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2008. 7/16 북유럽・러시아 여행 마지막날인 열하루째1-러시아 모스크바1 본문

여행기-해외

2008. 7/16 북유럽・러시아 여행 마지막날인 열하루째1-러시아 모스크바1

새샘 2008. 11. 18. 16:17

북유럽/러시아 여행로와 일정

 

오늘은 이번 여행의 마지막 도시인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로 향하는 날이다. 

05:40 호텔에서 이른 아침을 먹고 모스크바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 공항으로 향한다.

이른 새벽임에도 벌써 네바강 위로 해가 떠 올라 강 위를 훤히 비추고 있다.

 

이른 새벽 아니 아침의 고요한 네바강변의 모습은 떠나는 우리를 아쉬워하면서 배웅하는 느낌이다. 아니 그 반대로 우리가 떠나는 네바강을 아쉬워하는 것이리라.

 

개선문인 듯한 건축물도 보이고

 

떠 오르는 아침해를 받아 형태만 보이는 승리의 광장과 승리탑을 지난다.

 

공항 가까이에는 상트에서 가장 지대가 높은 언덕인 2차대전의 전쟁터가 있다. 이곳에서는 아직도 전쟁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상트에 있는 국내선공항인 폴코보1

 

08:00에 이륙한 비행기는 09:15 모스크바 국내선 도모제도보공항에 도착.

 

10:05 공항을 출발하여 모스크바 시내로 향하는 길 주변 언덕위에 전원주택이 늘어서 있다. 이 주택들은 '다차'라고 불리는 별장이란다.

 

10:32 드디어 모스크바 시 경계 안으로 들어가는 모양이다. 'MOCKBA'라고 쓰여 있는 대형 조형물이 길가에 서 있기 때문이다.

모스크바(MOCKBA)라는 의미는 축축하다 젖어있다는 뜻으로 색깔은 회색빛이라고 한다. 그래서 모스크바는 1년의 2/3 이상이 흐린 날씨로 축축하게 젖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모스크바에는 산이 없고 언덕이란 것도 우리나라로 치면 언덕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낮단다.

모스크바에서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 2가지인데, 하나는 날씨, 다른 하나는 교통이다. 교통체증이 서울보다 더 심하다고 한다.  

모스크바에서 회자되는 말 가운데 하나는 "모스크바에서는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다"라는 것.

 

모스크바 지도 

 

모스크바는 러시아연방의 수도로서 인구는 1,200만이고, 유동인구만 하루에 300만에 이르는 대도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역사를 얘기할 때 언급했듯이 러시아는 키예프공국(882~1240)의 통일 왕조국가에서 출발하였다.

 

키예프공국 시대인 1156년 블라디미르-수즈달 공국의 공후로 있던 유리 돌고루키두 강이 면한 삼각형 지역에 목조의 크렘린(성채)을 세우면서 모스크바의 역사는 시작된 것이다. 이 때는 키예프공국이 쇠퇴하는 시기로서 1147년 유리 돌고루키는 키예프공후에게 "형제여, 모스크바에 있는 나에게로 오라"고 말했는데, 이 시점을 시작으로 모스크바는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모스크바 중심가에 그의 기마상이 우뚝 서 있다.

 

이 크렘린을 중심으로 모스크바의 거리가 조성되기 시작한 이래 12~13세기에는 상업과 산업의 요지가 되었으며 13세기에는 신흥공국의 수도가 되었다.

 

그러나 1237년부터 1293년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동안 타타르인들의 수시로 모스크바를 침략 약탈 불태웠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크렘린 주위에 석벽을 세우고 대공의 궁전, 수도원, 행정기관 건물, 귀족의 거처는 석벽 안쪽으로 옮기게 되었다.

 

14세기에는 키예프공국은 모스크바공국으로 합병되었고, 1326년에는 키예프에 있던 러시아정교의 대주교 자리 또한 모스크바로 옮겨졌으며, 이때부터 지금까지 모스크바는 러시아의 수도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지키고 있는 것이다.

 

모스크바시 외곽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공산주의 시절에 지었다는 천편일률적인 아파트단지.

 

외곽을 벗어나니 모스크바 크렘린 남쪽 옆을 통과하여 모스크바시를 S자형으로 흐르는 모스크바강을 건넌다. 모스크바강은 볼가강으로 합류되어 카스피해로 흘러 들어간다.

