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노화의 종말 22 - 얼마나 살까 본문
계산을 좀 해 보자.
그것도 보수적인 관점에서 계산을 해 보자.
앞으로 50년에 걸쳐서 나올 서로 전혀 다른 기술들 하나하나가 더 길고 더 건강한 수명에 각각 얼마나 기여할 지 짐작해 보자.
머지않아 DNA 모니터링을 통해 의사는 급박한 상황이 벌어지기 오래전에 질병이 생길지 여부를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여러 해 일찍 암을 파악하고 대응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감염이 일어나면 몇 분 만에 진단이 이루어질 것이다.
심장 박동이 불규칙해지면 자동차 좌석이 그 사실을 알려줄 것이다.
호흡분석기는 면역질환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알아차릴 것이다.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는 양상이 미세하게 달라지면 파킨슨병이나 다발경화증 초기 증상이 나타났음을 알려 줄 것이다.
의사는 환자의 부모에 관한 정보를 훨씬 더 많이 알게 될 것이고, 환자가 의원이나 병원에 오기 한참 전에 그 정보를 훑게 될 것이다.
오진과 의료 사고가 대폭 줄어들 것이다.
이런 혁신들 중 어느 '한 가지'만으로도 수십 년 더 건강하게 살도록 해 줄 수 있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이 '모든' 발전들이 건강수명을 다 더해서 10년 늘린다고 치자.
일단 사람들이 노화가 삶의 불가피한 일부라고 받아들이지 않기 시작한다면 자기 자신을 더 잘 돌보게 될까?
나는 분명히 그럴 것이라고 본다.
내 가족과 친구들은 대부분 이미 그런 듯하다.
그들은 건강과 삶을 유지시키는 몸의 생화학 체계들을 계속 지켜보고 후성유전적 잡음을 줄이는 생명의학적·기술적 혁신의 앞선사용자(얼리 어답터) early adoptor가 되는 길을 택했다.
그 뒤로 열량을 덜 섭취하고, 동물성 아미노산을 덜 먹고, 운동을 더 하고, 온열중성대溫熱中性帶 thermoneutral zone(TNZ)[사람이 쾌적함을 느끼는 기온 범위로서 섭씨 25도]를 벗어남으로써 갈색지방 brown adipose tissue(BAT) 또는 brown fat[추워질 때 산화되면서 생기는 열로 체온을 올리는 지방으로서 비만과 당뇨병을 예방]의 증식을 자극하는 생활습관을 추구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이런 방법들은 사회경제적 지위에 상관없이 대다수 사람들이 쓸 수 있으며, 그것들이 활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아주 잘 연구되어 왔다.
잘 먹고 꾸준히 활동하는 사람이 10년 더 건강하게 살 것이라고 예측해도 불합리하지 않다.
하지만 그 절반인 5년이라고 잡자.
또 장수유전자를 작동시킴으로써 생존 회로를 보강하는 분자들은 동물 연구에서 건강한 생애를 10~40퍼센트 더 늘렸다.
여기서는 10퍼센트만 늘리다고 치면, 8년 더 늘어나는 셈이다.
이 세 요소를 합하면 늘어나는 수명은 총 23년이다.
현재 우리 연구실에서는 생쥐에게 하듯이 사람이 장수분자를 먹거나 유전자를 변형시킴으로써 후성유전체를 재설정할 수 있기까지는 얼마나 오래 걸릴까?
약물이나 백신 접종으로 노화세포를 파괴할 수 있으려면 얼마나 더 있어야 할까?
유전자 변형을 한 농장 동물의 장기나 3D 프린터로 만든 장기를 이식할 수 있기까지는 얼마나 오래 걸릴까?
아마 20년, 아니면 30년쯤 될 것이다.
그렇긴 해도 점점 수명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우리 대다수는 이 혁신들 중 하나 이상이나 전부를 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몇 년을 더 살게 될까?
최대로 잡으면 수백 년까지 늘어날 수 있지만 여기서는 딱 10년이라고 하자.
그러면 총 33년이 된다.
현재 선진국의 평균수명은 80년을 약간 넘는다.
거기에 33년을 더하자.
그러면 113년이 된다.
대다수 사람들이 이 추세에 따른다고 할 때 보수적으로 추정한 수명이 그렇다.
그리고 이것이 인구의 절반 이상은 이 값을 넘어설 것임을 의미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자.
이런 발전의 결과들이 모두 그대로 더해지는 것은 아니며, 모두가 잘 먹고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은 아님을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가 더 오래 살수록 미처 내다보지 못한 근본적인 의학 발전의 혜택을 볼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점을 생각해 보라.
그리고 이미 이룩한 발전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스타 트랙>의 세계로 점점 더 빨리 들어갈수록 어떻게든 한 달을 더 살 때마다 수명이 일주일씩 더 늘어나는 이유다.
