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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 신라는 닭의 나라였다

새샘 2024. 10. 19. 10:41

장년층이라면 어렸을 적 아버지께서 월급날 고소한 향을 풍기며 전기구이 통닭 한 마리를 사 들고 귀가하시던 추억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치킨은 대한민국 전 국민이 사랑하는 대표적인 배달음식으로 자리매김했다.

심지어 한류 열풍과 더불어 한국의 치킨의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세계 곳곳에 널리 퍼지는 중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닭 요리에 일가견이 있었다.

그 기원은 삼국시대 신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닭, 신라의 역사와 함께 하다

 

경주 계림(출처-https://m.cha.go.kr/public/commentary/selectImgDetail.do?s_kdcd=&s_ctcd=&ccbaKdcd=13&ccbaAsno=00190000&ccbaCtcd=37&region=&searchCondition=&searchCondition2=&ccbaCncl=&stCcbaAsno=&endCcbaAsno=&stCcbaAsdt=&endCcbaAsdt=&ccbaPcd1=&ccbaLcto=&ccbaGcode=&ccbaBcode=&ccbaMcode=&culPageNo=1&returnUrl=&ccbaCpno=1333700190000&tabGubun=)

 

닭은 오래전부터 인류 역사에서 신령한 존재로 대우받은 가축이었다.
닭은 새벽에 우는 습성 때문에 새로운 시간을 연다는 의미로 길조吉鳥(좋은 일을 가져온다고 여기는 새)로 여겨졌다.

또한, 붉은 벼슬이 있어 악한 마귀를 쫓아내는 영물靈物(신령스러운 짐승)이자 벽사辟邪(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침)의 동물로 생각되었다.

복을 부르는 새로 숭배했기에 전통 혼례상에도 올리는 동물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신라 신화에 닭이 등장한다.

≪삼국사기≫에는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 신화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석탈해왕 9년(65년) 봄에 왕이 금성 서쪽 시림始林 숲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듣는다.

날이 밝은 뒤 닭이 우는 곳에 가 살펴보니 나무에 작은 함이 걸려 있었고 그 안에 자그마한 사내아이가 들어 있었다.

아이는 총명함과 지략이 넘쳤기에 알지閼智라 이름하고 금함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김金으로 삼았으며, 닭 우는 소리로 아이가 있는 곳을 발견했으니 시림의 이름을 바꾸어 계림鷄林이라 칭하고 이를 나라 이름으로 삼는다."

 

신화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닭은 상서로운 기운을 전달해주는 매개체로 서술되었다.

 

 

신라 천마총 출토 달걀(출처-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img_pg.aspx?CNTN_CD=IE000857891)

 

흔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신화로 곰과 호랑이가 등장하는 단군신화를 꼽는다.

단군신화는 유라시아 북부에 널리 퍼져 있는 곰 신화와 관계가 있다.

그런데 신화에는 북방계의 곰 신화 외에 또 다른 흐름이 존재한다.

바로 난생신화다.

건국의 주역이나 영험한 인물이 알(난卵)에서 태어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난생신화는 남방계 신화의 주된 흐름이다.

실제로 삼국시대 신라와 가야에서는 닭과 알로 대표되는 난생신화 사례가 많이 보인다.

박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지며, 신라 천마총에서는 달걀이 출토되기도 했는데, 이 달걀은 식용 목적이 아니라 권력을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달걀은 닭이 태어나는 장소이므로 그 자체로 생명력을 의미하기도 했다.

 

신라는 대외적으로 '계림'으로 불렸다.

≪삼국유사≫에는 인도(천축국天竺國)에서 신라를 '구구타예설라矩矩咤䃜說羅'라고 불렀다고 적혀 있다.

여기에서 '구구타'는 닭을 가리키는데, 인도-유럽어 계통인 산스크리트어 Sanskrit(범어梵語)서 닭 울음을 표현하는 의성어가 '구구 kuku'였던 것과 관련이 있다.

또한, 산스크리트어로 '예설'은 한자의 '귀貴'와 대응된다.

신라를 이렇게 불렀던 이유는 신라에서는 계신鷄神(닭의 신)을 공경하여 높은 이들의 관에 깃을 올려 장식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라와 고구려의 모자 장식 유물에는 모두 새 깃털이 달려 있다.

이는 닭(새)을 숭배했던 증거인 셈이다.

 

 

○고고학적으로 닭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사료로 전해지는 내용과 달리 정작 고고학 자료에서 닭은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학자들은 약 4,500년 전 인더스 문명 Indus Civilization의 모헨조다로 Mohenjo-Daro에서 발견된  닭을 묘사한 인장과 소상小像 등 관련 유물을 통해 인류가 처음으로 닭을 키웠던 시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국에서 새로운 주장이 등장한다.

허베이성(하북성河北省)의 약 7,000년 전 신석기시대 유물에서 가축화된 닭의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막연한 주장이 아니라 실제 증거들이 등장했기 때문에 닭의 가축화 중국 기원설이 힘을 얻는 듯했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꿩의 존재다.

 

'꿩 대신 닭'이란 속담이 있을 정도로 닭과 꿩은 겉모양이 거의 비슷하다.

지금도 연변 조선족 사이에서는 '솥뚜껑만 열면 꿩이 후두둑 날아온다'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북한과 만주 지역에서는 닭을 키우는 것보다 꿩을 사냥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으로 여겨졌다.
한국 역시 같은 맥락에서 집에서 닭을 가축으로 키운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또한, 우리나라의 토종닭 DNA를 분석해보니 중국 윈난성(운남성云南省/雲南省) 지역에서 온 것이 많았다.

