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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57 - 산벚나무 본문

동식물 이야기와 사진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57 - 산벚나무

새샘 2025. 9. 3. 19:14

산벚나무 꽃과 잎(출처-출처자료1)

 
'산에서 자라는 벚나무'란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목재도 쓰임이 많아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을 만든 나무의 3분의 2쯤은 산벚나무다.
 
장미과 벚나무속에 속하는 갈잎 넓은잎 큰키나무로서 높이 20미터, 줄기 지름 90센티미터까지 자라며, 한반도의 백두대간과 제주도에서 자생하며, 러시아 사할린 지역과 일본 혼슈 이북에도 분포한다.
 
학명은 프루누스 사르젠티 Prunus sargentii, 영어는 Sargent's cherry(사전트 벚나무: 미국 식물학자 찰스 스프래그 사전트 Charles Sprague Sargent의 이름을 딴 것), 한자는 산앵山櫻이다.
 
 

여러 이름

 
북한에서는 '벗나무'로 쓰기도 하지만 우리 이름인 '벚나무'로 쓰는 것이 더 옳을 것 같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벚나무 껍질을 화목피樺木皮라고 한다 했으니 벚나무 한자 이름이 '화목樺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왜어유해倭語類解≫나 ≪훈몽자회訓夢字會≫에서는 '벚나무 화樺' 또는 '봇나무 화樺'라고 하면 자작나무를 뜻한다고 한 반면, 화피목樺皮木이라 하면 자작나무를 뜻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화樺'자는 '벚나무 화' 또는 '자작나무 화'로 읽을 수 있으므로 혼돈이 있을 수 있다.
백두산 부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작나무를 봇나무 또는 봇티나무로 부른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앵두 같은 번소의 입이요(앵도번소구 櫻桃樊素口), 버들 같은 소만의 허리로다(양류소만요楊柳小蠻腰)"라고 하여 아름다운 여인을 표현했는데, 이때 앵櫻은 벚나무가 아닌 앵두를 뜻하며, 산벚나무는 '산앵山櫻'으로 표기한다.
 
산벚나무의 목재는 가구재로 쓰이며, 팔만대장경 목판의 65퍼센트를 산벚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
서양에서도 체리우드 cherry wood(벚나무 또는 산벚나무)는 최고급 가구재로 쓰인다.

 
 

봄꽃의 여왕

 

산벚나무 단풍(출처-출처자료1)

 
우리나라의 산과 들에는 여러 종류의 벚나무가 있어 화사한 봄날을 더욱 빛내주고 있다.
벚꽃이 특히 아름다운 곳이 몇 군데 있다.
남한산성의 수어장대에 오를 때 맞은편으로 보이는 수많은 벚나무 꽃들은 산허리를 감싸고 흐르는 분홍색의 안개와 같아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봄에 서울 남산 산책로를 따라가도 화사한 꽃길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벚나무 하면 전주와 군산을 잇는 도로의 가로수를 들지 않을 수 없다.
봄이 오면 그곳은 무엇에도 비유할 수 없는 아름다운 길이 된다.
 
또 하나 벚나무 가로수가 장관을 이루는 곳이 있다.
장수군 장수읍 용계리에서 장수읍 대성리 구암까지에 이르는 약 5킬로미터의 도롯가에 몇백 그루의 벚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나무 나이가 60년쯤 된다.
4월 중하순에는 꽃이 피고 열매가 많이 맺는데, 해발고도 500미터쯤 되는 그곳의 이름이 작고개와 비행기재이다.
이곳 벚나무의 줄나무(줄지어 선 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것으로 모두 산벚나무고 한다.
 
서울 여의도의 벚나무도 유명하다.
여의도에 벚나무를 심을 때 이에 대해 우려했던 사람들도 많았다.
벚나무는 일본의 나라나무이고 그들이 줄곧 그들의 꽃으로 자랑을 늘어놓곤 하는데, 구태여 이곳에 벚나무를 심을 게 무어냐 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여의도에는 국회의사당이 있고 서울 중의 서울인데 말이다.
 
일본 사람들이 예전에 우리나라에 벚나무를 심었던 것을 생각할 때 그들에게 어떤 꿍꿍이셈이 있지 않나 했지만, 이런 생각은 편협스러운 아집 때문이 아닐까?
도연명陶淵明의 유명한 시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볼 수 있는 "오늘에 와서 어제의 잘못을 깨친다(각금시이작비覺今是而昨非)"라는 내용은 이러한 상황에 잘 맞는 말인 것 같다.
오히려 벚나무는 나의 나무이며 우리의 나무라는 생각이 더 올바르게 느껴진다(제주시 봉개동 왕벚나무 자생지는 천연기념물 제159호).
 