앞으로 40년 뒤에는 2주씩 늘어날지도 모른다.
앞으로 80년 뒤에는 3주씩 늘어날 수도 있다.
금세기가 끝날 무렵에는 한 달을 더 살수록 수명이 다시 4주씩 늘어난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지구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일지 모를 잔 칼망 Jeanne Louise Calment(1875~1997)[프랑스인이며, 공식 출생 및 사망 시기가 입증된 최장수 인물로서 만 122년 164일 동안 생존]이 나중에 가장 장수한 인물 10명의 목록에서 빠지게 될 것이라고 내가 말하는 이유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십 년 지나지 않아서 상위 100명에서 탈락할 것이다.
이어서 상위 100만 명에서조차 멀어질 것이다.
110세 넘게 산 이들이 이 기술을 접한다고 상상해 보라.
120세나 130세까지 살 수 있지 않을까?
아마 그럴 것이다.
동료 과학자들은 종종 내게 너무 그렇게 공개적으로 낙관론을 펴지 말라고 충고하곤 한다.
"안 좋게 보일 수 있어." 최근에 한 동료는 좋은 뜻으로 그렇게 말했다.
"왜?"
"사람들이 이런 숫자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10년 전에는 환자들을 도울 약물을 만들자는 말만 해도 많은 동료들이 나를 이방인 취급했다.
한 과학자는 내게 연구자는 "그저 어떤 분자가 생쥐의 수명을 연장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만" 하면 되며, "그 다음은 대중이 알아서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안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지금은 나처럼 낙관론을 펴는 동료들이 많다.
비록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나는 그들 중 3분의 1은 메트포르민이나 NAD 증진제를 복용하고 있다고 장담한다.
심지어 이따금씩 라파마이신을 저용량으로 복용하는 이들도 소수 있다.
현재 장수 치료를 주제로 한 국제 학술대회가 몇 주마다 열리고 있으며, 사기꾼들이 아니라 전 세계의 가장 권위 있는 대학교와 연구소에서 일하는 저명한 과학자들이 참석한다.
이제는 이런 학술대회에서 인간의 평균수명을 최소한 10년 이상 늘리면 세상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하는 이야기를 흔히 들을 수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날지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아니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둘러싼 논쟁이다.
정치, 경제, 종교 분야의 리더들 역시 점점 그런 추세를 보인다.
요즘에 나는 그런 이들과 새로운 기술의 발전뿐 아니라 그런 발전이 지닌 의미를 논의하는 시간이 늘고 있다.
이들 국회의원, 고위 관료, CEO, 지도적인 사상가 등은 노화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연구가 세상을 바꿀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을 서서히 그러나 갈수록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며 거기에 대비하고 싶어 한다.
그들이 모두 틀렸을 수 있다.
내 생각이 틀렸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어느 쪽이 옳은지 알게 될 때까지 내 자신이 충분히 오래 살 것이라고 예상한다.
내가 틀렸다면 아마 너무 보수적으로 예측했다는 점이 그러할 것이다.
잘못된 예측의 사례—원자력으로 작동하는 진공청소기와 비행 자동차라는 잊을 수 없는 사례—가 많지만 다가오는 것을 보지 못하는 사례가 훨씬 더 많다.
우리 모두는 그래서 죄책감을 느낀다.
우리는 선형으로 확대 추정을 한다.
사람이 더 많아지면 말이 그만큼 많아지고 거리에 말똥도 그만큼 많아진다고 생각한다.
자동차가 많아지면 공기오염이 그만큼 심해지고 기후변화도 그만큼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기술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할 때는 전문가조차 허를 찔릴 수 있다.
빛의 속도를 측정한 업적으로 노벨상을 받은 미국 물리학자 앨버트 마이컬슨 Albert Michelson은 1894년 시카고대학교 강연에서 물리학에서는 소수점 아래 자리를 덧붙이는 것 외에는 더 이상 발견할 것이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양자역학이 한창 발전하던 1931년에 사망했다.
그리고 빌 게이츠는 1995년에 펴낸 책 ≪미래로 가는 길 The Road Ahead≫에서 인터넷을 언급조차 안 했다.
비록 약 1년 뒤에 개정판을 내면서 인터넷이 "대단히 빨리 퍼지면서 대단히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을 너무나 과소평가했다"라고 겸허하게 인정했지만 말이다.
≪와이어드 Wired≫의 초대 편집장인 케빈 켈리 Kevin Kelly는 미래를 예측하는 일에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보여 주었는데, 그에게는 한 가지 철칙이 있다.
"무언가와 애써 싸우려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여라. 애써 달아나거나 금지하려고 하지 말고 그것을 활용하라."
