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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6 - 구상나무

새샘 2024. 4. 13. 21:02

한반도 고유종 식물 가운데서도 학명에 'korea'가 들어가는 늘푸른 바늘잎 큰키나무구상나무우리나라 한라산을 비롯한 높은 산에서만 자생하는 나무다.

기후 온난화로 차츰 사라져가고 있는 대표적인 보호식물이다.
 
 

구상나무 잎(사진 출처-출처자료1)

 
소나무과 전나무속에 속하는 구상鉤狀[열매 바늘 돌기가 갈고리(鉤)처럼 구부러진 모양(狀)] 또는 구상毬上[둥근 열매(毬)가 하늘(上)을 보는] 나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나무다.
그것도 한라산 꼭대기와 지리산 노고단 임걸령 등 고산 지대에서만 자라고 있다.
이처럼 구상나무는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볼 수 있어 이 나무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비교적 적다.
나무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구상나무에 대한 지식은 비교적 새로운 편이다.
 
중국어 한자는 제주백회濟州白檜, 영어는 Korean fir(한국전나무), 학명은 아비스 코리아나 Abies koreana.
 
늘푸른(상록常綠) 바늘잎나무(침엽수針葉樹)인 전나무속 나무는 우리나라 특히 북한의 높은 산지에 많다.
일본에는 일본전나무가 있고 홋카이도에 많다.
미국과 캐나다에도 전나무가 많이 자라는 반면 유럽에는 흔하지 않은 편이다.
 
 

○솔방울의 특징

 

구상나무 솔방울(사진 출처-출처자료1)

 
전나무속에 속한 나무들은 솔방울(구과毬果)이 하늘을 쳐다보면서 위로 서는 성질이 있다.
아래로 처져 있는 일은 없고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힘이 있는 기상이다.
태양을 보고서 전진하는 모습이다.
이런 모습이 전나무를 굳세어 보이게 한다.
 
그런대 이런 전나무나 구상나무의 솔방울은 떨어지면서 산산조각이 난다.
나무에 달려 있을 동안은 힘차고 굳은 의지를 보이며 아름답지만, 나무에서의 생애가 끝나고 새로운 길을 택하는 순간 솔방울은 장한 산화散華의 길의 택하는 것이다.
죽은 뒤에는 그 모습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산산조각이 나고 빨리 썩어 공기가 되고 만다.
이 세상을 하직하고 난 뒤의 일에 관심을 갖지 않고 미련을 품지 않는 철저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나무가 구상나무요, 전나무들이다.
자신의 의무가 끝나면 깨끗한 죽음을 택하는 이들 나무 열매의 마지막 길은 장하다고 보아야 할까?
 
전나무 종류와 닮은 것으로 가문비나무 종류가 있다.
전나무가 자라는 곳에는 흔히 가문비나무도 함께 자란다.
전나무나 가문비나무 모두 추운 곳을 좋아한다.
하지만 가문비나무류의 솔방울은 전나무류와는 반대로 아래를 보고 처지는 성질을 갖고 있다.
가문비나무 열매는 힘이 덜해 보이고 유연한 느낌을 풍긴다.
수줍고 겸손하며 말이 적어보이는 모습이다.
가문비나무 열매는 익어서 떨어질 때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다.
 
가문비나무 열매처럼 유연하고 약한 것들은 떨어진 뒤에도 지난날에 대한 미련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떨어진 가문비나무 열매는 다람쥐가 물고 가 겨울 양식으로 삼기도 하고, 새들의 식량이 되기도 한다.
찢어지고 쪼이고 해서 앙상한 뼈를 남기는 비참한 최후를 가문비나무류의 솔방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름다운 외관

 

한라산의 구상나무(사진 출처-출처자료1)

 
우리나라의 구상나무는 아름다운 외관으로 세계 첫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88올림픽이 열렸을 때 선수들에게 구상나무 묘목 한 그루씩을 선물하자는 의견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런 의견은 식물 방역상 뿌리에 흙이 붙으면 국가 간 이동이 어렵고, 나근묘裸根苗(나무 심을 때 뿌리가 노출된 상태의 묘목)로서 이식했을 때 뿌리를 잘 내리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어 실행되지는 못했다.
구상나무의 뿌리는 균뿌리(균근菌根: 균류 즉 곰팡이가 식물 뿌리와 공생하고 있는 상태 즉 '균류와 식물뿌리의 공생체')를 형성해서 살아가는데, 뿌리의 흙을 털어 없애면 뿌리 기능이 쉽게 약화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구상나무는 아름답기 짝이 없다.
몸에 먼지 하나 묻히지 않고 한라산 정상에 서서 고결함을 보인다.
고도상으로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지리산에도 있으나 구상나무로 보기에는 변절한 것으로 여겨진다.
아래 가지를 넓게 확장해서 땅을 덮고 있는 것은 구상나무의 안정을 상징하며, 나무 모양이 원추형이면서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너비가 점점 줄어드는 것은 한라산의 바람을 의식한 탓이이라.
한라산 분화구 안으로 들어가면 그 키는 더욱 작아져서 작은키나무나 떨기나무처럼 변한다.
바람으로 낮아졌다고 하지만, 줄기의 굴곡이 적은 것은 이 나무의 꼿꼿한 절조를 말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크룸홀츠 Krummholz(높은 고도와 위도에서 자라는 발육 부진 나무를 말하는데, 가혹한 환경 조건으로 인해 가지와 줄기가 뒤틀리고 구부러진 것이 특징) 즉 기형旗型(깃발 모양으로 줄기 한쪽에만 곁가지가 달린 모양)을 띠었다고 한다.
특히 분화구 안 백록담 주변의 구상나무는 외곽 지대보다 더 키가 작고 줄기의 굴곡이 더 심하다.
 
