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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4 - 계수나무

새샘 2024. 3. 16. 11:41

계수나무과 계수나무속에 속하는 암수딴그루 갈잎 큰키나무인 계수桂樹나무하트 모양 잎은 노란 단풍이 들고 달콤한 냄새가 나므로 정원수로 많이 심는다.

중국 및 일본이 자생지인 나무로 전설 속의 달나라 계수나무와는 다르다.

 

계수나무 잎(사진출처-출처자료1)

 

계수나무는 한자로 연향수連香樹, 오군수五君樹, 산백과山白果, 파초향청芭蕉香淸 등으로 쓰고, 영어는 Katsura tee(카츠라나무), 학명은 체세르치디필룸 야포니쿰 Cercidiphyllum japonicum이다.

 

어릴 때 계수나무는 달 속에서 자라고 있는 꿈의 나무로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실제로 우리 주변에 계수나무가 있다는 것을 알고 꿈의 신비가 깨지는 느낌이 들었으나, 계수나무가 훌륭한 나무란 것을 알고 다행히도 그 꿈에 흠이 가지는 않았다.

 

인간에게 꿈이 있다는 것은, 그리고 상상의 날개를 펼쳐 신비한 세계로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은 한없이 아름다운 특권이라 할 수 있다.

중국 당나라 노생盧生이 꾸었던 덧없는 일생임을 말해주는 환단지몽邯鄲之夢 이야기, 해와 달이 된 해님 달님 이야기, 혹부리 영감의 이야기와 같은 것들이 없었더라면 우리의 어린 시절은 얼마나 삭막했을까?

이러한 꿈들이 바탕이 되어 인류의 문명이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달 속의 계수나무와 선녀 상아(사진출처-출처자료1)

 

이태백이 지은 '밝은 달(명월明月)'의 노래를 들어보자.

 

 "소시불식월 少時不識月   우리 어릴 때에는 달을 몰랐지

  호작백옥반 呼作白玉盤   흰 쟁반이라 불렀다

  선인수양족 仙人垂兩足   선인이 두 다리를 드리우고 있는 곳

  계수하단단 桂樹何團團   계수나무는 또 얼마나 단단할까"

 

달 속의 계수나무를 잘라서 초가삼간을 지어 부모를 봉양하겠다는 효심의 노래는 언제 불러도 넘치지 않는다.

그러나 옥도끼일말정 달 속의 나무를 끊어낸다는 것은 달에 상처를 주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계수나무는 달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은 나무다.

옛 책을 보면 달에 있는 계수나무는 높이가 오백 장丈(1장은 사람 키 정도 길이)이나 되고, 그 나무 아래에 한 남자가 있어 항상 이 나무를 베어내고 있으나, 나무의 상처가 금방 아무는 까닭에 베어도 베어도 끝이 없다고 한다.

이 남자의 이름은 오강吳剛인데, 신선술을 배우고 있던 중 죄를 지어 그 벌로 달의 계수나무 베는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중노동의 형벌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저 달에 죄인이 있다는 것은 순결하고 평화스러운 달에 무언가 개운치 않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달을 쳐다보면 검게 보이는 부분 즉 달무리의 빛이 없는 부분(백魄)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계수나무(계桂)가 있는 곳으로서 '계백桂魄'이라고 불린다.

계백은 달의 별칭이다.

 

 

○나무 형태

 

경복궁 고궁박물관 앞뜰의 계수나무(사진출처-출처자료1)

 

계수나무는 높이가 30미터, 줄기의 지름이 2미터에 이르는 큰 나무로 겨울에는 잎이 떨어진다.

나무의 모양이 단정하서 기품이 있고 정결한 느낌을 주며, 줄기가 바로 서고 가지도 위를 쳐다보면서 자란다.

 

 

계수나무 암꽃, 열매, 잎(사진출처-출처자료1)

 

잎은 둥글고, 잎 아래쪽은 심장형(하트형)에 가까운 것이 많으며, 잎 가장자리에는 물결치는 듯한 톱니가 있으며, 톱니 하나하나의 끝 쪽에 선점腺點(잎이나 꽃잎에서 분비물이 나오는 검거나 투명한 점)이 있다.

