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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59 - 산수유

새샘 2025. 9. 24. 20:54

산수유 꽃(출처-출처자료1)

 

산수유는 이른 봄날 노란 꽃이 잎보다 먼저 나뭇가지에 잔뜩 피어 봄이 왔음을 알리는 대표적인 꽃나무다.

가을에 열리는 갸름한 붉은 열매는 약으로 쓰인다.

 

층층나무과 층층나무속의 갈잎 넓은잎 작은큰키나무 또는 떨기나무로서 높이는 5~12미터에 가지가 많이 갈라진다.

줄기가 오래되면 줄기 껍질이 벗겨져 지저분하게 보인다.

한반도의 중부 이남에 많이 심어 키우며, 원산지는 한반도와 중국으로 알려져 있다.

 

학명은 코르누스 오피치날리스 Cornus officinalis, 영어는 Japanese corenelian cherry(일본서양산수유), 한자는 산수유山茱萸로 쓴다.

 

 

○아름다운 산수유

 

산수유 잎과 갸름한 갓 익은 붉은 열매(출처-출처자료1)

 

산수유는 중국에서 도입되어 심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나무를 연구한 바 있는 나카이(중정中井) 박사의 1920년대 기록을 보면, 산수유는 경기도 광릉 산속에 두세 그루 큰 나무가 있을 뿐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했다.

필자가 자라난 고향 마을에는 산수유가 없었고, 광복 후 경기도 양평 부근에서 산수유를 본 것으로 기억한다.

산수유 열매는 새들이 먹을 터이고, 새의 소화기관을 거쳐 배설물에 섞여 이곳저곳으로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

 

산수유는 그 독특한 붉은 열매가 특히 인상에 남는다.

긴 타원형 열매는 알맞은 곡선으로 윤곽을 만드는데, 갸름한 열매 모습이 예술적이다.

열매 곡선이 규칙적이고 어느 열매나 한결 같은 곡률曲率(구부러진 정도)로 되어 있어 그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열매의 표면은 매끈해서 사람으로 하여금 그 감촉을 즐기라고 유혹이라도 하는 듯하다.

열매 안이 힘으로 꽉 차고 탄력으로 충만해서 원기왕성한 젊음을 표현하며, 손을 대면 터질 것 같은 팽만은 오히려 힘의 과잉에서 오는 것 같다.

며칠 뒤면 내리는 서리에 그 탄력은 허물어질 것이지만, 맑은 가을 하늘 아래에서 때를 기다리는 산수유 열매는 선명하고 광택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잎을 떨어뜨리고 몇천 몇만 개의 열매를 달고 햇볕을 반사시키는 모습들이 황홀하기만 한다.

산수유는 열매의 아름다움으로 그 생애의 극점에 이르게 된다.

 

 

활짝 핀 산수유 꽃(출처-출처자료1)

 

산수유는 봄을 알리는 선구자로서 노란 꽃을 단다.

온 나무가 노란 꽃송이로 덮인다.

산수유보다도 더 빨리 봄소식을 알리는 꽃으로 풍년화가 있으며, 이 풍년화도 노란 꽃을 단다.

또한 개나리도 화사한 노란 꽃을 자랑한다.

 

특이하게도 산수유, 풍년화, 개나리는 꽃이 노랑인 동시에 모두들 꽃잎이 4장이다.

분류학상 속한 과가 서로 다른데도 꽃 색깔과 꽃잎의 개수가 같다는 것은 그들이 무언가 뜻을 모아 같은 행동을 취하고자 나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꽃잎 4장이 노랑으로 물들고 봄을 자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봄이 춘하추동 사계절의 으뜸이란 말인가?

아니면 동서남북으로 뜻하는 온 세상 색깔의 첨병尖兵(행군의 맨 앞에 서는 병사)이란 말인가?

그것도 혼자서는 부족해서 함께 힘으로 색채를 과시한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어느 해인가 푸른 봄 하늘을 배경으로 해서 가지 마디마디가 꽃 뭉치로 작열해서 눈부시던 그때를 회상해본다.

봄 나절 우리의 마음을 들뜨게 해주는 살구꽃 같은 꽃이 있는가 하면, 역으로 우리의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꽃, 즉 산수유 꽃이 있다.

 

산수유 꽃은 하나하나로서는 별 뜻을 나타내지 못하지만, 20~30개의 꽃이 모여 한 가족이 됨으로써 하나의 통제된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인간들도 이러한 화합과 질서를 배울 필요가 있다.

