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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54 - 비자나무

새샘 2025. 7. 31. 14:21

비자나무 잎(출처-출처자료1)

 

제주도와 남부 지방 일부에서만 자라는 늘푸른나무다.

목재의 질이 좋아 활 만들기에서 바둑판까지 귀한 쓰임이 많았다.

씨앗은 몸 안의 기생충을 없애주는 구충제로 쓰였다.

 

주목과 비자나무속의 늘푸른 바늘잎 큰키나무로서 전남, 경남, 제주의 산기슭이나 골짜기에서 2미터 지름에 25미터 높이까지 자라며, 일본에서도 자생한다.

특히 제주 구좌읍 평대리의 천연기념물 제374호 비자림榧子林(비자나무 숲)이 유명하다.

 

학명은 토레야 누시페라 Torreya nucifera, 영어는 Nut-bearing torreya(굳은열매주목) 또는 Japanese torreya(일본주목), 한자는 비자목榧子木 또는 패자목棑子木이다.

 

 

○나무 이름

 

비자나무 열매와 씨앗(출처-출처자료1)

 

1830년 무렵 만들어진 류희柳僖의 ≪물명유고物名類考≫(또는 ≪물명고物名≫)에서는 비자榧子를 설명하면서 "씨는 대추와 닮아 먹을 수 있으며, 별명으로 '야삼野杉, 옥비자玉榧子, 피자柀子, 적과赤果, 옥산과玉山果' 따위로 불린다"고 했다.

 

한편 이시진李時珍의 본초강목本草綱目 비실榧實조에는, "피자柀子'라고도 하는데 '버드나무 피柀'자의 발음은 '저 피彼'자와 같다'고 했으며, 한자 이름은 '적과赤果, 옥비玉榧' 따위로 ≪물명고≫에서와 다르지 않게 썼다.

그는 피柀는 '비棑'(나무 이름 비, 비자나무 비)로 써도 된다고 하였다.

또 '비棐'(도지개 비)로 쓰고 이것을 '비자나무 비'로도 읽었다.

'문목文木'(문양이 아름다운 나무라는 뜻)이라고도 했는데, 이는 이 나무이 목재가 비연斐然(아름답다)하고 장채章采(아름다운 무늬)가 있는 까닭에 붙은 이름이며, '비榧'(비자나무 비)라고도 했다.

 

한편 '옥산과玉山果'라고 하는 것은 옥산이란 지역에서 나는 것이 질이 좋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

소동파의 시에 "저 아름다운 옥산과, 찬란한 아름다움이 금반金盤(아름다운 쟁반) 위에 놓여 있다"는 대목이 있는데, 역시 옥산 지방의 비자나무를 지적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나무를 '비자나무'로 부르는 것은 한자 이름인 '비자榧子'를 그대로 읽은 것으로 짐작된다.

 

 

○쓰임새

 

전남 강진 삼인리의 비자나무(천연기념물 제39호)(출처-출처자료1)

 

수원고등농림학교의 우에키(식목수간植木秀幹) 교수는 "비자나무의 씨 기름은 요리용·약용·등불용으로 쓰이고, 제주도산 비자 1되에서 0.07되 즉 7퍼센트의 기름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또한 "기름 색깔은 황갈색이고, 매운 맛이 강하며, 성질은 건성이고, 도료용으로 쓰이며, 등불용으로는 불빛이 다른 어떤 기름보다 뛰어나다"고 했으며, "강한 추위에도 응결하는 일이 없어 귀중한 것"이라 했다.

 

중국 문헌에 따르면 비자 씨 배젖의 기름 함유량은 40퍼센트이고, 역시 식용이나 약용으로 이용한다고 했다.

가종피假種皮(주목류 열매에 있는 씨의 껍질로서,  수정 후 태胎 자리나 주병珠柄이 비대해져서 씨를 싸게 된 껍질)와 잎에는 방향유芳香油(식물에서 채취한 향기로운 휘발성 기름)가 포함되어 있으며, 조경수로서의 가치도 크다고 했다.

 

비자나무는 씨와 목재로 나누어 그 용도를 살펴볼 수 있다.

씨는 예전부터 뱃속의 기생충 구제약으로 쓰였으며, 또한 근육을 강건하게 하고 눈을 밝게 하며 몸이 가벼워지고 머리털을 강하게 하는 약효가 있다.

1712년 무렵 출판된 일본 백과사전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에는 비실榧實 즉 비자나무 열매가 오치五癡(다섯 가지 치질)를 치유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약효와 더불어 비자나무 목재는 질이 뛰어나고 아름다워 최고의 귀중재貴重材(귀중한 목재)로 여겨지고 있다.

