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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43 - 박태기나무

새샘 2025. 4. 27. 15:59

박태기나무 꽃(출처-출처자료1)

 

4월 잎이 나기 전 우산(산형傘型)꽃차례를 이룬 자주색 꽃과 밥알 모양의 꽃봉오리가 가지를 온통 뒤엎는다.

하트 모양의 반질반질한 잎사귀와 날렵하고 자그마한 콩코투리 열매가 다닥다닥 달린다.

 

콩과 박태기나무속갈잎 넓은잎 떨가나무인 박태기나무는 중국 원산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관상용으로 심어 기르며 3~5미터 높이로 자란다.

학명은 체르치스 키넨시스 Cercis chinensis, 영어는 Chinese redbud(중국 박태기나무), 중국어 한자는 자형목紫荊木, 소방목蘇芳木, 만조홍滿條紅 등으로 쓴다.

 

풀꽃이든 나무 꽃이든, 또 농염하든 숨어서 피는 소박함이 있든, 꽃은 모름지기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하는 부드러움과 순수와 평화와 사랑의 상징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큼직한 연꽃이나 목련꽃, 작게는 논두렁에 자리 잡아 조알같이 작은 꽃을 다는 담배풀꽃이나 나생이꽃, 또는 잔디꽃도 그 속에 존재하는 미의 공간을 무한한 것으로 확대해 그 안에서 거닐어보는 꽃 철학을 키워왔다.

 

박태기나무는 중국이 원산지로, 비교적 오래전에 우리나라로 건너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썩 나무답지는 않지만 어릴 때부터 손질해서 나무의 골격을 다듬어주면 나름대로 보고 싶은 나무 형태를 갖추도록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박태기나무는 거의 손질되지 않은 채 울타리용으로 자라고 있다.

 

봄에 피는 박태기나무의 자주색 꽃은 작은 것들이 다닥다닥 모여 붙어서 나무 전체가 꽃줄기와 꽃가지로 뒤덮이기 때문에 줄기나 가지는 꽃 속에 묻혀서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쌀알만한 것들이 무더기로 달리는데, 꽃 색은 보라와 붉은 물감을 잘 혼합한 진한 붉은 자주 색깔(홍자색紅紫色)이고, 꽃이 지면 잎이 돋아난다.

 

 

○여러 가지 이름

 

박태기나무의 여러 가지 한자 이름 가운데 미화목米花木이 있는데, 이것을 밥풀(쌀알) 같은 꽃이 달린다는 뜻이다.

그래서 밥풀때기나무라고 부르던 것이 밥때기나무를 거쳐 지금의 박태기나무로 되었다는 말이 있다.

정태현의 ≪한국식물도감≫(신지사, 1953)에서는 박태기나무의 한자명으로 자형목, 소방목, 만조홍을 들고 있다.

정태현 박사의 이 세 가지 한자 이름 외에도 여러 한자명이 있지만, 자형목이 박태기나무의 한자명으로는 가장 널리 쓰인다.

그러나 만조홍滿條紅이라는 한자명이 박태기나무의 꽃가지를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이름이 아닌가 싶다.

만조홍이란 가지가지마다 꽃이 가득히 달려 있다는 것이고 또 그 꽃 색깔이 붉다는 것을 뜻하므로, 박태기나무의 꽃 핀 때의 상황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소방목蘇芳木이란 이름도 심심찮게 박태기나무의 한자명으로 나오고 있다.

 

중국 명나라 때 편찬된 유서類書 ≪삼재도회三才圖會≫에서는 소방목과 자형목은 엄연히 다른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이 나무가 원래 중국에서 자라던 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을 생각하면 이 설명이 더 타당한 것 같다.

즉 여기에서는 박태기나무의 한자명을 자형紫荊, 또 다른 이름으로 자주紫珠를 쓰고 있다.

 

한편 이 나무의 껍질을 육홍肉紅으로 표현한 것은 나무줄기 안에 붉은 색소가 가득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또한 속되게 자형을 소방목이라고도 했으나, 자형과 소방목의 구별을 뚜렷하게 해야 할 것 같다.

 

박태기나무 잎과 콩꼬투리 열매(출처-출처자료1)

 

≪본초강목本草綱目≫에도 자형의 설명이 있는데, 자형은 곳곳에서 자라고 있으며 사람들이 흔히 뜰에 심는다고 했다.

잎은 광택이 있고 깨끗한 색이며 그 모양은 둥글고 톱니가 없다.

봄에 보라색 꽃을 피우는데, 그 꽃은 많이 몰려서 달리고 가늘게 깨어져 수술같이 보이기도 한다.