 

모스크바강의 서쪽에는 최근 지어진 현대식 스위스호텔(Swissotel), 

 

모스크바강 동쪽에는 스탈린고딕양식의 예술가아파트가 보인다. 이 아파트 건축양식은 러시아에서만 있는 독특한 양식의 건물로서 이런 양식의 건물을 스탈린고딕양식이라고 부른다. 스탈린 지배 당시 8채의 스탈린고딕양식건물을 계획했는데 7개를 짓고 사망함으로써 8번째 건물은 짓지 못했다고 한다. 예술가아파트를 제외한 나머지 6채의 스탈린고딕양식 건물로는 외무성, 모스크바대학, 우크라이나호텔, 문화인아파트, 교통부, 레닌그라드 스카야호텔 등이다.

 

크렘린 동남쪽의 대모스크바강다리를 건너 크렘린 동쪽의 성바실리사원이 있는 붉은광장 남쪽으로 진입한다. 크렘린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지도에서와 같이 삼각형 모양의 성으로 둘러싸여 있다.

  

붉은광장(러시아어로 끄라스나야 쁠로샤지)이란 말은 러시아어 '끄라스나야'란 형용사를 고대어인 '아름다운'으로 번역하지 않고 현대어인 '붉은'으로 오역함으로써 지어진 이름. 즉 붉은광장이 아닌 아름다운 광장이란 뜻이다.

 

15세기 후반 상업지대로서 개발되었는데, 17세기 후반 국가계획에 따라 역사박물관 같은 행정관서가 들어서면서 점차 현재의 성격으로 변모하였다. 이름 역시 성격에 따라 장사를 의미하는 또르크광장에서 출발하여 16세기에는 삼위일체교회와 연관지어 삼위일체광장, 1571년 대화재발생 후 화재광장을 거쳐 17세기에 이르러 붉은광장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18세기 초부터 문화생활 중심지로 변모되었는데, 1702년 연극공연장이 만들어졌다. 모스크바대학도 1775년 붉은광장에서 개교하였으며, 19세기 후반에 드어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넓이 73,000평방미터의 크렘린 북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붉은광장은 러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광장으로서 국경일에는 기념식과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버스에서 내리니 제일 먼저 성바실리사원, 그리고 이 사원과 마주보고 있는 크렘린 동쪽성벽의 구세주망루가 눈에 확 들어온다. 

 

붉은광장 남쪽에는 동서로 성바실리사원(오른쪽)과 구세주망루(왼쪽)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성바실리사원은 러시아정교교회의 백미로 알려져 있다. 9개의 제각기 다른 양파 모양 지붕들로 이루어져 있는 모습이 독특하다. 모스크바공국의 이반4세가 카잔한국(투르크족 국가)을 합병한 것을 기념하여 1555~1561년 기간에 건축되었다. 비잔틴 건축양식과 러시아 전통 목조건축양식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여기에 다채색의 양파모양 지붕이 불규칙한 형태로 배열되어 있어, 기묘한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는 모스크바의 상징적 건축물 가운데 하나다. 원래 이름은 성모탄생사원이었으나 이반4세가 좋아하던 성자 바실리의 이름을 따서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크렘린(Kremlin, 러시아어로는 끄례믈)은 방어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성벽을 의미한다고 한다. 크렘린은 1156년 목조로 된 성벽을 쌓으면서부터 시작되었는데, 당시는 영주 개인의 군사적 요새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많은 건물들이 지어져 이반3세 때는 통일된 러시아의 수도로서 권력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지금의 성벽은 15~16세기에 개축된 것이다.

 

크렘린은 약 2킬로미터에 이르는 삼각형 방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방벽 위에 통로와 포대가 설치되어 있고 방벽 중간에 높이 8~80미터의 20여개의 크고 작은 망루가 있다.

과거 크렘린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통과하는 망루는 신분에 따라 달랐다. 황제는 구세주망루, 총대주교는 삼위일체망루, 일반인은 보로비츠카야망루의 문을 이용하였다. 현재는 삼위일체망루와 보르비츠카야 망루의 문만 관광객을 위해 개방되어 있다.

 

구세주망루(가운데 시계탑)-과거 황제의 출입문이었으며 현재는 대통령 출입문, 15분마다 종이 울리며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시계라고 한다. 맨 왼쪽 망루는 나바트나야망루, 이 망루와 구세주망루 사이의 작은 망루는 차르망루.

 

붉은광장 중앙-왼쪽의 낮은 붉은벽돌건물은 레닌묘, 바로 뒤 높은 망루는 니콜스카야망루, 그 뒤 낮은 망루는 병기고골목망루, 약간 왼쪽 가운데에서 꼭대기가 하얀 2개의 탑이 있는 건물은 국립역사박물관, 오른쪽에 길게 늘어져 있는 회색빛 건물은 국영백화점 굼.

