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칭기즈 칸이 어떻게 세계의 반을 점령했나 본문

허준: 현생 인류의 상당수가 칭기즈 칸 Genghis Khan/Činggis Qan(1162~1227)의 DNA를 갖고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류 역사에서 칭기즈 칸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지 않습니까? 그를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을 만큼요. 세계의 절반을 점령한 영웅 아닌가요.
강인욱: 저는 칭기즈 칸을 마냥 좋게만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판적으로 봐요. 그를 두고 시사 주간지 <타임 Time>은 13세기를 대표하는 인물로 꼽았고, 일간 신문 <워싱턴포스트 The Washington Post(WP)>는 지난 1천 년 동안 가장 중요한 사람 중 한 명으로 뽑으면서 서양이 만들어낸 영웅이라는 측면이 좀 강한 것 같단 말이죠. 그렇다면 과연 언제부터 칭기즈 칸을 영웅이라고 추켜 올리며 숭배했느냐 하면, 바로 냉전시대冷戰時代 Cold War era부터입니다.
물론 유라시아 Eurasia 유목민족 사이에서 칭기즈 칸은 영원한 본本보기상像(롤모델 role model) 같은 영웅이었습니다. 하지만 칭기즈 칸만 있는 건 아니었죠. 제가 보기에 티무르 제국 Timurid Empire을 건국한 티무르 Timur(1336~1405)나 살라흐 앗 딘 유수프 Salah ad-Din Yusuf ibn Ayyub(살라딘 Saladin)(1137?~1193)도 못지않게 위대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칭기즈 칸에만 유독 집중 조명(스폿 라이트 spotlight)을 비추는 건 20세기 냉전 시대 당시의 정치 상황과 관련이 깊다고 보는 겁니다.
칭기즈 칸을 좋아하는 것 같지만 싫어하는 나라가 어디였냐 하면, 바로 소련 USSR이에요. 옛날 칭기즈 칸에 의해 정복당했기 때문도 있을 테지만, 칭기즈 칸 탄생 800주년이 되는 지난 1962년에 그의 탄생지에서 몽골인 Mongolians 3만여 명이 모여 기념 대회를 열었을 때 소련이 비판을 가합니다. 분리주의자, 민족주의자, 봉건주의자들이 사회주의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는 거죠.
당시 유라시아의 진정한 패권자는 바로 소련, 즉 슬라브인 Slavs들이라는 거죠. 과거 슬라브인을 침략해 정복한 몽골인이 칭기즈 칸 탄생을 칭송하며 유라시아를 떠들썩하게 하면 소련의 면이 안 서지 않겠습니까.

몽골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 울란바토르 Ulaanbaatar에 가면 도시 한가운데 거대한 광장이 있습니다. 대부분 칭기즈 칸 광장인 줄 아는데 수흐바타르 광장 Sükhbaatar Square이에요. 울란바토르의 상징과 같은 광장이죠. 거기에 몽골의 공산혁명가이자 독립운동가 담딘 수흐바타르 Damdin Sükhbaatar의 기마상이 세워져 있어요. 그는 1920년대 인민의용군을 결성해 직접 총사령관에 올라 중국군을 격파한 뒤 블라디미르 레닌 Vladimir Lenin과 협상해 러시아 Russia 적군赤軍 Red Army(볼셰비키 정부군)의 지원을 받아 러시아 백군白軍 White Army(볼셰비키 대항군)을 격파하여 인민정부를 수립하고 몽골의 독립을 선포한 영웅이지 않습니까. 그 덕분에 몽골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공산주의 국가로 거듭날 수 있었죠.
그전까지 몽골은 소련에 복속되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초거대 국가 소련과 중국 사이에서 4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몽골이 뭘 어떻게 할 수 있었겠어요? 몽골은 그저 소련과 중국의 완충지대로서 작용해 왔을 뿐이었죠. 그런 가운데 지금의 몽골을 만들어낸 게 바로 수흐바타르인 겁니다.
