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조선 후기 초상화 본문
조선 후기에 많이 그려졌던 초상화肖像畫는 우리나라 그림 중 아주 특별한 장르로 생각할 수 있다.
물론 당시에는 초상화라는 말은 쓰이지 않았고, 대신 진영眞影, 영정影幀, 진상眞象, 소조小照와 같은 말로서 전해졌다.
이런 그림들은 두 가지 의미로 당시 그려졌는데, 하나는 기념화였고 다른 하나는 영정 그림이었다.
기념하기 위해 그려진 그림 즉 기념화는 사진이 없었던 옛날에 사진 대신에 그렸던 그림이다.
그리고 영정 그림은 사당에 모시기 위해 그린 그림인데 이것도 사실 일종의 기념화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사진이 없어서 그려졌던 초상화는 그린 사람의 인물과 똑 같아야 했다.
혹사酷似, 즉 아주 지독히 같아야 된다는 뜻이다.
당시 초상화의 용도는 기로소耆老所(조선 시대에, 70세가 넘는 정이품 이상의 문관들을 예우하기 위하여 설치한 기구) 같은 곳이나 당상관 이상 고관들의 사진첩 같은 식으로 인물첩이 있고, 그 다음으로 임금 어용을 그리는 어용화사들이 용안龍顔(임금의 얼굴을 높여 이르는 말)을 그린 예가 있다.
임금 용안을 그린 경우엔 어용화사御容畵師라고 해서 벼슬이 올라간다.
단원 이후 찰방이나 현감을 지냈다고 하는 도화서 화원들은 대부분이 어용화사들이었다.
따라서 여기서는 철저한 사실주의가 요구되었다.
이 초상화 같은 것이야말로 사실은 화원들이 그리는 그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아주 높은 사람의 초상화를 그릴 때에는 미천한 직업이라고 인정되던 화사들의 낙관은 안하는 것이 예禮이기 때문에 작자 미상인 경우가 많다.
물론 초상에도 자화상이 있었다.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은 대단히 유명하고, 또 표암 강세황의 자화상도 있다.
자화상은 아니더라도 유명한 선비로서 초상화를 그린 예가 있다.
위 그림 노가재老稼齋 김창업金昌業(1658~1722)이 그린 <송시열宋時烈 초상>이 바로 그것이다.
조선 성리학의 대가 송시열(1607~1689)을 그린 이 초상화는 제천 황강영당黃江影堂에 300년 넘게 봉안되어 온 내력이 분명한 작품으로서, 김창업이 그린 초본을 저본底本(원본)으로 점과 진재해奏再奚(1691∼1769) 등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가 그렸을 것으로 추정될 정도로 우수한 사례에 속한다.
송시열은 고위직을 지냈음에도 화면 속 그는 관료의 모습이 아닌 사방건四方巾(네모난 형태의 모자)을 쓰고 심의深衣(유학자의 평상복)를 입은 청정한 유학자로 표현되었다.
작품 상단에는 '우암 송선생 칠십사세진 尤庵宋先生七十四歲眞'라는 화제가 전서로 적혀 있다.
화면 오른쪽에는 송시열의 초상을 문인화가 김창업이 그렸음을 밝힌 김창협의 화상찬畵像讚(그림에 쓴 찬사)이 해서로 적혀 있다.
화면 왼쪽에는 권상하權尙夏(1641∼1721)가 짓고 권상하의 제자 채지홍蔡之洪(1683∼1741)이 필사한 화상찬이 해서로 적혀 있다.
이를 통해 이 작품이 1680년 23세의 김창업이 74세의 송시열을 그린 초본을 저본으로 해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그림은 족자형태로 장황粧䌙(표장表裝: 비단이나 두꺼운 종이를 발라서 책이나 화첩, 족자 따위를 꾸미어 만듦)되었고
이음새 없는 한 장의 비단을 화면으로 사용하였다.
