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2022. 9/23 서울 칠궁 본문

여행기-국내

2022. 9/23 서울 칠궁

새샘 2024. 4. 19. 14:17

칠궁 위치

 

칠궁 건물 배치(출처-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C%B9%A0%EA%B6%81)

 

 

청와대 영빈관 서쪽 바로 옆인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에 있는 칠궁七宮은 조선왕의 어머니가 된 일곱 후궁의 신주神主(죽은 사람의 위패)를 모신 왕실 사당이다.

이곳에는 원래 영조가 어머니 숙빈 최씨를 기리기 위해 영조 2년인 1725년에 완공한 사당인 숙빈묘淑嬪廟였다.

이후 1744년 '상서로움을 기른다'는 뜻의 육상毓祥이란 묘호를 올렸고, 1753년 묘가 궁으로 승격하여 육상궁毓祥宮이 되었다.

 

조선 후기 한양도성 안에는 육상궁 외에도 왕을 낳은 후궁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 여럿 있었는데, 이들 사당에 모셨던 신주들을 모두 육상궁으로 옮겨와 일곱 분의 왕을 낳은 후궁 신주를 한곳에 모심으로써 칠궁이란 지금 이름을 얻게 되었다.

칠궁의 사당 건물이 모두 5개인 것은 두 곳의 건물에는 각각 두 분의 신주를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동쪽 육상궁 권역에는 나지막한 담이 둘러싸고, 서쪽 권역에는 네 개의 사당이 서로 가까이 서 있다.

이 두 권역 사이에는 냉천정과 냉천, 그리고 자연이라는 네모난 연못이 뒤쪽 북악산 자락과 어울려 한국식 정원의 전형을 이루고 있다.

해마다 10월 넷째 주 일요일이면 여기서 일곱 분의 후궁에 대한 제사인 '칠궁제'가 치러진다.

 

칠궁의 출입문인 외삼문 뒤로 북악산이 보인다.

 

외삼문을 들어서면 넓다란 마당이 나온다.

마당 앞쪽 끝으로 보이는 문은 사당으로 들어가는 내삼문이며, 마당 오른쪽 담 뒤 건물은 제사 준비를 하는 재실.

관람로는 재실부터 시작하여 동쪽(오른쪽) 권역 사당과 서쪽(왼쪽) 권역 사당을 차례로 둘러본 뒤 사당 관리인 공간인 수복방을 거쳐 다시 외삼문으로 나오도록 되어 있다.

 

재실齋室 공간에는 앞뒤로 2개의 건물이 있으며, 이 두 건물은 회랑으로 연결된다.

앞 건물에 걸린 왼쪽 현판이 송죽재松竹齋, 오른쪽 현판은 풍월헌風月軒이며, 육상궁을 지키는 관원들이 이곳에서 머물렀다.

이 건물 왼쪽 뒤로 삼락당이 보인다.

 

재실 뒤 건물인 삼락당으로 들어와 뒤돌아본 삼락당 재실 출입문인 사주문과 왼쪽 작은 문인 협문.

협문 왼쪽 담장 바로 뒤 건물이 앞서 보았던 송죽재와 풍월재 건물.

 

삼락당 재실 마당에 흰꽃이 만발한 흰배롱나무 

 

재실의 두 건물 사이에는 서쪽으로 낮은 담이 있어 앞에서는 두 건물이 같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동쪽에는 담이 없기 때문에 삼락당 뒤뜰로 가서 보면 회랑으로 연결된 두 재실 건물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삼락당 뒤뜰에서 바라본 재실의 두 건물.

왼쪽 건물이 앞서 보았던 송죽재와 풍월헌, 가운데는 두 건물을 연결하는 회랑, 오른쪽 건물이 삼락당이다.

 

재실과 사당 사이의 담장문인 중문을 나서면 바로 한국 고유의 정원이다.

사당 공간 남쪽 끝에 네모난 연못인 자연紫淵이 있는데, 이 연못물은 북쪽에 있는 냉천에서 흘러나온다.