우리는 지식이 배가되고 기술이 상승작용을 일으킨다는 점을 종종 알아차리지 못하곤 한다.
인류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혁신적이다.
지난 200년 동안 인류는 새로우면서 기이한 기술들이 갑작스럽게 잇달아 출현하는 것을 목격해 왔다.
증기기관, 쇠로 만든 배, 말 없는 마차, 고층건물, 비행기, 개인용 컴퓨터, 인터넷, 평면 TV, 휴대전화, 유전자 편집 아기 등.
그런 기술이 처음 등장할 때면 우리는 충격을 받는다.
그 당시는 거의 알아차리지 못했으니까.
지난날 인간의 뇌가 진화하고 있었을 때는 한평생 변화하는 것이라곤 계절밖에 없었다.
갑작스럽게 융합되는 복잡한 기술들을 수백만 명이 연구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리가 예측하기 어려운 건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내가 변화의 속도를 제대로 파악했든 그렇지 않든 전쟁이나 팬데믹이 일어나지 않는 한 우리 수명은 계속 증가할 것이다.
그리고 전 세계의 지도적인 사상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그 증가가 얼마나 엄청난 의미를 지니는지를 점점 더 깊이 깨닫는다.
내가 처음에 염두에 두었던 연구 범위를 한참 넘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계획을 짤 수 있었던 것은 어느 정도는 그들 덕분이었다.
그러나 내게 더욱 깊이 생각하라고 재촉하는 이들은 하버드대를 비롯한 대학에서 내가 가르치는 젊은이들, 그리고 거의 매일같이 전자메일(e-메일)과 누리소통매체(소셜미디어) social media를 통해 내게 의견을 보내는 더 젊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내 연구가 미래의 직업과 노동력, 세계 보건 의료, 우리의 도덕 체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도록 나를 자극한다.
그리고 공정, 평등, 인간적 품격을 갖춘 채 건강수명과 수명이 대폭 늘어난 세계를 맞이하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야 할지 더 깊이 생각해 보라고 내몬다.
이런 의학 혁명이 일어나 우리가 이미 들어선 쭉 뻗은 길로 계속 나아가면서 오늘날 일본에서 태어난 아이들 중 절반은 107년 넘게 살 것이라는 예측이 나와 있다.
미국에서 태어나는 아이는 104년이다.
많은 연구자들은 이런 추정값들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보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오히려 보수적으로 추정한 것일 수 있다.
오래전부터 나는 가장 유망한 요법과 치료제 중 몇 가지라도 결실을 맺는다면 현재 건강하게 살고 있는 사람은 꽤 건강하게 100세까지 살 것이라고, 즉 현재 건강한 50세에게서 기대하는 수준의 활력과 행동을 하면서 살 것이라고 예상해도 불합리하지 않다고 말해 왔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최대수명은 120세지만 그 수명이 동떨어진 극단값임이 확실하다고 생각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리고 변화하는 광경을 맨 앞줄에서 지켜보고 있고 또 강력하게 표현할 필요성을 느끼기에 나는 공식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세계 최초로 150년까지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세포 재프로그래밍의 잠재력이 실현된다면 금세기 말에는 150세에 다다를 수 있을지 모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지구에서 120세를 넘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최소한 나이가 검증된 사람 중에는 그렇다.
따라서 내 말이 옳은지, 누군가가 150년이라는 문턱을 넘을 수 있는지 알려면 적어도 수십 년이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다음 세기는 어떨까? 그리고 그다음 세기는?
언젠가는 150세까지 사는 것이 표준이 될 날이 오리라는 예측은 결코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노화의 정보 이론'이 타당하다면 상한 같은 것은 아예 없을 수 있다.
우리는 후성유전체를 '영구히' 재설정할 수 있을 테니까.
이 말이 끔찍하게 들릴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인간 존재를 의미하는 기존의 거의 모든 개념이 뒤엎어지기 직전에 와 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으며 "일어나서도 안 된다"고 말해 왔다.
우리를 파멸로 이끌 것이 확실하다는 이유에서다.
※출처
1. 데이비드 A. 싱클레어, 매슈 D. 러플랜트 지음, '노화의 종말', 부키, 2020.
2. 구글 관련 자료
2021. 10. 29 새샘
'글과 그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80년대 서울에서 발굴된 유적들 6: 경희궁 터 (0) | 2021.11.05 |
---|---|
코핀과 스테이시의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 1부 고대 근동 - 1장 서양문명의 기원 1: 머리말 (0) | 2021.10.30 |
화재 변상벽 "묘작도"와 "국정추묘도" (0) | 2021.10.26 |
코핀과 스테이시의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 머리말 (0) | 2021.10.24 |
노화의 종말 21 - 맞춤 신체기관 생산의 꿈 (0) | 2021.1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