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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샘(淸泉)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45 - 배롱나무 본문
여름에서 가을까지 거의 백 일에 걸쳐 붉은 꽃이 핀다고 백일홍百日紅 나무라고 하다가 배롱나무가 되었다.
옛사람들도 백일홍 꽃을 좋아하여 오래된 절이나 서원에서 흔히 고목을 만날 수 있다.
부처꽃과 배롱나무속의 갈잎 넓은잎 작은키나무로 꽃이 한 번에 피고 지는 것이 아니라 백일이라는 기나긴 날에 걸쳐 번갈아 피고 져서 오랫동안 피어 있는 것처엄 보이기 때문에 백일홍이란 이름이 붙었다.
학명은 라게르스트로에미아 인디카 Lagerstroemia indica, 영어는 common crape myrtle(일반 백일홍), 한자는 목백일홍木百日紅 또는 자미紫薇로 쓴다.
뜨거운 여름 햇살이 사정없이 내리쪼이는 한낮에 그 열기를 되려 내뱉어버리는 꽃이 바로 배롱나무꽃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시원한 느낌이 들게 한다.
배롱나무꽃은 특히 고요함과 적막함을 상징하고 있어 내리는 빗속에서 더 아름답다.
바람 하나 없는 날에도 어울린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움직이는 것이지만, 원래 비가 원하는 것은 고요함이기 때문에 이 꽃과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배롱나무는 흔히 집 뜰에 심고 있지만, 우리는 호젓한 산모퉁이에 있는 배롱나무가 온몸을 덮어쓴 붉은 꽃으로 갑자기 사람을 놀라게 해주었을 때 더 감동하게 된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잔잔하게 가라앉은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나그네를 맞아주는 길가의 배롱나무는 많이 모여 서 있을 필요도 없다.
고요함이라는 것은 나무가 홀로 서 있을 때 더 강조될 수 있어서 좋다.
이처럼 호젓함을 배롱나무에서 발견하고 또 느낄 수 있다.
무릇 꽃이라면 아름다운 까닭에 소리를 가지지 못하는 것이고, 배롱나무의 경우 더우 고요하다.
소리를 내고 시끄러운 것 중 아름다운 것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
꽃은 아름답기 때문에 말이 없다.
다음은 조선 중기의 문신 김인후金麟厚의 <백련초해百年抄解>라는 한시이다.
"뜰에 피는 꽃은 웃음을 띠어도 소리를 내지 않으며 (화소함전성미청 花笑檻前聲未聽)
숲속에서 우는 새는 슬퍼도 눈물을 보이지 않네 (조제임하루난간 鳥啼林下淚難看)"
꽃과 새가 식물성과 동물성으로 대조가 되고, 뜰과 숲속, 소리와 눈물, 그리고 들을 수 없다는 것과 볼 수 없다는 것이 서로 대조가 되어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훌륭한 시다.
배롱나무꽃이 흥겨워도 소리를 내지 않는 것처럼, 나도 슬퍼도 눈물을 보이지 않겠다고 다짐해 본다.
봄이면 꽃이요 꽃이라면 봄인데, 배롱나무가 꽃 때를 여름으로 택한 이유는 무엇있까?
여름이 초록 일변도로 너무 단조롭기에 꽃으로 장식해준 것일까?
아니면 땅속으로 스며들어간 여름의 열기가 이 나무의 가지에 터져나온 것일까?
그래서 태양의 빛깔을 닮아 붉은 것일까?
배롱나무꽃은 대개 색이 붉거나 분홍이지만 흰 것도 있다.
붉은 것이 지나치다 보면 흰 것으로 변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태양을 뱉어내는 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나무 이름
배롱나무는 중국 남쪽이 원산이라 그런지 필자의 고향 마을 예천에서는 이 나무를 본 적이 없다.
십 리를 넘는 길을 걸어 초등하교를 다녔지만, 필자는 길가 마을에서나 초등학교가 있는 큰 마을에서나 배롱나무꽃을 본 적이 없었다.
이것은 그때 이 나무가 그만큼 흔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어느 식물학자가 필자에게 "배롱나무를 나무백일홍이니 또는 목백일홍이니 하는 것은 한참 잘못된 것이다"라고 하여 그때부터 필자는 당장 배롱나무란 이름을 쓰기로 했다.