기록을 보면 비자나무는 나무높이 25~30미터, 가슴높이 줄기 지름 2미터까지 자랄 수 있다고 했으나, 자람은 매우 느린 편이다.

이 정도로 자라려면 500년이 걸릴 것이라고 추정하는 기록도 있다.

 

일본에서의 조사 기록이지만 250년 묵은 비자나무의 가슴높이 부위 원판圓板(판판하고 넓으며 둥근 모양의 판)의 나이테 폭은 0.4~2.6밀리미터의 범위로 평균 0.9밀리미터였다고 한다.

일본은 온난다습한 까닭에 우리나라의 비자나무보다 자람이 더 느리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이로써 비자나무의 자람이 얼마나 느린지 짐작할 수 있다.

 

나뭇결(목리木理)은 대체로 통직通直(줄기 축 방향과 평행)하고 정밀하며, 닦으면 윤이 나고, 또 특유의 향기가 있다.

 

비자나무의 목재는 건조에 따른 수축률이 비교적 적고 뒤틀림 또한 적다.

또한 부패에 잘 견디므로 보존성이 좋고, 습기에도 견디는 힘이 강하여 일본에서는 물통이나 욕실용 목재로 많이 쓰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비자나무 목재는 바둑판으로 그 명성이 높다.

바둑판의 크기는 길이 45센티미터, 폭 42센티미터, 두께 12센티미터 이상이 표준으로, 이만한 바둑판을 얻자면 상당히 큰 원목이 필요하다.

그중 좋은 바둑판을 얻자면 지름이 100센티미터 이상 되어야 한다고 하니, 나이 400~500년 묵은 비자나무라야 되는 셈이다.

 

또한 문제가 되는 것은 목재 건조 과정이다.

천연으로 함수율 30퍼센트까지 건조시키자면 근 1년이라는 긴 세월이 필요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3~5년 동안의 건조도 요구된다.

그러나 최근에는 고주파로 인공 건조시키는 방법이 있어 건조의 단기화가 시도되고 있다.

 

비자나무가 먼 옛날에는 어떻게 이용되었을까?

비자나무는 주목과 함께 주목과에 속한 나무이다.

분류학적으로 주목과 근사종이라 할 수 있으며, 따라서 목재의 성질에 있어서도 비슷한 점이 있다.

 

일본에서는 조몬(승문繩文) 시대와 야요이(미생彌生) 시대 유적에서 비자나무로 만든 활이 출토되었다.

조몬 시대가 시작된 것은 약 1만 2천 년 전으로, 일본에서는 아주 옛날부터 비자나무 목재가 비교적 많아 특히 활을 만드는데 쓰인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 주목과 함께 주목과에 속한 나무로서 흥미 있는 관계라고 생각된다.

 

사실 비자나무보다도 개비자나무가 활 제작 용도로서는 더 적격이다.

느티나무나 산뽕나무 또한 활 재료로 이용되었다.

비자나무는 일본에서 통나무배나 불상을 만드는 데에도 많이 쓰였다고 한다.

비자나무의 재질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비자나무로 단궁(활의 길이가 2미터 미만)을 만들었다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에 제주도 비자나무 널빤지(널판자板子)가 공물로 진상되었는데, 이와 같이 옛날에도 비자나무는 귀중한 기구재나 가구재로 이용되었다.

 

 

○분포

 

백양사 비자나무 숲(출처-출처자료1)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나 ≪세종지리지世宗地理志≫를 보면 옛날에는 비자나무가 더 넓게 분포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비자의 산지로 전라도의 나주, 장성, 무안, 장흥, 진도, 강진, 해남, 보성, 영암, 고흥, 함평, 영광, 경상도의 남해, 고령, 단성 그리고 제주도가 기재되어 있다.

경북 고령이라 하면 상당히 북쪽이고 내륙 지방이다.

비자나무는 대체로 제주도와 서남쪽 해안에 많이 분포해 있었다.

 

우리나라 비자나무에 대해서 전반적인 해설을 깊이 있게 다룬 우에키 교수는 비자나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비자나무는 서어나무류·참나무류·합다리나무 따위와 혼생하고 하목下木 undertree growth(산림에서 키가 큰 잘 자란 나무들 아래서 자라는 키가 낮은 나무) 또는 지배목支配木 dominant tree(산림의 상층 숲을 형성하는 키가 큰 잘 자란 나무들)이 되지만, 진정 비자나무가 조선에 야생하느냐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이 있다. 이 나무가 늘푸른나무이고 식용유를 생산하므로 옛적부터 사찰 주변에 심어 키우는 관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비자나무 순림純林(한 종류의 나무로만 이루어진 숲)도 심어 키운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남쪽에 있는 비자나무는 홀로 서 있는 것이 많다.

