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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심사정 "연지쌍압도" "딱따구리" "강상야박도" "방심석전 산수도" "파교심매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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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심사정 "연지쌍압도" "딱따구리" "강상야박도" "방심석전 산수도" "파교심매도"

새샘 2021. 7. 28. 18:48

삼재三齋의 마지막 사람은 자字가 이숙頤叔인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1707~1769)이다.

심사정의 그림은 비교적 많이 돌아다니기는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논의나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아 부족한 상태다.

 

현재의 생애는 겸재의 일생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현재의 집안은 원래 좋았지만, 할아버지 심익창沈益昌이 과거시험 부정에 연루되었을뿐만 아니라, 내시 한 사람이 왕세자인 영조를 독살하려다 발각된 일이 있었는데 그 배후 인물을 추궁해 보니 심익창이 나와 역도逆徒로 몰렸다.

그래서 현재는 역적의 손자가 되어 그림 그리는 일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그늘진 인생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현재가 죽은 후 장사지낼 여력도 없었다고 하니 가엾은 일생을 지냈던 것 같다.

 

겸재가 비록 넉넉하게 지내지는 않았지만 고을의 원을 지내고 벼슬이 높이 올라가서 나중에는 종2품까지 되고 아들 잘 두고 벗들과 교유 잘 하고 이름도 세상에 나서 다들 알아주는 비교적 평온한 생애를 보낸데 비해, 현재는 그야말로 역도의 손자라 해서 형편없이 살다가 64세에 죽었다.

 

지금은 화가로서의 현재를 겸재보다 낮게 평가하고 있다.

겸재는 개성주의 요소가 강해서 현대의 개성주의에 맞고 민족주의 입장에서 진경산수를 했다고 해서 높은 평가를 받는 반면, 현재는 중국 그림을 많이 모방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현재는 일종의 국제파로서 붓 쓰는 솜씨가 우아하고 부드러워 겸재와 대조가 된다.

그래서 겸현謙玄이라고 하여 겸재와 현재의 그림을 비교해서 논하는 글이 있다.

현재는 세련된 그림을 많이 그렸다.

 

표암 강세황은 현재 그림에서 화훼花卉[꽃과 나무 그림] , 초충草蟲[풀과 풀벌레 그림]이 첫째고, 그 다음이 영모翎毛[새와 짐승 그림], 그 다음이 산수山水[산과 물이 어우러진 자연 그림]라고 했습니다만, 현재는 좋은 산수를 많이 그렸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겸재처럼 특이한 괴량감塊量感[표현하려는 물체를 덩어리지어 무게감이 느껴지는 것]을 주는 특별한 진경산수는 없다.

진경산수라 하더라도 겸재 그림과는 달리 진경이란 기분이 덜 나는 오히려 남화풍의 진경이다.

현재는 원나라 말기의 예운림倪雲林(예친倪瓚)과 명나라의 심석전沈石田을 많이 배웠다고 하는데, 이는 명나라 오파吳派[강소성 소주蘇州 지방에 활약한 문인화文人畵를  그린 화가들] 화가들의 그림을 배웠다는 것이다.

오파 계통의 그림을 세상에 알린 화보인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을 많이 섭렵해서인지 현재의 붓 쓰는 힘이 오파의 부드러운 솜씨를 쓰고 있다.

따라서 당당하고 강한 붓을 쓴 겸재와는 대조가 된다.

어떻게 사제지간에 이렇게 대조가 되는지 몰라도 아주 대조적이다.

 

 

심사정, 연지쌍압도, 비단에 담채, 142.3×72.5㎝, 호암미술관

 

심사정의 그림 가운데 강세황의 평에 따라 화훼 그림부터 본다면, 호암미술관 소장 <연지쌍압도蓮池雙鴨圖>라는 작품을 주목하게 된다.

연꽃이 활짝핀 연못(연지)에 두 마리의 오리(쌍압)가 마주보면서 헤엄치는 이 그림은 중국맛이 있는 화훼도로서 아주 안정적으로 잘 그렸다.

 

 

심사정, 딱따구리, 비단에 담채, 25×18㎝, 개인

 

꽃과 새를 그린 화조화花鳥畵로서 영모도에 해당하는 <딱따구리>아주 예쁜 그림이다.

나무 처리나 꽃 떨어지는 것이 다 부드럽고 색감도 대조가 잘 되어서 좋은 그림이다.

 

 

심사정, 강상야박도, 1747년, 비단에 수묵, 153.2×61.0㎝, 국립중앙박물관

 

현재가 40살 되던 해 음력 정월에 그린 대작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강상야박도江上夜泊圖>는 밤에 강가에 대어 놓은 배를 그린 그림인데, 젊은 화가의 그림으로서는 아주 안정되어 있고 잘 그렸다.

