결과에 따르면,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관련 유구들이 중첩되어 층층이 확인되었다.
15~16세기 문화층 유구들은 전반적으로 잔존 상태가 나빴으며, 16~17세기 문화층에서는 건물 터 20동이, 18~19세기 문화층에서는 건물 터 20동, 그리고 19세기~일제강점기 문화층에서는 건물 터 32동이 각각 확인되었다.

 

이번에 조사된 조선시대 유구들은 그 상태가 매우 양호하고 당시 생활상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기에 발굴 과정에서도 보존 조치에 대한 논의들이 계속 이어졌다.

결국 유적의 중요성을 고려한 서울시와 문화재청, 사업시행자는 2018년 신축 건물 지하 1층 전체에 가칭 '공평유구 전시관'을 건립하여 발굴 과정에서 나온 도로와 골목, 신분별 집터, 청와백자 등의 출토 유물을 원래 위치에 그대로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발굴된 매장문화재를 전면 보존하는 것은 서울시 도심에서는 최초였으며, 앞으로의 발굴 이후 보존 조치에 있어 좋은 선례를 남겼다.

 

 

2014년에는 인사동 178-2번지의 근린생활시설 신축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있었다.

인사동은 인사동길이 전통문화거리로 조성되어 있어 길 주변에는 문화상품 판매점, 갤러리, 음식점 등의 점포들이 늘어서 있다.

조사 지역 서쪽 일대는 죽동궁竹洞宮(순조 장녀 명온공주 부부 거주지) 터가, 죽동궁 남쪽에는 순화궁 터가 있다.

죽동궁 북쪽에는 의친왕의 사저였던 사동궁이 있었는데, 현재 빌딩이 들어서면서 옛 모습은 사라져버렸다.

 

발굴 결과, 조선~근현대 건물 터 1동, 석렬 유구 6기, 우물 2기, 추정 온돌시설 1기 등이 확인되었다.

 

 

2010년에는 서울시 의뢰로 서린동 64번지 일대의 신축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 지역은 공영주차장이 있던 곳으로, 조선시대에는 일반 거주지였고, 북쪽에는 시전행랑이, 동쪽에는 전옥서典獄署(고려~조선 시대에, 감옥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아)가 접해 있던 지역이다.

발굴 결과, 조선 전기 건물 터 8동, 근대 건물 터 4동 등이 확인되었다.

지금 서울글로벌센터 빌딩이 있다.

 

 

 

지금의 중학천 석축 유구 모습(사진 출처-출처자료1)

2009년 청진동 145-1번지 일대 및 서린동 125-3번지 일대의 중학천 1단계 조성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중학천中學川은 삼청동천三淸洞川의 다른 이름으로, 북악산 남서쪽에서 흘러 내려와 청계천에 합류하던 하천이다.

조사는 중학천의 호안석축에 대한 잔존 양상 및 선대 유구 확인, 조사 지역 및 조사 지역에 접한 지역에 있던 다리 10개의 흔적 확인에 중점을 두었다.

 

발굴 결과, 청진1지구와 청진2~3지구 구간에서는 현재의 지적경계선과 맞물려 조선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하천 동쪽의 장대석 호안 석축이 발견되었으며, 그 서쪽에는 일제강점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호안 석축이 확인되었다.

 

중학천 조성을 위한 발굴은 2011년에도 이어졌다.

지금 이 지역인 청계광장 옆에는 소박하게 복원해 놓은 중학천과, 발굴하여 노출시킨  중학천 석축 유구를 안내판과 함께 시민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2013년에는 묘동의 근린생활시설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 지역은 종묘와 창덕궁과 인접한 곳으로, 회사 사옥의 주차장으로 이용된 곳이다.

발굴 결과, 조선 후기 구덩이 8기, 도랑과 우물 각 1기, 호안시설과 관련된 지정말목地釘抹木(지정말뚝: 바닥을 단단히 하려고 박는 통나무 토막) 115개가 확인되었다.

 

 

2014년에도 묘동 189-1번지의 근린생활시설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지역 일대는 소규모 건물이 밀집해 있으며, 대부분 귀금속상과와 식당 등 상업시설로 이용되고 있다.

동쪽 약 200m에 종묘, 서쪽 약 300m에 탑골공원이 있다.

발굴 결과, 조선시대 건물 터 3동, 근대 건물 터 4동이 확인되었다.

발굴단은 단편적이긴 하지만 여태까지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던 창덕궁 돈화문 앞쪽의 돈화문로 좌우측에 건립되었던 조선 전기 시전행랑 유구를 확인하였고, 이는 종로 쪽 시전행랑과의 비교 연구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았다.

 

 

관수동 113번지의 숙박시설 신축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2013년 실시되었다.

조사 지역은 조선 후기 청계천 준설을 담당하던 준천사濬川司(조선 시대에, 한양 안의 개천을 치는 일과 내사산內四山인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을 지키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 터 북쪽에 접해 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화광국민학교 화장실과 기숙사 등이 있었다.

발굴 결과, 조선 초기~중기의 건물 터 2동과 우물 터, 조선 중기~후기의 건물 터 및 담장 터가 3차례 중복되어 확인되었으며, 근현대 건물 터 2동도 조사되었다.

 

 

 

지금의 종로1~4가동 주민센터 모습(사진 출처-출처자료1)

2014년에는 종로구청의 종로 1·2·3·4가동 청사 신축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있었다.

조사 지역인 익선동 99번지는 북서쪽 약 200m에 운현궁, 동쪽에는 종묘, 북쪽에는 창덕궁, 남서쪽에는 탑골공원이 각각 위치하고 있고, 주변에는 중저층의 상업시설 및 주거시설이 밀집 분포하고 있다.

 

익선동 99번지 조사지역의 일제강점기 우물 모습(사진 출처-출처자료1)

발굴 결과, 조선~근대 건물 터 6동, 석렬 유구 5기, 근대 우물 1기가 조사되었다.

 

※출처
1. 서울역사편찬원, '서울의 발굴현장'(역사공간, 2017)
2. 구글 관련 자료

2023. 2. 6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