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2007. 4/24 담양 메타세워이어길, 소쇄원, 식영정, 환벽당, 취가정 본문

여행기-국내

2007. 4/24 담양 메타세워이어길, 소쇄원, 식영정, 환벽당, 취가정

새샘 2007. 4. 26. 10:31

이번 주 조선시대의 정자와 대나무로 유명한 담양에 들렀다가 찍은 사진을 올립니다.

 

순창에서 담양가는 옛날 국도에는 수십미터의 키에 달하는 잎지는 큰키나무인 메타세쿼이어가 수킬로미터에 걸쳐 가로수로 양쪽 길에 일렬로 죽 늘어서 있어 마치 터널을 연상케 합니다. 메타세쿼이아란 나무는 중국이 원산지이지만 미국에서 개량되어 빨리 자라고 수형이 멋있어 전 세계적으로 널리 가로수로 보급되어 있는 나무.

이 길은 작년 건설교통부에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서 당당 1위인 최우수상을 받아 그 가치를 인정받은 바 있습니다.

 

(순창-담양간 메타세쿼이어 가로수 길)

 

길 주변의 밭에는 분홍색 꽃이 잔뜩 심어져 있었는데 멀리서 볼 때는 판매용으로 꽃잔디를 재배하는 줄 알았죠. 근데 가까이 가서 보니 유기농을 위하여 밭에 뿌리혹세균을 갖고 있어 질소비료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콩과식물인 자운영 이었습니다. 매우 기뻤습니다. 예쁜 붉은색 자운영을 이렇게 많이 본 적이 없었거던요. 나중에 그대로 밭을 갈아 엎어 밭을 비옥하게 만드는거죠.

 

(밭에 거름용으로 대량심어져 있는 자운영)

 

 

점심을 먹으러 담양 외곽에 있는 덕인관이란 갈비산적을 전문으로 하는 한식집에 들렀을 때 화분에 심어 놓은 꽃들이 눈에 띄어 올립니다.

 

(은방울꽃)

 

(석화-일명 사막의 장미 또는 아데니움)

 

(대엽풍란-나도풍란이라고도 함)

 

갈비산적과 댓닢주, 대통주와 곁들어 맛있게 먹은 후 소쇄원으로 향했습니다.

瀟灑園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정원림으로서 소쇄옹 양산보(1503-1557)가 스승인 정암 조광조(1482-1519)가 走肖爲王說의 기묘사화로 유배되고 사약을 받고 죽자 이곳에 내려와 지은 정자이다. 소쇄라는 말은 맑고 깨끗하다는 뜻.

 

(제월당-비 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란 뜻의 주인집)

 

(광풍각-비온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란 뜻의 사랑방)

 

(소쇄원의 대나무 숲)

 

 

(소쇄원의 죽순-대나무는 죽순 때 일생이 결정. 즉 죽순의 지름이 자라서도 대나무 지름이 되며 길이만 죽죽 자란다. 대나무는 가운데 가장 잘 자라는 나무로서 雨後竹筍이란 말이 생겨 났음)

 

(소쇄원의 솟대)

 

(소쇄원의 탱자나무 꽃)

 

(소쇄원의 꽃)

 

(소쇄원의 할미꽃)

 

(소쇄원의 광대수염)

 

(소쇄원의 윤판나물)


다음 목적지는 식영정. 息影亭은 그림자가 쉬고 있는(쉬어 가는) 정자라는 뜻으로 서하당 김성원(1525-1597)이 장인인 석천 임억령(1496-1568)을 위해 지었다고 한다. 김성원은 송강 정철(1536-1593)의 친척. 식영정에서 자주 모여 글을 읊고 지은 석천, 서하당, 송강, 제봉 고경명(1533-1592)의 네 사람을 '식영정 四仙'이라 불렀는데, 이들은 함께 성산의 경치좋은 20곳을 택하여 20수씩 모두 80수의 식영정이십영을 지었다고 한다. 이 식영정二十詠이 후에 송강의 '星山別曲'의 밑바탕이 되었다.

 

(식영정)

 

(식영정 입구의 송강 정철 가사의 터 기념비)

 

(식영정에서 바라본 자미탄 즉 영산강)

 

(식영정의 우람하고 운치있는 소나무 숲)

 

(식영정의 배롱나무)

 

(식영정의 모과나무 꽃)

 

(식영정의 반디지치)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식영정을 나와 영산강을 건너 광주에 있는 환벽당취가정.

環碧堂은 푸르름을 사방에 둘렀다는 의미로서 사촌 김윤제(1501-1572)가 세운 정자. 이 곳에서 송강이 벼슬길에 나아가기까지 머무르며 공부했다고 한다. 환벽당이란 글씨는 우암 송시열이 썼다. 환벽당은 앞에서 소개한 소쇄원, 식영정과 함게 '한 마을의 세 명승'이란 일컬어진 문학 활동의 주요 무대였다.

 

(환벽당)

 

醉歌亭은 忠壯公 김덕령(1568-1596)  장군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정자이다. 취가정이란 이름은 송강의 제자였던 석주 권필(1569-1612)의 꿈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은 장군이 나타나 억울함을 호소하고 한맺힌 노래 '醉時歌'를 부르자 권필이 이에 화답하는 시를 지어 원혼을 달랬다는 데서 지어진 것이다.

 

 <충장공의 취시가>

   술취해서 부른 노래

   듣는 이 아무도 없구나

   꽃과 달에 취하면 무엇하리

   공훈을 세운들 무엇하리

   공훈을 세우는 것도 뜬구름이요

   꽃과 달에 취하는 것도 뜬구름이라

   취해서 노래한 내 마음 누가 알까

   다만 긴 칼 부여잡고

   임금께 보은할 수 있기만을 원하노라.

   

 <석주의 화답가>

   장군께서 예전에 칼을 잡으셨으나

   장한 뜻이 중도에 꺾이니

   이 또한 운명이로고

   지하에 계신 영령의 한없는 원한이여

   분명 이 노래는 취시가로구나

 

(취가정)

 

 

(식영정에서 환벽당으로 가는 다리에서 본 자미탄 즉 영산강)

 

 

(취가정 입구의 미루나무)

 

(취가정 입구의 저먼아이리스독일붓꽃)

 

(취가정의 개구리발톱)

 

2007. 4. 26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