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2006. 11/12 410차 백두대간 양양 설악산 공룡능선 산행기 본문
산행자: 장만옥, 배기호, 박성주
산행로: 한계령-끝청봉-중청봉-대청봉-희운각-공룡능선-마등령-비선대-설악동(산행거리 22km, 산행시간 14시간15분)
이번 산행로는 백두대간 코스 가운데서도 가장 어려우며 전 구간이 위험도 A, 산행예상시간 14시간이라는 산행대장의 얘기를 떠올리면서 내 일생의 산행 역사를 세우기로 맘을 다 잡는다.
우리의 김회장이 공룡능선 공룡능선하며 입에 자주 올리던 게 걱정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베테랑 대간맨 슈맑이와 포드가 함께 하니 걱정을 떨치고 즐기기로 맘 먹었다.
(3:25)한계령 휴게소(한계령 기점 0.0km)
사방이 깜깜한 한계령 휴게소에서 뭘 찍을까 둘러보니 밝게 보이는 건 강원도 관광안내판이 전부다.
간단한 준비체조를 끝내고 말로만 들어오던 설악산 공룡능선 정복의 첫 발을 한계령 휴게소부터 내디뎠다.
헤드랜턴에 의지하여 땅만 보고 묵묵히 걷는 야간 산행은 언제나 맘에 들지 않는다.
즐기기 위한 산행이 아니라 목적 달성을 위한 산행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기야 1박2일 코스를 무박으로 때우려는 것이니.....
(4:46)끝청봉과 귀때기청봉의 갈림길(한계령에서 2.3km)
출발해서 계속 오르막길이다. 그것도 출발과 동시에 가파른 계단과 오르막을 반복하였다.
그래서인지 이 갈림길 조금 못 미쳐 바로 내 앞에 선 산행자가 살짝 옆으로 비켜선다.
조금 후 심장이 안 좋은 대원이 생겨서 천천히 같이 올라가겠다는 선두 대장에게 알리는 무전기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주위에서는 첨부터 갑자기 쳐 올라가면 생길 수 있는 일이라고 수군들 댄다. 첨부터 사람 겁 주는 건가?
(6:27)출발한 지 3시간이 지나면서 멀리 보이는 산 너머가 서서히 밝아 온다. 동이 트려는 것이다.
장포드 얘기로는 끝청봉까지만 가면 대청봉까지는 능선을 타는 구간이라서 쉽단다.
여기서 끝청봉까지는 약 30분 거리.
(동이 틀려고 기지개를 켜고 있는 설악과 함께)
(7:02)끝청봉(한계령에서 6.5km)
드디어 끝청봉에 도달했다. 1604m 고지.
1000m 고지인 한계령에서 6.5km동안 3시간 35분 동안 시속 약 1.8km의 빠르기로 걸어서 600m 높이를 올라온 것이다.
운이 좋게도 우리 일행은 여기서 동이 트는 설악산을 맞았다.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는 날이 별로 없다는데 이런 황홀한 대자연의 광경을 맛본 우리야말로 말 그대로 대박을 맞은 게 아닌가?
(끝청봉의 일출과 함께)
(7:36)중청봉 우회
중청봉 봉우리를 우회하면서 왼쪽으로 중청봉을 올려다보니 눈사람과 같은 하얗고 거대한 둥그런 물체가 있다. 뭘까?
그 자리에서 눈을 바로 앞으로 돌리니 대청봉 봉우리에 걸쳐서 빛나고 있는 태양.
초점을 조금 아래로 돌리니 중청산장, 산장에서 대청봉 오르는 길, 그리고 설악산의 정상인 대청봉이 눈앞에 펼쳐진다.
(7:45)중청산장(한계령에서 7.7km)
바람이 세차게 불어 춥다.
장포드와 함께 아침 먹으러 산장엘 들어가니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다.
하룻밤 잔 산행자와 우리 같이 아침 일찍 올라온 산행자들로 가득 찬 것이다.
우린 안쪽으로 비집고 들어가 아래층 식사공간으로 내려가는 계단 바로 옆 좁은 복도 옆에 겨우 자릴 잡았다.
우리보다 더 먼저 올라온 일행은 안쪽의 더 좋은 곳에서 우리에게 인사를 건넨다.
불편하나마 의자와 자리 펴고 앉아서 준비해 온 걸 먹고 있는데 슈맑이는 우릴 지나쳐서 안쪽의 좋은 자리를 잡은 일행과 함께 아침을 먹고.
(8:32)대청봉(한계령에서 8.3km)
아침을 간단히 요기한 장포드와 난 설악산의 정상인 대청봉(1708m)을 향했다.
출발한지 약 5시간 만이다. 휴식시간을 합쳐 시속 약 1.7km의 속력.
난 대청봉 등정을 기념하기 위해 대청봉 표지석과 사진을 찍고
장포드는 그 옆의 ‘양양이라네!’ 기념비석에서 한 장 찰칵 박았다.
대청봉을 비롯한 설악산을 내리 비추고 있는 태양을 보라.
(10:02)죽음의 계곡(한계령에서 10.1km)
희운각산장으로 내려가는 코스를 중청봉으로 다시 내려가 소청봉을 거쳐 가는 코스 대신 지름길인 대청봉에서 죽음의 계곡 방향으로 가서 서쪽으로 나 있는 산행로를 택했다.