한편 수흐바타르 광장에는 칭기즈 칸의 동상도 있습니다. 사실 지금은 몽골을 상징하는 인물로 칭기즈 칸을 더 높이 쳐주죠. 광장은 물론 공항, 보드카, 박물관 따위에 칭기즈 칸의 이름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예요. 하지만 소련 시절 몽골에선 광장, 화폐에 등장하는 인물로는 수흐바타르를 더 높이 쳤어요. 아무래도 1990년 이전까지 몽골은 공산주의 국가였으니까 말이죠.
반면 서양에선 칭기즈 칸을 더욱 영웅시하며 떠받들었죠. 서양도 칭기즈 칸이 세운 몽골 제국의 피해를 많이 받긴 했지만요. 냉전 시절에는 그보다 소련을 견제할 마음이 더 강했던 거죠. '소련이 무슨 유라시아 패권자냐 진정한 유라시아 패권자는 몽골이지'라는 생각이었던 겁니다.
만약 몽골이 실질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누구한테든 위협이 되는 나라였다면 그렇게까지 띄우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는커녕 몽골은 소련과 중국이라는 두 거대 국가 사이에서 완충지대 역할을 하며 겨우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서양에서 '그래도 몽골이 진정한 영웅의 나라'라면서 칭기즈 칸의 서사敍事(있었던 사실에 대한 기록)를 더 과장한 측면이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박현도: 사실만 놓고 봐도, 러시아가 칭기즈 칸을 싫어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명백합니다. 러시아는 1240년부터 1480년까지 자그마치 240년 동안이나 몽골 제국의 지배를 받았지 않겠습니까. 어마어마한 트라우마 trauma(사고 후유 정신 장애)가 오랜 세월 계속되고 있는 거죠. 게다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Napoléon Bonaparte가 이런 말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어요. "러시아인 Russians의 얼굴을 벗기면 타타르 Tatars(몽골-튀르크족 Mogol-Turkic peoples을 두루 일컫는 말)의 얼굴이 나나난다"라고 말이죠.
강인욱: 칭기즈 칸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습니까. 몽골 제국의 역사서 ≪원조비사元朝秘史≫에 보면 어려서부터 고난을 받았고 어린 시절 의형제를 맺은 자무카 Jamukha와 결별하기도 하고 수많은 이와 동맹, 불화, 결별을 이어가는 따위의 간난고초를 겪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처음 알려진 게 얼마 되지 않아요. 150년밖에 안 되죠. 1866년 러시아 승려이자 한학자인 팔라디우스 카파로프 Palladius Kafarov가 중국 베이징 Beijing(북경北京)의 러시아정교회 선교부 책임자로 재직 중에 우연히 발견해 러시아말로 번역했어요. 그렇게 중국어 번역본을 처음으로 번역했죠. 그러니 칭기즈 칸이라고 하는 존재를 제대로 알게 된 게 얼마 되지 않은 겁니다.
곽민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골 제국, 그러니까 칭기즈 칸이 놀라울 정도로 넓은 지역을 정복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것 같아요. 그런 한편 그 엄청난 크기의 영토는 시대적 상황 때문에 가능했었다고 생각합니다.
칭기즈 칸의 몽골군이 호라즘 제국 Khwarazmian Empire을 무너뜨리는데, 사실 메소포타미아 Mesopotamia와 이란 Iran 쪽의 근동近東 Near East 지방은 전통적으로 굉장히 강력한 제국들이 위치했던 곳이에요. 와중에 호라즘 제국의 경우 근동의 패권을 장악했던 역대 국가들 가운데 약체에 속했죠. 그러니까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어요.
