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2 - 거제수나무 본문
자작나무과 자작나무속에 속하는 갈잎 큰키나무인 거제수나무는 '재앙을 쫓아내는 힘을 가진 물'을 뜻하는 '거재수去災水'란 말에서 비롯된 이름으로서, 곡우 때 수액을 뽑아 건강 음료로 마시는 나무이다.
거제수나무는 중국어 한자로 황단목黃檀木 또는 황화수黃樺樹이다.
학명은 베툴라 코스타타 Betula costata이고, 영어로는 Korean birch(한국자작나무)이다.
거제수나무는 줄기가 굵고 높게 자라는 야생적인 큰키나무로서 깊은 산속 자연림을 구성하고 있다.
이 나무의 묘목을 키워서 숲을 만든다든가, 풍치를 위해서 심는다든가 하는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거제수나무는 일부 지방에서만 잘 알려져 있어 높은 산을 먼 곳에 두고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이 나무 이름이 좀 생소할 지도 모른다.
거제수나무와 가장 가까운 나무는 같은 박달나무와 자작나무이며, 이들은 모두 자작나무 birch 종류다.
자작나무속 나무의 잎은 모든 나뭇잎의 대표라고 할 만큼 잎다운 잎으로 잎의 표준이라고까지 느껴질 정도다.
잎에 무든 대표나 표준을 내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나뭇잎을 그려보라고 하면 대개 거제수나무 잎과 닮은 것을 그리게 된다.
거제수나무의 잎은 매우 조직적인 구도를 이룬다.
잎의 몸체인 잎몸(엽신葉身)과 잎의 가장 끝부분인 잎자루(엽병葉柄) 사이를 잎밑(엽저葉底)이라고 하는데, 식물 잎을 얘기할 때 흔히들 잎밑의 모양에 따라 잎의 특징을 말하곤 한다.
예를 들어, 피나무 잎은 잎밑이 심장형(하트형)으로 오므라든 반면 능수버들 잎은 입밑이 잎자루를 따라 아래로 흐르는 형태이다.
그런데 거제수나무의 잎밑은 위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아래로 흐르지도 않고 오므라들지도 않는 그 중간, 말하자면 표준형이다.
그리고 잎자루 길이는 잎 전체 길이에 알맞도록 적절한 균형을 보여준다.
이렇게 길지도 짧지도 않은 잎자루의 조화는 잎다운 매무새를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
사시나무 잎은 누가 봐도 잎자루가 너무 길어 전체가 안정되지 못하고 항상 흔들리고 있는 불안정 상태이다.
그런가 하면 떡갈나무는 잎자루가 거의 없어서 소견머리 없어 보이고 답답하기 그지없다.
거제수나무의 잎자루가 가진 알맞은 길이는 중용中庸이라든가 중정中正을 떠오르게 해서 우리는 이 나무에 호감을 갖게 된다.
이 나무의 잎은 하반신이 넓고 상반신이 좁은데, 그 변화 과정이 흐르는 물결과 같아서 무리가 없고 원만하다.
거제수나무 잎의 톱니는 날카로우면서도 크고 작은 톱니가 율동적으로 배분되어 큰 일 작은 일을 함께 할 수 있을 듯한 능력을 보여준다.
아마 나뭇잎 가운데서 가장 섬세하고 치밀하며 실수 없는 톱니 구조일 것이다.
톱니라는 것은 원래 어떤 물건을 절단하기 위한 장치인데, 거제수나무의 톱니는 가장 능률적인 절단력을 가진 모양을 하고 있다.
인간이 좋은 톱을 만들자면 거제수나무의 잎에서 배울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거제수나무의 잎맥(엽맥葉脈)은 맥다운 맥을 가지고 있다.
어떤 나뭇잎은 옆맥(측맥側脈)이 가다가 도중에서 소멸하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가다가 갈라지는가 하면, 활처럼 휘영청 굽은 것도 있다.
그런데 거제수나무의 잎맥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선명도를 잃지 않고, 가다가 변심해서 딴전 부리는 일이 없다.
즉 태도가 분명하고 확실하며 책임을 질 줄 아는 옆맥의 구도를 지니고 있다.
잎끝이 날카롭게 빠져나간 것은 이 나무의 무서운 지조를 말해준다.
흐리멍덩한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지 끊을 것은 끊고 맺을 것은 맺어버리겠다는 굳은 의지가 담겨 있다.
잎끝이 가다가 굽지 않고 직선으로 되어 있는 것은 불의와 타협할 수 없다는 기질의 표현이다.
이런 점들을 모아본다면 거제수나무는 진리를 추구하고 불의를 싫어하는 덕목을 몸에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邪를 물리치려는 의지가 강렬해서 재앙을 쫓아내는 힘을 가진 수액 즉 거제수去災水가 나오는 모양이다.
