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노화의 종말 21 - 맞춤 신체기관 생산의 꿈 본문
호주 멜버른 Melbourne의 서해안을 따라 죽 뻗은 그레이트오션로드 Great Ocean Road는 세계에서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도로에 속한다.
그러나 나(싱클레어 박사)는 그 도로를 달릴 때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섬뜩했던 날 중의 어느 하루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남동생이 모터바이크를 타고 가다 사고가 났다는 전화를 받은 날이다.
당시 남동생은 23세였고 모터바이크로 전국을 여행하던 중이었다.
동생은 모터바이크를 아주 잘 탔다.
하지만 그날은 도로에 고인 기름 때문에 바퀴가 미끄러지면서 휙 튕겨나갔다.
금속으로 된 중앙분리대 밑으로 몸이 틀어박히면서 갈비뼈들이 으스러지고 지라(비장)가 파열되었다.
다행히도 회복되었지만 응급실 의사들은 동생 목숨을 구하기 위해 지라를 제거해야 했다.
지라는 혈구 생산에 관여하고 면역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그래서 동생은 여생 동안 큰 감염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이후로 더 자주 앓고 낫는 데 더 오래 걸릴 것이 분명해 보인다.
또 지라가 없는 사람은 나이가 든 뒤에 폐렴으로 사망할 위험이 더 높다.
우리 장기에 해를 끼치는 것이 노화나 질병만은 아니다.
때로 삶은 다른 식으로 우리에게 해를 끼치며 그저 지라 하나만 잃는 것으로 끝나는 편이 운이 좋을 때도 있다.
심장, 간, 콩팥, 폐를 잃으면 살아가기가 훨씬 더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가 시신경과 시력 회복에 쓸 수 있는 것과 똑같은 유형의 세포 재프로그래밍이 언젠가는 손상된 장기 기능 회복에 쓸 수 있을 지 모른다.
그런데 종양 때문에 완전히 망가지거나 제거해야 했던 장기는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로선 손상되거나 병든 장기를 교체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절실히 필요한 장기를 구할 수 있기를 바랄 때, 한편으론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자동차 사고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섬뜩한 사실이지만 진실이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미국교통국 Dept. of Motor Vehicles이 장기기증 여부를 운전자에게 묻는 기관이라는 사실은 꽤 역설적이다.
아니, 꽤 논리적이라고 말할 이들도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만 해마다 3만 5천 명 이상이 교통사고로 죽으며, 이 사망 방식은 가장 믿을 만한 조직과 장기 공급원이다.
장기기증자가 되겠다고 서명하지 않았다면 서명을 고려해 보기 바란다.
1988~2006년 사이에 장기기증을 기다리는 사람은 6배로 늘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미국에서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온라인 등록자는 11만 4,271명이며 평균 10분마다 1명씩 늘고 있다.
동양의 환자들은 더 열악하다.
서구보다 장기기증자가 훨씬 부족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문화적인 이유도 있고 법적인 이유도 있다.
1968년 일본 의사 와다주로(화전수랑和田壽郞)가 뇌사자의 심장을 떼어 냈을 때 그 일본 최초의 심장기증자가 정말로 '뇌사'했는지 여부를 놓고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사망하면 몸을 온전히 보전해야 한다는 불교 신앙까지 끌어들이면서 논쟁은 격렬하게 감정적인 양상을 띠게 되었다.
그러자 심장이 멈추기 전까지는 장기를 떼어 내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법이 서둘러 제정되었다.
그 법은 30년 뒤에야 완화되었지만 일본 사회는 여전히 그 문제로 논란이 분분하며 좋은 장기를 얻기가 쉽지 않다.
내 남동생은 원추각막 keratoconus이라는 눈병도 앓고 있다.
수정체를 덮고 있는 각막이 손가락으로 비닐 포장을 옆으로 밀 때처럼 원뿔 모양으로 쭈그러드는 병이다.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동생은 두 차례 각막이식수술을 받았다.
20대에 받고 30대에 다시 받았다.
따라서 두 사람의 각막이 동생 눈에 쓰였다.
수술 때마다 눈에 '나뭇가지'가 박힌 것처럼 느껴지는 각막을 꿰맨 솔기를 6개월 동안 유지해야 했지만 덕분에 시력은 보존되었다.
동생이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고 있다는 사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모여서 저녁식사를 할 때면 사망한 기증자들에게 진정으로 감사를 표해야 한다는 말을 꺼내곤 한다.
현재 우리는 자율주행차의 시대—거의 모든 전문가들이 자동차 사고가 급속히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하는 기술적·사회적 패러다임 전환의 시대—로 빠르게 다가가고 있으므로, 한 가지 중요한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장기를 과연 어디에서 얻어야 할까?
하버드의대의 나와 같은 과 소속인 유전학자 루한 양 Luhan Yang과 그녀의 지도교수였던 조지 처치 George Church는 포유동물 세포의 유전자를 편집하는 방법을 발견하자마자 돼지 유전자를 편집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무슨 목적으로?
그들은 돼지 농장주들이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수백만 명에게 필요한 장기를 생산할 맞춤돼지를 기르는 세상을 꿈꾸었다.
돼지 장기는 그 크기가 사람 장기와 가장 비슷하다.
과학자들이 동물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이종장기이식 xenotransplantation'의 세상을 꿈꾼 것은 수십 년 전부터다.
루한 양 연구진은 현재 돼지의 장기이식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인 돼지 레트로바이러스 유전자 수십 개를 유전자 편집기술로 제거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그 목표를 나아가는 가장 큰 걸음 중 하나를 내딛었다.
이종장기이식의 장애물이 그것만은 아니지만 큰 장애물임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그녀는 32세 생일을 맞이하기 전에 그 장애물을 넘는 법을 찾아냈다.
미래에 우리가 장기를 얻을 방법은 이것만이 아니다.
2000년대 초에 잉크젯 프린터 방식으로 살아 있는 세포들을 3차원으로 층층이 쌓아올릴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이후 전 세계 과학자들은 살아 있는 조직을 인쇄한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애쓰고 있다.
현재 과학자들은 인쇄한 난소를 생쥐에게 이식하거나 인쇄한 동맥을 원숭이에게 이식한 상태다.
또한 인쇄한 뼈대 조직을 이식해 부러진 뼈를 붙이는 연구를 하고 있는 과학자들도 있다.
그리고 인쇄한 피부는 앞으로 몇 년 안에 실제로 이식용으로 쓰이기 시작할 가능성이 높으며, 간과 콩팥이 곧 그 뒤를 따를 것이고, 좀 더 복잡한 기관인 심장은 그보다 몇 년 더 있어야 할 것이다.
현재 이식용 신체기관의 섬뜩한 공급원인 뇌사기증자가 사라질지 여부는 곧 중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
어쨌든 그 공급원은 결코 수요를 충족시킨 적이 없다.
미래에는 신체 부위가 필요해지면 인쇄해 쓸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우리 자신의 줄기세포를 써서 만들 것이다.
그 줄기세포는 만일을 대비해 미리 수확해 저장해 두거나, 피 또는 입속 세포를 채취해 유전자 재프로그래밍을 통해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장기를 얻기 위해 경쟁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누군가가 치명적인 사고를 당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저 3D 프린터가 찍어낼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출처
1. 데이비드 A. 싱클레어, 매슈 D. 러플랜트 지음, '노화의 종말', 부키, 2020.
2. 구글 관련 자료
2021. 10. 20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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