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노화의 종말 14 - 먹기 좋은 건강 장수 알약 3: 레스베라트롤 본문
1999년으로 돌아가면 당시 우리는 MIT의 레너드 구아렌테 Leonard Guarente 연구실에서 발견한 서투인 장수 경로의 이야기는 점점 열띤 화제가 되고 있었다.
그때 우리는 효모 세포의 분자 수준에서 노화의 원인을 마침내 파악한 상태였다.
생물 종 가운데서 최초였다.
과학자들이 자산이 대단히 명석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새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을 때 느끼는 한껏 들뜬 기분이 아직 가시지 않았을 때였다.
우리는 과학계의 상상을 사로잡은 일련의 유명한 논문들을 통해 효모의 노화 원인이 DNA 끊김과 그에 따라 유전체 전체의 불안정에 대처하고자 Sir2 단백질이 교배형 유전자 mating type gene[자손 번식 즉 생식을 담당하는 유전자]를 떠나기 때문임을 보여주었다.
또 효모에 SIR2 유전자 사본을 추가하면 rDNA(ribosomal DNA 리보솜 DNA: 단백질 합성 소기관인 리보솜 ribosome을 구성하는 RNA]가 안정되고 수명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우리는 유전적 불안정이 후성유전적 불안정과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었으며, 최초로 진정한 장수 유전자 중 하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효모가 굶주리지 않고서도 그 유전자의 혜택을 볼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러나 유전자 사본을 더 복잡한 생물에 집어넣는 것은 단세포생물에 추가하는 일에 비하면 훨씬 어렵다.
게다가 윤리적 문제도 훨씬 많다.
이것이 바로 내가 몇몇 연구자들과 함께 서투인 유전자를 추가로 삽입하지 않으면서 포유류의 서투인 활성을 증진시킬 방법을 찾는 일에 뛰어든 이유였다.
과학이 논리적인 추측과 약간의 구태의연한 행운의 결합물이 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과학계에 알려진 화학물질이 1억 가지가 넘기 때문이다.
과연 어디에서 시작할지조차 알 수 있을까?
다행히 콘래드 하위츠 Konrad Hwwitz가 그 일에 뛰어들었다.
코넬대학교 출신의 생화학자인 그는 당시 생명과학 연구자들에게 실험용 물질을 공급하는 펜실베이니아 기업 바이오몰 Biomol의 분자생물학 부장이었다.
하위츠는 SIRT1 효소를 억제할 화학물질을 찾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효소를 연구하기 시작한 점점 늘어나는 연구자들에게 판매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다양한 후보물질을 평가하다가 SIRT1을 억제하기보다는 자극하거나 '활성화'함으로써 속도를 10배 더 높이는 화학물질을 2가지 발견했다.
우연히 찾아온 행운이었다.
본래는 억제물질을 찾으려고 했을뿐더러 자연에는 활성물질이 아주 드물기 때문이다.
사실 너무 드물기 때문에 대다수 제약사들은 어쩌다가 발견해봤자 잘못 안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해서 굳이 살펴보려고 하지 않는다.
'SIRT1 활성 화합물 SIRT1-activating compound' 즉 '스택 STAC' 중 최초로 발견된 분자는 폴리페놀류 polyphenols인 피세틴 fisetin으로, 딸기와 감 같은 열매의 색깔을 내게하는 화합물로서 노화세포를 죽일 수 있는 기능이 있음이 밝혀졌다.
두 번째로 발견된 분자는 '부테인 butein'으로 옻나무라는 유독 식물을 비롯해 많은 꽃식물에 들어 있다.
이 두 물질은 SIRT1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비록 후속 연구를 자극할 만큼 엄청난 속도로 화학 반응을 일으키지는 않지만 말이다.
하위츠는 초기 연구 결과를 바이오몰 창업자이자 과학 책임자인 로버트 지프킨 Robert Zipkin에게 보고했다.
지프킨은 화학물질의 구조 분야에 백과사전적인 지식을 갖춘 탁월한 화학자이자 기업가였다.
"허, 피세틴과 부테인이라고? 그 두 분자가 어떤 구조인지 알아요?
쌍으로 된 구조예요. 페놀 고리 2개가 다리로 연결된 겁니다.
그런 구조를 지닌 분자가 또 있다는 거 알아요?
바로 레스베라트롤 resveratrol이에요."
2002년은 항산화제 열풍이 한창 불 때였다.
항산화제가 일부에서 믿는 것처럼 노화 억제와 건강에 좋은 만병통치약이 아닐 수 있지만 당시에는 아직 그렇다는 것을 몰랐다.
폴란드 포즈난 의대 Poznan University of Medical Sciences(당시 카롤마르친코프스키 의대)의 과학자들은 레스베라트롤이 항산화제임을 발견했다.
적포도주에 많이 들어 있으며[레스베라트롤은 물보다 알코올에 잘 녹기 때문에 포도주스보다 포도주에 훨씬 많이 함유] 많은 식물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만들어내는 천연물질이다.
몇몇 연구자는 레스베라트롤이 '프랑스 역설'을 설명해 줄 지 모른다고 주장해 왔다.