나무와 숲이 인간과 인간 사회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산수유 잎 뒷면 맥겨드랑이에는 털이 나 있는데, 이 털이 피부에 닿으면 가려움증이 생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수유에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것은 산수유가 자신을 보호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다양한 이름

 

늦가을의 산수유 갸름한 붉은 열매(출처-출처자료1)

 

산수유를 한자로 '山茱萸'로 쓰고 석조石棗, 촉산조蜀酸棗, 계족鷄足, 서시鼠矢, 육조肉棗, 야춘계野春桂 따위로도 나타내며, 일본 사람들은 춘황금화春黃金花로 쓰고 '하루코가네바나'로 발음한다.

한자 이름을 보면 산수유 열매가 대추와 닮아 있다는 것이 곳곳에서 강조되고 있다.

꽃나무로서 꽃 좋고 열매마저 좋은 것은 그리 흔하지 않은데, 산수유는 이를 모두 갖추고 있다.

잎도 가상한지라 이 나무는 아름다움에 있어서 완벽하다는 느낌이 든다.

 

 

산수유 잎과 열매 스케치(출처-출처자료1)

 

'수유茱萸'라는 이름은 산수유·식수유·약수유를 비롯하여 여러 이름에 들어가 있으며, 식수유와 약수유는 오수유吳茱萸의 별명이다.

산수유는 약용수藥用樹(한약재)로 이름이 나 있고, 오수유 또한 그러하다.

다 같이 약용수이면서도 생김새는 크게 다르다.

산수유는 잎이 하나씩 달리는 홑잎(단엽單葉)인 반면, 오수유는 가중나무처럼 홀수깃꼴겹잎(기수우상복엽奇數羽狀復葉: 잎줄기 좌우에 몇 쌍의 잎이 짝을 이루고 그 끝에 한 개의 작은 잎으로 끝나는 깃꼴겹잎)이다.

꽃의 경우 산수유는 우산꽃차례(산형화서傘形花序)인 반면, 오수유는 편평꽃차례(산방화서繖房花序)이다.

산수유 꽃은 꽃꽂이 재료로 이용되기도 한다.

 

산수유는 꽃과 열매에 귀여운 아름다움을 담고 있으나, 그 아름다움은 원시적이며 여성적이다.

따라서 아기자기 다듬는 것보다는 자연 그대로를 맛보이는 뜰의 재료로서 알맞다.

적연寂然(조용하고 고요함)과 적요寂寥(적적하고 고요함)가 그립다면 이 나무를 심어서 마음을 씻어보는 것이 어떨까?

근래 세상이 번잡해지면서 우리는 이 귀중한 적연함을 많이 잃어버렸다.

서양 사람들은 이것을 '솔리튜드 solitude'로, 일본 사람들은 '사비(적寂)'로 부르는데, 적寂의 값이 올라가고 있는 요즈음 우리는 뜰에 산수유를 심게 된다.

 

 

○책 속의 산수유

 

옛 책에 나오는 '수유'는 '산수유'를 말하는 경우도 있고, '오수유'를 지칭하는 경우도 있어 조심해야 하는데, 그만큼 예전 사람들은 나무를 엄격하고 구분하여 쓰지는 않았다고 생각된다.

 

당나라 시인 사공서司空曙의 <추원秋園>이란 제목의 시에서 "수유홍실사번화 茱萸紅實似繁花"라는 대목은 "붉은 열매가 꽃처럼 아름답다"는 뜻으로, 이때 '수유'는 '산수유'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남종화의 시조로 알려져 있는 당나라 때 화가이자 시인인 왕유王維의 시 <산수유>도 한번 음미해보자.

 

"산수유 붉은 열매가 산 아래에서 열리니  (주실산하개 朱實山下開)

 맑은 향기는 추워도 더욱 발하네            (청향한갱발 淸香寒更發)

 다행히 한 떨기 계수나무 꽃과 함께        (행여총계화 幸與叢桂花)

 창 앞에서 가을 달을 향하고 있네           (창전향추월 窓前向秋月)"

 

열매 색깔의 찬 기운 가운데 맑은 향기를 내고 있다는 것은 열매 색깔의 정채精彩(정묘하고 아름다운 빛깔)가 미려美麗함(아름답고 고움)을 강조한 것이다.

산수유의 열매가 향기를 낸다는 것은 시상詩想(시적 생각이나 상념)으로서 표현한 것이지 실제 향기가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한시에서는 이처럼 과학적 사실을 초월한 묘사들이 나온다.

 

이홍경李弘景의 시에 '수유화발석년지 茱萸花發昔年枝'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것은 가을의 경치를 읊은 것으로 이때 수유는 산수유일 것이고 꽃으로 표현한 것은 열매라고 생각된다.

지난해(석년昔年)의 가지에 꽃이 핀다는 것은 과학을 저버린 표현이지만, 굳이 이러한 사실을 따질 필요는 없다.