그러나 이 나무가 중국에서 들어올 때 누가 처음 '배롱나무'라고 했는지, 그때 '배롱'이 무엇을 뜻하였기에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단, '배롱'이 한자에서 온 것은 아닌 것 같고, '목백일홍'은 한자 이름을 너무 그대로 음독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사람 이름에도 아명이 있고 성인명이 있듯이 배롱나무 또한 별명을 가지는 것이 나쁠 것 없고, 더욱이 이 나무가 중국 나무인 것을 감안하면 중국 이름인 '자미화紫薇花'나 '파양수怕癢樹/怕痒樹'로 부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일본 사람들은 이 나무를 '사루스베리(원활猿滑) サルスベリ'라고 하는데, 이 나무 껍질이 너무나 미끈해서 나무를 잘 타는 원숭이도 오르다가 미끄러져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럴싸하게 지어진 이름이다.
배롱나무는 겨울에 잎이 떨어지는 갈잎 작은키나무로 높이가 5미터쯤 자라기도 하지만, 큰 나무로 자라지는 못한다.
우리나라 중부 이남에서는 관상용으로 심고 있다.
나무줄기는 땅 표면 가까이부터 잘 갈라지며 줄기가 외대로 되는 일은 드물다.
줄기껍질이 너무 반들반들해서 손으로 간지렵혀주면 나무가 움직인다는 뜻에서 '파양수怕癢樹'라는 중국 이름이 지어졌다고 하지만, 이는 너무 과장된 표현이다.
이 나무는 반질반질한 나무줄기의 상태를 보고 쉽게 식별할 수 있다.
껍질이 얇다 보니 추운 북쪽 지방에서는 자랄 수 없을 것이다.
옷 없이 살아가는 배롱나무이다 보니 이 나무가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이다.
모든 나무가 더위에 허덕이는데, 배롱나무만은 한여름 백 날 동안 꽃을 달고 그 생리를 뽐낸다.
그래서 '목백일홍木百日紅'이란 이름은 적격이라고 할 수 있다.
○나무의 아름다움
나무를 바라볼 때 그 아름다움의 대상이 몇 갈래로 나눠질 수 있다.
꽃의 아름다움이 높게 평가되는 나무로는 배롱나무, 벚나무, 복사나무(복숭아나무), 무궁화, 개나리, 진달래, 꽃사과나무, 병꽃나무, 살구나무 따위를 들 수 있다.
즉 꽃은 나무에서 가장 화려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잎이 인간의 감정 대상이 되는 것에는 개잎갈나무(히말라야시더 Himalayan cedar), 소나무, 향나무, 꽝꽝나무, 회양목, 은행나무 따위가, 그리고 꽃과 잎이 함께 평가되는 것에는 동백나무, 산딸나무, 수국, 자귀나무 따위가 있다.
여기서 배롱나무는 무엇보다도 꽃으로 한몫한다.
배롱나무에서 꽃이 없다면 나무의 가치는 떨어진다.
배롱나무에는 붉은 꽃, 흰 꽃, 보라 꽃 따위가 달리는데, 6장의 꽃잎은 우글쭈글 주름살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백 날 동안 꽃을 다는 배롱나무의 왕성한 생리를 비웃고 소나무의 높은 격조를 읊은 다음 시가 흥미롭다.
"꽃이 아름답다 하지만 열흘을 가지 못하는 법인데 (화무십일홍 花無十日紅)
배롱나무 너는 어찌하여 백 날을 붉게 피는가 (이독백일홍 爾獨百日紅)
그 백 날 붉음을 뽐내지 마라 (막과백일홍 莫誇百日紅)
바위 위에는 천년 푸른 소나무가 있다 (암상천년송 岩上千年松)"
어느 해 여름 배를 타고 남해를 돌아볼 때, 누군가 촛대처럼 높다랗게 솟아오른 바위섬 위에 한 그루 소나무가 서 있는 것을 가리키며 "저 소나무의 이름은 '천년송'이고 해가 가도 나무 크기에는 변화가 없다"고 했다.
꽃으로 말할 때에는 무궁화도 있지만 백일 동안이나 오래 피는 배롱나무 칭찬을 아니 할 수 없다.
우리는 꽃을 보기 위해서 배롱나무를 심는다.
그 색깔이 어떻고 크기가 어떻든, 인간의 눈에 잘 띠든 안 띠든, 꽃은 식물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고, 그중에서도 배롱나무는 꽃으로 큰 목소리를 낼 만하다.
○꽃의 생물학적 해석
필자의 은사 우에키(식목植木) 교수는 생애의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그것도 수원고등농림학교 교수로 보냈다.
