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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 "하경산수도" "인왕제색도" "선면금강내산도" "해인사" "만폭동" 본문

글과 그림

겸재 정선 "하경산수도" "인왕제색도" "선면금강내산도" "해인사" "만폭동"

새샘 2021. 6. 4. 21:16

지금까지 조선시대의 그림을 초기에서 중기까지 살펴보았다.

조선 초기는 태조부터 중종 말까지(1392~1550)로서 대표 화가는 단연 안견강희안이며, 이밖에 이상좌, 신잠, 이암을 들 수 있고, 여기에 조선불화를 그렸다는 이자실이 포함된다.

조선 중기는 중종 말부터 숙종 말까지(1550~1700)로서 대표 화가로 신사임당, 이정(탄은), 김명국, 윤두서를 들 수 있으며, 김시, 이경윤, 이정(나옹), 이징, 조속 등이 나름대로 명성을 얻었던 조선 중기 화가들이다.

 

이 글부터는 조선 후기 화가와 그림들이 소개된다.

조선 후기는 숙종 말에서 대한제국까지(1700~1910)를 말하는데, 대표 화가는 3원3재三園三齋로 일컬어지는 김홍도(단원), 신윤복(혜원), 장승업(오원), 정선(겸재), 심사정(현재), 조영석(관아재)[3재로는 관아재 대신 중기 화가인 윤두서(공재)를 포함시키키도 한다]와 최북을 포함한 일곱이다.

이 밖에도 당대에 명성을 얻었던 화가인 이인상, 강세황, 변상벽, 김두량, 이인문, 김득신, 이명기, 김정희, 김수철, 이하응(대원군), 조석진, 안중식 등의 그림도 살펴볼 것이다.

 

조선 후기 화가로서 첫 번째로 등장하는 사람은 당연히 정선鄭敾(1676~1759)이다.

정선은 자가 원백元伯이고, 호는 겸재謙齋라고 자신이 지었다.

흔히들 조선을 대표하는 화가로 3원3재와 1칠칠이 등 일곱 명을 드는데, 이들 중 가장 먼저 등장한 화가가 바로 겸재 정선이다.

 

정선은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조선 후기에 유행한 우리나라 산천을 소재로 그린 산수화] 화가로서, 당시에도 진경으로 유명했

지금 남아 있는 그림 중에도 진경산수가 많다.

그런데 돌아다니는 정선의 그림 중에는 중국 화보식으로 된 것이 많지, 진경산수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정선, 하경산수도, 비단에 담채, 117.9x97.3㎝, 국립중앙박물관

 

정선은 84세까지 오래 살았는데 그의 그림 명성은 벌써 30대부터 있었으니 오랬동안 이름을 떨친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표암 강세황이 '중년최득의필中年最得意筆'[중년에 그린 그림 중 화가 자신이 가장 만족해하면서 뽐내는 작품]이라고 화제를 붙인 그림이 바로 위에 있는 <하경산수도夏景山水圖>이다.

 

중년이라고 했으니 장수한 사람으로 40대에 그린 그림이 아닐까 하는데, 40대에 그린 것이라고 한다면 그 역량이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강한 필세筆勢와 힘찬 필선筆線이 다 나와 있기 때문에 아마 일찍부터 이름이 났을 것이다.

≪해악전신海岳傳神≫이란 금강산 화첩도 38세에 그려 이미 평판이 났다고 하는 걸 보면 그때 이미 화명이 높았던 것이다.

 

그런데 남태응의 ≪청죽화사청聽竹畵史≫에는 심사정이 정선에게 배웠다고 하면서도 겸재 정선의 화명이 높았다는 그런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선화풍에 대해 사회에서 받아들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좀 거칠다고 했다.

기왕의 부드러운 화풍에 비하면 확실히 좀 거친 편이다.

 

겸재의 걸작은 비교적 많은 편인데 대부분 진경산수다.

