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2007. 7/1 중부유럽 여행기 8일째 첫글-헝가리 괴르, 오스트리아 빈(비엔나) 본문

여행기-해외

2007. 7/1 중부유럽 여행기 8일째 첫글-헝가리 괴르, 오스트리아 빈(비엔나)

새샘 2007. 10. 15. 14:32

 

(9:10)페스티벌의 즐거운 하룻밤을 지냈던 헝가리 괴르(Györ)에서 도시의 밝은 아침경치를 맛보기 위해 출발전에 둘러보았다. 이 도시는 헝가리, 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의 국경에서 멀지 않은 작은 도시다. 여기서 오스트리아 국경까지는 40분 정도 걸린단다.

어젯밤에 불빛만 보았던 성당의 첨탑이 유난히 높게 보인다.

 

(헝가리 괴르의 성당)

 

성당안을 들어가보니 일요일이라 많은 주민들이 예배를 보고 있다.

 

(9:20)길거리의 화분에 주황꽃과 흰꽃이 풍성하게 핀 만첩협죽도(유도화라고도 하며, 겹꽃이 피는 협죽도)가 고풍의 주택과 더불어 집사람과도 잘 어울린다는 느낌. 

 

(11:40)10시에 헝가리 괴르에서 출발한 버스는 40분 후 오스트리아 국경전 휴게소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1시간쯤 걸려 오스트리아 빈으로 진입했다.

빈(Wien)은 영어로 비엔나(Vienna)라고 부른다. 빈은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어디선가 음악의 선율이 흘러나올 것 같은 음악의 도시다. 이런 명성은 모차르트, 슈베르트, 요한 슈트라우스, 브람스와 같은 세계적인 음악가가 태어났거나 활동했던 곳이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지금도 빈 곳곳의 오페라극장과 콘서트홀에서 연중 끊이지 않고 다양한 음악공연이 열린다.

빈은 음악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예술과 문화가 숨쉬는 아름다운 도시다. 수백년 동안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도였던 탓에 아름다운 중세의 건축물과 제국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11:55)버스 차창을 통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도나우강과 연결된 운하를 운행하는 유람선이다. 배 위로 많은 관광객들이 타고 있었다.

 

(12:05)빈 현지가이드와 만난 다음 점심을 먹을 식당으로 향하는 원형의 링(ring)거리를 따라가 본 빈 거리는 고풍스런 중세 동상과 건축물, 그리고 거리를 달리는 전차가 서로 어울려 중세유럽의 맛과 멋을 풍기고 있었다.

 

(빈 구시가지의 이름모를 건물들)

 

(링 거리를 달리고 있는 전차) 

 

(링 거리의 중세 동상) 

 

(1:40)빈 시내의 한식점(Tokori)에서 점심을 먹은 후 쇤브른(Schönbrunn) 궁전에 도착.

 

쇤브룬 궁전은 베르사이유 궁전과 더불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궁전으로 꼽히며, 합스부르크 왕가의 옛 영화가 깃들인 궁전이다. 1696년 짓기 시작하여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때인 1750년에 완공된 외관은 바로크양식, 내부는 로코코양식의 궁전. 동관과 서관으로 구분되며, 동관이 여제와 남편, 딸 마리 앙투와네트가 거처했던 곳이다. 궁전에서 가장 큰 방인 세로모니얼 홀은 왕실의 연회가 열리던 곳으로 지금도 국빈방문객의 만찬장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궁전 뒤쪽에 있는 1.7㎢에 달하는 거대한 바로크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1:50)쇤브룬 궁전 앞

 

쇤브룬궁전안에서 바라본 궁전

 

궁전 뒤쪽 정원과 분수, 조각상, 그리고 그 뒤편 언덕에는 프러시아 전쟁 승리를 기념하는 마리아 테레지아가 세운 전승비가 서 있다.

 

궁전 안에 걸려있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가계도-오른쪽이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 초상이다.

 

궁전 안 도로의 가로수

 

궁전 안 분수의 조각상 구멍으로 떨어지는 물 너머의 쇤브룬 궁전

 

(3:14)쇤브룬 궁전을 구경한 다음 빈 구시가지를 되돌아와서 도보관광 시작.

제일 먼저 국립오페라극장(Staatsoper). 1869년에 문을 연 빈 음악의 메카이다. 파리의 오페라하우스, 밀라노의 라 스칼라극장과 함께 유럽의 3대 오페라극장으로 꼽힌다. 모짜르트의 오페라에서는 타의 추종으로 불허한다. 돈조반니가 개관기념관이다. 르네상스 스타일의 웅장한 건무로 내부에는 모짜르트의 마적을 주제로 한 프레스코화가 걸려 있다. 2차대전때 파괴되었지만 1955년 당시로는 세계 최고의 시설과 2,200석을 갖춘 대규모 극장으로 복원되었다.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전속 관현악단이다.

우리가 찾았을 때는 재즈페스티벌이 열린다는 현수막이 극장 벽에 붙어 있었다.

 

자연사박물관(Naturhistorisches Museum)-합스부르크 왕가의 수집보관장소로 사용되다가 1889년 박물관으로 변경. 과학박물관으로는 유일하게 영국의 선데이타임즈가 세계10대박물관으로 선정할 정도로 수많은 화석 및 동식물과 암석 표본을 소장하고 있다.

 

국회의사당(Parliament)-상원과 하원이 같이 사용. 그리스 신전을 본따 1871~1883년에 건축. 건물 앞에는 왼손에 창, 오른손에 승리의 여신 '니케'를 올려놓고 있는 아테네 여신이 서 있다. 여신 발 아래의 샘물은 유럽을 대표하는 강인 도나우강, 엘베강, 블타바강, 인강을 상징.