네모난 회색 사방건을 쓰고 검은색으로 깃과 소맷부리의 가장자리를 두른 회색 심의를 입은 채, 두 손을 맞잡아 소매 속에 넣은 반신상을 묘사하였다.
송시열의 굴곡진 삶을 대변하듯 희끗희끗한 콧수염과 턱수염, 구레나룻에 이마와 눈가에 주름이 깊게 파인 얼굴이 인상적이다.
희고 검은 긴 수염은 세밀하게 표현한 반면 눈썹은 검고 짙게 그렸고, 황갈색으로 주름과 음영을 표현한 얼굴의 상세한 묘사와는 달리 의복은 짙은 먹 선 위주로 굵고 간략하게 그리는 등 서로 대비되는 필치는 송시열의 용모와 기상, 품성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조선중기 대표적 학자이자 문신인 미수眉叟 허목許穆(1595~1682)의 초상으로 오사모烏紗帽(사모紗帽: 고려 말기에서 조선 시대에 걸쳐 벼슬아치들이 관복을 입을 때에 쓰던 검은 실로 만든 모자)에 담홍색의 시복時服(철에 맞는 옷)을 입고 서대犀帶(서띠: 조선 시대에, 일품의 벼슬아치가 허리에 두르던 띠)를 착용한 좌안7분면의 복부까지 오는 반신상이다.
이 초상화는 미수란 호가 왜 나왔는지 알 수 있을 정도의 아주 좋은 그림이다.
화폭 상부의 제발문題跋文(책이나 그림 첫머리에 관계되는 노래나 시 따위를 적은 글인 제사題辭와 끝 머리에 본문이나 그림 내용의 개요나 간행 경위에 관한 사항을 간략하게 적은 글인 발문跋文을 아울러 이르는 말)에 따르면, 1794년(정조18) 정조가 허목의 인물됨에 크게 감동하여 그 칠분소진七分小眞(닮은 작은 초상)을 얻고자 채제공으로 하여금 사람들과 의논하도록 하였고, 이에 은거당恩居堂(1678년 숙종이 하사한 집)에서 선생의 82세진을 모셔다가 이명기가 모사한 것이라고 한다.
영정의 오른 쪽에는 채제공蔡濟恭(1720~1799)이 당시에 쓴 표제가 붙어 있다.
이 <허목 초상>은 생시 진상은 아니지만 현재 원본이 전해오지 않는 실정에서 17세기 대표적인 사대부초상화의 형식을 보여줌과 아울러, 노학자의 문기어린 풍모를 잘 전달해낸 당대 최고의 어진화사御眞畵師 이명기李命基(1756~1813)의 솜씨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우리가 성공한 초상화의 예로 꼽는 그림이 바로 <이재 초상>이다.
이른바 조선 후기 삼창三昌(김창집金昌集, 김창협金昌協, 김창흡金昌翕)이라 불렸던 김창협(1651~1708)의 문인인 도암陶庵 이재李縡(1680~1746)는 숙종의 처조카이자 노론을 대표하는 핵심인물들의 가까운 친인척으로서 노론의 중심인물로 활동했다.
복건幅巾(예전에, 유생들이 도포에 갖추어서 머리에 쓰던 검은 건)에 심의를 입고 오른쪽을 향하여 앉아 있는 반신상이다.
얼굴을 갈색 선으로 윤곽과 이목구비, 눈두덩과 주름 등을 그리고 선을 따라 담묵을 가했다.
눈은 눈동자를 또렷이 표현하고 윗 눈꺼풀을 짙게 강조하였다.
인중을 갈색 선으로 간략히 그리고, 아랫입술의 도톰한 부분만 갈색 윤곽 안에 홍염으로 묘사하였다.
복건은 안과 겉, 세부 형태가 확실히 표현되었다.
가슴에 가장자리를 검게 두른 넓은 띠를 매었는데, 앞면에서 여백을 덧칠하여 띠의 흰색을 강조하였다.