그러나 집단을 이루는 것도 몇 곳 있어서 야생 또는 비야생을 판단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학자에 따라 다소 견해의 차이는 있으나, 세계적으로 볼 때 현재 지구상에는 7종, 1품종, 4변종 및 4재배종의 비자나무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두 북반구의 난온대 지대에 있고,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 California와 플로리다 Florida 지방에 분포하여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흥미롭다.

캘리포니아 지방의 인디언들은 비자나무로 활을 만들어 이를 '캘리포니아 넛메그 California-nutmeg(캘리포니아 육두구)'라고 불렀다.

유럽에서는 헝가리 Hungury에서 화석으로 출토되었지만, 현재 분포하는 지역은 발견할 수 없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에 하나의 중심 분포 지역이 있고, 다음으로는 우리나라 남부와 일본에 걸쳐 분포하고 있다.

 

일본 사람들은 비자나무를 '가야 kaya'라고 하는데, 이를 한자로는 '문견蚊遣'으로 쓰고 "모기를 쫓아 버리는 나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비자나무의 가지나 생잎을 태워 연기를 내면 모기가 접근하지 못한다.

이처럼 일본 이름은 이 나무의 쓰임새에 근거를 찾았고, 비자나무의 '비榧'는 가지에 붙은 잎의 모습에 근거를 두고 있다.

 

우리나라 비자나무나 미국 비자나무의 생잎을 비비면 나쁜 냄새가 나지만, 중국산 비자나무 잎에서는 냄새가 거의 없다고 한다.

미국 비자나무는 나쁜 냄새가 난다고 해서 '스팅킹 시더 stinking-cedar(악취 나무)'라는 별명을 얻었다.

 

 

○문헌 속 비자나무

 

제주도의 비자는 일찍부터 유명하여 ≪고려사高麗史≫에 문종 7년(1053)에 탐라국 왕자 수운나殊雲那가 비자·해조海藻·구갑龜甲·우황牛黃 따위를 바쳤고, 왕은 왕자에게 중호장군中虎將軍의 벼슬을 주었다는 대목이 있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제주 삼읍三邑에는 감귤나무 종류를 해마다 접붙여 심고, 비자나무·산유자나무 따위는 부근 주민을 지정해서 관리했으며 해마다 그 수를 조사해서 보고하도록 한다"는 대목이 있어 제주도 비자나무 재배에 관심을 쏟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영조실록 39년(1763) 조에 "제주에 명을 내려 비자나무 널빤지 10장을 세공歲貢(해마다 지방에서 나라에 바치던 공물)으로 바쳐라"라고 한 기록이 있는데, 비자나무의 아름다운 목재가 크게 주목을 받은 것 같다.

 

그러나 지난날 제주도민은 공물인 비자나무와 감귤나무 때문에 많은 피해를 입었다.

보상 없는 무리한 징수 때문이었다.

정약용이 쓴 ≪목민심서牧民心書≫ 공전工典 산림山林 대목에서 이러한 내용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비자나무 열매와 그 목재는 별공別貢, 즉 특산물로 바쳐졌고, 그밖에 오배자, 모과, 후박, 두충, 녹나무, 조록나무 따위의 약재가 과세물課稅物(세금을 부과하는 물품)로 지정되었다.

 

영조 39년(1763)에는 호남 지방에 큰 흉년이 들어 굶주린 백성의 수가 48만 명에 이르렀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 해부터 5년 동안 제주의 비자나무 널빤지 상납이 중단되기도 했다.

그러나 비판榧版(비자나무 널빤지) 10장(부部라는 단위가 쓰여짐)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해마다 상납된 것으로 보아 그만큼 비자나무 목재는 귀중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제주도 구좌읍의 비자림

 

2022년 7월 7일 새샘이 찍은 제주 구좌읍 평대리의 비자나무 숲 즉 비자림(출처-새샘 티스토리, https://micropsjj.tistory.com/17040774)

 

우에키 교수는 1926년에 우리가 흔히 비자림榧子林이라고 부르는 제주 평대리 비자나무 숲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제주도 한라산 동북쪽 산기슭 쪽에 면적 38헥타르, 약 5천 그루의 비자나무 숲이 있다. 조선시대에 종실種實(씨와 열매)을 채집해서 궁중에 헌납하고 목사가 전적으로 이것을 관리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임상林相(숲의 생긴 모습)이 크게 파괴되어 가고 있다."

