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능호관 이인상 "설송도" 본문
"올곧은 선비의 자화상-의리의 으뜸 겨울 소나무"
늙은 소나무 두 그루가 화폭을 가득 메우고 있다.
윗부분과 아랫부분이 화면 밖으로 잘려 나가 그 존재감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오는 낙락장송落落長松이다.
가지가 높고 빼어나서 낙락이라 하고, 아름드리 줄기가 까마득하게 자랐으므로 장송이다.
소나무가 늙어 낙락장송이 되고 보면 모진 눈서리나 비바람에도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온 천지에 흰눈이 날릴지라도 묵묵히 그 시련을 견뎌내는 것이다.
늙은 나무인지라 가지는 성글지만 그 성근 가지에 이파리만은 더욱 빽빽하고 기세좋게 솟아났다.
그것은 차가운 대기 속에서 오히려 푸르르다.
그리하여 만인이 절로 우러러보며 범접치 못하게 하는 고요한 위엄에 차 있다.
그림 속의 소나무 한 그루는 잣대처럼 똑바르고 곧으며 다른 한 그루는 비스듬히 뉘여 서로 교차되었다.
곧은 나무는 화폭의 한가운데 서서 마치 거대한 목조건축의 두리기둥인 양 보는이에게 숙연한 수직선의 시각 충격을 준다.
그리고 곧 무너져 내릴 듯 휘어진 노송이 보는이로 하여금 일종의 비감한 정서를 함께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작품 아래쪽 구석에는 예리하게 각이 진 바위 무더기가 있다.
흙 한줌 보이지 않는 저 비참하리만큼 척박한 환경 속에서, 소나무들은 더 더욱 강인한 의지로 뿌리를 깊이 박고 굳세게 대지를 딛고 섰다.
그런데 돌이란 것은 또한 어떠한 물건인가?
옛분들은 "돌은 깨뜨릴 수 있으나 그 견고함을 뺏지는 못한다(석가파이불가탈기견石可破而不可奪其堅)"고 하였다.
이것은 바로 "선비는 죽일 수 있으나 그 뜻을 빼았지는 못한다(사가살이불가탈기지士可殺而不可奪其志)"는 말을 연상시킨다.
그러고보면 소나무를 그린 필선과 돌을 그린 필선이 기본적으로 서로 다르지 않으며, 특히 바위의 준법이 마치 얼음에 금이 간 듯 차갑고도 매서운 기세를 보여주고 있으니, 이는 작가 성품의 준엄한 일면이 저절로 작품에 배어 나온 것이라 하겠다.
백설을 이고 선 늙은 소나무가 이인상의 높은 절개를 상징한다면, 날카롭게 결이 진 바위는 그대로 '얼음처럼 맑고 쇠처럼 단단한 마음' 그것이다.
하늘은 어두침침하다.
그림 바탕을 메운 바림은 단번에 매끈하게 펼쳐진 것이 아니라 농담이 다른 여러 차례의 붓질로 이루어져 있다.
때문에 울먹울먹해진 바림은 오히려 눈에 젖어 차고 습한 대기의 느낌을 잘 살려내고 있다.
또 일체의 배경은 생략되고 오직 두 그루 소나무만이 잿빛 하늘 높이 솟아올라 구름을 능멸하듯이 독야청청 빈 산을 지키고 서 있다.
여기서 소나무 전체가 드러나지 않고 화면 바깥으로 위아래 부분이 잘려 나가게 한 구성은 참으로 절묘하다.
그것은 대상이 손쉽게 호락호락 한눈에 잡히지 않도록 한다.
그럼으로써 거꾸로 이 소나무에 깃들인 크낙한 심지心地를 보는이로 하여금 상상 속에서 그려보게 한다.
<설송도>의 구도는 참으로 대찬 기세와 아울러 묘한 여운을 가졌다.
우선 첫눈에 가득 들어오는 두리기둥 같은 거목으로 화폭 위아래를 꿰뚫듯이 중심축을 형성한 후에, 위에는 낙낙한 잔가지를 일산日傘처럼 드리워 기품있게 뻗게 하고,아래는 베일 듯 날카로운 윤곽을 가진 바위에 희게 드러난 뿌리로 무더기를 이루게 했다.
이렇게 위와 아래가 덩어리진 경물로 채워지고 가운데는 텅 비게 하였으므로 보는이의 시선은 자연히 위에서 아래로, 또다시 아래서 위로 늙은 소나무를 쓰다듬듯 오르내리게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그림이 너무 단순하므로 이인상은 무너질 듯 휘어져 내린 한 그루 노송을 또 십자로 교차시켰다.
그 결과 이루어진 당당한 공간의 분할은 화면을 자로 잰 것처럼 적정한 여백을 형성하였다.
마치 잘 쓰여진 예서체를 보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그림의 획 자체는 모두 가늘고 비교적 굵기의 변화가 적다.
오직 미묘한 농담의 조절이 눈에 뜨일 뿐이다.
그래서 작품은 종횡무진한 변화를 추구했다기보다 어디까지나 엄정한 전서와 같은 차분한 맛을 잃지 않았다.
특히 예서를 연상케 하는 곳은 뻗어 나간 잔가지가 굽어진 모양새라 하겠다.
굵은 가지나 가는 가지나 꺾어져 나가는 곳마다 힘이 들어가서 불쑥불쑥 뼈마디가 돌출한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삼엄한 골기骨氣가 여기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또 곳곳에 극히 아껴가며 찍어놓은 몇 개의 농묵 태점苔點이 쨍하고 소리를 낼 듯하여 보는이의 정신을 퍼뜩깨게 한다.
그러나 저 비틀리고 꺾여 나간 나뭇가지들은 모두 천성대로 자라난 형상일 뿐이다.
그것은 나무 위에 앉은 눈서리와 같은 주위 환경이 만들어낸 것이지, 나무가 스스로 되고자 해서 제멋대로 만들어낸 모양이 아니었다.
정조때 사검서의 하나였던 청장관 이덕무는 선비가 근신함에 있어 가장 유의할 점으로 '담박澹泊'을 강조하였고 자신은 이인상을 몹시 존경하고 있었다.
이 '담박함'은 바로 이인상의 <설송도>가 추구한 경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담박함'은 진하고 자극적이며 무언가 교묘한 효과를 보려는 생각의 반대 개념이다.
그러므로 <설송도>는 짐짓 보는이를 전제하지 않고 혼자 그저 그려본 듯한 경계를 표방하며, 나를 알아달라고 남을 설득하려는 듯한 재주를 드러내지 않는다.
한마디로 이인상은 담담한 의취意趣를 화면 위에 은은하게 띄어본 것으로 만족했던 것이다.
아마도 그서은 비오는 날 아무도 듣는 이 없이 홀로 거문고 정악곡을 뜯어보는 마음과 완전히 같은 것일 게다.
※이인상李麟祥(1710~1760)은 영조때 선비로서 시서화詩書畵 삼절로 널리 추앙받았다. 증조부가 서자였기 때문에 하위벼슬을 지내다가 사퇴한 후 시골에서 은거하며 여생을 보냈다. 생전에 조선제일의 전서 대가로 꼽혔으며 전각에도 조예가 깊었다. 호가 능호관凌壺觀이다.
※이 글은 고 외우오주석이 지은 <옛그림 읽기의 즐거움 1>(1999, 솔출판사)에 실린 글을 발췌 정리한 것이다.
2010. 1. 6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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