띠 위로 오색실로 짠 광다회廣多繪(넓고 크게 짠 끈목)를 드렸다.
공수한 손 아래로 드리워진 띠와 광다회의 단정함은 초상화에 절제된 장식성을 부여하고 있으며, 주인공의 단아한 용모를 돋보이게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가장 뛰어난 한국화 비평가인 오주석은 자신의 저서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2003, 솔)에서 이 초상화의 주인공은, 다음에 소개되는 초상화 이채李采의 할아버지인 이재가 아니라 당사자인 이채의 10년 전쯤 젊었을 때 그려진 초상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오주석은 두 초상화 인물을 상세히 비교한 결과 두 초상화 얼굴 모두에 똑 같이 왼쪽 귓불 앞에 있는 큰 점이 있다는 것을 가장 확실한 증거로 들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몇몇 전문가에게 자문을 받은 결과 다음과 같은 확인을 받았다고 한다.
먼저 해부학을 공부한 화가로서 얼굴전문가인 조용진 교수는 두 초상화 얼굴의 세부 11개를 비교한 끝에 두 얼굴이 100% 같다고 장담은 못해도 같은 사람이 거의 틀림없다고 확인해 주었다.
또한 피부과 의사로서 예술작품에 보이는 얼굴을 연구하는 학자이며, 그림 속 얼굴을 보고 주인공의 질환을 진단하는 이성낙 교수는 왼쪽 눈썹 아래 살색이 좀 진해진 부분이 검버섯으로서 <이채 초상>에서는 흐릿하더니 더 늙어 보이는 <이재 초상>에서는 거뭇거뭇 진해졌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왼쪽 눈꼬리 아래쪽 4시 방향에 도톰하니 길게 부풀은 부분이 바로 노인성 지방종으로, 이것 역시 두 초상화에서 같은 위치에 보이고 있을 뿐아니라 전 <이재 초상>에서는 더 확실하게 보인다고 했다.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이자 문신인 이채李采(1745~1820)의 초상이다.
이 이채 상은 심의를 입고 정자관程子冠(예전에, 선비들이 평상시에 머리에 쓰던, 말총으로 만든 관으로서 정자라 불리는 송나라 도학자 정호程顥와 정이程頤 형제가 썼다고 해서 붙은 이름)가 을 쓴 뒤 두 손을 공수拱手한(두 손을 앞으로 모아 포개어 잡은) 채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반신상이다.
눈부시게 수려한 용모를 실로 뛰어난 화법으로 묘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화면 상부에 경산京山 이경진李漢鎭(1732~1815)과 기원綺園 유한지兪漢芝(1760~1834) 등 당대 명필들의 미려한 찬문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어 조선후기 연거복燕居服(심의深衣 또는 학창의鶴氅衣: 모든 공직을 떠나 한가로이 사는 사람이 입는 옷이라는 뜻을 가진 덕망 높은 선비의 웃옷) 초상화의 가장 아름다운 걸작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진다.
이 <이채 초상>은 조선후기 19세기 초반의 가장 대표적인 유학자 상으로서 눈빛이 형형한 얼굴의 정교한 묘사는 조선후기 초상화가 도달했던 높은 수준의 사실성을 대표해준다.
현재 국립민속박물관 소장인 <조씨삼형제 초상 趙氏三兄弟 肖像>은 아주 독특하고 재미있는 군상群像(떼를 지어 모여 있는 여러 사람)을 그린 초상이다.
조계趙啓(1740~1813), 조두趙蚪(1753~1810), 조강趙岡(1755~1811) 삼형제를 하나의 화폭 안에 그린 작품이다.
좌안8분면左顔八分面(정면 쳐다보는 것을 10분면으로 할 때, 왼쪽 얼굴이 2분면 정도 보이도록 고개를 약간 돌린 자세)의 배까지 내려오는 반신상으로서, 맏형을 중심으로 하여 삼각형(三角形) 구도를 취하고 있다.