이러한 한국의 토종닭은 일부 일본으로도 건너갔다.

 

 

○가야와 마한에서도 발굴된 닭 숭배 유적

 

가야(왼쪽)와 마한(오른쪽)의 새 모양 청동기(출처-왼쪽은 출처자료1, 오른쪽은 부산일보 https://www.busan.com/view/youngman/view.php?code=2021110714093183653)

 

신라뿐만 아니라 신라와 인접했던 가야와 마한 지역에서도 닭을 신성시했던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

 

1995년, 경남 고성군 동외동의 3~4세기 가야 고분 근처에서 아주 특이한 청동기가 출토되었다.

고분 근처의 제사를 지내던 구덩이에서 발견된 청동기다.

어른 손바닥 정도 크기인 지름 8.9센티미터의 청동기에는 닭처럼 벼슬이 있는 새 두 마리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바로 위 왼쪽 사진의 가운데 부분).

그 양쪽에는 빽빽하게 고사리 무늬도 새겨져 있었다.

놀라운 것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로부터 4년 뒤, 마한의 중심지였던 전남 영암군 수동마을에서도 이와 똑같이 생긴 새 모양 청동기가 출토된다(바로 위 오른쪽 사진의 맨 아래 가운데 깨진 부분).

이는 당시에 두 나라 모두 동일한 제사 풍습과 신앙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즉, 가야와 마한 두 나라 모두 닭처럼 생긴 신령한 새를 모시는 풍습이 있었다.

 

 

창원시 진해구 석동 유적에서 발견된 새 모양 다리가 있는 집모양 토기(출처-경향신문 https://www.khan.co.kr/culture/scholarship-heritage/article/201401062121525)

 

가야 유적에서는 다양한 모습을 표현한 토기들이 자주 출토되는데, 그중에는 마치 원두막 같은 지상 가옥 모습의 토기도 있다.

특히 함안군 말이산의 가야 무덤에서 발굴된 집 모양 토기는 특별하다.

이 토기의 다리는 마치 닭과 같은 새의 다리처럼 표현되었다.

그 모양도 쭉 뻗은 것이 아니라 앞으로 기울어져서 마치 어디론가 달려가는 듯한 모습이다.

토기의 이런 모습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 의미를 짐작하기 위해서는 토기가 출토된 장소부터 곰곰 생각해봐야 한다.

 

이 토기는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즉, 실제적인 용도가 있었다기보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만들어지고 함께 묻힌 물건이라는 뜻이다.

새 다리를 지닌 집 모양 유물은 유라시아 곳곳에서도 발견된다.

러시아 대문호 푸시킨의 시 구절에도 고대 러시아인들의 신화 속에 등장하는, 닭다리 모습을 한 집이 등장한다.

 

한국 토종닭이 일본으로 건너갔던 것처럼 닭을 숭배하는 문화는 일본으로도 확산되었다.

일본에서는 대체로 서기전 3세기에서 서기 3세기에 이르는 야요이(미생弥生/彌生)시대부터 무덤에서 닭뼈가 발견되기 시작한다.

무덤에서 발견되는 닭뼈는 그 수가 다른 새들의 그것에 비해 훨씬 적다.

또한, 닭뼈가 발견되는 무덤들의 위치도 제한적이어서, 주로 한국과 가까운 규슈(구주九州) 일대에서 발견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일본에서 식용으로 닭을 키운 것이 아니라 제사 등 의식에 사용했음을 뜻한다.

 

 

○닭을 숭상한 신라인의 후예, 이제는 '치느님'을 받들다

 

'치느님'이라고까지 불리는 치킨(출처-경향신문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107071007001)

 

최근 과학기술의 발달로 DNA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닭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결과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흥미롭게도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지역에서 가축화된 다른 동물들과 달리 닭은 특정 지역에서 길들여진 뒤 세계로 퍼져서 다양하게 분화했다고 한다.

학자들은 대체로 동남아시아, 중국 남부, 또는 인도 등 아열대 지역이 닭을 가축화한 기원지로 유력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야생 닭이 이 지역에서 많이 살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일찍 닭을 가축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닭과 병아리는 소나 돼지 등과는 달리 크기가 작아 사람과 쉽게 이동이 가능하다.

따라서 닭과 병아리는 인간에게 안정적으로 단백질을 공급해줄 수 있는 원천이었다.

 

오늘날에도 닭은 현대인들에게 주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자 별식이다.

특히 치킨은 다양한 닭 요리 가운데서도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소울 푸드 soul food(컴포트 푸드 comfort food, 추억의 음식)가 되었다.

닭 특유의 부드러운 육질을 바삭하게 고소한 튀김옷으로 감싼 뒤 다양한 시즈닝 seasoning(양념)까지 더하니 세계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별미가 만들어졌다.

어떤 이들은 치킨 맛에 푹 빠진 나머지, 치킨을 '치느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웃자고 하는 말이겠지만, 이 땅에서 닭을 숭배해온 역사가 유구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고고학자의 눈에 치킨에 대한 경배가 그저 우스갯소리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출처 
1. 강인욱 지음, 세상 모든 것의 기원, 흐름출판, 2023.
2. 구글 관련 자료

 

2024. 10. 19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