계수나무 잎의 둥그스름한 모양은 독특한 느낌을 준다.

보름달의 둥그스름함이 완벽함과 평화를, 피나무 잎의 둥그스름함은 풍만을, 앵두 열매는 앳됨을, 사과는 예술적인 맛을 상징하고, 수박은 소란하고, 감은 고요하며, 박은 여성적이고, 호박은 남성적인 둥근 맛을 지니고 있다면, 계수나무의 둥그스름한 하트 잎은 가히 사랑스러운 윤곽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계수나무는 은행나무처럼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되어 있는 암수딴그루(자웅이주雌雄異株)이다.

이른봄, 잎이 나기 전에 붉은빛을 띤 꽃이 한량없이 달리기 때문에 하늘에 분홍색의 구름이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경기도 광릉 국립수목원에는 큰 계수나무가 여러 그루 줄지어 자라고 있는데, 이른봄 꽃이 필 때면 장관이다.

이 꽃은 꽃조각과 꽃받침이 없다.

다시 말해 암꽃과 수꽃은 각각 암술과 수술로만 되어 있는 것이다.

 

계수나무과에는 계수나무속 하나만이 있고, 그 가운데서도 두 종은 일본에 있고 변종 하나가 중국 대륙에 있을 뿐이며, 지구상 다른 곳에는 이 나무가 없다.

말하자면 일화식물계日華植物區系[전 세계의 37개 식물구계 가운데 한국, 일본, 중국(남부 제외), 만주 동부, 히말라야 산계의 식물권역]의 특산 수종으로 볼 수 있다.

 

 

○나무 이름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으로 '계수나무 계桂'로 표현하는 나무가 계수나무만 뜻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계桂는 서로 다른 나무의 이름에 적용되고 있다.

먼저 일본에 난다는 계수나무는 일본 이름이 '가쓰라 カツラ'인데, 서양에서도 이 나무를 일본 이름대로 ' 가쓰라 트리 Katsura tee'로 부르고 있다.

 

다음으로 계桂는 목서木犀를 뜻하기도 한다.

이 나무도 우리나라에서는 원래 없었던 것으로 얼핏 보기에 호랑가시나무의 잎과 닮았는데, 이것도 일본에서 들어와서 남쪽 지방의 정원수로 심고 있다.

목서는 흰꽃이 가을에 피고 향기가 있다.

 

마지막으로 桂는 녹나무과의 계피나무인 육계肉桂를 지칭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모계牡桂, 자계紫桂, 대계大桂, 계피桂皮, 옥계玉 , 강계 , 날계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 나무는 상록성으로 초여름에 꽃이 피며 가을에 나무껍질을 채집하는데, 맛이 달고 매우며 우리나라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껍질이 둘둘 말려 있으며, 겨울철 김장할 때 이것을 양념으로 이용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중에서도 5~6년생 어린 나무에서 채집한 것을 관계官桂라 하고, 10년생쯤 된 나무에서 딴 것을 기변계企邊桂라 하며, 늙은 나무에서 얻은 것을 판계板桂라 하는데, 관계는 또한 통계筒桂나 조계條桂라고도 하고 원통형이다.

좋은 계피란 입으로 씹어서 입속에 찌꺼기가 적게 남고 향기와 감미가 강하고 매운 것이다.

 

이처럼 '계桂'는 낙엽성인 계수나무와 상록성이고 가을 에 꽃이 피는 목서, 그리고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녹나무과의 계피나무 세 가지를 뜻하므로 '계桂'자가 붙는 나무가 무엇인지 확인이 필요하다.

 

 

○진화 과정에서의 위치

 

계수나무는 겉씨식물(피자식물被子植物)로서는 매우 원시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화석으로 확인된 계수나무는 가장 오래된 나무로 알려져 있고 백악기에는 북반구 여러 지역에 존재했다는 보고가 있다.