조선조 초상화의 대부분이 화폭 안에 대상인물 한 명만을 그려 넣는데 반해 이 초상은 특이한 화면구성을 보인다.
세 형제 모두 오사모에 담홍색 시복을 입고 있는데, 맏형은 학정금대鶴頂金帶(조선 시대에, 종이품 벼슬아치가 관복이나 조복에 띠던 띠로서, 가장자리는 황금으로 되어 있고 가운데는 붉은 장식물이 붙어 있다)를, 두 아우는 각대角帶(각띠: 예전에, 벼슬아치가 예복에 두르는 띠를 통틀어 이르던 말)를 두르고 있다.
우리나라 초상화에서 희귀한 형식의 집단화상으로서 의의를 지닌다.
강이오姜彛五(1788∼?)의 호는 약산若山이며, 정조 때 예단藝壇(예술계)의 총수 격이었던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1713~1791)의 손자이다.
<강이오 초상>은 오사모를 쓰고 분홍 시복을 입은 정면 반신상으로 배경은 없다.
화면 상단에는 '약산진영 소당사 若山眞影 小塘寫 약산의 진영을 소당(이재관)이 그림'이라고 예서로 쓰여 있고,
그 오른쪽에 세로쓰기로
"구족혜상현재관신 시유단청지돌돌핍진 수경지천지호선 나심흉수우이신 노염제
具足慧相現宰官身 是惟丹靑之咄咄逼眞 誰更知天地弧線 羅心胸隨遇而神 老髥題
은혜로운 얼굴로 지금 관직에 있는 몸
놀랍도록 그림이 핍진(실물과 아주 비슷하며, 표현이 진실하여 거짓이 없음)하구나
누가 알겠는가 천지의 화살이 마음에 버려 있어
닥치는 대로 신묘한 것을
노염(김정희)이 씀"
이라는 추사 김정희의 찬문이 특유의 추사체 해서로 적혀있다.
끝에는 주문방인朱文方印(글자를 양각으로 새겨 글자 부분에 인주가 묻어 도장을 찍었을 때 글자가 붉게 보이는 도장, 이와 반대로 글자를 음각으로 새긴 도장은 백문방인白文方印) '염髥'과 '추사秋史'가 찍혀있다.
따라서 화가는 초상화로 이름이 높았던 소당小塘 이재관(李在寬 1783-1837)이며,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이 초상을 보고 찬을 짓고 직접 적어 놓았음을 알 수 있다.
분홍색 시복은 비수肥瘦(획의 두께가 일정하지 않고 굵거나 가늠)가 있는 필선으로 윤곽과 옷의 주름을 묘사하였으며, 필치가 활달하며 분홍색 농담을 달리하여 명암효과를 가미하였다.
푸른색 각대에는 가운데 금박 장식이 있는데 금박 일부는 탈락되었다.
얼굴, 수염, 복식 등으로 미루어 40대 정도의 중년기의 초상으로 추정된다.
족자 형태인 작품의 상태는 양호하며, 화면 전체에는 아교가 포수되어 반짝거린다.
서양화법을 일부 반영하면서도 이전의 전통을 비교적 충실히 따르고 있는 19세기 초상화의 수작이다.
대한제국大韓帝國기(1897~1910) 전후 최고의 초상화가로 일컬어지는 석지石芝 채용신蔡龍臣(1850-1941)이 그린 한말韓末의 대표적인 문인이자 우국지사인 <황현 초상>이다.
이 초상화는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이 자결한 다음해인 1911년 5월에 일찍이 황현이 1909년 天然堂 寫眞館에서 찍어두었던 사진을 보고 추사追寫(죽은 후에 생전에 알던 모습을 기억에 의지해 그리는 것)한 것이다.
비곡 사후에 사진을 보고 추사한 것이지만, 실제 인물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만큼 매우 뛰어난 사실적 묘사를 보여주고 있다.