일본의 아메노모리(우삼雨森)는 벚나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벚나무의 수명은 짧다. 왜 짧은가 하면 꽃을 많이 달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나무나 전나무만 못하다. 이것은 하늘과 땅의 이치에 합당하는 것으로 참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한 나라나 한 집안이나 영광을 누린 것이라면 그것이 오래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벚나무는 무상無常한(모든 것이 덧없는) 나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생애가 이왕 짧은 것이라면 그만큼 더 화끈하게 산다는 말인가?
벚나무에서 세상의 무상을 발견하고 있는 것은 자못 어울리는 맛이 있다.
벚꽃은 화사한 빛의 절정에 올랐다가 일시에 떨어져서 팍 무너지는, 말하자면 옥쇄산화玉碎散華/玉碎散花(옥처럼 부서지고 꽃이 지는 것처럼 목숨을 바침)의 끝장을 자랑처럼 여긴다.
 
이것은 우리나라 꽃 무궁화하고는 대조적이다.
끈질기고 악착같이 죽어도 견디면서 해내겠다는 무궁화와는 전혀 다르다.
벚나무는 가지나 줄기를 치는 것을 무척 싫어하고 견디지 못하지만, 무궁화는 가위로 가지를 쳐서 아담하게 다듬어줄 수 있다.
하지만 미련을 남기지 않는 벚나무에도 자랑은 있을 수 있다.
 
 

한시 속의 벚나무 

 

산벚나무 열매(출처-출처자료1)

 
"강물 속의 달은 사람의 그림자 따라오고(강월수인영 江月隨人影), 산의 꽃은 말의 발꿈치 따라 흩어진다(산화추마제 山花追馬蹄)"는 표현은 아찔할 정도로 황홀하다.
말을 타고 산마루를 넘는 나그네 길에 꽃잎이 마구 떨어져 따라온다는 것인데, 이때 그 꽃은 아마 벚꽃이었을 것이다.
비 오듯 하는 꽃잎이 길을 메우고 나를 태운 망아지는 가고 있다.
아름답다 못해 오히려 한스럽기도 한 자연의 정경이 아닐 수 없다.
 
벚꽃은 영광과 한을 함께한 것으로 보아도 좋다.
시름을 술로 달래보는 사람들이 시 한 수가 여기에 있다.
당나라 때 옹도雍陶의 시다.
 
"자주 술집에 가는 것을 괴이하게 여기지 말게(막괴빈과유주가 莫怪頻過有酒家)
 다정함이 남달리 많아 세월의 흐름을 아쉬워함이니라(다정장장석년화 多情長長惜年華)
 봄바람은 좋기도 하다가 또한 한스럽기도 한 것은(춘풍감상환감한 春風堪賞還堪恨)
 피어 있는 꽃을 잠깐 보았는데 또 그 꽃이 지고 있음이라(재견개화우낙화 纔見開花又落花)"
 
이 시는 영화榮華의 보잘것없는 일시성을 표현해준다.
"달 밝고 꽃이 지는데 또한 황혼마저 깃드는구나(월명화락우황혼 月明花落又黃昏)"라는 두보杜甫의 시에서 볼수 있듯이, 밝은 달도 얼마 안 가서 암흑이 되고 만다.
옛사람들은 이처럼 피어 있는 꽃을 보면서 떨어지는 꽃을 연상해 그것을 애처롭게 여기는 정감을 표현하곤 했다.
 
이러한 정감에 가장 잘 어울리는 꽃에는 살구나무, 복사나무, 벚나무, 오얏나무(자두나무), 매실나무, 앵두나무(앵도나무) 따위가 있는데, 이들은 모두 식물분류학상 벚나무속으로서 가까운 관계이다.
 
벚나무는 한자로 '앵櫻'으로 표현되며, 이 '앵'을 주제로 한 시가 많다.
왕승달王僧達의 시에서는 "첫 벚꽃이 활짝 피었는데(초앵동시염 初櫻動時艶) 그 향기는 눈부시고도 눈부시네(천조작휘방 擅藻灼輝芳) 어린 잎은 아직 싹이 나지 않았지만(상엽미개축 緗葉未開蕾) 붉은 벚꽃은 이미 눈부시게 피었네(홍화이발광 紅花已發光)"라고 하여 첫 벚꽃이 핀 봄날의 좋은 풍광을 읊고 있다.
 
