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화재 변상벽 "묘작도"와 "국정추묘도" 본문
화재和齋 변상벽卞相壁(1730?~1775?)은 자가 완보完甫이며, 도화서 화원으로서 영조 어진 제작에 참여하였고, 조선 후기 동물화와 초상화로 명성이 높았다.
특히 고양이 그림을 잘 그려 '변고양이(변고양卞古羊, 변괴양卞怪洋)'란 별명이 붙었다.
그의 고양이 그림은 일상생활 속에서 이루어진 깊은 애정과 면밀한 관찰을 바탕으로 한 빈틈 없는 묘사가 특징이다.
이런 뛰어난 사실성은 100여점에 달하는 그의 인물초상화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됨으로써 초상화가 주특기가 되었으며, 국민화가를 뜻하는 국수國手로까지 일컬어졌다.
화재의 대표작 <묘작도猫雀圖>는 고양이 묘猫와 참새 작雀을 소재로 한 동물 그림으로서, 이 두 소재는 한자 발음이 늙은이 모耄와 까치 작鵲과 비슷하기 때문에 장수의 기쁨을 상징하는 의미로 널리 그려졌다.
화면 가운데 우뚝 솟은 나무 위 아래로 두 마리의 고양이가 서로 마주하고 있고, 나뭇가지에는 다급하게 지저귀는 참새 떼가 그려져 있다.
굵은 붓으로 그린 윤곽선과 거친 붓으로 표현한 나무에 비해 고양이와 참새들은 아주 가는 붓으로 털 한 올 한 올을 정성스럽게 묘사하여 대조를 이룬다.
지금도 우리에게 친숙한 두 마리의 줄무늬 고양이가 나무 위 아래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다.
나무 아래에서 위를 쳐다보고 있는 검은 줄무늬 고양이와 나무에 매달려 잔뜩 등을 웅크린 채 아래를 바라보고 있는 회색 줄무늬 고양이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돈다.
나무 아래 검은 고양이 몸집이 더 큰 것으로 보아 회색 고양이는 그를 피해 나무에 올라간 것으로 보인다.
검은 고양이의 둥근 발과는 달리 나무 위 회색 고양이는 날카로운 발톱을 세워 앞발로 나무를 꼭 움켜쥐고 뒷다리로 몸을 지탱하고 있는 모습은 그런 긴박한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해준다.
엷은 잎이 막 자라고 있는 나뭇가지에는 참새 여섯 마리가 서로 마주 보며 이 상황을 분주히 전하고 있는 듯하다.
고개를 뒤로 돌린 고양이들의 자세와 세밀하게 묘사한 잔털 표현은 변상벽이 고양이를 얼마나 오랫동안 관찰해 왔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특히 고양이의 노란 눈동자와 하얀 콧수염, 분홍빛 코, 팽팽하게 긴장된 뒷다리 근육 등의 묘사는 가까이에서 오래도록 보지 않고선 알 수가 없는 표현들이다.
변상벽의 동물 그림은 이처럼 사실성이 매우 뛰어나 보는 이들마다 감탄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를 '변고양이'나 '변닭(변계卞鷄)'으로 불렀을 것이다.
이 작품 역시 한 쌍의 고양이와 참새 떼의 모습을 짜임새 있는 구도와 함께 사실적인 묘사력을 갖춘 수작임에 틀림없다.
'국정추묘도菊庭秋猫圖'는 '국화 핀 뜰 안의 가을 고양이'를 그린 그림이다.
국화가 소담하게 피어난 가을 뜨락을 배경으로 웅크리고 앉아있는 고양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명성이 실감난다.
안일安逸[애쓰지않고 편안하게 사는 것]과 장수의 복을 두루 누리기를 바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예로부터 고양이는 노인을 상징하고 국화는 은일隱逸[속세를 떠나 숨어사는 것]을 대표하는 식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그림의 백미는 이런 상징성과 의미보다는 놀라울만큼 사실적인 묘사력이다.
얼룩 고양이는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가을 햇볕을 즐기다 인기척에 놀라 잔뜩 경계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고, 먹잇감을 노려보며 긴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상황 설정이나 구도도 빼어나지만, 한 가닥 수염과 터럭 한 올의 묘사에도 조금의 소홀함이 없으며, 나아가 눈동자의 미묘한 색조와 귓속 실핏줄, 심지어 가슴 부분의 촘촘하고 부드러운 털과 등 주변의 성긴 듯 오롯한[촘촘하지 않지만 모자람 없이 온전한] 털의 질감까지 정교하게 잡아내고 있다.
고양이 모습의 묘사 즉 형사形寫는 물론이려니와 고양이의 심리까지 정확히 전달하고 있어[이형사신以形寫神] 고양이 초상화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전신傳神의 묘오妙悟[정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깨달음]를 체득한 작가의 원숙한 기량을 절감하게 하는 수작으로 진경시대 사실적 화풍의 또 다른 정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화면 위 가운데 '화재和齋'란 인장을 찍고, '화재필和齋筆(화재가 그리다)'이라고 관서款書[그림이나 글씨를 완성한 뒤에 언제 그렸으며(썼으며) 누가 그렸는지(썼는지)를 적은 글]를 했다.
※출처
1. 이용희 지음, '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움 - 동주 이용희 전집 10'(연암서가, 2018)
2. https://artsandculture.google.com/exhibit/AQLCdjcGHpOzKw?hl=ko(묘작도)
3. http://kansong.org/collection/kukjeongchumyo/(국정추묘도)
4. 구글 관련 자료
2021. 10. 26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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