심의를 입고 포대布帶(베띠: 베로 만든 띠)를 맨 뒤 정자관을 쓴 모습이며, 안경을 쓰고 오른손에는 부채를 들고 왼손에는 책을 든 채 바닥에 화문석 돗자리를 깔고 앉은 부좌상趺坐像(결과부좌상結跏趺坐像: 부처의 좌법으로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발을 다른쪽 넓적다리 위에 각각 놓고 앉는 것)이다.
자세는 거의 우안구분면右顔九分面에 가까울 정도로 약간 왼쪽으로 앉은 정면상에 가까운 모습인데, 이는 애초 황현이 찍은 사진에서 온 것이며, 부채와 책을 들고 있는 것도 기본적으로 사진의 모습을 따르며 약간 변형시킨 것이다.
그러나 사진에는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쓴 뒤 의자에 앉아 책을 펼쳐들고 있는 모습인데 비해 초상화는 심의를 입고 정자관을 쓴 뒤 화문석 돗자리를 깔고 앉아있는 모습으로 약간 바뀌어 있다.
이 <황현 초상>은 양식사로 볼 때 대한제국기 전후 초상화의 새로운 면모와 특징적인 모습을 매우 종합적으로 잘 보여줄 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수준도 이 시기 초상화의 백미로 꼽힐 정도로 뛰어난 면모를 보여준다.
지금까지 7점의 조선 후기 초상화를 통해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초상화는 아주 독특하면서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철저한 사실주의에 입각하여 그린 그림들이다.
이 그림들은 사진이 발달하기 전에 아주 똑같이 그려내야 한다는 엄중한 조건 아래서 성공한 초상화들이다.
※출처
1. 이용희 지음, '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움 - 동주 이용희 전집 10'(연암서가, 2018)
2.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보물 송시열 초상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0&ccbaKdcd=12&ccbaAsno=21280000&ccbaCtcd=33&ccbaCpno=1123321280000
3.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보물 허목 초상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ulPageNo=1®ion=1&searchCondition=%ED%97%88%EB%AA%A9+%EC%B4%88%EC%83%81&searchCondition2=&ccbaKdcd=12&ccbaAsno=15090000&ccbaCtcd=11&ccbaCpno=1123215090000&ccbaCndt=&ccbaLcto=&stCcbaAsdt=&endCcbaAsdt=&header=view&returnUrl=%2Fheri%2Fcul%2FculSelectViewList.do&pageNo=1_1_1_1&p=multiSch&sortType=&sortOrd=&sngl=Y&s_kdcdArr=00&s_ctcdArr=00&ccbaPcd1Arr=99&ccbaGcodeArr=00
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검색, 이재 초상 https://www.museum.go.kr/site/main/relic/search/view?relicId=1132
5. 새샘 블로그 2008. 12. 19. '세계 제1의 초상화 전 <이재 초상>은 <이채 초상>이다 https://blog.daum.net/micropsjj/17038287
6.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보물 이채 초상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2_0&ccbaCpno=1121114830000
7.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보물 조씨삼형제 초상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1121114780000
8.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보물 강이오 초상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ulPageNo=1®ion=1&searchCondition=%EA%B0%95%EC%9D%B4%EC%98%A4+%EC%B4%88%EC%83%81&searchCondition2=&ccbaKdcd=12&ccbaAsno=14850000&ccbaCtcd=11&ccbaCpno=1121114850000&ccbaCndt=&ccbaLcto=&stCcbaAsdt=&endCcbaAsdt=&header=view&returnUrl=%2Fheri%2Fcul%2FculSelectViewList.do&pageNo=1_1_1_0&p=multiSch&sortType=&sortOrd=&sngl=Y&s_kdcdArr=00&s_ctcdArr=00&ccbaPcd1Arr=99&ccbaGcodeArr=00
9. http://www.koreanart21.com/education/artQuiz/view?id=5907&page=3(강이오 초상)
10.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보물 황현 초상 및 사진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1123614940000
2022. 8. 22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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