벚꽃은 잎이 피기 전에 그 색깔을 자랑한다.
다음 시에서 이를 찾아볼 수 있다.
 
"비오기 전에는 꽃 사이에서 꽃술이 간혹 보이더니 (우전초견화간예 雨前初見花間蘂)
 비온 뒤에는 잎 아래 꽃은 하나도 없네 (우후겸무엽저화 雨後兼無葉底花)
 벌 나비 날아왔다 담장 위를 넘어가니 (봉접비래과장거 蜂蝶飛來過墻去)
 오히려 봄날이 옆집으로 옮겨간 것 같구나 (각의춘색재린가 却疑春色在隣家)"
 
가랑비 오는 저녁, 우산 들고 만발한 벚나무 사이를 거니는 것은 해볼 만한 일이다.
비는 짧은 벚꽃의 생애를 더욱 재촉하는 것이지만, 이왕 짧을 바에야 더 짧으면 어떻겠는가?
그 아름다움의 농도를 더해주는 것이라면 비라도 상관없고, 그보다 더 심한 것이라도 섭섭히 생각지는 않는다.
 
찾아온 나비가 이웃집을 날아가서 옆집에 봄의 색깔이 가득한 것 같다는 느낌은 서운한 감정이 아니라 따뜻한 우정의 표시일 것이다.
나비는 원래 방랑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얼마 후엔 다시 나의 뜰로 날아올 것이므로 잠시 동안 봄을 나누어주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처럼 화사한 벚꽃이지만, 그것을 보는 사람의 심정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다음 시를 보면 그 뜻을 알 수 있다,
 
"새벽에 가볍게 열린 벚나무 붉은 꽃봉오리에 맺힌 이슬에서 신선한 향기가 피어나는데(효홍경절로향신 曉紅輕折露香新), 텅 빈 산속에 홀로 서서 봄을 향해 찬웃음을 짓노라(독립공산냉소춘 獨立空山冷笑春)."
 
 

왕벚나무의 기원

 

충남 금산 신안리의 산벚나무 숲(출처-출처자료1)

 
제주도에 왕벚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왕벚나무는 일본의 나라나무지만 일본에서는 자생의 흔적이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아 식물학자들의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왕벚나무(학명은 Prunus yedoensis 또는 P. yedoensis cv. yedoensis)는 일본 사람들이 '소메이 요시노(염정길야染井吉野)'라 부르며 귀중하게 여기는 꽃나무다.
왕벚나무는 올벚나무(학명 P. itosakura v. ascendens)와 산벚나무(학명 P. sargentii 또는 P. sachalinensis) 사이에서 태어난 튀기일 것이라는 학설이 굳어져 있다.
 
한라산 위쪽에 분포하는 산벚나무 가지의 껍질은 윤기가 나고 아름다운 진한 붉은색을 보이지만, 산 아래쪽에 나는 올벚나무의 가지 껍질은 회색을 띤 오흑색汚黑色(회색 때가 묻은 검은색)이고 아름다움은 떨어진다.
 
제주도에서 왕벚나무는 한라산 주변 해발고도 약 500~600미터 지점에 집중해서 나고 있으며, 현재 그 개체수는 200여 그루로 극히 적다.
어린 나무에서 265년 묵은 나무까지 다양하게 분포한다.
 
