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신의 붕대 앙브루아제 파레 본문

글과 그림

신의 붕대 앙브루아제 파레

새샘 2024. 4. 29. 23:42

르네상스기의 위대한 외과의사 브루아즈 파레(사진 출처-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C%95%99%EB%B8%8C%EB%A3%A8%EC%95%84%EC%A6%88_%ED%8C%8C%EB%A0%88)

 

르네상스기에는 외과의에 대한 인기가 높았는데 이는 당시 많았던 전쟁 때문이다.

'대 이탈리아 전쟁'이라 부르는 1400년대 말부터 약 60년 동안 지속된 유럽의 전쟁터에 화약과 총이 등장해 화상에 의한 외상과 총상을 처치할 외과의가 많이 필요했다.

덕분에 외과의들은 외상을 치료하면서 실전 경험을 쌓아 외과술이 발달했다.

이 시기에 등장한 위대한 외과의는 프랑스의 앙브루아즈 파레 Ambroise Paré (1510?~1590)였다.

 

파레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 집안 형편에 도움이 되고자 어릴 때부터 이발사나 외과의 밑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어깨너머로 외상 처치에 대한 의술을 배웠다.

집안 형편상 제2외국어인 라틴어를 배우기가 불가능해 의학 서적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파레는 눈썰미가 뛰어나고 손기술이 좋아 어디서든 두각을 나타냈다.

파레가 외과 군의관으로 처음 참전한 전쟁은 1536년 제3차 이탈리아 전쟁이었다.

 

당시에 총상 환자의 치료제는 끓는 기름이었다.

"칼로 치료할 수 없는 상처는 불로 치료해야 한다"는 뭔가 이상한 이론을 바탕으로 총상에 묻은 화약에 독이 있다 하여 상처를 끓는 기름으로 소독했다.

총상 병사들은 안 그래도 고통스러운데 거기에 끓는 기름까지 부었으니 끔찍한 고통을 두 배로 느꼈을 것이다.

환자뿐 아니라 그 모습을 바라보는 외과의도 죽을 맛이었다.

전쟁에 처음 참가한 파레도 총상을 기름을 부으며 정신없이 최선을 다해 치료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총상에 써야 할 기름이 다 떨어지고 말았다.

치료해야 할 환자는 많은데 치료제가 없는 상황이었다.

파레는 어쩔 수 없이 입대하기 전 사용했던 상처에 바르는 연고를 사용했다.

계란 노른자에 장미 기름, 소나무 기름(테레빈유 terebene 또는 turpentine oil)을 섞어 만든 수제 연고였다.

끓는 기름이 아닌 수제 연고를 처치하고 나서 파레는 불안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총상 환자들이 내일이면 모조리 죽을 것만 같았다.

파레는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환자를 보러 달려갔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수제 연고를 바른 병사들이 염증도 붓기도, 심지어 통증도 없이 하룻밤을 잘 보낸 것이다.

오히려 기존의 방법대로 끓는 기름으로 상처를 소독한 환자들은 붓기와 통증과 고열 때문에 고생하고 있었다.

이 놀라운 발견으로 파레는 총상 환자에게 더는 끓는 기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전쟁 통에 새로운 지혈 방법을 고안하기도 했다.

그전까지 출혈 부위를 불로 태워 지혈했는데, 파레는 출혈 부위의 혈관을 찾아 실로 묶는 '혈관 결찰법'을 사용한 것이다.

이 방법은 지금까지도 외과수술에서 사용하는 획기적인 방법이다.

대 이탈리아 전쟁을 통해 파레의 영웅담은 프랑스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전쟁 상황에서 보여준 헌신과 능력을 바탕으로 낮은 신분의 외과의였던 파레는 대형 병원의 외과 과장을 거쳐 성聖 코스메 의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아무리 르네상스 시대라 해도 이런 수직 신분 상승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파레는 마침내 왕의 주치의에 임명되었다.

전쟁터에 자주 불려나갔지만 많은 왕들(앙리 2세, 프랑수아 2세, 샤를 4세)이 그를 믿고 지지했다.

그는 후배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어주는데 힘썼고, 가망이 없어 보이는 환자를 만나도 끝까지 임무를 다해야 한다고 격려했으며, 치료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자만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파레의 성품을 보여주는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나는 붕대를 감았을 뿐 치유는 신께서 하신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붕대를 파레가 감았다는 사실이다.

 

※출처
1. 김은중, '이토록 재밌는 의학 이야기'(반니, 2022)
2. 구글 관련 자료

 
2024. 4. 29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