꽃은 달리는 곳이 정해져 있지 않고 대로는 나무줄기에 꽃이 달리는가 하면, 때로는 뿌리에도 꽃이 달린다.

가지의 겨드랑이에도 나며 나무줄기에도 많은 꽃이 달린다.

 

한편 ≪본초강목本草綱目≫의 소방목에 대한 설명을 보면, 남쪽 바다에 있는 섬 이름이 소방국蘇芳國인데 그곳에 이 나무가 자라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기록을 보면 이 나무는 다분히 열대산 수종이고 꽃색이 노랑이라고 하니 박태기나무와는 차이가 크다.

그런데 북방 수종의 박태기나무에 소방목이란 한자명이 붙었으니 그 까닭을 알 수가 없다.

 

일본 사람들은 박태기나무를 '하나즈오'라고 하다.

하나즈오는 '화소방花蘇芳'을 일본말로 훈·음독한 것으로, 어떻게 해서 화소방이란 이름이 붙여졌고 그것을 하나즈오로 부르고 있는지 그 연유는 잘 알 수 없지만, 박태기나무의 일본 이름인 화소방을 소방목으로 잘못 번역한 탓이 아닐까 생각된다.

 

 

○자유분방한 꽃의 위치

 

박태기나무 꽃달림 모습(출처-출처자료1)

 

박태기나무는 꽃이 달리는 정해진 곳이 없다.

거의 모든 나무는 꽃을 달 때 그 꽃이 달리는 위치가 정해져 있으며 이를 꽃차례(화서花序)라고 한다.

그러나 박태기나무는 꽃을 피우는 위치에 있어서는 자유분방하여 차례와 장소에 얽매이지 않는다.

 

필자가 박태기나무를 가장 많이 본 곳은 경기도 수원이다.

지금도 수원에는 이 나무가 다른 곳에 비해서 더 많이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박태기나무는 갈잎떨기나무로 높이가 5미터를 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원산지 중국에서는 큰키나무로 자라고, 미국에서는 빨간 눈 redbud로 불리며 나무 높이가 15미터에 이르는 것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나무의 껍질을 벗겨서 이뇨제로 사용한 기록이 있다.

 

박태기나무는 적응력이 강해서 어느 곳, 어떤 땅에서나 왕성한 자람을 보인다.
씨에서 싹튼 모나무(모종나무, 묘목苗木)는 약 3년이 되면 꽃이 피기 시작하는데, 꽃에는 독이 있어서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꽃 피는 장소가 정해져 있지 않은 까닭에 ≪삼재도회≫에서는 상처常處가 없다고 적혀 있다.

박태기나무에 꽃이 피는 상처, 즉 정해진 곳이 없다는 표현은 박태기나무 꽃의 생태를 적절하게 표현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박태기나무와 한시

 

꽃이 피는 나무, 예를 들어 매실나무, 복사나무, 배나무, 진달래, 목련 따위에 댛나 한시는 무척 많다.

박태기나무는 아름다운 꽃을 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꽃이 무척 소녀스럽고 어린아이 같은 탓에 선비들의 눈에 띄어 명시의 소재가 되곤 했다.

 

다음은 13세기 후반 중국 항저우(항주杭州)에서 살았던 장우張雨가 지은 <호주죽지사湖州竹枝詞>라는 시이다.

 

"임호문 밖에 우리 집이 있네                      (임호문외시농가 臨湖門外是家)

 그대 한가할 때 와서 차 한잔 마시게나           (낭약한시래끽다 郎若閑時來喫茶)

 흙으로 담을 쌓고 갈대로 지붕을 덮은 집이지만  (황토축장모개옥 黃土築墻茅蓋屋)

 문 앞 한 그루 박태기나무 꽃을 피웠다네         (문전일수자형화 門前一樹紫荊花)"

 

임호문은 사람의 집 가까이 있는 문을 뜻하는 고유명사이며, 흙으로 담을 쌓고 갈대를 엮어 지붕을 덮었다는 것은 가난한 청빈을 말하는 것이다.

문 앞에 한 그루의 박태기나무가 붉은 꽃을 달아서 화사한 봄날을 장식하고 있는 아름다운 집의 풍정을 말해준다.

이때 주인은 한잔의 차를 마시고 싶었으며, 그 차를 혼자가 아닌 친한 벗을 불러서 함께 맛보고자 했다.

이 얼머나 아름다운 풍경인가?

차 한잔이 그다지 대단한 대접은 아니지만, 이때의 차 한잔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음이 맞는 사람과 함께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며 박태기나무와 함께할 때, 그들은 그것으로 인생의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백낙천白樂天으로 널리 알려진 백거이白居易의 시에서도 "넉넉하면 넉넉한 대로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또한 기쁘고 즐거우니, 입을 벌려 한바탕 크게 웃지 않으면 그가 바로 어리석은 사람이라네(수부수빈차환락隨富隨貧且歡樂, 불개구소시치인不開口笑是癡人)"라고 하였다.