역시 대가의 솜씨로서 현재는 재주가 있던 사람임에 틀림없으며, 현재의 초기 걸작으로 평가할 수 있다.

 

<강상야박도江上夜泊圖>는 오른쪽 위의 화제를 통해 화가가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풍경을 알 수 있다.

화제는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시 '춘야희우春夜喜雨(봄밤에 내린 반가운 비)'의 두 구절을 옮겨놓은 것이다.

 

"야경운구흑野徑雲倶黒(들길은 구름과 함께 어두운데)
  강선화독명江船火獨明(강가 배에는 등불 홀로 밝네)"

 

두보가 봄비를 감상하는 시점은 비구름에 달도 뜨지 않은 온통 어두운 밤이다.

그림에서 유일하게 붉은 채색이 조금 가해진 부분은 강가인 댄 배에 켜진 등불을 암시한다. 

심사정은 두보의 시 두 구절을 재치 있게 빌려와 칠흑같이 어두운 밤 풍경을 그림으로 옮기는데 성공했다.

그림의 순묵으로 그린 촉촉해 보이는 먹의 표현은 봄비를 연상시킨다.

이렇게 시정詩情을 표현한 그림을 시의도詩意圖라고 하며 산수화의 한 갈래다.

 

기다렸던 봄비를 기쁘게 바라보며 다음날 피어날 꽃을 기대하는 시인 두보의 밝은 마음이 느껴지지 않고 대신 알 수 없는 깊이와 외로움이 느껴진다.

즉 이 그림을 통해 평생 우직하게 그림 바보로 살았다던 화가의 모습이 봄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되살아나는 듯하다. 

 

 

심사정, 방심석전 산수도, 1758년, 종이에 담채, 129.4×61.2㎝, 국립중앙박물관

 

명나라 문인 화가 석전石田 심주沈周(1427~1509)를 배웠다고 하는 <방심석전 산수도倣沈石田山水圖>는 현재가 40세가 넘어 그린 그림으로 역시 오파의 솜씨가 엿보인다.

현재의 산수는 중기까지는 겸재의 묵면이라고 할 수 있는 적묵이나 대부벽준이 거의 보이지 않고, 대신 선묘線描[선 만으로 그리는 것]가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겸재 이후로 겸재풍의 묵법을 중심으로 하는 그림과 현재의 선을 중심으로 하는 그림의 양대 계통이 있는데, 현재는 선묘 즉 선의 아름다움을 그린 그림이 많다는 점에서 특색이 있는 것이다.

물론 현재도 중년 이후가 되면 강세황의 말처럼 부벽준을 썼다.

 

 

60세가 넘어서 죽기 1, 2년 전인 61세 그림으로 ≪경구팔경京口八景≫이란 화첩이 있다.

지금은 흩어져서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마지막 두 폭의 그림이 현재 말년의 재미있는 그림으로 생각된다.

현재의 선은 대개 살이 쪘는데, 여기서는 살찌지 않고 부벽준도 사용하고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강세황은 어디인지 잘 모른다고 했는데, 겸재가 장동壯洞에서 서울을 내려다본 그림하고 비슷해서 아마도 장동에서 서울을 내려다본 광경으로 보인다.

≪경구팔경京口八景≫의 '경구'는 서울로 들어오는 입구를 뜻하며 실제로는 서울 인근 지역을 화폭에 담은 듯하다.

마지막 그림은 바다에 파도가 있고 암벽이 있는 그림인데 겸재와는 파도 그리는 것이 아주 다르다.

 

 

심사정, 파교심매도, 1766년, 비단에 담채, 115.0×50.5㎝,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파교심매도灞橋尋梅圖>중국 고사를 표현한 그림으로서 역시 섬세하고 부드러운 중국풍의 선을 써서 그렸다.

또 청나라 말기 양백윤이란 유명한 화가가 극찬했던 산수 그림도 아주 좋은 예에 속한다.

대체로 심사정의 그림은 아취가 있고 선이 부드러우며 부벽을 쓰는 경우에도 칙칙하지 않다.

겸재의 중묵이나 적묵, 대부벽, 묵면, 괴량감 등은 현재에게서 찾을 수 없고, 오히려 초기에 많이 사용했던 피마준과 같이 부드러운 선묘가 현재의 특징이다.

 

※출처

1. 이용희 지음, '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움 - 동주 이용희 전집 10'(연암서가, 2018)

2. 국립중앙박물관 https://www.museum.go.kr/site/main/relic/recommend/view?relicRecommendId=254459(강상야박도)

3. 구글 관련 자료

 

2021. 7. 28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