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56 - 사시나무 본문

흔히 '백양나무'라 불리며, 가늘고 기다란 잎자루 끝에 달린 잎이 산들바람에도 파르르 떤다.
두려움에 벌벌 떠는 모습을 상징한다.
버드나무과 사시나무속의 암수딴그루 갈잎 넓은잎 큰키나무이며, 전남과 경남 이북의 한반도의 산 중턱이나 산기슭의 습한 곳과 하천, 물가에서 높이 20미터까지 자란다.
뿌리에서 많은 줄기가 올라오기 때문에 산불이 났던 곳이나 식생이 파괴된 지역에서 군집을 이루어 자란다.
학명은 포풀루스 다비디아나 Populus davidiana, 영어는 Korean aspen(한국사시나무), 한자는 백양白楊이다.
○사시나무 떨듯
'사시나무 떨듯'이라는 비유가 있다.
무서울 때 몸이 떨린다면 사시나무는 도대체 무엇이 무서운 것일까?
알 수 없지만, 사시나무의 잎이 항상 떨고 있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사시나무는 그 종류에 따라서 차이가 있긴 하지만 세계 여러나라에서 자라고 있으며, 그 모양과 성질이 거의 비슷하다.
미국에는 트렘블링 사시나무 Trembling aspen가 있다.
'트렘블링 trembling'이란 무서워서 떤다는 뜻이고 그래서 '떨고 있는 사시나무'라는 이름이다.
사람이 다르고 장소가 달라도 한 나무를 보고 이렇게 비슷한 뜻의 이름을 붙인 것은 역시 다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머리카락 색과 피부색이 다르고 민족이 달라도 어떤 사물을 보고 받는 느낌이 거의 같은 것은 근본적인 감성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도 사람들은 사시나무를 '시끄러운 나무'라고 부른다.
부들부들 떨 때 나는 소리 때문에 시끄럽다는 것이다.
사시나무 잎이 떨 때 그 소리가 요란해서 이런 이름을 붙이고 있다.
일본 사람들은 사시나무를 '산을 소리 나게 하는 나무'라고 부른다.
산에 가면 사시나무가 있고, 이 나무가 있으면 떠는 소리가 나서 '산의 소리'란 뜻을 이 나무의 이름으로 붙였다.
사시나무는 긴 잎자루를 가지고 있는데, 그 잎자루가 칼국수처럼 납작하고 끝 쪽에 세모꼴의 잎몸이 달려 있다.
이러한 생김새의 잎이 바람을 받으면 쉴 새 없이 흔들린다.
잎자루가 길고 가늘며 탄력성이 있어 흔들어대는 데에는 적격이다.
사시나무의 말을 빌리면, 그들은 떠는 것이 아니라 쾌감을 동반한 율동이라고 한다.
사람들에게도 춤이란 것이 있고 몸을 흔들어대면서 좋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움직이는 것에 더 보람 같은 것을 느낀다면, 사시나무는 그러한 상황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시나무는 넓은 뜻으로는 포플러 poplar 종류라 할 수 있다.
포플러란 말은 원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대중적인(서민적인, 인기 있는)이란 뜻의 포퓰러 popular에서 나온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나무란 뜻이다.
대다수의 사람이 지지해주는 나무라면 그 나무는 대중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혹 이것이 사시나무가 소박한 서민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는 말일까?
하지만 사시나무는 그 원래의 뜻에 반해서 소박하기보다 기품 있는 풍채를 갖고 있다.
그 잎이 기하학적인 조소적彫塑的(사물을 깎거나 빚어서 만든) 아름다움을 가진 세모꼴이란 것에 우리는 다시 한번 눈을 뜰 필요가 있다.
잎의 가장자리는 대양의 낮은 파고의 정점을 묘사하고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산들바람의 굽이굽이를 모방하여 젊은 여인의 유방 윤곽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또한 아름다운 음률의 물결이 잎의 가장자리에 새겨져 있는데, 그것은 오대산 상원사의 종소리가 천년의 역사를 안고 가랑비 속을 뚫고 산골짜기와 산등, 산허리를 퍼져나가는 봄날 저녁의 여음餘音(여운餘韻: 소리가 그치거나 거의 사라진 뒤에도 아직 남아 있는 음향)과도 같다.
