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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11 - 나한백

새샘 2024. 6. 15. 17:25

측백나무과 나한백속에 속하는 나한백羅漢柏의 학명은 투욥시스 돌라브라타 Thujopsis dolabrata, 영어는 Hiba arborviate(히바측백) 또는 False arborviate(가짜측백), 중국어 한자는 罗汉柏/羅漢柏이다.

 

일본에서 들여온 비늘 모양의 잎을 가진 늘푸른 바늘잎 큰키나무다.

모양새가 아름다워 가사를 걸친 나한처럼 보인다고 나한백이다.

 

 

나한백 잎(사진 출처-출처자료1)

 

진한 녹색의 윤이 나는 잎은 수탉의 억센 다리에 붙어 있는 비늘 같은 특별한 모습이다.

나한백은 일본 혼슈(본주本州) 북부 지방에 자라는 나무로,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있으나 그 수는 극히 적은 편이다.

 

나한백은 잎의 생김새가 이상해서 사람들의 주목을 끈다.

대체로 일본에서 목재로 사용되는 침엽수종으로 먼저 삼나무와 편백을 들 수 있고, 그다음으로 일본잎갈나무(낙엽송)·소나무·곰솔(해송) 그리고 나한백을 들 수 있다.

나한백은 경제적 가치가 매우 높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희소한 나무라서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나라에는 전남 광양시 옥룡면 추산에 몇십 그루가 있으며, 그 자람새도 비교적 좋은 편이다.

 

 

○생물학적 특성

 

나한백은 늘푸른 비늘 모양의 바늘잎나무로서, 잎은 편백과 닮았다고 할 수 있으나 크기가 더 크고 얼핏 보기에는 수탉의 억센 다리에 붙은 비늘처럼 보이기 때문에 '닭다리나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나한백이라 부르기다보다는 닭다리나무라 말하는 것이 더 옳을지도 모른다.

 

나한羅漢이라 하면 도를 닦는 수행자로서 공덕을 쌓은 학자나 성자聖者를 말한다.

잎이 닭다리와 같아 처음 이 나무의 잎을 보는 사람은 흉한 벌레를 보는 것처럼 징그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 나무는 전체적으로 모양이 우아하고 색깔이 진해 장식재의 재료로 쓰이고, 목재는 춘재春材와 추재秋材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 가구재 등으로 쓸모가 많으며 향기가 있다.

또한 물속에 들어가면 견디는 힘이 더 강해지는 성질이 있어 그러한 곳에 이용하면 좋다.

 

이 나무가 나한백이란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잎의 대담한 짜임새와 몸집의 장엄함, 풍채가 당당하고 안정을 이룬 점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아래 가지가 끝까지 살아 있어서 초기에는 나무 모양이 A자형을 이룬다.

아래 가지는 개잎갈나무(히말라야시더 Himalayan cedar)처럼 거의 땅에 닿는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오래되면 아래 가지가 죽게 되고, 줄기 길이는 30미터 또는 그 이상, 줄기의 굵기는 아름드리가 된다.

이 나무는 20~30년까지는 거의 자라지 않고 있다가 백년이 지나고 나면 빠른 속도로 자라 대기만성의 경지를 보여준다.

이것은 나한의 기질일수도 있다.

 

 

○원산지의 나한백

 

본고장인 일본에서는 이 나무를 '아스나로アスナロ' 또는 '히바ヒバ'라고 부른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아스나로'는 "내일이면 나도 너같이 될거야"라는 뜻이라고 한다.

말인즉, 편백나무가 목재의 질이 좋아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자 편백나무 잎과 닮은 잎을 가지고 있는 나한백이 시샘이 나서 "나도 내일이면 편백나무 너처럼 될 것이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사람들이 붙인 것이지 '아스나로' 자체가 원한 이름은 아니다.

나한의 경지에까지 이른 나한백이, 베어지고 사람의 기호를 충족시켜 겨우 사랑을 받는 편백나무를 시샘해서 "나도 너같이 되고 싶다"고 할 이유는 조금도 없을 것이다.

당당함을 자랑스레 생각하고 있는 이 나무에 사람들이 그와 같은 이름을 붙인 것은 나한백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일종의 명예훼손일 것이다.

 

몇만 년을 살아온 이 나무는 예전부터 지구상에 나타나서 온갖 것을 보고 지내왔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잘 보호해주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놓여 있다.

 

아무리 보아도 굳센 나한백에는 무언가 우리가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하다.

1982년 여름 일본 북부 아오모리 지방의 깊은 산중을 지날 때, 아름다운 나한백 숲에 평생 그 숲을 잘 가꾼 사람이 쓴 시가 돌에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나한백의 숲과 평생을 같이한 그 사람의 생애를 회상하면서 시를 적어놓았다.