칭기즈 칸이 그보다 훨씬 전에 태어났다면 사산조 페르시아 Sasania Persia나 파르티아 Parthia 같은, 호라즘보다 훨씬 더 강력한 제국들을 상대해야 했을 겁니다. 결코 쉽게 승리를 쟁취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하나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이 있습니다. 이집트 Egypt에 관한 것인데요. 몽골군은 계속해서 서진하지만 결국 이집트한테 막히고 말아요. 1260년 아인 잘루트 전투 Battle of Ain Jalut에서 몽골군은 맘루크군 Mamluk army과 맞붙습니다. 당시 몽골은 아바스 왕국 Abbasid Caliphate 또는 Abbasid Empire의 수도인 바그다드 Baghdad를 함락시킨 뒤 중동의 서남쪽 끝까지 도달해 마침내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 Mamluk Sultanate를 침공하는데, 맘루크군이 칭기즈 칸의 손자 훌라구 Hulagu의 부하인 키트부카 Kitbuqa가 이끄는 몽골군을 패퇴시키죠. 몽골군은 더 이상 서쪽으로 진격하지 못합니다.
박현도: 곽 소장님 말씀에 약간 첨언하자면, 그때 몽골이 패한 주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대칸(대한大汗)의 죽음이에요. 몽골 제국 제4대 대칸인 묑케(몽케) 칸 Möngke Khan이 1259년 8월에 남송 원정 중 병에 걸려 급사하고 맙니다. 그러니 훌라구로선 형이자 대칸이 사망하자 새로운 대칸을 뽑는 모임에 참석하고자 주력군을 이끌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죠. 그렇게 서아시아 원정에서 본진이 빠지고 결정적인 전투인 아인 잘루트 전투에서 본진이자 주력군 없이 싸운 몽골군은 패할 운명이었던 겁니다.
정요근: 그보다 이전에 몽골 제국이 대대적으로 실행한 서방 원정에서 실패와 이유와 동일하죠. 1241년 폴란드 Poland와 헝가리 Hungary 전역에서 큰 승리를 거둔 뒤 신성로마제국 Holy Roman Empire을 침공해 유럽의 중심부까지 타격하려 했던 몽골군은 1242년 초에 돌연 회군하고 마는데요. 그 이유가 바로 대칸의 죽음에 있었어요. 몽골 제국 제2대 대칸인 우구데이(오고타이) 칸 Ögedei Khan이 사망하고 말았던 거죠. 그러니 몽골군의 주요 지휘관들은 새로운 칸을 뽑기 위해 본토에서 열리는 쿠릴타이 Quriltai에 참가하고자 회군을 결정했던 겁니다.
강인욱: 제가 보기에 칭기즈 칸은 '특정한 나라를 꼭 정복하겠다'는 식의 목적의식이 투철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나라를 정복하는데 있어, '안 되면 말고' 하는 마음이 강했던 것 같아요. 그의 부대는 인도 India, 이집트, 동남아 Southeast Asia 같이 더운 지역을 공격하다가 안 되면 빠르게 철수하기도 했습니다. 유목민의 특성이 한껏 발휘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죠. 하여 칭기즈 칸의 진정한 위대함을 밝히기 위해선 13세기 당시 유목민들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게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현도: 저는 칭기즈 칸의 몽골 제국을 두고 차마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는게, 이후 무슬림 Muslim 세계의 왕국들이 하나같이 자신이 칭기즈 칸과 관련되어 있다고 무진장 노력해요. 이를테면 칭기즈 칸의 후대와 결혼해 부마국駙馬國이라고 한다든지 말이죠. 이후 티무르 제국의 티무르나 무굴 제국 Mughal Empire의 바부르 Babur도 칭기즈 칸과의 관련성을 따집니다. 그러니 실질적으로 몽골 제국 이후 이슬람 세계를 지배했던 왕국들은 전부 몽골의 후예, 즉 칭기즈 칸의 후예인 셈이죠.

정요근: 칭기즈 칸은 중국 쪽, 즉 금나라를 제대로 정복하지 못했어요. 서하西夏 정도만 정복했죠. 그런 만큼 제가 보기에 칭기즈 칸은 정복 군주로서 과장되어 있는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정복한 영토로만 따지면 칭기즈 칸 사후에 몽골 제국은 전성기를 구가하며 최대 강역을 자랑했으니까요.