그리고 연못 옆 건물은 칠궁에서 일하는 구실아치 거처인 수복방守僕房.

 

자연 옆에 핀 흰배롱나무 꽃

 

자연 북쪽에 자리잡은 냉천정冷泉亭은 영조가 어머니 숙빈최씨 제사 때 머물렀던 곳이다.

이 건물에 영조 어진을 모셨기 때문에 봉안각奉安閣이라 부르다 순조 이후 지금 이름인 냉천정이 되었다.

 

자연과 냉천정 사이에서 뒤돌아본 중문과 담장 뒤 재실.

 

냉천 뒤 오른쪽에 있는 우물인 냉천冷泉의 물로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냉천 바로 뒤에 보이는 장대석에는 제사 지내러 온 영조가 지은 다음과 같은 오언절구가 새겨져 있다.

 

  "어묵운한御墨雲翰(임금의 글월을 새기다)

 

   석년영은중昔年靈隱中[(냉천이) 지난 날 (항주의) 영은산 속에 있더니]

   금일차정내今日此亭內[오늘은 이 정자 안에 있구나]

   쌍수농청의雙手弄淸猗[두 손으로 맑은 물 어루만지니]

   냉천자가애冷泉自可愛[냉천이 절로 사랑스럽네]

 

  시강이협흡병월상완야時强圉協洽病月上浣也[정미년(1727) 3월 초순]"

 

정원에서 육상궁과 연호궁이 있는 동쪽 사당 건물로 들어간다.

동쪽 사당 출입문인 삼문과 담장.

삼문 계단 오른쪽 담장 앞에는 육상궁·연호궁 사당 안 감실 및 신위 사진이 있다.

 

육상궁毓祥宮은 영조의 어머니이자 숙종 후궁인 숙빈최씨淑嬪崔氏 사당으로서 영조원년인 1724년부터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인 1725년에 완공하여, 1744년 '기를 육毓' '상서로운 상祥'을 사용하여 육상이란 묘호를 올리면서 육상묘가 되었고, 1753년 묘에서 궁으로 격상시켜 육상궁이 되었다.

 

연호궁延祜宮은 영조의 장자이자 왕세자인 추존왕 진종眞宗(효장세자孝章世子)의 어머니이자 영조의 후궁인 정빈이씨靖嬪의 사당이다.

연호궁은 원래 한양 북부의 순화방에 있다가 1870년(고종 7년)에 이곳 육상궁으로 옮겨져 육상궁과 같은 건물 안에 모셨다.

 

육상궁 감실은 사당 건물 안 왼쪽이고, 연호궁은 건물 안 오른쪽이다.

 

인터넷에서 찾은 칠궁 동쪽 사당인 육상궁·연호궁 조감 사진(출처-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https://royal.cha.go.kr/ROYAL/contents/R107010000.do).

가운데 뒤쪽 가장 큰 건물이 육상궁·연호궁 감실, 감실 정면의 지붕만 있는 건물은 배각, 그리고 감실 좌우의 두 건물은 이안청으로서 왼쪽은 서각, 오른쪽은 동각이다.

 

삼문 안에서 찍은 동쪽 사당 파노라마 모습.

맨 앞 배각拜閣(사당 앞쪽에 있는 절 하는 행랑), 가운데 뒤 배각 뒤에 있는 건물이 육상궁과 연호궁이며, 좌우에 있는 건물은 사당에 이상이 발생하였을 때 영정을 임시로 옮겨 보관하는 건물인 이안청移安廳으로서 왼쪽은 서각西 , 오른쪽은 동각東이라 부른다.

 

이 동쪽 사당에는 육상궁과 연호궁이 같이 있다고 되어 있는데, 정작 정면 처마밑 현판은 '연호궁延祜宮' 뿐이다.

그래서 현판 뒤쪽을 들여다보니 문지방 위에 육상궁이 아닌 사당 '묘廟'를 쓴 '육상묘毓祥廟' 현판이 붙어 있다.