프랑스 역설이란 프랑스인이 식단에 버터와 치즈처럼 포화지방이 많이 든 식품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음에도 불구하고 심장병 발병률이 낮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지프킨은 레스베라트롤이 피세틴이나 부테인과 비슷한 효과를 낼 것이라고 추정했는데 정말로 그랬다.
우리 하버드대 연구실에서 조사했더니 실제로 나머지 두 분자보다 훨씬 뛰어난 효과를 보였다.
효모의 노화는 부모세포가 분열해 자손세포를 만드는 횟수로 측정하곤 한다.
대개 효모 세포는 25번쯤 분열한 뒤 죽는다.
분열 횟수를 재려면 일주일 동안 현미경을 들여다보면서 세포를 미세 조작해야 한다.
효모를 냉장고에 넣고서 잠을 자러 가는 횟수가 적을수록 효모가 더 오래 살기 때문에 나는 집의 식탁에다가 간이 실험실을 차렸다.
그런데 내 눈을 믿을 수 없는 결과가 나왔다.
레스베라트롤을 먹인 효모는 그렇지 않은 효모보다 좀 더 크기가 작으면서 좀 더 느리게 성장했으며 평균 34회 분열을 한 뒤에야 죽었다.
마치 열량 제한을 한 듯했다.
사람으로 치면 무려 50년이나 수명이 늘어난 것과 같았다.
또 최대수명이 늘어났다.
레스베라트롤을 먹인 효모는 35회 이상까지 계속 분열했다.
SIR2 유전자가 없는 효모 세포에게는 레스베라트롤을 먹여 봤자 아무런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열량을 제한한 효모로도 실험했는데 더 이상의 수명 연장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열량 제한과 레스베라트롤이 활성화하는 경로가 같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즉 열량 제한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말해 주는 실험 결과였다.
정곡을 찌르는 농담 같았다.
허기 없이 수명을 늘릴 수 있는 열량 제한 모방 분자인 레스베라트롤을 발견했을 뿐 아니라 이 물질이 적포도주에 들어 있다는 것까지 알아냈으니 말이다.
하위츠와 나는 포도 같은 식물들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레스베라트롤을 더 많이 생긴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꼈다.
또 우리는 건강을 증진시키는 다른 많은 분자들과 그 화학적 유도체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식물에서 다량 생산된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포도에서 레스베라트롤을, 버드나무 껍질에서 아스피린 aspirin을, 갈레가(프랑스라일락)에서 메트포르민 metformin을, 녹차에서 에피갈로카테킨 갈레이트 epigallocatechin gallate를, 과일에서 케르세틴 quercetin을, 마늘에서 알리신 allicin을 얻는다.
우리는 이것이 이종호르메시스 xenohormesisi의 증거라고 본다.
스트레스를 받는 식물이 자신의 세포에게 숨죽이고 생존하라고 말하는 화학물질을 우리가 같은 용도로 이용한다는 개념이다.
식물 역시 생존 회로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식물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생산하는 이런 화학물질을 감지해 몸에 숨죽이라고 경고하는 일종의 조기경보시스템으로 삼는 쪽으로 인간 역시 진화했다고 본다.
이 생각이 옳다면 자연에서 새로운 약물을 찾을 때 스트레스를 받는 생물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스트레스를 받는 생물, 스트레스를 받는 곰팡이, 우리 창자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미생물무리 등을 말이다.
이 이론은 우리가 먹는 음식과도 관련이 있다.
스트레스를 받는 식물은 자신의 생존 회로를 투입시키도록 경보를 발령하는 이종호르메시스 분자들을 더 많이 함유하고 있다.
가장 색깔이 선명한 것을 고르자.
이종호르메시스 분자는 노란색, 빨간색, 주황색, 파란색을 띠곤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혜택이 하나 더 있다.
그런 것들은 대개 더 맛있다.
세계 최고의 포도주는 피노누아(피노 누아르) Pinot Noir처럼 스트레스에 민감한 품종이나 햇볕이 강하고 메마른 토양에서 자란 포도에서 생산된다.
짐작하겠지만 그런 포도주에는 레스베라테롤이 가장 많이 들어 있다.
가장 맛좋은 딸기는 물이 부족해서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 잎채소를 길러본 사람이라면 다 알듯이 열기와 추위 모두에 노출된 양상추가 가장 잘 자란다.
흔히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 조건에서 기르는 유기농 식품이 왜 몸에 좋은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레스베라트롤은 단순한 단세포생물인 효모의 수명을 늘렸다.
그런데 다른 생물들에게도 과연 같은 효과를 보일까?
동료 연구자인 브라운대학교의 마크 타터 Marc Tatar가 보스턴으로 나를 찾아왔을 때, 나는 그의 연구실에 있는 곤충에게 써 보라며 보풀거리는 흰 레스베라트롤 가루가 든 작은 병—R이라고만 적혀 있는—을 건넸다.
그는 그것을 자기 연구실로 가져가서 먹이에 섞어 초파리에게 먹였다.
몇 달 뒤 그가 전화를 걸어왔다.
