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2000년 이후 서울에서 발굴된 유적들 9: 조선왕릉 본문

글과 그림

2000년 이후 서울에서 발굴된 유적들 9: 조선왕릉

새샘 2022. 8. 20. 23:01

 

<2000년 이후 발굴조사 목록-조선왕릉>

 

 

조선왕릉朝鮮王陵에 대한 발굴은 2000년 이후 시작되었다.

이것은 아마도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2009년 조선왕릉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

그러나 왕릉과 관련해서는 일찍이 신촌 연세대 안에 있었던 수경원綏慶園에 대한 발굴이 있었다고 한다.

수경원은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暎嬪 李氏의 묘로, 연세대 안에 있다가 1970년에 지금 경기 고양시에 있는 서오릉으로 이전하였다.

현재 연세대 수경원 자리에는 정자각과 비각이 남아있다.

그러나 발굴보고서가 없어 정확한 발굴내용은 확인할 수 없다.

 

 

의릉의 현재 모습(사진 출처-출처자료1)

 

가장 일찍 발굴이 이루어진 조선왕릉은 성북구 화랑로(석관동)에 있는 의릉懿陵으로 20대 임금 경종景宗(재위 1720~1724)과 두 번째 왕비 선의왕후宣懿王后 어씨魚氏의 능이다.

의릉은 아마도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왕릉일 것이다.

그 이유는 1960년대 초부터 의릉 안에 당시 중앙정보부가 있어 일반인들에게는 철저히 봉쇄된 구역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국가정보원이 서초구 헌릉로(내곡동)로 이전하면서 1996년에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2003년 실시된 발굴조사는 의릉을 정비·복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발굴을 통해 당시까지 남아 있던 정자각, 비각, 홍살문을 정비하였고, 이후 지속적인 복원공사를 통해 홍살문에서 정자각에 이르는 신도神道(영혼이 다니는 길)와 어도御道(임금이 다니는 길)가 정비되어 왕릉의 모습을 재현하였다.

 

 

복원된 정릉의 재실(사진 출처-출처자료1)

 

조선왕릉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인 2012년 문화재청은 성북구 아리랑로(석관동)에 있는 정릉貞陵의 재실齋室(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은 집) 터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정릉은 태조의 두 번째 왕비 신덕고황후神德高皇后 강씨姜氏(?~1396)의 능이다.

 

조사대상지인 재실 터는 신덕고황후 능에서 남동쪽으로 130미터 떨어져 있는 관리사무소 왼쪽에 위치하고 있다.

조사 결과 조선시대 재실 터와 연지蓮池가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은 기와와 자기 종류, 건물지와 관련된 철기 종류 등 총 83점이다.

발굴조사를 바탕으로 현재 재실은 위 사진처럼 복원되어 있다.

 

 

복원된 선릉의 수라청(사진 출처-출처자료1)

 

2012년부터 2013년까지는 문화재청의 의뢰로 조선왕릉의 수라청水剌廳(수라간水剌間: 왕릉 제례 때 음식을 차리거나 데우는 건물) 터, 수복방守僕房(왕릉을 지키는 구실아치들이 근무하던 건물) 터, 재실 일대와 서울 육상궁毓祥宮 내 초가정자 터에 대한 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이는 조선왕릉의 체계적 보존·관리·복원을 위한 기초자료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이 가운데 서울 지역 왕릉 관련 조사 내용만 살펴보자.

 

먼저, 수라청 터에 대한 발굴조사다.

강남구 선릉로(삼성동) 선릉宣陵조선 9대 성종成宗(재위 1469~1494)과 계비繼妃(임금이 다시 장가를 가서 맞은 왕비) 정현왕후貞顯王后 윤씨尹氏(1462~1530)의 무덤이다.

