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두성령 이암 "모견도" 본문

글과 그림

두성령 이암 "모견도"

새샘 2015. 12. 11. 22:21

젖 물리는 어미 개를 보며

이암, 모견도, 16세기, 종이에 담채, 73.2x42.4㎝, 국립중앙박물관(사진 출처-출처자료)

 

사람이나 개나 새끼에게 젖 물리는 어미의 모습을 가만히 보노라면, 이상하게도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뭉클한 것이 올라온다.

갓 태어나 솜털이 보송보송한 새끼는 눈뜨기도 버거워 겨우 어미의 젖 냄새 하나로 따뜻한 가슴을 찾아 파고드는데, 어떻게 보면 새끼에게는 어미의 가슴을 떠나는 순간 험난한 세상을 향한 걸음마가 시작되니, 새끼에게 어미의 품은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풍요로운 대지다.

 

이암<모견도母犬圖>에 등장하는 어미개에게서 젖 냄새와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것은 자식을 품은 어미 개의 눈빛과 모습이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온 힘을 다하여 젖을 빨아야 하는 어린 새끼들이 혹여 더울까 봐 나무 밑을 골라서 젖을 물리고 있지만, 정오의 한낮인지 그다지 시원해 보이지는 않는다.

흰둥이의 등과 검둥이의 배 밑에만 한낮의 짙은 그림자가 만들어졌을 뿐이다.

 

세 마리의 강아지를 들여다보자니 가르륵 가르륵 가는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여간 사랑스러운 게 아니다.

흰둥이, 검둥이, 누렁이를 보면서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있다.

사람들은 아기가 예쁠 때 "아이고, 내 새끼, 아이고 내 강아지"하며 엉덩이를 토닥토닥한다.

아기의 사랑스러움을 귀여운 강아지에 비유한 말이다.

 

이 강아지 가족이 이암의 사랑과 관심 속에서 자랐다는 사실은 자신의 여러 그림에 자주 등장한다는 점에서 잘 알 수 있다.

화가는 집에서 키우던 개가 새끼 세 마리를 낳자, 꼬물꼬물하는 어린 생명체가 귀엽고 신기했던지 수시로 강아지들이 노는 모습을 자세하게 관찰해서 그림에 세세하게 묘사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강아지 세 녀석들이 놀고 있는 모습이 다 다르다.

 

검둥이를 먼저 살펴보자.

엄마의 털 색깔과 몸 형태를 가장 많이 닮은 강아지다.

나중에 자라면 현재 어미 개와 같은 모습일 것 같다.

성품이 온순하여 장난을 심하게 치지도 않고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다니며 신기한 장남감을 찾지도 않는다.

어미의 젖도 어미의 다리를 살짝 밟은 채로 찾는다.

움직임도 호기심도 순한 녀석이다.

다음은 흰둥이를 살펴보자.

흰둥이 녀석은 검둥이와 누렁이보다 호기심이 많고 굉장히 씩씩한 성격이다.

우선 젖 먹는 자세부터 다르다.

뒤로 벌러덩 드러누워 젖을 물고 있는데, 어미 품을 제일 많이 차지하면서 젖꼭지를 가장 적극적으로 빨고 있다.

위로 향한 세 다리는 엄마의 가슴을 받치고 있는데, 세 마리 중에서 어미 개와 가장 밀착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흰둥이가 하는 모양으로 봐서는 한 3일은 굶은 강아지 같다.

마지막으로 누렁이를 들여다보자.

이 녀석이 참 묘한 녀석이다.

지금 다른 형제들은 젖을 열심히 빨고 있는데, 누렁이는 엄마의 등 위에 몸을 걸친 채로 자고 있다.

형제들이 젖 먹을 때 함께 먹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어미 젖을 빠는 것은 어린 강아지에게 중요한 일인데 관심도 두지 않고 잠든 모습이 왜소해 보이기까지 하다.

세 강아지 중에 이 누렁이가 몸이 제일 약한 것 같다.

 

홀쭉한 가슴의 어미 개는 온순한 자식, 호기심이 많은 자식, 병약한 자식 모두를 품고 있다.

어미의 근심 어린 눈은 자신의 등 위에서 잠든 병약한 자식을 끔벅끔벅 바라보다가 허공을 바라보다가 한다.

젖을 빠는 자식을 위해서는 잘 빨 수 있도록 몸을 최대한 낮추어 주고, 등 위에서 잠든 자식을 위해서는 떨어질세라 몸을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 뒤로 누워 젖 빠는 자식을 위해서는 혹여 얼굴이 짓눌려 숨 쉬기 불편할까 봐 왼쪽 앞발과 뒷발을 내내 들고 있다.

 

모견도 세부1

 

앙상한 두 다리를 땅에 제대로 내려놓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를 한 어미는 자식들이 배불리 다 먹고 잘 때까지 불편한 몸을 움직일 수 없다.

몸이 얼마나 힘들까, 가슴이 뭉클해진다. 어찌 보면 어미 개의 몸집도 그렇고 크고 다부진 것 같지는 않은데, 뭐라 말할 수 없는 눈빛, 저 눈빛에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뿍 담겨 있다.

이처럼 <모견도>의 압권은 어미 개의 눈빛과 자식을 감싸 안은 몸의 표현인 것이다.