우리말로 번역해서 그 느낌을 그대로 나타내기는 어렵겠지만 이곳에 옮겨본다.

 

"무쓰(육오陸奧)의 산속

도라지꽃 피는 길목에서

이 숲의 영광을

나는 기도하노라"

 

무쓰란 그 지역의 이름이다.

나한백 수풀의 영구무진한 영광을 비는 산사람의 소원을 그 시에서 잘 읽을 수 있었다.

 

 

○나한백의 생태

 

제주 한라수목원의 나한백(사진 출처-출처자료1)

 

이 나무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나무의 아래 가지가 땅에 닿아 자연적으로 뿌리내려서 새로운 나무를 만든다는 것이다.

나한백이 어릴 때에는 아래 가지가 축 늘어져 땅에 닿을락말락한데, 겨울에 눈이 1~2미터로 쌓이면 눈 힘에 눌려서 가지가 땅에 닿게 되고 눈은 봄 늦게까지 녹지 않아 땅에 닿은 가지에서 뿌리가 내리게 된다.

이렇게 불어난 어린 나무들이 끝내는 새로운 숲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이 나무가 자라고 있는 일본 지방에는 눈이 많이 오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가능하다.

 

나한백은 나무껍질이 세로로 길게 잘 벗겨지는데, 이것은 편백나무의 성질과 많이 닮았다.

그리고 이 나무는 물기 있는 곳과 음지를 좋아한다.

말하자면 음수陰樹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큰 나무로 우거진 나한백 밀림 아래에서 햇볕을 거의 보지 못하면서도 어린 나무들이 구김살 없이 잘 자라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쪽 따뜻한 지방, 땅에 습기가 있고 땅 힘이 비교적 좋은 곳이라면 이 나무를 심어서 그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남 광양에서 이 나무의 자람 성과가 비교적 좋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바늘잎나무(침엽수)라 하면 씨가 싹이 터서 나올 때 떡잎의 수가 많은 법인데, 이 나무는 넓은잎나무(활엽수)처럼 떡잎이 2개뿐인 것이 이상하다.

그린란드 제3기의 화석이 발견되어, 이 나무와 비슷한 나무가 예전에는 세계 다른 곳에도 있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나한백은 줄기 굵기가 1미터에 이르고 높이가 30미터를 넘는데도 뿌리는 50센티미터 이하를 뚫고 들어가지 못한다.

물론 그 뿌리 가운데는 땅속으로 깊게 들어가는 이른바 말뚝뿌리(주근主根/지지근支持根)라는 것도 있지만, 그 뿌리마저도 1미터 이상을 더 파고 들어가지 못한다.

이 나무의 뿌리가 땅속 깊은 곳에서는 공기가 부족해서 숨을 쉴 수 없기 때문이다.

깊은 땅속에서는 질식해 죽기 때문에 절로 땅속 얕은 곳에만 뿌리를 내리게 된다.

 

한편 이 나무는 무리를 이루어야지 혼자서는 자라나기 어렵다.

이는 바람에 대한 저항력과 관계있다.

여러 나무가 모여 있으면 집단의 힘으로 바람에 이겨낼 수 있지만, 나무 하나만 서 있으면 뿌리가 얕아 넘어지기 쉽다.

나한백 숲을 경영할 때는 이런 점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에 나한백을 처음 심은 것은 내 기억으로는 50년 또는 60년 전(1982년 기준)이다.

수원 서울대 농과대학 구내에 있는 숲에 나한백 한 그루가 있었는데, 기후 때문에 기를 펴지 못하고 생명만 지탱하고 있을 뿐 거의 자라지 못했던 것이 생각난다.

안타까운 일이다.

 

일본 홋카이도에도 있는데 우리나라 경기도 지방에서는 왜 나한백의 생장이 어려울까?

그 해답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일본은 눈이 많이 오기 때문에 높이 1~2미터의 어린 나무가 겨울에는 항상 눈 속에 묻혀 있어 추위를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눈은 겨울 추위의 상징처럼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불 같은 것으로, 그 안에 있는 풀과 나무를 찬바람으로부터 막고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풍년이 든다고 하지 않는가.

푸른 가을보리를 보호하고 또 녹아서 농작물이나 나무에 수분을 주기 때문에 봄날의 가뭄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지난날 나무의 유물, 그것이 지구의 한구석에 남아있다는 것은 신기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을 우리가 심고 가꾸어본다는 것, 그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위대한 일이다.

나한백의 영광이 오래 가기를 빌어본다.

 

※출처
1. 임경빈 저, 이경준·박상진 편,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1,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9.
2.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3. 구글 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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