 

필자는 제주도 비자림에 여러 차례 다녀왔다.

1992년 5월 7일 비자림을 찾았을 때에는 비자림에 4.5킬로미터의 돌로 쌓아 만든 옹벽이 있었다.

이것은 1991년 만든 것으로, 비자나무를 보호하려는 의도에서 설치된 것이었다.

또한 산불이 번지는 것을 막는 목적도 있어 일종의 보호벽이라고 해석된다.

숲 안에는 교육관찰로가 만들어지고 있었는데, 인간의 비자림에 대한 강한 압박(간섭)을 느낄 수 있었다.

최선의 보호와 관리를 한다 해도 비자림에게 좋을 리 없다.

 

그 뒤 1999년 10월 3일에 또 비자림을 찾았다.

자연친화적인 관찰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비자림의 현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가까운 곳에 성불악成佛岳(일명 음산陰山)이 있고 '성불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는데, 비자나무는 절터 부근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어 타당한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비자림 안내판에는 "이 숲은 천연기념물 제374호로서 면적은 448,165제곱미터에 500~800년생 비자나무가 약 2,270그루 자라고 있다. 나무높이는 7~14미터, 가슴높이 줄기지름은 50~140센티미터, 나무갓(수관樹冠) 폭은 10~15미터이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1926년의 5천 그루에 비하면 그 수가 크게 줄어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주변에는 곰의말채, 아왜나무, 비목, 팽나무, 무환자나무, 자귀나무, 곰솔, 천선과나무, 예덕나무, 때죽나무, 덧나무 따위가 자라고 있다.

나무마다 고유번호를 붙인 명찰이 붙어 있고, 다음 세대의 어린 나무가 나타나서 세대가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흔적이 보였다.

이는 큰 나무 사이에 공간이 있으며 어린 나무를 보충해서 심어준 것을 보고 알 수 있었다.

큰 비자나무 줄기껍질에는 나도풍란, 풍란, 흑난초, 콩짜개란, 비자란 따위의 난초과 식물이 함께 자라고 있다 했다.

 

제주 평대리 비자나무 숲처럼 굵은 비자나무가 넓은 집단을 이루고 있는 곳은 세계적으로도 찾기 어렵다.

 

 

○고흥 금탑사와 백양사의 비자나무 숲

 

전남 고흥 금탑사 비자나무 숲(천연기념물 제239호)(출처-출처자료1)

 

전남 고흥군의 비자나무 숲은 면적이 97,181제곱미터로 천연기념물 제239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이 숲은 천등산天燈山 금탑사金塔寺 소유지로 금탑사 경내에 해당한다.

비자나무 숲은 천등산 중턱에 자리 잡은 금탑사 둘레에 있으며, 절 창건 이후에 심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금탑사는 신라 선덕여왕 6년(637)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그 뒤 몇 차례 중건하였다.

 

비자나무는 사찰 앞부터 뒤로 이어져 있으며, 높이 약 10미터의 가장 큰 비자나무의 가슴높이 줄기지름은 50센티미터쯤 된다.

나무들의 나이가 서로 비슷하고 숲이 울밀鬱密(빽빽하게 우거짐)하기 때문에 비자나무들 아래쪽에서 자라는 하부 식생(하목 및 풀)은 거의 자라지 못하고 있다.

금탑사의 부속 암자 주변에도 비자나무가 있어 비자나무의 야생설이 근거를 잃어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과거 절간에서는 많은 양의 등유가 필요했을 것이므로 주변의 비자나무 씨에서 기름을 얻어 사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정읍 내장산 내장사 일주문 앞 비자나무(출처-출처자료1)

 

전남 장성군 백양사白羊寺의 비자나무 숲은 이 지역이 비자나무의 북쪽 한계(북한北限)이기 때문에 학술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장성 백양사보다 더 북쪽까지 분포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단풍으로 유명한 정읍 내장산 내장사內藏寺는 백양사보다 약간 북쪽에 위치하는데, 내장사 근처에도 비자나무의 노거목이 여러 그루 있다.

 

백양사의 비자나무는 고려 고종 때 각진국사覺眞國師가 심은 것으로 전해지는데, 약 5천 그루가 자라고 있다.

백양사의 비자나무 숲은 천연기념물 제153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으며, 학술연구 자원으로서도 그 가치가 인정되고 있다.

 

※출처

1. 임경빈 저, 이경준·박상진 편,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2,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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