 

붉은광장 중앙으로 올라가면 레닌묘 뒤 크렘린 성벽 안으로 우리나라 장충체육관의 둥근 지붕을 연상케하는 건물이 보이는데 둥근 지붕 위로 러시아국기가 휘날리고 있다. 이 건물은 러시아대통령궁으로서 대통령집무실이다. 둥근 지붕 건물 양쪽으로 노란건물이 보인다. 오른쪽 건물은 수리중인 모양이다.

 

레닌묘는 러시아대통령궁과 크렘린방벽을 사이에 두고 붉은광장 서쪽에 위치한다. 1917년 10월 레닌은 자신이 이끌던 볼셰비키와 함께 칼 마르크스 사상에 기반한 20세기 최초의 사회주의 무혈혁명을 일으키는데 러시아제국의 전제정치에 불만이 많았던 노동자 농민과 같은 민중의 호응으로 러시아를 무너뜨리고 서소비에트연방을 탄생시킨다. 이를 기념하여 10월혁명(볼셰비키혁명)이라 부른다. 레닌은 1924년 사망하였는데, 이 레닌묘는 1930년에 완성된 벽돌빛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레닌의 유체는 커다란 유리상자 안에 죽은 당시의 모습으로 온전하게 보관되어 있는데, 이는 소련의 과학기술이 총동원되어 특수처리한 결과라고 한다. 레닌묘는 군인들이 경비를 하고 있으며, 오전에만 개관되고 많은 방문객이 줄서 있기 때문에 들어가는 것은 포기하고 바깥에서만 구경.

(둥근지붕의 대통령궁-크렘린방벽과 망루-레닌묘)

 

레닌묘-뒤에 있는 별이 달린 탑은 크렘린 방벽의 니콜스카야망루, 그 뒤는 병기고골목망루

 

레닌묘를 마주보는 붉은광장 건너편에는  회색빛 건물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 이 건물이 국영백화점 굼으로서 세계적인 브랜드 즉 명품점들이 입주해 있다. 1890~1893년에 건축되었으며, 1층 중앙에는 분수가 있는 3층건물로서 천장을 유리로 되어 있어 자연광으로 내부가 훤하게 비치는 등 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현재 모습은 1953년에 개조한 것.

  

직사각형의 붉은광장 북쪽끝에 자리잡고 있는 2개의 끝이 하얀 뾰족탑을 갖고 있는 붉은색 건물이 국립역사박물관. 1875~1881년 건축되었으며, 사회주의 혁명이후에 비로소 역사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붉은광장 중앙에서 본 국립역사박물관-러시아혁명 이전까지의 러시아 유물 보관전시.

 

크렘린 내부는 러시아 가이드가 동반해야만 입장이 가능하다. 그래서 예약이 오후로 잡혀 있기 때문에 먼저 점심식사를 하고 레닌언덕을 구경한 다음 다시 돌아오기로 한다. 점심은 한식으로 불고기를 먹는다고 한다.

식당으로 가는 도중 길에 버스차창을 통해 붉은광장에서 구경하지 못한 중세건물들을 디카에 담아본다.

크렘린에서 모스크바강변로를 따라 서쪽에 있는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구세주 예수사원)을 지난다.

이 성당은 모스크바 정신적 지주의 하나. 1812년 나폴레옹을 물리친 기념으로 1만명이 같이 미사를 볼 수 있는 규모로 지어졌는데, 1930년대 소련공산당 볼셰비키들이 여기에다 대규모 레닌석상과 야외수영장을 건설하는 도중 2번이나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1995년까지 야외수영장으로 사용되다가 이후 지금의 사원으로 재건되어 2000년 문을 열었다.

 

모스크바강 한가운데 떠 있는 배(범선) 위에 동상이 하나 서 있는데 이 동상이 러시아 최대의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는 표트르대제. 세사람만 알면 러시아 역사를 다 아는 것과 같다고 했는데, 그 3인은 바로 표트르대제를 비롯하여 예카테리나여제, 알렉산드르1세('7/14 북유럽/러시아 여행 아흐레째1'을 읽어보세요).

 

식당으로 가는 도중 버스차창에서 바라본 모스크바 시가지 빨간 전차.

 

점심식사 장소인 모스크바의 한식당 '레스토랑 서울'-여기서 불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다음 글은 모스크바 참새언덕(레닌언덕), 크렘린 내부, 모스크바국제공항)

 

2008. 11. 18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