백악기라면 중생대 말기로서 지금으로부터 약 1억 4천만 년 전에 해당한다.

백악기는 근생대 제3기로 이어지는데, 제3기에는 계수나무가 북반구에 더 넓게 펴져 있었고 그 종류도 많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다가 제3기 끝 무렵부터 쇠퇴하기 시작했고, 그다음 제4기에 들어와서는 아메리카 대륙과 유럽 대륙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현재 계수나무는 아시아 동쪽 온대 지방인 한국, 일본, 중국 등지에서만 약간 남아 있을 뿐이다.

말하자면 계수나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세력이 위축되어가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상할 수 없다.

다만 은행나무처럼 인간의 보호를 받으면서 인류와 함께할 것으로 보인다.

 

 

○한시漢詩에 표현된 계수나무

 

계수나무 단풍(사진출처-출처자료1)

 

앞서 말했듯이 계수나무는 달과 인연이 있다.

달에는 신선이 살고 있다는 전설이 있어 계수나무를 선仙에 결부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계수나무 계桂'자가 한시와 문장에 많이 등장하는데, 그럴 때마다 이것을 무엇으로 해석해야 할지 망설여지곤 한다.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 시인 굴원屈原이 쓴 <산귀山鬼>라는 시에 계수나무가 나오는데, 이때도 그 수종을 가려내기가 힘들다.

중국 장강삼협長江三峽의 무산巫山에 사는 아름다운 여신이 남신에게 실연을 당하고 한탄하는 노래다.

이 시에는 다음과 같은 잃어버린 사랑에 한숨을 쉬는 귀절에서 계수나무가 등장한다.

 

 "승적표혜종문리 乘赤豹兮從文狸            붉은 무늬 표범을 타고 얼룩 살쾡이 거느리며

  신이거혜결辛夷車兮結旗            목련으로 만든 수레에 계수나무를 묶어 깃발로 세우고

  피석란혜대두형 被石蘭兮帶杜衡            석란을 입고 족두리풀 띠를 허리에 두르고

  절방형혜유소사 折芳馨兮遺所思            향기나는 풀을 꺾어 사모하는 당신에게 보내고자 하노니

 여처유황혜종불견천 余處幽篁兮終不見天 나살고 있는 곳은 깊은 대나무 숲속이라 하늘이 보이지 않아

  노험난혜독후래 路險難兮獨後來             험한 길 넘어가만나자는 약속 시간 늦었노라"

         

이때 계수나무로 깃발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목서 종류인지 녹나무 종류의 것인지 아니면 온대 지방에 나는 낙엽성 계수나무인지 분별이 되질 않는다.

하지만 어떤 나무든 좋은 나무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 아니겠는가?

 

다음 당시를 모아 엮은 한시집인 ≪전당시全唐詩≫에 실린 시도 음미해볼 만하다.

 

 "상사춘수록 相思春樹錄      너를 생각하는 동안 봄나무 푸르고

  천리역의의 千里亦依依      천리 멀리 떨어져 그리워하노라

  호두월빈만 鄠杜月頻滿      호현과 두양현의 달은 자주 차는데

  소상인미귀 瀟湘人未歸      소상으로 간 사람은 아직 돌아오지 않고

  계화풍반락 桂花風半落      계수나무 꽃은 바람에 반쯤 떨어졌다

  연초접쌍비 煙草蝶雙飛       노을진 풀밭에 나비 쌍쌍이 날고

  일별무소식 一別無消息       한번 헤어진 뒤 소식 없어라

 

'소상으로 간 사람'이라면 요순시대의 순임금이 아니겠는가?

요임금의 두 딸을 순임금에 시집보냈고, 그 뒤 순임금은 남쪽 지방의 민정을 살피던 중 창오蒼梧의 들판에서 죽었다.

이 죽음을 슬퍼한 순임금의 비 아황娥皇과 여영女永 자매는 상강湘江에 몸을 던져서 이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그 영혼을 위로하는 사당이 동정호洞庭湖 가운데 있는 군산君山에 자리 잡고 있다.