"데이비드! 이 R이라는 거 대체 뭡니까?"
초파리 small fruit fly(학명 Drosophila melanogaster)는 실험실 조건에서 평균 약 40일을 산다.
타터는 내게 말했다.
"초파리 수명이 일주일, 때로는 그보다 더 늘어났어요. 평균적으로 50일 넘게 살아요."
사람으로 치면 14년을 더 사는 셈이었다.
우리 연구실에서 레스베라트롤을 먹인 선충도 더 오래 살았는데 선충의 서투인 유전자가 동원되면서 나타난 효과였다.
그리고 우리가 배양하는 사람 세포에 레스베라트롤을 투여하자 DNA 손상이 억제되었다.
나중에 12개월 된 비만 생쥐에게 레스베라트롤을 먹이자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생쥐는 여전히 살찐 모습이었다.
그래서 현재 펜실베이니아대학교 교수로 있는 당시 박사후 연구원 조지프 바우어 Joseph Baur는 내가 무모한 실험을 시키는 바람에 1년 넘게 시간을 낭비해 경력에 피해가 갈 것 같다고 결론 내렸다.
그런데 그는 미국국립보건원의 공동 연구자인 라파엘 데 카보와 함께 생쥐를 해부했다가 깜짝 놀랐다.
레스베라트롤을 먹인 생쥐는 심장, 간, 혈관, 근육의 건강이 정상 먹이를 먹인 비만이 아닌 생쥐와 똑같아 보였다.
또 미토콘드리아가 더 건강하고, 염증이 더 적고, 혈당 수치가 더 낮았다.
해부하지 않은 생쥐들은 정상 생쥐보다 약 20퍼센트 더 오래 살았다.
레스베라트롤이 생쥐를 각종 암, 심장병, 뇌졸중과 급성심근경색, 신경퇴행질환, 염증질환, 상처 치유를 비롯해 수십 가지 질병들로부터 보호하고, 전반적으로 더 건강하게 만들고 회복력을 더 향상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수백 건 발표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레스베라트롤을 간헐적 단식과 결합하면 단식만 했을 때보다 평균수명과 최대수명이 둘 다 크게 늘어날 수 있음을 라파엘 데 카보와 공동으로 발견했다.
생쥐 50마리 중에서 1마리는 3년 넘게 살았다.
사람으로 치면 약 115년을 산 셈이다.
레스베라트롤이 노화에 미치는 효과를 살펴본 최초의 논문은 2006년에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에 포함되었으며, 주류 언론들에서 널리 언급되었다.
우리 모두 여러 TV에 출연했고, 나는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견디다 못한 나는 아내가 태어난 부를로라는 작은 독일 마을로 피신했는데 그곳 역시 뉴스에서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적포도주는 판매량이 30퍼센트까지 늘어났다.
적포도주를 좋아하는 데 마실 만한 좋은 핑계가 필요했단 사람이라면 로버트 지프킨에서 감사해야 할 것이다.
우리 집 주방 벽에는 그날부터 신문에 실린 여러 시사만화가 걸려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톰 톨스 Tom Toles가 그린 것이다.
소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널브러져 있는 비대한 남편이 흥분한 모습을 아내는 무시하려고 애쓴다.
아내가 말한다.
"그 연구에 따르면 매일 적포도주를 750잔에서 1000잔은 마셔야 생쥐에게 준 만큼 되는 거라고.."
그러자 남편이 대꾸한다.
"그 말을 들으니 더 맘에 드는데..."
그런데 레스베라트롤은 그다지 강력한 물질이 아니며 사람의 장내에서 그리 잘 녹지 않는 것이 드러났다.
약물이 질병을 치료하는데 효과가 있으려면 이 2가지 속성이 중요한데 말이다.
이렇게 약물로서는 한계가 있었지만 레스베라트롤은 굶지 않고서도 열량 제한의 혜택을 제공할 수 있는 물질이 존재한다는 중요한 첫 증거를 제공했다.
그래서 전 세계에서 노화를 지연시킬 수 있는 다른 분자들을 찾으려는 경쟁이 시작되었다.
마침내 적어도 과학계에서는 약물로 노화를 늦추는 일이 더 이상 미친 짓이 아니라고 여겨지게 되었다.
레스베라트롤을 연구함으로써 우리는 화학물질로 서투인을 활성화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도 깨달았다.
그래서 동물 대상으로 생존 회로를 자극하고 건강 수명을 연장하는 효과가 레스베라트롤보다 더 강력한 서투인 활성화합물인 스택 STAC을 찾으려는 노력이 활기를 띠었다.
예를 들어 SRT1720과 SRT2104 같은 화합물은 생쥐의 말년에 투여했을 때 건강한 삶을 더 늘리는 효과를 보였다.
지금은 레스베라트롤보다 서투인 활성화 효과가 더 뛰어나다는 것이 드러난 화학물질이 수백 종류 알려져 있으며, 일부 물질은 이미 임상 시험을 통해 지방산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건선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으미 밝혀졌다.
※출처
1. 데이비드 A. 싱클레어, 매슈 D. 러플랜트 지음, '노화의 종말', 부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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