크룸홀츠의 전형적인 모습은 설악산 대청봉과 중청봉 사이의 기울기가 완만한 말안장 지형에 자라고 있는 눈잣나무(누운 잣나무)에서 볼 수 있다.
줄기가 굽고 땅을 기어가는 형태는 확실히 정상적인 것은 못 된다.
오대산 비로봉 북쪽에서 자라고 있는 전나무만 하더라도 바람 때문에 곁가지는 한쪽에만 남아 있는 기형旗型을 이루는데, 이것도 크룸홀츠의 하나일 것이다.
 
구상나무는 그 유전자원이 우리나라 남쪽에 먼저 뿌려진 것으로 보인다.
지난날 제주도와 우리나라 본토는 육지로 이어져서 해협이 없었다고 하는데, 그때 구상나무 집단이 본토와 제주도 낮은 곳까지 점령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던 것이 해협이 생기고 기온이 따뜻해지면서 구상나무들은 세력을 잃어갔을 것이다.
기온 상승은 구상나무를 한랭한 산꼭대기로 몰아붙였다.
살만하던 옛 고향을 버리고 한랭한 산정으로 쫓겨갔다.
가다가 더 올라갈 곳을 찾지 못하던 구상나무는 절멸하고 말았다.
기온이 더 상승해간다면 한라산의 구상나무도 끝내는 하늘밖에 갈 곳이 없게 될 것이다.
 

구상나무는 미의 극치에 이른 아름다운 나무다.

고요하며, 잡스러운 이웃을 멀리하고, 가난한 생활자원을 걱정하지 않으며, 주어진 환경이 황량하더라도 그곳에서 찬란한 아름다움을 펼친다.
고전을 펴고 독서에 몰두하고 있는 선비 같기도 하다.
한라산의 구상나무는 하늘나라의 선녀들과 교유를 했는데, 그쯤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한라산은 신비의 산이고, 그 신비의 생물학적 주인이 구상나무이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구상나무를 많이 심고 키워서 크리스마스 트리와 같은 귀중한 조경수목으로 홍보하고 있다.
그 가치가 국제적으로도 알려지고 있어 다행이다.
 
 

구상나무 숲(사진 출처-출처자료1)

 
한라산의 구상나무 숲은 북사면에서 해발 1290미터에서부터, 남사면은 1410미터, 서사면은 1430미터, 그리고 동사면은 1300미터부터 나타나며, 정상까지 끊이지않고 띠 모양(대상帶狀)이나 반점 모양으로 분포한다.
일부 조사에서는 한라산의 구상나무 숲을 구상나무 군락, 구상나무·제주조릿대 군락, 구상나무·신갈나무 군락으로 나누고 있다.
 
한라산의 구상나무 숲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자신의 뒤를 잇는 후계 숲을 만들어나갈지 궁금하다.
이른바 자연 갱신이 잘 되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구상나무는 전나무속의 다른 나무, 즉 전나무나 분비나무처럼 어릴 때 응달을 좋아하는 강한 음지나무 즉 음수陰樹다.
따라서 어린 나무의 아래 가지는 큰 나무 아래에서도 그대로 살아남아 광합성을 한다.
이것은 전나무속 나무의 공통된 성질이다.
큰 나무 그늘 아래에서 자라고 있는 구상나무(또는 분비나무)는 어릴 때 자람이 늦어서 그 위에 있는 큰 나무를 뚫고 위로 올라간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그런 응달 공간에서 오래오래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 뒤 어쩌다가 위에 있던 큰 나무가 죽게 되어 공간이 생기면, 이들은 좋아라 하면서 왕성한 성장을 시작해서 그 공간을 메우게 된다.

 
 

○패잔병 구상나무

 
한 나무에 암꽃과 수꽃이 같이 피는 암수한그루 구상나무의 역사는 비교적 오래되었다.
지구 표면이 아직 한랭하던 옛적에는 낮은 곳에도 구상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었다.
빙하가 지구 표면을 엄습해 남쪽으로 내려올 때 기온이 매우 낮았는데 이때 기를 펴고 산 나무가 구상나무였다.
 