발굴 이전 조사지역에는 지표에 주춧돌 2기와 기단으로 추정되는 장대석 석렬石列(길게 늘어선 돌 무리)이 남아 있었는데, 발굴 결과 수라청 터에서는 주춧돌 5기와 장대석렬 및 고막이돌(고막이: 화방火防 밑에 놓은 돌)이 확인되었고, 앞면 2칸, 옆면 1칸의 '한 일一'자 형태의 건물로 발굴단은 추정하였다.

2014년 선릉의 수라청은 위 사진처럼 복원되었다.

 

11대 임금 중종中宗(재위 1506~1544)의 무덤인 정릉靖陵의 수라청 터에 대한 조사도 실시되었는데, 발굴 당시 주춧돌 1기가 노출되어 있는 상태였다.

발굴 결과 기단석 3개와 적심(건물 붕괴를 막기 위해 주춧돌 밑에 자갈 등으로 까는 바닥다짐 시설) 2기가 확인되었고, 수라청 터의 동쪽에서는 석렬도 확인되었다.

발굴단은 정릉 수라청 역시 선릉처럼 앞면 2칸, 옆면 1칸으로 구성된다고 추측하였다.

 

종로구 창의문로(궁정동)에 위치한 육상궁毓祥宮21대 임금 영조英祖(재위 1724~1776)의 생모이며 숙종의 후궁인 숙빈淑嬪 최씨崔氏(1670~1718)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육상궁은 칠궁七宮이라고도 부르는데, 그것은 1908년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던 7개의 궁들을 이곳에 옮겼기 때문이다.

칠궁은 육상궁, 저경궁儲慶宮(선조의 후궁이며 추존왕 원종의 생모 인빈 김씨 사당), 대빈궁大嬪宮(숙종의 후궁이며 경종의 생모 희빈 장씨 사당), 연호궁延祜宮(영조의 후궁이며 추존왕 진종(효장세자)의 생모 정빈 이씨 사당), 선희궁宣禧宮(영조의 후궁이며 추존왕 장조(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 사당), 경우궁景祐宮(정조의 후궁이며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씨 사당), 덕안궁德安宮(고종의 후궁이며 영친왕의 생모인 순헌황귀비 엄씨 사당)을 일컫는데 조선왕조 역대 왕들의 친모로서 정비에 오르지 못한 7인의 신위를 모셔 제사지내는 사당이다.

 

청와대와 가까워 그동안 비공개지역이었다가 2001년부터 제한적으로 관람이 허용되고 있다.

이 가운데 육상궁 안 초가정자 복원공사 부지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조사 결과 초가정자 관련 유구는 전혀 확인하지 못했다.

 

2012년에는 강남구청의 의뢰로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해 선정릉 안의 빗물저류조 설치구역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지역은 능역에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발굴 당시에는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발굴 결과 석렬 3기가 확인되었으며, 백자 조각, 기와 조각, 벽돌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발굴단은 확인된 유구와 유물의 양상으로 미루어 금천교 및 연지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에 문화재청은 해당 지역을 원상태로 보존하고, 앞으로 형질 변경이나 학술조사가 있을 때 정밀 발굴조사를 실시하도록 했다.

이에 강남구청은 빗물저류조 부지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복원 정비된 선릉의 신도(사진 출처-출처자료1)

 

선릉에 대한 조사는 2013년에도 이어졌는데, 선릉 정자각에서 능침으로 이어지는 신도神道와 어도御道의 복원과 기초자료 확보를 위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이 발굴조사를 통해 성종 왕릉의 신도와 어도는 거의 원형으로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음을 확인했고, 정현왕후릉은 일부 구간이 결실되기는 했지만 원형의 배치를 복원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했다.

현재 선릉 정자각에서 성종 왕릉과 정현왕후릉에 이르는 신도와 어도는 발굴 결과를 바탕으로 박석 포장되어 위 사진처럼 복원하였다.

 

※출처

1. 서울역사편찬원, '서울의 발굴현장'(역사공간, 2017)

2.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조선왕릉 https://royaltombs.cha.go.kr/cha/idx/SubIndex.do?mn=RT

3. 구글 관련 자료

 

2022. 8. 20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