왕벚나무는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에 있는 것을 천연기념물 제156호로, 그리고 제주시 봉개동 산 78번지에 있는 것을 천연기념물 제159호(왕벚나무 자생지)로 지정해서 보호하고있다.
신례리의 왕벚나무는 제주시에서 서귀포로 가는 제1횡단도로 수악교 남쪽 해발고도 500미터 지점에 있고, 봉개동의 왕벚나무는 제주지에서 서귀포 쪽으로 약 12킬로미터쯤 되는 횡단도로 지점에 있는데, 이곳은 관음사 동쪽 해발고도 약 500미터 되는 곳으로 일찍이 프랑스 타케 Taquet 신부가 1908년 처음 왕벚나무를 채집한 곳이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윌슨 Wilson 박사는 왕벚나무가 올벚나무와 오오시마벚나무(대도앵大島櫻)(학명 Prunus speciosa) 사이에 생겨났다는 잡종설을 발표하였다.
왕벚나무는 올벚나무와 산벚나무 사이의 잡종이라는 말도 있으며, 그 뒤 1933년 일본 교토대학의 고이즈미(소천小泉) 박사에 의해서 한라산에서 왕벚나무가 확인됨으로써 제주도가 왕벚나무의 자생지라는 학계의 논쟁이 일단락된 느낌이지만, 일본 학자들은 왕벚나무의 자생지에 대해서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2018년 9월 국내 학자들이 왕벚나무의 유전체 genome를 완전히 해독했는데, 왕벚나무는 올벚나무와 (산)벚나무 사이의 자연 잡종이며, 일본산 왕벚나무는 올벚나무와 오오시마벚나무 사이의 인공 교배종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이렇게 하여 국내 왕벚나무와 일본산 왕벚나무는 서로 다른 종으로 밝혀고 왕벚나무의 원산지에 대한 논쟁은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벚나무 종류의 꽃턱과 꽃자루(암술대) 비교(출처-https://m.blog.naver.com/purpl05/222695591076)

 
왕벚나무는 꽃턱(화탁花托: 꽃이 달리는 꽃자루 즉 암술대의 맨 윗부분)이 H자 모양이고 털이 약간 나 있으며(꽃자루에도 털이 나 있다), 해발고도 500~800미터 지역에 분포하고, 꽃이 일찍 핀다.
이에 비해 (산)벚나무는 해발고도 500~600미터 이상 되는 지역에 나고 해발고도 1,000미터에까지 이른다.
일본 사람들은 올벚나무를 '에도히간(강호피안江戶彼岸)', 산벚나무를 오오야마 사쿠라(대산앵大山櫻)'라고 부른다.
(산)벚나무는 개체수가 비교적 많고, 꽃턱은 깔때기 모양이며, 꽃턱과 꽃자루 모두에 털이 없다.
올벚나무는 해발고도 500미터 아래쪽에서 자라며, 왕벚나무처럼 꽃턱과 꽃자루 모두에 털이 나 있다.
 
'올벚나무(모계) X 산벚나무(부계)' 잡종은 생겨나기 쉽지만 '산벚나무(모계) X 올벚나무(부계)'에서는 잡종이 생겨나기 어렵다고 하는데, 이는 산벚나무의 경우 난자가 형성될 때 감수분열이 비정상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왕벚나무는 '올벚나무(모계) X 산벚나무(부계)'에서 생긴 잡종으로 추정되고 있다.
 
올벚나무는 잎이 피기 전에 꽃이 일찍 피고 산벚나무는 잎과 꽃이 함께 피므로 두 종 사이에는 꽃 피는 시기에 차이가 있다.
따라서 잡종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주도 봉개동 일대의 벚나무 지대는 학술상 보존되어야 할 필요성이 높다.
 
전남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대둔산에도 왕벚나무가 자생한다는 것이 알려져, 제주도의 왕벚나무는 일본으로 건너가기 어렵다 하더라도 대흥사 부근에 있는 이곳 대둔산의 것은 건너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도 있다.
 
그러나 저러나 일본의 나라나무 사쿠라 さくら(앵桜)의 본거지가 어디이건 그것이 문제가 될 것은 조금도 없다.
제주도가 왕벚나무의 자생지라고 해서 일본이 자진해서 우리나라의 속국이 되기를 원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리가 우쭐해봤자 그들의 기가 꺾일 것도 아니라, 알고 보면 소용없는 이야깃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사쿠라'라고 하면 면종복배面從腹背(겉으로는 복종하는 체하면서 내심으로는 배반함)하는 사기꾼 비슷한 사람을 뜻한다.
왜 사쿠라가 이러한 뜻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이것은 매우 의미 있는 말이다.
이 세 자 속에 한참 동안 설명해야 할 뜻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는 사쿠라의 친척 비슷한 사람들이 많다.
'체'하는 사람 가운에 사쿠라가 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일이 낭패로 돌아가는 수가 많다.
흔히 사쿠라가 사쿠라라는 말에 더 흥미를 가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뜻으로 쓰이는 '사쿠라'는 원래 길가에서 물건을 사는 체하며 소리치면서 진짜 손님을 끌어들이는, 상인을 도와주는 사람을 표현한 말이다.
 
※출처
1. 임경빈 저, 이경준·박상진 편,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2(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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