 

박태기나무 집주인도 이 시로 따진다면 가난한 집안일 것이다.

그러나 그 나름대로 삶을 즐긴다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하늘과 땅이 그 찻잔 속으로 녹아들어갈 수도 있다.

 

필자도 집 한 칸을 장만해서 살게 된다면 이곳 장우의 집처럼 좋은 집을 꾸밀 수 없다 하더라도 한 그루의 박태기나무를 심어서 그 꽃을 즐기고자 한다.

그대 생각나는 벗이 있으면 불러서 차 한잔을 나누면서 활짝 핀 박태기나무의 꽃을 즐기고 싶다.

얼마나 따뜻한 인정의 모습인가?

박태기나무 꽃의 붉은 물이 찻잔에 녹아, 마시는 사람의 입술을 붉게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봄날은 박태기꽃 덕에 분홍색으로 물든다.

줄기의 마디마디가 곳곳의 껍질이 깨어지고 터져서 꽃이 된다.

나무의 전신이 꽃이 되어 불꽃처럼 타오른다.

이것이 박태기나무의 자랑이다.

 

 

○꽃은 아름답다

 

꽃이 핀 상태는 식물의 생애 가운데 에너지가 가장 충만한 때이며, 식물체의 어느 부분과 비교해보아도 꽃은 색깔이나 구조에 있어서 가장 신비스럽고 아름답다.

창조주는 풀과 나무를 만들 때 그 일의 역점을 꽃에 두었던 듯하다.

그래서 꽃은 영광이라든가 아름다움의 극치를 상징한다.

그러나 꽃은 그 피는 시기가 길지 못한 까닭에 흔히 인생의 덧없음에 비유되기도 한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열흘 붉은 꽃은 없다)'이란 바로 이것을 뜻한다.

꽃을 영광의 절정으로 보기도 하지만, 반면 비애 같은 것도 찾아볼 수 있다.

모든 것은 이처럼 양면성을 가지고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댄다.

 

단종의 <자규사子規詞>에서 "봄 산골짜기에 피 흐르듯 붉은 꽃이 떨어진다(혈류춘곡낙화홍 血流春谷落花紅)"는 내용은 두견杜鵑새의 비통한 울음소리가 목을 자극해서 피를 흐르게 했다는 것으로, 이는 꽃의 영광이나 평화보다는 한량없이 통탄스러운 심정을 노래한 것이다.

 

한편 도연명陶淵明은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쓸 때 "소나무와 국화가 아직 남아 있으니 내 돌아갈 곳이 아름답다"고 표현했다.

이때 국화는 가을을 상징하는 꽃이라고 볼 수 있으며, 따라서 귀거래사는 가을에 쓰여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찬 매화가 겨울을 상징한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꽃은 봄을 상징하고 있다.

 

다음은 일제강점기 이원수가 지은 <고향의 봄>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우리 고향의 아름다움을 최대한으로 표현한 노래라고 할 수 있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가 꽃 대궐을 만들었다면 시절은 봄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어디에 가나 이러한 꽃 대궐이 봄이면 잔치를 배풀어준다.

봄이 되었는데도 꽃이 피지 않는다면 그것은 삭막하기 짝이 없다.

 

다음 시는 이러한 기분을 말해준다.

 

"변지에는 꾀꼬리도 꽃도 적어                   (변지앵화소 邊地鶯花少)

 새해가 와도 조금도 새로운 기분이 나질 않는다  (연래미각신 年來未覺新)"

 

'변지邊地'하면 먼 북쪽을 말하는 것으로, 이러한 변지에 꾀꼬리 노랫소리도 거의 없고 꽃도 거의 피지 않아 새해가 와도 조금도 새로운 맛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시의 작자는 얼마나 이 변지에서 고향의 봄을 그리워했겠는가?

봄이 오면 뭐니 뭐니 해도 오만 가지 꽃이 피어야 한다.

꽃은 봄의 소식을 알리는 선사품이라고 할 수 있다.

 

"삼산에는 비가 오고 바다는 어둡다       (해암삼산우 海暗三産雨)

 꽃색은 밝고 오령은 바야흐로 봄이로다  (화명오령춘 花明五嶺春)"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가!

비가 오고 있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날이 어두운데 그 안에서 밝은 꽃이 봄을 알려준다는 황홀한 경지를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꽃이 봄의 속성이라는 것을 잘 표현해준다.

 

※출처
1. 임경빈 저, 이경준·박상진 편,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2,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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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4. 27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