그런데 진경산수가 아니라 중국 전통산수화의 양식인 이 <하경산수도>를 표암은 중년 정선의 걸작이라고 칭한 작품으로서 보다시피 필세가 힘차다.

겸재의 그림을 보면 조그만 그림들은 대부분 구도가 간단한데 성공한 예를 보면 구도가 꽉 차고 또 복잡하다.

그림 또한 화면이 꽉 차서 충만감을 준다.

구도도 안정되어 있고 앞 경치(전경前景)와 먼 경치(원경遠景) 등 모두 격을 맞추어 그려서 표암이 '중년최득의필'이라 할 만한 그림인 것이다.

이 그림을 제외하면 거의가 진경산수다.

 

 

정선, 인왕제색도, 종이에 담채, 79.2x138.2㎝, 호암미술관

 

겸재의 대표작은 그가 76세 되던 해에 그린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다.

비가 온 후 인왕산 모습을 그린 이 산수화는 정말 걸작이다.

여러가지 특색이 있는데 역시 화면을 꽉 채우고 있다.

동시에 다른 경우도 그렇지만 인왕산 암벽을 적묵積墨[마른 붓으로 여러 번 칠한 것이 쌓임으로써 짙은 먹색을 내는 것]으로 일종의 면, 묵면을 만들어서 압도하게 한다.

화면이 안정되어 있고 전체를 압도적으로 누르고 있기 때문에 아래 허연 바탕과 음양도 잘 어울린다.

 

이처럼 겸재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인왕제색도>는 말년인 76세 작인데, 그의 좋은 진경산수화는 대개 말년 가까이에 그린 그림들이다.

60세를 전후하여 괴량감塊量感[표현하려는 물체를 덩어리지어 무게감이 느껴지는 것]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것도 겸재의 특색이다.

겸재는 80살이 되어도 기량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하니 60, 70살일 때가 좋을 때였는지 모른다.

 

 

정선, 선면금강내산도, 종이에 수묵, 28.2x90.7㎝, 호암미술관

 

선면[부채의 거죽]으로 된 아주 독특한 <금강내산도金剛內山圖>가 있다.

선면이기 때문에 중앙에 그림을 압축해서 넣었다.

왼쪽 흙산(토산土山)에 미점米點[동양화에서 풀나무나 산수를 그릴 때 가로로 찍는 작은 점]으를 찍어 넣었고, 바른쪽에는 뼈다귀 붓(골필骨筆)[촉을 뼈, 쇠, 유리 따위로 만든 붓]으로 붓을 빳빳이 세워서 그 끄트머리로 죽죽 그리는 방식으로 내산 전경을 표현하였는데 그림의 효과가 아주 대단하다.

이런 선면산수의 변형 스타일이라는 것은 한두 개 더 나오는데 대개 다 좋다.

 

 

정선, 해인사, 종이에 수묵담채, 22.9x67.5㎝, 국립중앙박물관

 

<해인사海印寺> 역시 선면 그림으로서 얌전하고도 뛰어난 그림이다.

선면에 그린 그림에 좋은 그림들이 많이 있는데, 이는 선면의 모양새 때문에 저절로 변형 효과가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정선, 만폭동, 비단에 수묵담채, 33.2x22.0㎝, 서울대학교 박물관

 

서울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그만 그림 <만폭동萬瀑洞>은 그림이 아주 꽉 차 있는 충만감 때문에 독특한 인상을 풍긴다.

꽉 차고 구도가 상당히 복잡하게 되어 있는데 겸재가 성공한 것을 보면 보통 세상에서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

세상에서는 겸재의 그림은 비교적 단순하고 간단하다고 보았는데 성공한 예를 보면 이렇게 충만하고 복잡한 것이 오히려 더 많다.

<만폭동>도 그 크기는 조그만하지만 아주 좋은 그림이다.

 

※출처: 이용희 지음, '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움 - 동주 이용희 전집 10'(연암서가, 2018)

 

2021. 6. 4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