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2016. 6/7 여주 봉미산 신륵사 본문

여행기-국내

2016. 6/7 여주 봉미산 신륵사

새샘 2016. 2. 9. 14:29

봉미산鳳尾山 신륵사神勒寺는 우리나라에서 산이 아닌 강가(남한강)에 있는 보기드문 사찰로서 주소는 경기 여주시 신륵사길 73(천송동)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용주사의 말사이다. 신륵사 홈피에 소개되어 있는 역사를 보면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근거는 없다. 절 이름의 유래에 대한 두 가지 전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고려 우왕 때 여주에서 신륵사에 이르는 마암馬岩이라는 바위 부근에서 용마가 나타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자 나옹선사가 신(神)기한 굴레(勒)를 가지고 그 말을 다스렸다는 설화에서 유래했다는 것. 다른 하나는 고려 고종 때 건너편 마을에 용마가 나타나 사람들이 걷잡을 수 없이 사나워서 인당印塘대사가 나타나 고삐를 잡으니 말이 순해졌으므로 신력으로 제압하였다하여 신력의 신神과 제압의 뜻인 륵勒을 합쳐 신륵사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보제존자普濟尊者 나옹화상懶翁和尙이 머물다가 입적하였다.


남한강에서 배 타고 바라본 신륵사(출처: http://noza.tistory.com/47)




신륵사 전각 배치도(출처: http://blog.daum.net/dk-choi/5694630)



절에 들어갈 때 모든 세속의 번뇌를 씻고 일심一心으로 진리의 세계를 향하라는 의미를 가진 절의 첫 번째 문인 일주문一柱門과 매표소




해탈문解脫門 또는불이문不二門이라고도 부른다.




해탈문 오른쪽 남한강변의 2층 누각-최근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며 이름은 붙어 있지 않다. 누각 위에 앉거나 누워서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면서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다.





누각 옆에서 바라본 남한강과 건너편의 조포나루터




우물이 있는 정자 세심정洗心亭




세심정 왼쪽 위에 있는 범종각梵鐘閣




관음전觀音殿-관음보살을 모신 전각으로서 극락보전 진입로 입구에서 범종루와 마주 보고 있다.




명부전冥府殿-부처가 되길 미루면서 인간을 구원하는 보살인 지장보살을 주불로 하고 지옥에서 죽은 자의 죄를 심판하는 10명의 왕인 시왕十王을 모신 전각




공사 중인 조사당 앞에 있는 약 650년 수령을 가진 보호수 향나무




신륵사의 주불전으로서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모신 극락보전極樂寶殿-아미타불은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부처로서 죽은 이의 극락왕생과 함께 중생들의 수명장수와 안락을 돕는다. 극락전, 아미타전, 미타전, 무량수전, 수광전 등의 이름으로도 불린다.

극락보전 앞뜰에는 보물 제225호인 다층석탑多層石塔이 서 있다. 이 탑은 높이 3m의 흰 대리석 탑으로서 원형이 많이 훼손된 탓에 정확한 층수를 알 수 없으므로 다층석탑이란 이름이 붙었다. 정확안 축조연대는 알 수 없으나 양식으로 보아 조선 성종 때 중창할 때(1472년) 조성된 것으로 추정.




신륵사 종무소 적묵당寂默堂




요사채 심검당尋劍堂





보호수 은행나무-수령 650여 년, 높이 22m, 둘레 3.1m




구룡루九龍-사찰 의식의 집전장소. 석가모니 탄생 시 9마리의 용이 물을 뿌려 목욕시켰다는 설화에서 미루어볼 때 창건설화에 나타나는 용마와 연관된 누각으로 보인다. 안에는 한지로 만든 3층탑과 역시 한지로 만든 종이 있다.






담 벼락에 심은 원예종 꼬리풀





산신각山神閣-토속신인 산신을 모신 전각이지만, 신륵사에는 산신, 독성, 칠성의 삼신三神을 같이 모시고 있으므로 삼성각三聖閣이란 이름이 맞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옆에 서 있는 설명판에는 삼성각으로 표기되어 있다.




