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면역학의 탄생과 발전 과정 5: 실패한 결핵 치료제 본문

경쟁자였던 프랑스 France의 루이 파스퇴르 Louis Pasteur가 탄저병 anthrax 백신 개발에 큰 성공을 거두자 독일 Germany의 로베르트 코흐 Robert Koch는 마음이 급해졌다.
코흐는 자신이 결핵균 Mycobacterium tuberculosis을 찾아낸 만큼 치료제도 자신이 먼저 개발해 상황을 역전시키고 싶었다.
코흐는 화학물질에 녹여낸 결핵균 배양액이 실험동물의 결핵을 치료하는데 효과가 있다고 판단했다.
나중에 그 물질은 결핵균을 죽인 것이 아니라 단지 결핵에 감염된 조직을 파괴했던 것으로 밝혀졌지만, 하루빨리 성과를 내서 자신의 명성을 되찾고 싶었던 코흐는 이런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자세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 코흐의 결핵 치료제가 1890년 세상에 공개됐다.
세계적인 세균학자 코흐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결핵 치료제를 발표하자 의학계는 열광했다.
수많은 환자들과 의사들이 그의 결핵 치료제를 구하려고 몰려들었다.
그 치료제의 이름은 투베르쿨린 tuberculin이었다.
하지만 불안한 환호는 오래 가지 않았다.
투베르쿨린을 이용한 치료 결과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논문을 통해 서서히 발표됐기 때문이다.
치료 초기에는 코흐의 예상대로 투베르쿨린이 결핵에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갈수록 효과가 떨어져 최종적으로는 환자들의 결핵이 전혀 호전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오히려 이상 반응이 여기저기서 보고되었으며 끝내 약물 투여로 사망한 환자가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투베르쿨린 임상시험은 대실패로 끝나버렸다.
코흐의 명성에 큰 오점을 남긴 투베르쿨린이었지만 의학자들은 투베르쿨린 약물 반응에서 한 가지 신기한 현상을 발견했다.
결핵균에 감염된 환자 피부에 투베르쿨린을 소량 접종하고 2~3일이 지나면 신기하게도 주사를 맞은 부위가 볼록하게 부풀어 오르는 것이었다.
이것을 '투베르쿨린 반응 tuberculin reaction'이라 한다.
의학자들은 투베르쿨린으로 결핵을 '치료'하는데는 실패했지만, 투베르쿨린 반응을 이용해 과거 또는 현재의 결핵을 '진단'하는데 사용할 수 있었다.
또한 투베르쿨린 반응은 진료실에서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는 면역반응이었기 때문에, 의학자들은 이것을 과민반응 연구를 위한 유용한 실험도구로 사용하게 되었다.
※출처
1. 김은중, '이토록 재밌는 면역 이야기'(반니, 2023)
2. 구글 관련 자료
2026. 6. 19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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