그의 꽃에 대한 구조학적 설명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꽃은 꽃잎, 꽃받침, 수술, 암술 따위로 구성되는데, 이들은 모두 잎이 변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일반적인 잎과 비교해 이러한 잎을 고출엽高出葉이라 한다. 꽃의 위치가 아래쪽 잎보다는 위에 있다는 데서 고출엽이란 이름을 얻었다. 원칙적으로 나무란 것은 뿌리, 줄기, 그리고 잎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열매라는 것도 잎이 변해 생긴 것이다."
이러한 내용의 강의였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구체적 사실을 들기도 했다.
요컨대 꽃의 각 부분은 잎의 변형이라는 것이다.
○꽃의 본디 성질
인간은 꽃에 대해서 비상한 관심을 쏟아왔다.
시와 문장, 그림, 그리고 노래의 소재로 꽃은 문화적 가치의 대상이 되면서 인간의 정신세계에 미친 영향이 지대하다.
배롱나무가 중국 원산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는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강릉 오죽헌에 있는 배롱나무는, 이율곡이 생전에 이 나무를 보았다는 말이 전하는 것으로 보아 배롱나무의 도입이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배롱나무는 주로 서당 뜰에 심었다고 하는데, 한여름 더위 속에서 글을 읊을 때 이 배롱나무꽃이 더위를 식혀주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나무의 꽃을 바라보면서 서당 학생들은 위로를 얻고 마음의 평안을 얻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꽃이 자아내는 격려의 힘을 찾아낼 수 있다.
꽃은 웃어도 웃음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꽃이 가진 높은 생활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꽃은 아름다우나 소란스러움이 없다.
벚꽃이 구름처럼 피어날 때, 그곳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고 야단법석을 떠는 것은 교양이 낮은 인간의 발상이지 꽃은 원성原性(본디 가지고 있는 성질)은 아니고, 또 꽃이 바라는 것도 아니다.
꽃은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예전 서당의 학생들은 배롱나무꽃은 물로 모든 꽃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자세를 훈련받았을 것이고, 그랬기 때문에 훌륭한 선비들이 많이 배출되었다고 본다.
꽃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안식眼識(사물의 좋고 나쁨이나 가치의 높고 낮음을 구별할 수 있는 안목과 식견)은 그 사람의 교양과 학식 그리고 행동거지와 됨됨이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진달래꽃 피는 동산에서 부녀자들이 한 화전花煎놀이(꽃잎을 따서 전을 부쳐 먹으며 춤추고 노는 부녀자의 봄놀이)는 소란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꽃에 시름을 묻어버리기도 하고 생기를 얻어내기도 하는, 공동체의 일종의 평화적이며 생산성 단결을 꾀하는 아름다운 행사였다.
화전놀이는 화려함이라든가 가벼운 잔치 분위기에 취하는 것이 아닌, 꽃밭을 통한 그윽한 자연의 몰입이었다.
○꽃과 시
꽃은 피어 있는 기간이 대체로 짧지만 그 가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중국 북송의 시인 동파東坡 소식蘇軾은 그것을 시로 묘사했는데, 다음 시 <춘야春夜(봄밤)>는 위대한 인간성을 지닌 뛰어난 시인이 표출하는 심성이라고 할 수 있다.
"봄 저녁의 짧은 시간은 천금의 값어치를 가졌는데 (춘소일각치천금 春宵一刻値千金)
꽃은 맑은 향기를 풍기고 달은 봄기운으로 흐려 있다 (화유청향월유음 花有淸香月有陰)
노랫소리와 음악의 가락도 쉬고 고요한 적막에 쌓여 있다 (가관누대성적적 歌管樓台聲寂寂)
그네줄 드리운 뜰안의 밤은 깊은 분위기로 가라앉고 있다 (추천원락야침침 鞦韆院落夜沈沈)"
꽃은 식물에서 가장 화려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식물 종에 따라 꽃의 구조는 차이가 있지만, 꽃의 주역은 역시 꽃잎이다.
수술도 암술도 꽃잎의 아름다움을 따라갈 수 없다.
그런데 꽃잎은 암술과 수술의 기능을 돕는 보조적 기관이다.
핵심을 돕는 주변 기관이 더 찬란하다는 것은 꽃이라는 생식기관의 화장술 같기도 하다.