빙하가 다시 북극으로 물러나고 햇빛으로 기온이 올라가자, 낮은 곳에서 자라던 구상나무들은 더위를 이겨내지 못해 한랭한 산꼭대기로 밀려 올라갔다.
이러한 사실은 한라산 위쪽에만 있는 구상나무 숲이 증명해 준다.
사람들은 이 나무를 보고 옛날의 유물이라고 하는데, 사실 구상나무는 유물과 진배없다.
 
나는 몇 번인가 한라산을 등반했고 그때마다 남아 있는 구상나무들을 보아왔다.
이제 간신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구상나무 숲은 처량해 보인다.
씩씩하고 위세 당당했던 백만 대군이 궤멸당하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패잔병들이, 그것도 저 황량한 극단 환경으로 쫓겨나 녹슨 창과 칼을 손질할 기백마저 잃어 운명을 기다리고 있는 구상나무 집단을 보았다.

북극에서 산더미 같은 얼음이 남쪽을 향해 내려오는 지질 시대가 오지 않는 한 구상나무숲의 앞날은 막막하기만 하다.

 
 

○구상나무숲의 위기

 
한라산에 남아 있는 구상나무들은 그 자손을 남기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자손들이 번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 그런 곳에서 살 만한 힘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상나무 가운데는 춥고 황량한 곳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소질이 있는 것도 있었지만, 그런 것들은 우연한 기회에 모두 없어져버렸고 지금은 적응하기 어려운 것들만 그곳에 남게 되었다.
 
현재 구상나무는 면적으로 보나 수로 보나 매우 작은 규모의 군락을 이루고 있다.
작은 집단이란 뜻이다.
이런 소집단은 살아가는 동안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얼마 남지 않은 구상나무숲이, 그것도 그 환경을 이겨내기 어렵다는 것은 뭔가 비애를 품은 느낌이다.
 
지난날 한라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흔히 산꼭대기에서 하루 저녁을 묵으면서 밥을 지어 먹었는데, 그럴 때마다 구상나무 가지를 꺾어 불을 지폈다.
구상나무 잎은 기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안개와 빗물에 젖은 잎과 가지도 잘 탄다.
물론 지금은 산에서 밥을 지어 먹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지리산 쪽의 구상나무숲은 한라산의 것에 비해 볼 때 더 건강하고 아직은 활기에 차 있다.

 
한라산 산정에는 백록담白鹿潭이란 분화구가 있다.
이 백록담 부근에는 아름다운 선녀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선녀는 구름보다 더 희고 부드러운 치마를 벗어 구상나무 가지에 걸어놓고 백록담의 깨끗한 물에 몸을 씻었다.
선녀의 옷이 그 가지에 걸릴 때마다 구상나무는 큰 즐거움에 젖었고, 나무 아래서 주고받는 선녀들의 대화에서 기품 있는 교양을 흡수할 수 있었다.
하늘나라 사람들과 오래 사귀어온 구상나무는 하계下界의 잡스러운 나무들과 다르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이곳 선녀들은 바닷가에 사는 홍안의 미소년 사냥꾼을 불러 즐거움을 함께했다고 한다.
선녀들이 흰 사슴(백록白鹿)으로 변신해서 사냥꾼을 만났다는데, 백록이 놀던 백록담에 아직 그 발자취가 남아 있는 듯하다.

구상나무는 백록담 신화와 함께 신화의 나무가 된 성싶다.

 

세계의 학자들이 우리나라의 구상나무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리산 임걸령의 구상나무는 한라산의 구상나무와 크게 달라, 줄기가 높고 곁가지가 비교적 가늘고 짧으며 얼핏 보기에는 전나무와 많이 닮아 있다.
같은 구상나무이면서 지역에 따라 모양이 다르다.
앞으로 구상나무를 잘 보호해서 우리 사회가 더 발전되고 건강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구상나무와 분비나무

 
구상나무와 분비나무는 서로 많이 닮았다.
잎 끝이 약간 갈라진 특성이 서로 같다.
전나무의 잎 끝은 뾰족하고 날카롭다.
솔방울의 비늘조각잎(포린苞鱗: 겉씨식물의 암꽃 밑씨를 받치고 있는 비늘 모양의 작은 돌기) 끝이 뒤로 젖혀지는 것은 구상나무고, 그렇지 않은 것은 분비나무다.
 
분비나무와 구상나무는 잎의 횡단면에 나타나는 수지도樹脂導(수지 즉 나무즙이 나오는 작은 관)의 위치에 차이가 있다.
구상나무의 수지도는 잎의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데 이를 외위外位라고 하며, 반면 분비나무는 중심부에 가까운 중위中位에 있다.
그리고 소나무의 수지도는 외위이고 곰솔은 중위여서, 수지도로서 소나무와 곰솔을 구분할 수 있는 것처럼 구상나무와 분비나무 역시 수지도로서 구별이 가능하다.
 

구상나무는 여러모로 우리의 자랑거리다.

그 고결하고 항상 안주하려는 나무의 품격을 바라보게 된다.
이처럼 아름다운 나무가 어디에 또 있겠는가?
 
※출처
1. 임경빈 저, 이경준·박상진 편,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1,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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