극락보전 서쪽에 새로 지은 공양실과 템플스테이 전용의 신륵사 선우학교 건물





보제존자 석종 오르는 길 입구의 소나무숲




보제존자 석종石鐘, 석등石燈, 석종비石鐘碑-보제존자普濟尊者는 호가 나옹懶翁, 법명이 혜근惠勤(1320-1376)인 고려 공민왕 때 승려로서 흔히 나옹선사懶翁禪師라고 불린다. 무학대사가 제자이며, 지공指空, 무학無學과 함께 3대 화상和尙 중 한명이다. 보제존자는 공민왕이 내려준 법호. 이곳 신륵사에서 입적.





보제존자 석종-나옹선사 입적 3년 후인 1379년에 건립된 부도(높이 1.9m, 지름 1.1m)로서 종 모양이라고 해서 석종이라 하였다. 부도의 형태가 통도사 계단사리탑과 비슷하며 종 모양 탑신 꼭대기에 화염문을 본뜬 寶珠보주가 얹혀 있다. 이렇게 단순한 부도의 형태는 조선을 거쳐 오늘날의 일반적인 부도가 된 원형으로 간주되어 보물 제228호로 지정되었다.




보제존자 석등-석종부도를 밝히는 도구인 공양구供養具. 석등은 중생들의 어두운 마음 즉 무명無明을 밝히는 역할을 한다. 화강암과 대리석으로 만들었으며, 특히 화사석은 조각을 위해 대리석을 사용하였다. 단순한 석종과는 대조적으로 석등은 8각형으로 섬세하고 화려하게 장식함으로써 조화를 이룬다. 높이 1.93m. 고려말기의 대표적인 작품이며 보물 제231호.




보제존자 석종비-석종부도를 조성한 내용과 나옹선사를 추모하는 내용을 기록한 묘비로서 목은 이색이 글을 지은 해서체 비문이다. 고려 후반기의 전형적인 비석의 형태를 보여주는 비의 몸체 즉 비신碑身은 대리석이며 아래의 비대와 지붕인 옥개는 화강암. 보물 제229호.




부도浮屠-뒤의 부도는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 석조부도로서 고려말 조선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 때부터 유행한 양식의 화강암 부도이며 높이는 225cm. 사리함은 발견되었지만 사리의 주인은 모른다.

앞의 부도는 공 모양의 원구형 圓球形 석조부도. 높이 220cm. 역시 사리의 주인은 모름.




보수 중인 조사당祖師堂



보수하기 전의 조사당 사진-보물 제180호. 신륵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서 지공, 나옹, 무학 3화상의 덕을 기리고 법력을 숭모하기 위해 영정을 모셔놓은 불전이다. 세 사람은 서로 관계가 돈독했던 스승과 제자로 고려말 기울어가는 불교계에서 한 가닥 빛이 되었던 스님들로 추앙을 받고 있다. 조사당 건물은 전체적으로 현란하지 않으며 구조적으로 견실한 느낌을 주는 조선초 다포집 계통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고 한다.




다층전탑 多層塼塔-남한강가 아담한 동산 위에 세워진 이 탑은 현존하는 유일한 벽돌로 만든 높이 9.4m 고려시대 전탑으로 보물 제226호. 우리나라의 탑은 대부분 석탑인 반면 중국 탑은 대개 전탑이다. 신륵사는 예로부터 벽돌로 된 탑이 있다는 의미로 벽절 즉 벽사甓寺라고 불리었다. 정확인 건립연대는 알 수 없지만 조선 영조 때인 1726년 중수한 기록과 더불어 벽돌 문양과 전체 양식으로 미루어 고려시대 건축물로 추정된다.






다층전탑에서 내려다 본 강월헌삼층석탑, 그리고 남한강 조포나루




강월헌江月軒-남한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한 눈에 바라보면서 쉴 수 있는 6각형 정자. 이 곳은 나옹화상의 다비장소 즉 화장터였는데 제자들이 스승을 추모하기 위해 정자를 짓고 나옹 생전의 당호인 강월헌이라 하였다. 현재의 정자는 처음 지은 강월헌이 1972년  홍수로 떠 내려간 후 철근과 콘크리트로 1974년 재건축한 것이다.




삼층석탑-강월헌을 지을 때 같이 세운 석탑




강월헌에서 바라본 남한강과 조포나루






2016. 2. 9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