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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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국내

2015. 6/7 여주 세종 영릉

새샘 2015. 10. 9. 12:39

경기 여주시 능서면 영릉로에 있는 영릉에는 조선 4대 임금인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능인 영릉英陵과 과 17대 임금인 효종과 인선왕후의 능인 영릉寧陵이 있다.

 

영릉 배치도

 

 

 

영릉英陵은 조선 제4대 세종世宗과 소헌왕후憲王后의 능이다.

세종(1397-1450, 재위 1418-1450)은 제3대 태종의 셋째 아들로 1418년 양녕대군이 세자에서 물러나자 뒤를 이어 세자로 책봉된 뒤 경복궁 근정전에서 왕위에 올랐다. 재위 기간 32년 동안 훈민정음 창제, 집현전 설치, 6진 개척, 쓰시마섬 정벌, 측우기 제작 등 정치, 경제, 문화, 과학 전 분야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소헌왕후(1395-1446)는 청천부원군 심온의 딸로 태종 8년(1408)에 충녕대군(세종)과 가례를 올렸다. 세종과 사이에서 8남 2녀를 두어 조선 왕비 가운데 가장 많은 자녀를 둔 왕비로 손꼽히며, 궁궐 안주인의 소임을 훌륭히 수행하여 후궁들의 질투가 없었다고 한다.

 

 

 

조선왕릉 주요 상설常設(언제나 마련되는 시설이나 설비)의 위치도

 

 

 

 

세종전 맞은 편에 있는 영릉 재실齋室과 왼편에 보이는 영릉 진입문인 훈민문. 재실은 능 제사와 관련한 전반적인 준비를 하는 곳으로서 왕릉을 관리하는 능참봉이 상주한다.

 

 

 

훈민문을 지나서 실질적인 영릉이 시작된다.

 

 

 

훈민문을 지나면 홍살문으로 이어지는 돌길이 시원하게 뻗어 있으며, 길 왼쪽의 연못에는 방문객들이 던져준 먹이를 먹으려고 큰 잉어들이 모여 들고 있다.

 

 

 

앞에 홍살문이 보이고 그 뒤에 정자각이 있다.

 

 

 

홍살문紅箭門금천교禁川橋

금천교는 왕릉 주위를 돌아흐르는 금천을 건너는 다리로서 속세와 성역의 경계이다.

홍살문신성한 성역임을 알리는 문으로서 붉은 칠을 한 둥근 기둥 2개를 세우고 위에는 살을  박아 놓았다. 홍문 또는 홍전문이라고도 한다.

 

 

 

홍살문을 지나면 왕릉이 한 눈에 들어온다. 봉분封墳 앞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이 정자각, 왼쪽에 측면이 보이는 건물은 수라간, 오른쪽으로 측면이 보이는 두 건물은 차례로 비각과 수복방이다.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진 길을 참배하는 길이라는 뜻으로 참도參道라고 한다. 박석을 깔아 놓았으며 왼쪽의 약간 높은 길은 신 즉 귀신과 영혼다니는 신도神道, 오른쪽 약간 낮은 길은 제사를 지내러 온 임금이 다니는 어도御道. 참도 왼편 잔디밭에서 숲을 이룬 소나무의 붉은색 나무줄기들이 고풍스러움을 풍긴다.

 

 

 

정자각丁字閣-능의 제향을 올리는 집으로서 위에서 보면 정丁자 모양으로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제향을 올릴 때 왕의 신주神主 즉 위패를 이곳에 모신다.

 

 

정자각 왼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제사에 필요한 음식을 만드는 수라간과 부엌

 

 

정자각 왼편에서 바라본 세종대왕과 소헌왕후를 합장한 영릉. 영릉은 하나의 봉분 아래에 왕과 왕비 두 분의현궁(광)을 마련한 동봉이실합장릉이다. 영릉은 조선왕조 최초의 합장릉.

 

 

 

봉분으로 올라가려면 정자각 왼쪽길을 따라 가면 봉분 가장 낮은 쪽에 네모 돌구멍(사각형 석함)이 있다. 이 돌구멍 이름은 예감瘗坎이며, 제례가 끝나고 제례음식을 치우면서 축문을 여기에 태워 묻는다.

 

 

봉분 오르는 계단 

 

 

인터넷에서 찾은 북쪽인 봉분 뒤에서 바라본 영릉

 

 

 

봉분 입구에 서 있는 문인석(왼)과 무인석(오른), 그리고 석마 2개

 

 

한가운데 능침陵寢(능상: 능 주인이 잠들어 있는 곳), 가까이에서 능침을 둥글게 병풍석屛風石과 병풍석의 기둥인 난간석, 봉분을 보호하기 위해 봉분의 동, 서, 북 삼면에 둘러 놓은 담장인 곡장曲牆, 능침의 영혼이 나와서 놀게 하기 위하여 무덤 앞에 만들어 놓은 직사각형의 돌 제단인 혼유석魂遊石, 혼유석 양쪽에 세우는 여덟 모로 깎은 한 쌍의 돌기둥인 망주석望柱石, 혼유석 앞에 있는 돌로 만든 등인 장명등長明燈, 장명등 좌우에 두 손을 모으고 홀笏을 들고 서 있는 문관인 문인석文人石, 문인석 옆에 있는 석마石馬.

 

 

 

병풍석 주위에는 돌로 만든 동물상이 좌우에 각각 4개씩 있다. 맨 앞과 세 번째는 석양石羊, 두 번째와 4번 째는 석호石虎.

 

 

문인석 아랫단으로 좌우로 두손을 맞잡고 서 있는 무관인 무인석武人石석마 

 

 

 

능침 앞에서 내려다 본 정자각 주변. 왼쪽 앞 건물이 비각, 뒷 건물은 수복방

 

 

봉분 왼쪽길로 올라가서 내려올 때는 오른쪽길로 내려온다. 내려오면 가장 먼저 만나는 상설이 영릉비英陵碑다. 세종대왕릉은 원래 헌릉(지금의 서울 내곡동) 서쪽 산줄기에 있었는데, 예종 1년(1469)에 이곳으로 이장했으며, 소헌왕후를 합장하였다. 영릉비문에는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약력, 영릉을 옮긴 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며, 영조 21년(1745)에 세웠다.

 

 

비각碑閣비석碑石-옆에 있는영릉비를 만들 때 같이 만들어 졌으며, 비문에 "조선국 세종대왕영릉 소헌왕후부좌 朝鮮國 世宗大王英陵 憲王后"라고 새겨 왕비가 대왕의 왼편에 묻혔음을 기록하고 있다.

 

 

수복방守僕房-제기를 보관하거나 능을 지키는 관리인 수릉관守陵官 또는 청소일을 하는 관노비인 수복이 거처하던 곳. 터만 남아있던 것을 발굴하여 1977년 원형 복원하였다.

 

 

2015. 10. 9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