인간이 이러한 생산적이고 아름다운 꽃을 바라보며 슬픔에 잠기고 눈물을 흘리는 것은, 역시 꽃 생리의 바탕이 고요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안 가서 꽃이 그 기능을 다하게 되면 미련 없이 그 아름다움을 땅으로 떨어뜨려 썩어가는 급한 변화에서 슬픔을 발견하는 것이다.
두보의 <춘망春望>이라는 시에서 이러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나라는 망해도 산과 시내는 그대로다 (국파산하재 國破山河在)
봄날 성에는 초목이 우거지고 (성춘초목심 城春草木深)
때로 느껴서 꽃에도 눈물을 뿌리고 (감시화천루 感時花濺淚)
한스러운 이별에 새를 보고도 놀란다 (한별조경심 恨別鳥驚心)"
인간의 처지가 좋을 때는 꽃이 행복하고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렇지 못할 때에는 슬픔에 인연을 붙여보게 된다.
전쟁으로 나라가 쑥(대)밭이 되고 포로 신세가 된 두보의 눈에 꽃은 한스러움으로 보였던 것이다.
꽃에서 위로를 얻었다고나 할까?
한여름의 생리를 자랑하는 배롱나무꽃이 그동안 우리에게 어떠한 분위기를 던져준 것일까?
나무가 심어진 곳이 사원이나 서당 주변인 것을 보면 깨끗하고 고요함을 상징했으며 한여름의 아름다움으로 자리 잡은 것으로 생각된다.
줄기가 지나칠 정도로 깨끗한 것은 신神의 주변에서 지내는데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고, 꽃이 절품絕品(비할 데 없이 아주 훌륭한 물건이나 작품)이 되는 여름에 신불神佛(신령과 부처)에 바쳐지는 공양물로서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꽃을 바라보는 인간의 상태에 따라 그때그때 다른 분위기를 보였을 것이지만, 어디까지나 본바탕을 결코 잃어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필자가 본 배롱나무
필자가 본 배롱나무 가운데 인상에 남은 것은 부산 양정동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168호 배롱나무다.
이곳 배롱나무는 약 800년 전 고려 중엽 때 동래 정씨 정문도鄭文道 공公의 묘소 앞에 심어진 것으로, 묘 안의 영혼을 달래서 고요히 잠들게 하는 나무의 정기를 엿볼 수 있다.
전북 고창 선운사의 대웅전 뜰 돌계단 위에 서 있는 두 그루의 배롱나무도 명물이다.
알맞게 틀을 잡은 나무 모양에 때가 오면 지천으로 꽃을 단다.
대웅전에 바치는 신앙의 촛불처럼 이 나무의 꽃은 찬란한 빛을 발한다.
전북 김제 금산사에 갈 때마다 시선을 끄는 것은 은행나무와 산사나무, 그리고 배롱나무이다.
지금은 은행나무가 없어졌지만, 산사나무의 열매는 명물 중의 명물이다.
이에 더해서 금산사에 가면 배롱나무를 봐야 한다.
유난히도 매끈한 줄기에 감탄하게 되며, 이 나무도 불법에 바쳐진 공양물로 생각된다.
필자는 금산사의 배롱나무를 볼 때 불법 신앙의 '육불六佛'을 떠올리게 된다.
육불이란 삶도 없고(불생不生), 사라짐도 없으며(불멸不滅), 더러운 것도 없고(불구佛垢), 깨끗한 것도 없으며(부정不靜), 불어나는 것도 없고(부증不增), 줄어드는 것도 없는 것(불감不減)을 뜻한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는 것이다.
이러한 진리를 금산사의 배롱나무와 함께 되새겨보았다.
그러한 힘이 있기에 배롱나무를 절간에 즐겨 심은 것이다.
이밖에 전남 강진 백련사의 배롱나무, 송광사, 선암사, 남제주 복자수도원의 배롱나무 모두 자랑할 만한 것들이다.
이처럼 절간에 배롱나무의 노거목이 많다.
특히 강릉 오죽헌의 배롱나무는 나무 형태의 아름다움과 줄기의 깨끗함에 있어서 빼어나다.
율곡 선생이 이 나무를 보고 느낀 감회가 어떠했을까?
위대한 학자의 글동무가 되었던 이 나무의 가치를 다시 되새겨본다.
배롱나무는 꽃나무의 대명사임에 틀림없다.
그 꽃은 고요하나 힘이 차 있다.
우리 선조들은 자랑스러운 곳에 배롱나무를 심었다.
※출처
1. 임경빈 저, 이경준·박상진 편,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2,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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