꽃도 열매요 열매도 꽃이요, 봄도 가을이요 가을도 봄으로 보는 관대함이 필요하다.

 

 

○산수유 옛 이야기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심은 전남 구례 계척리의 산수유 시목始木(시조 나무)(출처-출처자료1)

 

산수유는 우리나라와 중국이 원산지이고, 일본의 산수유는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산수유가 이미 신라시대부터 기록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삼국유사≫ 48대 경문대왕 조에 다음과 같은 사연이 기록되어 있다

 

"47대 헌안왕憲安王이 잔치를 베풀어 국선國仙이었던 어린 청년 낭郎을 불러 무슨 좋은 일을 본 적이 있는지 물었을 때, 낭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남의 윗자리에 있으면서 겸손한 태도를 지녀 아랫사람과 함께한 사람의 경우가 첫째이고, 두 번째는 부유하면서도 검소하게 옷을 입고 사는 사람이고, 세 번째는 강력한 세력가이면서 그 위엄을 잘 갈무리하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세 가지 경우가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대답에 왕은 매우 흡족해했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서 낭은 헌안왕의 딸을 얻고 왕위를 계승하여 48대 경문왕景文王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그런데 경문왕의 귀가 점점 길어지셔 나귀의 귀처럼 되어갔다.

이때 아랫사람 중 한 명이 그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서 도림사道林寺 대나무 밭에 들어가 대나무를 향해서 외치기를 '임금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했다.

그 뒤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는 '임금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하였다.

임금이 이것을 알고 대나무를 미워했으며 끝내는 모두 베어버리고 말았다.

그 뒤 임금은 그 자리에 산수유를 심었다."

 

대나무를 베어버리고 그 대신 산수유를 심었다(내벌죽이식산수유 乃伐竹而植山茱萸)는 이야기이다.

신라시대부터 이미 산수유라는 나무 이름이 있었고 임금이 이 나무를 심었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본초강목≫의 산수유

 

산수유는 약용식물로 중요시되었다는 내용이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잘 소개되어 있다.

그 내용의 일부를 보면, 먼저 산수유는 촉산조蜀酸棗, 육조肉棗, 계족鷄足, 서시鼠矢라고도 하며, '육조'라고 하는 것은 그 열매의 모습에 연유하는 것이다.

산수유의 열매를 언뜻 보면 대추와 닮아서 '대추 조棗'자가 들어간다.

 

그런데 이 책에 설명된 산수유의 정체에 대해서는 애매한 면이 있다.

한 일본 학자는 다음과 같은 서술을 하고 있어 참고가 된다.

 

"현재 중국·일본에서 산수유라고 하고 있는 생약은 그 학명이 '코르누스 오피치날리스 Cornus officinalis'인 나무의 열매를 건조시킨 것을 말한다. 그런데 ≪본초강목≫에 설명된 산수유가 무엇인지 뚜렷하지 않다. 일본에는 1722년에 조선에서 건너왔다는 기록이 있고, 그 뒤 각지에 심어졌다. 꽃나무로서의 가치가 주된 것이었으며, 그 열매가 가을에 약용으로 채집되고 있다. 그런데 중국과 일본에 나는 산수유가 한자 '山茱萸'로 쓰이기 시작한 시기가 언제였는지는 잘 알 수 없다."

 

이러한 내용을 보면 우리가 더 고찰해 보아야 할 여지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중국에서 간행된 문헌에 따르면 '산수유'라는 이름은 현재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수종임에 틀림없다.

일본의 마키노 도미타로(목야 부태랑 牧野 富太郎) 박사는 앞에서 든 학명에 대해서 산수유의 일본 발음인 '산수유'를 그대로 쓰고 별명으로 '춘황금화春黃金花' 또는 '추산호秋珊瑚'를 들고 있다.

봄꽃과 가을 열매의 아름다운 색채를 한 이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본초강목≫을 일본어로 번역한 ≪국역본초강목國譯本草綱目≫에는 ≪본초강목≫의 산수유에 대한 정확한 학명은 미상이라 했고, 또 정확한 일본 이름이나 과명科名도 미상으로 하고 있다.

 

≪본초강목≫에 설명되고 있는 산수유의 약효는 다양하다.
건강을 돕고, 눈을 맑게 하며, 노인의 소변을 절도節度를 조절하고(규칙적인 소변), 강정强精(정력 강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산수유 열매는 시장에서 구할 수 있으므로 복용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단, 열매 안에 든 씨(핵核)는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하니 먹어서는 안 된다.

 

※출처
1. 임경빈 저, 이경준·박상진 편,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2(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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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9. 24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