 

(3:28)거리에는 오스트리아와 스위스가 공동개최하는 '유로2008'이 342일 남았음을 알리는 전광판이 있다.

 

(3:30)빈 궁정극장. 비엔나 궁정극장(부르그테아터, Burgtheater)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이곳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정극장으로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가 1741년 세웠다. 이 극장에서는 마리아 테레지아 아들로서 황제가 된 요셉2세가 독일어연극만을 고집하였기 때문에 '독일어국립극장'이라고 불렀다. 주로 연극을 공연하였지만 오페라를 비롯한 다른 음악회도 종종 열렸다. 1945년 폭격으로 많은 건물이 파괴되었고 같은 해 대화재로 소실되었다. 1953~55년에 걸쳐 복구.

 

(3:35)신시청사(Rathaus). 구시가지의 구시청사를 대신하기 위해 1872~1883년에 건축된 네오고딕양식의 웅장한 건물이다. 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높이 98m의 중앙철탑은 어디서나 잘 보이며, 꼭대기에는 3.4m 크기의 기사상이 서 있다. 청사 앞에는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가 청사앞 광장을 찾았을 때도 천막을 친 노점상들을 찾는 관광객으로 붐비고 있었다.

 

청사 앞 거리를 달리는 지붕이 없는 관광용 차량

 

청사 앞 잔디마당에서는 결혼축하연이 열리고 있었다.

 

(3:40)호프부르크(Hofburg) 왕궁(구왕궁)과 그 앞의 헬덴광장(Heldenplatz, 영웅광장). 구왕궁은 16~18세기에 600년 동안 지어진 합스부르크 왕가의 정궁이다. 지금은 대통령 집무실, 국제컨벤션센터로 활용하고 있으며 스페인승마학교, 국립박물관, 예배당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1572년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버지 카를 6세가 세운 세계 최고의 겨울 승마학교

 

아래 사진은 구왕궁 앞에 있는 프란츠요셉1세 동상과 동상 뒤 건물은 황제의 아파트로 사용되던 곳이다.

프란츠 요셉1세는 딸을 나폴레옹에게 정략결혼시켰으며 이 딸이 나폴레옹 아들을 낳았다. 나폴레옹이 유배되자 황제의 딸은 이혼하고 아들은 쇤브룬궁전에서 갇혀 살다고 21세에 요절하였다.

 

(3:45)신왕궁으로 연결되는 1552년에 만들어진 스위스문(Schweizertor). 이름은 유럽에서 가장 용감한 군인으로 칭송받던 스위스 용병들이 지켰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문 위의 붉은 판에는 신성로마제국이 지배하고 있던 나라가 기록되어 있다.

 

(3:50)호프부르크 구왕궁 앞의 넓은 광장은 영웅광장으로도 불리는 헬덴광장으로 나오니 쌍동이 건축물인 자연사박물관(오른쪽)과 미술사박물관(왼쪽)이 보인다. 둘 사이에 있는 건물이 신왕궁의 일부이고 그 뒤로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이 있다.

미술사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은 1891년 개장한 오스트리아 최대 미술관으로 돔 모양 지붕의 거대한 석조건물이다. 유럽을 대표하는 미술관으로 이집트-오리엔트 유물과 르네상스시대의 회화, 합스부르크 왕가의 보물등을 소장하고 있다.

 

헬덴광장 동쪽으로 말굽 모양의 거대한 신왕궁이 서 있다. 신왕궁(Neue Burg)은 1881~1931년에 세워졌는데 왕궁이 완성된 지 5년만에 합스부르크 왕가가 멸망하였다. 신궁전 바로 앞에 서 있는 기마상은 오스만투르크족을 무찌른 프린츠 오이겐 왕자의 동상이며, 그 맞은 편 광장 중앙에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카를 대공의 기마상이 있다. 신왕궁은 현재 에페소스박물관, 무기박물관, 악기박물관 등으로 이용된다. 이곳에서 히틀러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합병을 선언하였다.

 

헬렌광장 중앙에 서 있는 카를대공 동상- 이 기마상과 신왕궁 앞의 오이겐왕자 기마상은 서로 맞보고 있다.

 

(4:02)마리아 테레지아 광장(Maria-Theresien Platz)에 서 있는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동상.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 1717~1789)는 합스부르크 공국(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1740~1780년 동안 여제로 군림하였다. 아버지인 카를6세가 죽자 왕위를 이어받았는데 이 상속에 반대하여 오스트리아 계승전쟁이 일어났다. 이 전쟁 결과 아헨조약에서 각국의 승인을 얻어내는 외교적성과를 거두었다. 전쟁 중에는 남편인 프란츠1세를 내세웠지만 그녀가 모든 국정을 담당하였다. 남편이 죽은 뒤에는 아들이 요세프2세와 공동통치하였다. 정치적 능력이 뛰어났으며 부역의 경감, 수도원 영지의 몰수, 교육제도의 개혁 등이 치적이다. 프랑스국왕 루이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여제의 딸이다.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 뒤로 큰 길을 건너면 박물관지구인 쿼티어 박물관(Museums Quartier)이 있다. 이 곳에는 레오폴트미술관, 무모크미술관, 어린이미술관 등이 있어 젊은 예술가들의 실험적인 전시회가 끊이지 않는 진정한 비엔나의 보물이라고 부른 사람들도 있다.

 

2007. 10. 15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