그 잎을 따서 레코드판에 올려놓고 다이아몬드 바늘을 드리우면 도나우강(다뉴브강) 물결의 노래가 솟아날 듯하다.
그 잎을 오래오래 보아도 싫증나지 않고 오히려 더 힘차게 사람의 마음을 당기는 힘을 가진 것은 이 나무가 가진 마력이 아닐까?

사시나무의 줄기는 그 껍질이 지나치게 얇다.
미루나무, 버드나무와 같은 일가 친척들은 두툼한 껍질로 몸속의 따스함을 빼앗기지 않고 무장을 하고 있는 반면, 사시나무는 얇은 명주옷 한 벌만 입고 있다.
이것은 이 나무가 비상한 기품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하늘에 사는 천사나 선녀들은 천의무봉天衣無縫(천사의 옷은 꿰맨 흔적이 없다는 뜻으로, 일부러 꾸민 데 없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우면서 완전함을 이르는 말)의 명주 한 폭을 어깨에서 허리로 감아 돌리고 있을 뿐이다.
그것으로 어떤 기후에도 대처해 갈 수 있다.
인간들처럼 무슨 옷이 필요하단 말인가?
사시나무의 옷은 하늘에 사는 천사의 옷을 말해준다.
이 세상에는 많은 나무들이 있지만, 사시나무처럼 얇고 깨끗한 껍질을 가진 나무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 옷의 표면은 어린아이의 살결을 연상시키고, 대리석 조각의 촉감을 그대로 살리고도 남음이 있다.
사시나무 줄기의 껍질이 정결하다는 데 우리는 또 놀라게 된다.
남쪽 따스한 곳으로 옮겨오면 옷이 더 두꺼워지는 경향이 있고 깨끗함도 잃어버리는 느낌이 든다.
사시나무는 어디까지나 추운 삭풍朔風(겨울철에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이 부는 북극을 바라보는 곳이라야만 그의 깨끗하고 단정한 몸매를 보여준다.
떡갈나무, 황벽나무, 가래나무, 잣나무, 느릅나무, 마가목 사이에 끼어 가장 밝고 가장 화사하며 윤이 나고 결이 고운 껍질을 가진 나무, 그것이 사시나무다.
다시 말하면 청강淸江(맑은 물이 흐르는 강)에 몸을 헹구어낸 백토白土(빛깔이 희고 부드러우며 고운 흙)에 비유할 수 있다.
숲을 걷다가 귀한 이를 만났다면 그것은 바로 사시나무다.
이 나무가 추운 곳, 그것도 북극의 만년 빙하 가장자리에 자리 잡기를 좋아하는 것은 따뜻한 온도에서 오는 온갖 세속적인 잡스러운 상황을 뿌리치고자 하는데 있다.
얼음이 땅속에 박히고 극지에 내리 부는 찬바람이 온갖 것을 동결시키는 순수한 상황에서 그 뿌리를 깊게 박고 얼음물을 마시는 사시나무는 명주옷 한 벌을 몸에 감은 채 고고한 기개氣槪(씩씩한 기상과 굳은 절개)에 살 뿐이다.
필자가 지금까지 가본 곳 가운데 가장 북쪽 지방은 핀란드와 스웨덴의 북쪽이다.
북위 70도를 넘어선 곳이다.
필자는 그곳에서 사시나무 벌판을 보았고, 그곳에 있는 사시나무 가지를 하나 꺾어 공부방 벽에 장식했다.
황량하고 나아가 살벌하다고도 표현할 수 있는 그곳에 무리를 이루어 살고 있는 그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암수딴그루
아까시나무, 감나무, 단풍나무를 비롯한 대개의 나무들은 한 나무에 암꽃과 수꽃이 함께 달리는 암수한그루로서 흔히 그 사이에 혼사가 이루어지지만, 사시나무에는 그러한 일이 없다.
암나무와 수나무가 처음부터 따로 되어 있어서 한 집안 안에서 혼인이 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이처럼 암나무와 수나무가 서로 따로 된 것이 더 진화한 것이냐, 아니면 암꽃과 수꽃이 한 나무에 달리는 것이 더 진화한 것이냐를 두고 말이 많다.
