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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바를 모방하면 그 결과가 나타난다는 믿음에서 시작된 '공감주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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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바를 모방하면 그 결과가 나타난다는 믿음에서 시작된 '공감주술'

새샘 2015. 10. 8. 22:29

사르코지 부두 인형 : 프랑스의 K&B 출판사가 출시한 이 주술 인형은 사르코지 대통령을 본뜬 몸체와 몸통을 찌르기 위한 핀, 사용 설명서가 한 세트로 구성되었다. 사르코지 대통령의 얼굴과 연결된 몸통 곳곳에는 주문을 떠올리게 하는 각종 글귀들이 적혀 있었다. '더 벌기 위해 더 일하자', '사라져라, 패배자', '키높이 구두'(사르코지의 작은 키를 비꼼), '하이퍼 대통령'(지나치게 권력이 강한 대통령) 등. 대부분 사르코지 대통령의 정책이나 신체적 특징을 풍자하는 글귀들이었다. 사용 설명서에는 사르코지 대통령이 하지 않았으면 하는 내용이 담긴 글귀를 사용자가 바늘로 찌르라고 되어 있다(2008년 10월24일)

프랑스 23대 대통령(2007-2012)을 지낸 니콜라 사르코지 Nicolas Sarkozy(1955-)는 재직 중이던 2008년 한 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 업체는 사르코지를 모델로 한 <부두 voodoo 인형>을 만들어 인터넷을 통해 판매하고 있었다.

부두는 카리브해의 서인도제도에서 유래한 주술적 종교로, 부두 인형은 특정인을 저주할 때 바늘로 찌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인형 설명서에는 사르코지 대통령이 더 이상 말썽을 일으키지 않게 하려면 어느 부위를 찔러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더 친절한 것은 찌를 핀도 함께 제공한 것이었다.

 

격분한 사르코지는 인형의 판매를 금지해 달라고 소송을 냈다.

업체 관계자는 "사르코지는 정치인자 공인"이라며 "부두 인형의 판금 요구는 그를 풍자한 제품의 유머러스한 특성을 무시한 부당한 처사"라고 반발했다.

프랑스 항소법원도 업체의 손을 들어주었다.

인형의 판매를 금지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면서 기각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 대신 포장지에 '이 키트의 바늘로 인형을 찌르는 것은 사르코지의 존엄성을 공격하는 것'이라는 경고문을 표기하게 했다.

 

인형을 통해 특정 대상을 저주하는 행위가 부두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구석기 시대 크로마뇽인도 유사한 행위를 했다.

동굴 깊은 곳에 사냥 장면을 그림으로 그렸는데, 학자들은 그것을 '공감 주술 sympathetic magic'이라고 부른다.

공감 주술이란 원하는 바를 모방하면 그 결과가 나타나리라는 믿음에 기반을 둔 것이다.

선사 시대 화가들은 화살이 들고 옆구리를 꿰뚫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면, 그 그림 그리는 행위 자체가 실제로 사냥 현장에서 들소를 활로 쏘아 맞히는 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예술작품을 창조한 목적은 미적 감각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식량으로 쓸 동물의 포획을 늘리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의 예술가들은 '심미가'가 아니라 '주술사'였고, 예술은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기 위해 고안된 일종의 주술이었다.

 

공감주술은 우리에게도 있었다.

조선시대 궁중비사를 다룬 텔레비전 사극 중 희빈 장씨(장희빈)를 떠올려 보자. 

야사에 전하기를 희빈 장씨는 처소 부근에 신당을 지어 놓고 이 곳에서 폐비 인현왕후의 짚 인형(이렇게 짚으로 만든 사람 모양의 물건을 우리말로 '제웅'이라고 한다)을 바늘로 찌르면서 저주했다고 한다.

이밖에도 미워하는 사람의 얼굴을 그려 놓고 화살을 쏘는 행위인 '방자(질)' 장면도 사극에서 볼 수 있다. 

서울시청 광장등에서 이따금 벌어지는 특정 인물에 대한 화형식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렇듯 동서고금에 보편화된 공감 주술을 그저 터무니없는 미신적 습속에 불과하다고 간단히 넘겨버릴 수 있는 것일까?

꼭 그렇게 볼 수만은 없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내가 좋아하는 운동선수의 사진을 신문에서 오려냈다고 가정하자.

우리는 바늘로 그의 눈을 파내는 행위를 즐길 수 있을까?

신문지의 글씨가 인쇄된 곳에 구멍을 내듯 아무 느낌 없이 인물 사진에서 눈을 파낼 수 있을까?

그렇게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진에 대해 내가 저지른 행동이 그 사진의 실제 인물에게 한 행동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어디엔가 찜찜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이상하고 불합리한' 생각은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 마음속에도 본능처럼 여전히 살아남아 있다.

괴테의 말처럼 인간 본성이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것임을 확인하게 한다.

 

부두 인형 사건은 우리를 두 번 놀라게 한다.

먼저 자국의 대통령을 대상으로 그런 인형을 만들어 팔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고, 두 번째는 그런 행위를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용인해준 프랑스 사법부의 판결이다.

과연 관용의 나라답다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금기에 대한 도전을 당연시하는 풍토라 프랑스의 예술과 문화도 그렇게 꽃필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쥐그림' 새겨진 G20 홍보포스터 : 2011년 10월 대법원 2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G20&nbsp; 정상회의 포스터를 훼손한 혐의(공용물건 손상)로 기소된 대학 강사 박모 씨에 대해 벌금 2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원심이 피고인을 유죄로 인정한 것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박씨는 2010년 10월 31일 서울 도심 22곳에 부착된 G20 정상회의 홍보 포스터에 미리 준비한 쥐 그림 도안을 대고 검정색 스프레이를 뿌린 혐의로 2011년 1월 불구속 기소됐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쥐 그림을 그려 홍보물을 훼손하는 것은 예술과 표현의 자유를 벗어난 행위"라며 박씨에게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2011년 1월 26일)

2010년 11월 대한민국에서 G20 정상회의 열렸다.

한 대학 강사가 G20 홍보 포스트에 '쥐'를 그려 넣었다.

쥐가 청사초롱을 들고 G20 귀빈들을 환영하는 패러디 포스터였다.

즉각 법의 심판을 받았다. 검찰은 징역 10개월을 구형했고, 1심과 2심 재판부는 200만 원 벌금형을 선고했다.

2011년 10월 대법원은 원심을 확정했다.

 

 

프랑스와 대한민국, 두 나라는 모두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한다.

한 나라는 표현의 자유 위축을 우려하며 대통령도 풍자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다른 한 나라는 예술과 표현의 자유에도 한계가 있음을 내세우며 대통령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는 행위(표면적으로는 '홍보물 훼손'을 언급했지만)에 족쇄를 가했다.

 

두 나라 중 어느 나라가 표방한 자유민주주의에 부합되는 것일까?

 

※이 글은 박상익이 지은 <나의 서양사 편력 1>(2014, 푸른역사)에 실린 글을 발췌한 것이다.

 

2015. 10. 8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