이 코스는 가파르긴 하지만 거리가 짧아 30분 이상 단축된단다.
가파른데다 눈이 약간 쌓여 얼어서 미끄러운 길이라서 무척 애를 먹었다.
하지만 눈앞에 기다란 공룡의 등뼈를 연상시키는 공룡능선의 아름다움을 대하는 순간 힘들다는 느낌이 어느덧 사라져 버린다.
(죽음의 계곡을 내려오면서 기암괴석 봉우리가 줄지어 늘어선 공룡능선을 배경으로)
(희운각을 향해 아직도 눈이 덮혀 있는 죽음의 계곡 길을 내려오고 있다 )
(10:10)희운각산장(한계령에서 10.4km)
드디어 희운각산장에 도착. 우리보다 먼저 출발한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흐르는 계곡물을 시원하게 마시고 물통까지 채운 다음 공룡능선 정복을 위한 휴식.
천불동계곡을 거쳐 비선대로 바로 내려갈 산행조와 나누었다.
공룡능선 구간은 희운각에서 5,1km 거리에 걸쳐 4개의 큰 봉우리를 올랐다 내렸다 하며 4시간 예정으로 종점인 마등령까지의 능선이다.
이미 5시간의 산행을 한 우리는 또 다른 산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더구나 대청봉까지는 계속 오르막 산행이지만 공룡능선은 큰 오르내림만 4번, 적은 것까지 합치면 7-8번의 오르내림을 계속해야 하는 강행군으로 설악산에서 가장 힘든 산행로로 꼽힌다.
(10:29~14:25)공룡능선
공룡능선에서 바라다보는 설악산은 백문이 불여일견.
나와 슈맑이가 찍은 공룡능선의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빼어난 절경의 봉우리 사진들을 꼭 감상해 보시길 권합니다.
공룡능선 절반정도를 지나자 난 기진맥진.
나한봉을 지나 마지막 마등령을 향해 오르는 바위절벽 로프구간은 팔 힘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도저히 몸이 당겨지질 않는다. 한두 번 시도해보았는데 도저히 안 되어 5분간 휴식.
힘을 다시 모은 난 겨우 그것도 기다시피해서 마등령 암벽을 올랐다.
(14:25)마등령(한계령에서 15.5km)
드디어 공룡능선의 마지막 봉우리인 마등령에 닿았다.
공룡능선 구간 내내 날 이끌어주고 기다려준 장포드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마등령 팻말 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다. 요전 백두대간 산행에서 이곳 마등령에서 비선대로 내려갔다고 한다.
비선대로 하산하는 길이 장난 아니라는 말을 들으니 지칠 대로 지친데다 무릎에 통증이 오기까지 한 난 더욱 기진맥진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내려 갈 수밖에는....
(14:43)마등령정상
마등령이 끝인가 했더니 또 오르막이다. 겨우 올라서니 마등령 정상이란 팻말이 보인다.
(14:43~17:10)마등령에서 비선대 구간
체력으로 걷는 게 아니라 악으로 걸었다.
하산길이라지만 가파른 내리막에 바위로 울퉁불퉁한 길 같지도 않은 길이 비선대 끝까지 이어졌다.
내 평생 이렇게 탈진해서 산행하기는 첨이다.
물론 단번에 10시간 이상 걸어 본 것도 첨이며 봉우리를 10여개 넘어 본 것도 첨이다.
뭐든지 산행의 기록을 세운다는 의의가 없는 건 아니지만 두 번 다신 못 할 것 같고 할 이유도 없다.
만약 장포드 없이 혼자서 걸었다면 적어도 1시간 이상 더 걸렸으리라.
기다려주고 힘주고 무릎보호대 주고 물주고 격려해준 장포드 정말 고맙다.
언제 원수 갚지?
(17:10)비선대(한계령에서 19.0km)
드디어 비선대 계곡이다. 다 왔다는 느낌에 힘이 더욱 빠진다.
설악동에서 비선대까지는 3년 전 가족과 함께 들린 적이 있던 곳이다.
그 때의 즐거웠던 기억을 되새기면서 힘든 걸음으로 먼저 간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그 어딘가의 식당을 향했다.
(17::40)비선대에서 설악동 중간 식당(한계령에서 20.5km)
비선대를 지나 몇 군데의 문을 닫은 식당을 지나치니 저 멀리 식당 불빛이 나타났다.
아마도 우릴 기다리는 일행이리라. 아니나 다를까 우릴 반갑게 맞아준다.
축 늘어진 우릴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막걸리와 잔치국수가 우리 힘을 북돋워준다.
나와는 달리 장포드는 거뜬하다. 내가 아니었으면 선두 조에 끼었으리라.
(어느 정도 원기를 찾아 웃음띠며 식당에서 장포드와 함께)
(18:30)설악동(한계령에서 22.0km)
식당에서 기다리다 조우한 슈맑이 일행과 같이 오늘 산행의 종점인 설악동매표소에 무사히 도착.
오늘 성공적인 설악공룡구간의 산행을 성공적으로 마친 완주자들 축하드리며,
나 자신도 자축하고 싶다.
2006년 11월13일 박성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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