포플러 종류의 나무나 호랑가시나무 종류에 있어서나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암꽃과 수꽃이 한 몸으로 되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그러한 경우가 있다.
암꽃의 기능이 상실되고 수꽃의 기능이 살아 있으면 그 꽃을 수꽃이라 하고, 이러한 수꽃만 달리는 나무를 수나무라 부른다.
그래서 수나무라 할지라도 그 안에는 퇴화해버린 암나무의 요소가 남아 있다.
이러한 증거를 들어서 어떤 학자는 나무는 원래 암나무와 수나무의 구별이 없었는데 한쪽 성性이 죽게 되자 자연히 다른 한쪽의 성만을 가진 나무가 되어 암나무와 수나무의 구별이 생겨났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암나무의 수나무의 구별이 있는 수종이 더 진화한 것이라는 설명을 합리화한 것이다.
진화했다는 것은 그만큼 그 뒤에 생겨났다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말한다면 사시나무는 더 진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품 있는 나무

사시나무는 우리나라 어디에나 자라고 있지만, 역시 북쪽의 추운 고산지대에 더 많다.
몇 해 전 필자가 강원도 월정사를 향해서 월정천 방죽을 따라 올라갈 때 물가에 큰 사시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줄기는 곧고 곁가지 굵으며 길게 뻗어 있었다.
포플러는 대체로 곁가지의 발달이 미약하지만, 사시나무를 포함하여 사시나무에 가까운 은백양 따위는 곁가지가 왕성하게 발달한다.
곁가지가 발달하면 그만큼 넓은 그늘을 만들 수 있긴 하지만, 자리를 넓게 잡기 때문에 한곳에 많은 수의 나무를 세우기는 힘들다.
사시나무는 기품 있고 격조 있게 살기 때문에 조무래기 나무들처럼 쫄망쫄망 모여 살기를 싫어한다.
큰 가지에 수많은 나뭇잎을 달아서 태양의 열기를 모조리 마셔버리겠다는 왕성한 식욕이 있다.
그래서 사시나무는 어릴 때부터 자람이 빠르다.
시원스럽게 솟아나는 자람은 이 나무가 어릴 때부터 지혜롭다는 것을 말해준다.
천재는 조숙한다는 말이 있듯이, 이 나무는 천재로 대우받아도 지나칠 것이 없다.
늦봄인지 초여름인지 분간할 수 없는 계절이 오면 사시나무의 암나무는 솜털 속에 먼지 같은 열매를 넣어서 바람에 태워 멀리멀리 날려보낸다.
이 열매가 물기 있는 곳에 떨어지만 불과 몇 시간 안으로 뿌리를 내리게 된다.
기다릴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바로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하루라도 아쉬운 봄날의 햇볕이기 때문이다.
사시나무의 가지는 꺾어서 땅에 꽂아도 뿌리가 내리지 않는다.
반면 미루나무는 뿌리가 잘 내린다.
생김새가 거의 비슷하면서도 깊은 생리적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시나무의 잎은 항상 떨고 있다.
아니 무도적舞蹈的이다(춤을 추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이 나무를 '파드득나무'라고 불렀다.
파드득거린다고 해서 그런 것이다.
사시나무는 키가 높게 크는 나무다.
그래서 오래전 시에 "사시나무가 처음 자란 곳은(백양초생시白楊初生時) 예장산 안이었는데(내재예장산乃在豫章山), 잎은 하늘의 푸른 구름에 이르렀고(상엽마청운上葉摩靑雲) 그 뿌리는 땅속의 황천에 닿았다(하한통황천下限通黃泉)"고 했다.
이 나무가 성숙했을 때의 거대함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사시나무의 수명은 길지 않다.
가늘고 긴 생애보다는 짧지만 화끈한 이력이 이 나무의 생리이다.
사시나무는 꿈이 많은 나무다.
그것도 아름다운 꿈.
사시나무는 꿈나무다.
※출처
1. 임경빈 저, 이경준·박상진 편,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2(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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