 

 

화가가 반려견을 사랑한 방법

모견도 세부2

 

어미 개와 강아지들의 표정을 이토록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시간의 관찰력과 집중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애정 어린 눈빛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강아지의 성격까지 잘 드러날 정도로 표현이 섬세하다.

<모견도>에서 사용한 기법은 수묵을 사용하여 형태를 그리는 몰골법沒骨法으로, 먹의 번짐을 잘 다루어 둥글둥글한 입체감이 잘 나타나 있다.

등 위에서 자고 있는 누렁이의 자세를 통해서도 어미의 몸통이 둥그런 형태임을 느끼게 하고, 품 안의 강아지들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을 통해서도 각각의 입체감과 복슬복슬한 털의 따스함까지 잘 전해 준다.

 

바닥에 뻗은 어미 개의 다리 길이을 자세히 살며보면 다리가 아주 긴 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몸통에 비해 작은 귀, 이마와 양미간을 따라 주둥이까지 길게 살아 있는 얼굴선, 그리고 오른쪽 뒷발 위에 올려놓은 꼬리의 표현은 어미 개가 꼬리가 길고 몸매가 날렵한 개임을 알려 준다.

어린 생명들을 살짝 밀어내고 어미 개를 바로 세운다면, 꽤 멋진 몸매를 보여 줄 것 같다.

어미 개를 중심으로 밀착된 강아지들의 각기 다른 자세가 더없이 사랑스럽고 조화롭다.

 

 

 

이암, 모견도 세부3

 

나른하면서도 평화로운 부위기의 그림에 소소한 재미를 주는 장치들이 발견되는데, 그 중에 제일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이 어미 목에 걸린 붉은 목걸이다.

이런 목걸이는 현대의 만물상에서 흔하게 파는 디자인이지만 당시에는 귀한 것으로, 황금색 방울과 붉은 꽃 수술 장식이 어미 개의 매끈한 목에 매우 잘 어울린다.

우리나라의 전통에서 붉은색은 귀신을 물리치는 의미를 가진 색이고, 황금색은 가장 귀한 색으로 왕의 용상이나 곤룡포 등 주로 왕실에서 사용되었으니, 어미 개의 목걸이를 통해 개 주인은 신분이 매우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작은 재미는 이암이 사용한 낙관의 모양이다.

낙관이란 글씨나 그림을 마무리 짓는 단계에서 화가가 자신의 호 또는 자, 제작 날짜, 그림을 드린 동기 등을 글로 기록하고 찍는 도장이다.

이암은 이 그림에서 낙관을 2개 찍었다.

하나는 중국 청동시대에 향을 피울 때 쓰던 향로 모양을 도드라지게 새긴 도장으로 무성한 나뭇잎 밑에 찍었고, 그 바로 밑에는 자신의 자인 '정중靜仲'을 음각으로 새긴 네모난 도장을 찍었다.

화가가 의도했든 않았든 간에 이런 작은 장치들은 그림 감상의 재미를 더해 주는 역할을 한다.

 

모견도 세부4

 

이 그림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추가된 붓질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이암이 그림을 끝내려고 전체를 살펴보다가 나뭇잎이 너무 무성하여 강아지보다 더 두드러진다고 느꼈던 모양으로, 붓에 물을 듬뿍 묻혀 무성한 나뭇잎의 윗부분과 나무뿌리 부분을 녹이듯 쓱슥 문질러 준 흔적이 보인다.

한 사물을 다른 사물과 경계 짓지 않고 깊은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가도록 하면서, 젖을 주는 어미 개에 대한 시선을 마지막까지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 마음이 참 보기 좋다.

 

<모견도>와 같은 새와 동물을 소재로 한 영모화와 풀과 벌레를 소재로 한 초충도는 부귀와 장수 같은 사람들의 현실적인 간절함을 표현한 그림이다.

그 중에서도 나무와 개를 함께 그리는 이유는 개를 나타내는 '개 술戌'자와 '지킬'자의 한자 모양이 비슷하고, '지킬 수戍'자와 '나무 수樹'자의 발음이 같이 때문이다.

<모견도>에도 도둑에게서 집을 지켜 주고 세상의 모든 나쁜 것에서 가족을 지켜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게다가 어미 개가 새끼 세 마리를 낳고 젖 먹이는 순간을 그렸으니, 이 그림이 걸린 집은 자손도 번창하고 돈도 많이 벌 것이 틀림없다.

 

○이암李巖(1499~?)은 조선 초기의 화가다. 세종의 넷째 아들 임영대군 이구의 증손으로 왕손이며, 두성령杜城令을 제수받았다. 생애에 대해 별로 알려진 것은 없으나 '패관잡기'와 '연려실기술'에는 그의 높은 화명畵名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특히 새나 짐승과 같은 동물 그림인 영모잡화翎毛雜畵에 뛰어났다고 하며, 특히 개 그림을 섬세하게 잘 그려 그를 따를 자가 없었다는 기록이 있다. 대표작은 바로 이 <모견도>.

 

※이 글은 이일수 지음, '옛그림에도 사람이 살고 있네'(2014, (주)시공사)에 실린 글을 발췌한 것입니다.

 

2015. 12. 11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