부모가 잘나서 자식이 훌륭한 게 아니라 자식이 잘나서 부모가 훌륭해지는 것 같습니다. 결국 칭기즈 칸의 후계자들이 유라시아 대륙 각지에서 대제국을 건설하지 않았습니까. 쿠빌라이 Khublai가 원나라를, 차가타이 Chagatai가 차가타이 칸국 Chagatai Khanate을, 훌라구가 일 칸국 Ilkhanate을, 바투 Batu가 킵차크 칸국 Kipchak Khanate을 건국했죠. 그들은 모두 공통적인 선조로 칭기즈 칸을 부각시켰고 나중에는 그것이 전통으로 이어졌습니다.
쿠빌라이의 경우 동생인 아릭 부케 Ariq Böke와의 치열한 싸움 끝에 승리를 거두고 칸의 자리에 올라 원나라를 세우고, '중국은 중국의 전통적인 방식대로 다스리자'라는 정책을 추진했죠. 그런데 만약 아릭 부케가 이겨 중국을 다른 방식으로 다스렸다면 세계사는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겁니다. 몽골 제국 내에선 중국을 목초지로 만들자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이후의 역사 전개가 칭기즈 칸을 위대한 정복군주의 심상(이미지 image) 또는 그러한 상징으로 만든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박현도: 중동에서 몽골의 흔적을 가장 많이 느끼게 하는 부족이 있습니다. 이란에 가면 아프가니스탄 Afghanistan에서 도망 나온 하자라족 Hazars이 있는데요. 그들은 몽골군과 현지인들이 결혼해 낳은 이들의 후손이에요.
'하자라'에 '1000'이라는 뜻이 있는데, 아마도 몽골군이 1천 명 단위로 된 군부대, 즉 밍간 Mingghan(천호千戶)이 주둔했고 바로 거기서 유래하지 않았나 싶어요.
곽민수: 몽골 제국이 남긴 영향력이 세계사적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게, 앞서 아인 잘루트 전투에 대해 말씀드렸잖습니까. 1260년에 이집트 맘루크군이 몽골군한테 이겼다고 말씀드렸는데, 불과 한 세대가 지난 뒤 이집트 맘루크 왕조에 다름 아닌 몽골 계통의 술탄 Sultan(이슬람 세계의 정치 지도자 즉 왕 또는 황제)이 들어섭니다.
1294년에 술탄에 오른 알 아딜 키트부가 Al-Adil Kitbugha가 바로 몽골 출신의 맘루크 왕조 술탄입니다. 그는 이슬람권과 몽골의 전쟁으로 이집트에 포로로 잡혀온 인물인 만큼, 그가 술탄이 된 것 역시 몽골에 의한 세계 정복 시도가 낳은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요근: 몽골 제국은 중국을 지배하면서 중국사의 전개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중국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사실 지금 베이징이 중국의 수도가 된 게 바로 쿠빌라이 칸이 남송까지 정벌하고 중국 대륙 전체를 통일하면서 옛 금나라의 수도였던 베이징을 원나라의 수도로 삼고 '대도大都(칸발리크 Khanbaliq)'라고 부르면서부터거든요. 그렇게 베이징은 비로소 중국 대륙 최고의 중심지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겁니다.
이후 명나라와 청나라가 원나라를 계승해 베이징을 수도로 삼았고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보통화普通话/普通話, 즉 표준 중국어의 성립에도 몽골의 중국 지배가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그러니 중국에선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칭기즈 칸이 세운 몽골 제국이 후대에 끼친 영향은 실로 어머어마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출처
1. 박현도, 곽민수, 강인욱, 정요근, 허준 지음, 역사를 보다 2(믹스커피, 2025)
2. 구글 관련 자료
2026. 6. 13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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