겉으로 드러난 거제수나무의 가장 큰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바로 위 사진에서처럼 황색 또는 붉은밤색(갈색)의 줄기 껍질이 종이장처럼 얇게 벗겨진다는 것이다.
줄기는 지름 1미터에 높이 30미터까지 높이 자라 깊은 산속에서 울창한 나무숲을 이룬다.
거재수의 재災라는 것은 우리 행복을 빼앗아가는 재앙이다.
災란 글자의 위쪽은 물, 아래쪽은 불로서 물과 불의 재양이 함께 하고 있다.
한재旱災, 병재病災, 천재지변天災地變, 이재민罹災民 등 災가 들어가서 좋을 것 하나 없다.
삼재팔난三災八難은 가장 고통스러운 것으로 모든 말이다.
이런 재양들을 쫓아내는 힘을 가진 물 즉 수액樹液을 소유한 나무, 이것이 거제수나무인 것이다.
과연 거제수나무가 이런 신통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는 의문스럽지만, 나무의 생김새로 볼 때 충분히 해낼 만하게 느껴진다.
몸집이 크면 대체로 미련하고 우둔하지만, 거제수나무는 그러하지 않다.
지역에 따라서 거제수나무를 물자작나무로 부르기도 할 정도로 자작나무와 닮았다.
자작나무류를 라틴어로 베툴라 Betula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나무를 뜻하는 켈트어 '베투 betu'가 어원이다.
따라서 나무 중의 나무라 할 수 있으며, 쓸모가 많은 나무임을 말해준다.
거제수나무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만주, 그리고 러시아 아무르 지방의 자연림과 인공숲에도 자작나무와 거제수나무가 주를 이루면서
자라고 있다.
우리나라의 깊은 삼에 거제수나무가 많이 자라므로 이것을 되도록 보호해서 큰 나무로 키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목재도 쓸모 있고 아룸다운 숲의 경관을 만드는 야생 나무로서 거제수나무는 자연의 냄새를 물씬 풍겨주는데 인색함이 없다.
거제수나무의 수액은 늦겨울 또는 초봄, 아직 거제수나무의 잎이 움트기 전 경칩 때가 되면 땅속의 벌레도 따뜻한 기운에 놀라 일어나는데, 이쯤 되면 나무 뿌리는 땅속의 물을 빨아올리기 시작한다.
곡우 때가 되면 나무 줄기 안을 지나가는 물의 양도 많아지는데, 이때쯤 줄기에 칼로 자국을 넣어주면 수액이 줄줄이 흘러나온다.
곡우에 거제수나무 줄기에서 물을 받아 마시면 재앙을 물리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수액의 주성분은 포도당과 과당이며, 이는 고로쇠나무 설탕과 비교된다.
거제수나무는 우리나라 깊은 산 어디에나 자라고 있다.
화엄사 쪽과 선암사 쪽 산중에서 큰 거제수나무가 서 있는 숲이 있는데, 봄이 되면 사람들이 이 산으로 몰려와서 거제수나무의 물을 빨아먹곤 한다.
1984년 가을, 나는 전남 순천 승주에 있는 선암사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뒤에 있는 조계산을 넘어 송광사로 내려간 적이 있다.
이때 선암사 쪽 산허리에 굵은 거제수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해마다 수액을 얻기 위해 낸 상처로 줄기가 울퉁불퉁했다.
칼집을 받아 상처투성이라는 것은 이 나무의 몸속에 귀중한 것이 많음을 말해준다.
옛말에 몸속에 좋은 것을 지니고 있으면 칼을 받는다고 했는데, 거제수나무가 바로 이에 해당한다.
좋은 것을 많이 담고 있으면 상처받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조계산은 대단한 산악이다.
산이 높다든가 경치가 뛰어나다든가 해서 대단한 것이 아니라, 나무를 굵게 그리고 높게 키울 수 있는 힘을 가졌고 그 결과 거대한 에너지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조계산은 낙타 등처럼 선암사 쪽에 한 봉우리, 그리고 송광사 쪽에 또 한 봉우리가 있어 2개의 봉으로 되어 있다.
조계산 꼭대기에는 넓은 벌판이 있고 그 중간에 개울이 있는데 상당한 양의 물이 흐른다.
산 정수리에 흐르는 물과 평지가 있다는 것은 이 산에 큰 나무를 자라게 할 힘이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임상林相을 보여주는 곳이 승주인데, 이곳에서도 선암사 부근의 조계산이 그 핵심을 이룬다.
다른 곳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나무의 모습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거제수나무의 크기에 놀랄 수 있는 곳도 이곳이다.
워낙 거제수나무가 많아서 봄이 되면 그 수액을 모아 상품으로 출하하고 있다.
※출처
1. 임경빈 저, 이경준·박상진 편,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1,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9.
2. 구글 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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