애처로운 영혼들이다.

 

이태백도 읊기를 "해 떨어진 장사長沙에 가을 색이 짙은데, 소상강 여신女神의 영혼을 위로하고자 해도 그곳을 몰라라"라 했고, 가지賈至도 "흰 구름 맑은 달밤에 상아湘娥의 혼을 달래고자 한다"라고 했다.

죽어간 이유에 무한한 동정이 가기 때문이다.

 

계수나무는 옛부터 고귀한 나무로 여겨져왔다.

조선 중기의 학자 이수광李睟光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봉황은 귀한 새이고 솔개는 그렇지 않으며

  기린은 귀한 짐승이고 개는 그렇지 않으며

  계수나무는 희귀하나 가시덤불은 흔하다

  귀한 초목은 약하고 쓸모없는 잡풀은 강하다

  이 세상에 순수하고 밝은 사람은 적고 화를 잘 입게 되나

  악한 자는 많고 그 힘이 무성하여 날뛴다"

 

계수나무는 올바른 일을 무척 좋아하고 잘못된 일은 몹시 싫어하는 나무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착한 사람이 아니면 계수나무를 가까이 하기 어렵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그리고 계수나무 잎은 아름다움의 상징이다.

전통적으로 아름다운 눈썹을 아미蛾眉 또는 유엽柳葉(버드나무 잎) 등으로 표현하는데, 여자의 아름다운 눈썹을 계수나무 잎에 견주고 있는 옛 시도 있다

 

 "계엽쌍미구불묘 桂葉雙眉久不描   계수나무 잎 같은 쌍눈썹을 오래도록 그리지 않았는데

  잔장화루습홍초 殘粧和淚濕紅綃    남은 화장이 눈물에 섞여서 붉은 비단옷 적신다"

 

 

○소동파의 찬가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에도 계桂가 나온다.

이를 목서나무로 해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만 관념적으로 귀한 나무로만 막연하게 풀이한 사람도 있다.

"도혜桂櫂兮 난장蘭槳, 격공명혜擊空明兮 소류광泝流光"이란 대목에 계수나무로 만든 상앗대(櫂: 배질을 할 때 쓰는 긴 막대)에 목란木蘭으로 만든 노(장)가 등장하는데, 이때 목란을 주목朱木으로 해석한 한문학자도 있다.

주목 역시 훌륭한 나무이고 향기가 좋은 것이고 보면 그러한 풀이에 어색함은 없을 것이다.

 

좋은 삿대와 노로써 배를 저어가면서 어슴푸레한 공명空明(고요한 물에 비친 달 그림자)을 치고 달빛 무늬 찬란한 물 위를 거슬러올라간다는, 신선들이 능히 할만한 행장行狀(몸가짐과 품행)을 마음속에 그려볼 수 있다.

여기에 계수나무 노가 등장해 더욱 빛나고 고양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적벽부>에 나오는 "야심계토출 夜甚桂兎出 중성수서경衆星隨西傾 (늦게 계토가 나타나 뭇별을 거느리고 서쪽 나라로 잘도 간다)"는 표현은 달의 궤도적 움직임을 나타낸 것이지만, 적벽부는 달을 왔다 갔다 하며 동작하는, 즉 하늘이라는 공간을 즐기며 행동하는 생물적 물체로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계토(계수나무와 토끼)는 달의 별명이다.

달에는 계수나무와 토끼가 있어서 주고받는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으며, 그들이 끊없이 번창해가리라 믿게 된다.

 

시인 굴원도 "도란예櫂蘭枻"라는 말을 썼다고 하는데, 그는 계桂와 난蘭의 향기 높은 식물을 매우 즐겼다고 한다.

 

※출처

1. 임경빈 저, 이경준·박상진 편,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1,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9.

2. https://m.blog.naver.com/imari_/221015456524(한시 '산귀')

3. http://www.andongkwon.pe.kr/coding/sub3/sub1.asp?mode=view&aseq=5166(한시 '산귀')

4. 구글 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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