영조가 처음 지었을 땐 육상궁만 있었다고 하니 현판은 단연 '육상궁'이어야 하는데 연호궁 현판이 달려 있는 이유는 뭘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 '육상묘' 현판 글씨를 영조가 직접 썼다고 하니, 육상묘에서 육상궁으로 승격된 뒤 문지방 위 달려있던 영조 친필인 육상묘 현판은 그대로 두고 새로 만든 연호궁 현판을 처마 밑에 걸은 것은 아닐까...(새샘 생각)

 

연호궁 앞에서 바라본 이안청 동각

 

연호궁 앞에서 바라본 이안청 서각

 

연호궁 앞에서 본 배각과 출입문인 삼문

 

육상궁·연호궁 동쪽(오른쪽) 담장 뒤 솔숲.

 

육상궁·연호궁 앞마당 배롱나무

 

육상궁·연호궁의 2궁을 나와 정원을 거쳐 서쪽 권역인 5궁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서쪽 권역은 오각형 땅이다.

서쪽 권역 사당의 출입문인 삼문 오른쪽에 동쪽 권역과 같은 형태의 5궁 감실과 신주 안내판이 있다.

이곳의 사당 건물을 모두 4개이며, 삼문을 들어서면 바로 왼쪽에 이안청이 있고, 정면에 덕안궁, 그 바로 뒤에는 선희궁·경우궁부터 시작하여 왼쪽(서쪽)으로 대빈궁과 저경궁이 차례로 있다.

 

5궁이 있는 서쪽 권역 사당 출입문인 삼문 앞에서 찍은 파노라마 사진.

문을 통해 마당 안쪽에 보이는 건물은 덕안궁, 왼쪽 담 뒤 건물은 이안청이다.

 

삼문을 들어서자마자 눈앞에 바로 들어오는 덕안궁德安宮은 고종의 일곱째 아들인 영친왕英親王(의민태자懿愍太子)의 어머니이며 고종의 후궁인 순헌귀비純獻貴妃 엄씨嚴氏의 사당이며, 다른 곳에 있던 사당을 1929년 이곳으로 옮겼다,

 

덕안궁 앞마당 왼쪽에 있는 서쪽 권역 사당의 이안청.

 

덕안궁과 이안청 사이로 사당 건물이 보인다. 

 

덕안궁과 이안청 사잇길로 들어가면 안마당 뒤쪽에 3개의 사당 건물이 보인다.

왼쪽부터 차례로 저경궁, 대빈궁, 선희궁·경우궁.

 

저경궁儲慶宮은 추존 왕인 선조의 다섯째 아들 원종元宗(정원군定遠君)의 어머니이자 선조 후궁인 인빈김씨仁濱金氏의 사당이며, 1908년 이곳으로 옮겼다.

인빈김씨가 낳은 정원군이 조선 16대왕 인조가 되었다.

 

대빈궁大嬪宮은 경종의 어머니이자 숙종 후궁인 희빈장씨禧嬪張氏(장희빈) 사당으로, 1870년  다른 곳에 있던 사당을 이곳으로 옮겼다가 다시 처음 장소로 돌아갔으며, 1908년 두 번째 이곳으로 옮겨겼다.

 

경우궁 현판 건물에는 선우궁도 같이 있다.

사당 안 왼쪽 감실인 선희궁鮮禧宮은 추존 왕 장조莊祖(사도세자思悼世子 또는 장헌세자莊獻世子)의 어머니이자 영조 후궁인 영빈이씨瑛嬪李氏 사당으로서, 1870년 이곳으로 옮겼으나 얼마 뒤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으며, 1908년 다시 이곳으로 옮겼다.

 

사당 안 오른쪽 감실인 경우궁景祐宮은 순조의 어머니이며 정조 후궁인 유빈박씨綏嬪朴氏(또는 수빈박씨綏嬪朴氏)의 사당으로 다른 곳에 있던 것을 1908년 이곳으로 옮겼다.

2024. 4. 19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