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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샘(淸泉)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44 - 밤나무 본문
싹이 틀 때 밤톨은 땅속에 두고 싹만 올라오는 모습이 조상 숭배를 상징한다고 하여 제사상에 오른다.
목재도 신주神主(죽은 사람의 위패)나 제사상을 만들 때 쓴다.
밤은 도토리와 함께 옛사람들의 식량 자원이기도 했다.
밤나무과 밤나무속의 갈잎 넓은잎 큰키나무로 30미터 높이까지 자란다.
학명은 카스타네아 그레나타 Castanea crenata, 영어는 Korean castanea(한국 밤나무) 또는 chestnut tree(밤나무), 한자는 율栗로 쓴다.
암수한그루로 5~6월 꼬리모양(미상尾狀)꽃차례로 피는데, 1개 꽃차례에 암꽃 수는 0~2개, 수꽃 수는 30~200가 달릴 정도로 암꽃 수가 극히 적어 나무에 열리는 밤송이 또한 그 수가 적은 것이다.
밤꽃이 필 때 근처를 지나면 쉽게 알아챌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밤꽃에서 정액 냄새가 풍기기 때문.
생밤이든 군밤이든 찐밤이든 밤은 맛이 있다.
밤과 감과 단풍은 가을에 만들어진다.
알밤이 떨어지게 되면 가을이 온 것이다.
필자가 도쿄(동경東京)에 갔을 때 그곳에서 팔고 있던 약밤이 얼마나 맛이 있던지, 머무르는 동안 여러 봉지 사서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일본에서는 해마다 상당량의 톈진(천진天津) 단밤을 수입해온다고 한다.
약밤은 알이 작고 딱딱한 껍데기를 벗기면 먹기 어려운 속껍질이 함께 벗겨져 먹기가 정말 편하다.
맛이 달아서 꿀맛 같다고나 할까?
그래서 약밤은 값이 더 비싸다.
약밤은 평양 부근에서 나므로 평양밤이라고도 불렀다.
약밤(약률藥栗)의 약藥은 병을 고치는데 쓰는 약이 아니라 '좋은 것'을 뜻한다.
대추, 잣, 밤, 곶감을 넣어서 만든 맛이 좋은 밥을 약밥(약식藥食)이라 하고, 깨끗하고 시원한 물을 약수藥水라 하며, 맛 좋은 술을 약주藥酒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약밤의 유래
지금으로부터 약 2천 년 전인 낙랑樂浪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옛 무덤에서 약밤 몇 알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약밤은 옛적 낙랑 문화의 하나로서 상류 사회 사람들에 의해 숭상되었다고 추정된다.
또한 약밤은 약 2천 년 전에 중국 승려들이 가지고 와서 대동강 하류 지방에 퍼뜨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약밤나무의 주산지인 성천成川은 예전 북한에서 손꼽히는 도시였고, 그때는 중국과의 교통이 빈번하여 승려와 유학생의 왕래가 있었다고 한다.
반면 함종咸從 지방에 난파된 중국 상선에서 약밤이 나와서 증식이 되었다고도 하며, 또는 이 밤나무가 과거부터 이 지방에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모두 확실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지방에는 400~500년생 약밤나무가 있다 하니, 그 연대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는 있다.
우리나라의 약밤나무는 중국 밤과 우리나라 재래 밤나무의 중간 성질을 가지고 있어 그 사이에서 만들어진 튀기라고 여겨지고 있다.
밤나무는 북반구에만 있고 남반구에는 없다.
세계적으로는 열한 개의 종種이 있다.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등은 예전부터 밤의 생산지로 유명하고 세계 밤 생산액의 3분의 2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에도 한 종류가 있으며, 주로 동부 애팔래치아 산맥 Appalachian Mountains을 중심으로 분포한다.
그러나 미국의 밤은 품질이 좋지 않고 줄기마름병(동고병胴枯病: 작은 가지가 말라 죽는 병)이라는 병 때문에 큰 타격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밤나무는 원래 온대 지방에 자라는 나무다.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신의주와 함흥을 연결하는 선의 이남이 밤나무의 적지가 된다.
아시아에서는 한국, 중국, 그리고 일본이 밤 생산의 중심이 되고 있다.
밤나무의 세계적 산지는 다음 네 무리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한국 계통의 밤으로, 산에 자연적으로 나는 것을 산밤나무라 하는데 현재 재배되고 있는 우리나라 밤나무는 이 산밤나무를 기본으로 하여 개량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밤나무는 일본의 것과 같은 것으로 모양과 맛, 색깔, 굵기, 성숙기 등에 있어 다양한 품종이 있다.
알이 굵은 품종, 작은 품종, 성숙기에 있어서 올밤(조생종早生種) 또는 늦밤(만생종晩生種) 등 많은 품종이 알려져 있다.
둘째는 중국 밤나무 계통으로, 텐진율(천진율天津栗) 또는 약밤나무(감률甘栗)로 불리는 것이다.
약밤나무는 북쪽 지방에서는 큰 나무이지만 남쪽으로 오게 되면 키가 작아진다.
반대로 열매는 북쪽으로 갈수록 작아지고 남쪽 지방에서는 더 굵다.
셋째는 미국밤나무 계통으로, 앞서 말한 것처럼 동고병에 약하다.
넷째는 유럽밤나무 계통으로, 알이 굵고 미국으로 많이 수출되고 있다.
역시 동고병에 약하며, 겨울이 되어도 잎이 나뭇가지에서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붙어 있다.
밤알은 학술적으로는 열매(율실栗實) fruit이고 씨(종자種子) seed가 아니지만 '밤 종자'란 말을 흔히 쓴다.
번식용일 때는 씨가, 먹는 것일 때는 과실이 되는 것 같다.
나무 씨나 열매는 땅속에서 싹이 틀 때 그 껍데기를 머리에 덮어쓰고 땅위로 올라오는 것이 있는가 하면, 땅속에다 껍질을 남겨두고 싹이 트는 것도 있다.
잣나무는 그 단단하고 무거운 껍데기를 땅 위로 가지고 올라오지만, 밤나무는 그 반대다.
밤씨의 껍데기는 10년은 물론 100년이 지나도 썩지 않고 모나무(묘목苗木)의 뿌리에 붙어 있다고 한다.
이는 물론 과장된 표현이기는 하지만, 다른 나무에 비해 더 오래 붙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까닭에 밤나무는 밤나무는 근본根本, 즉 선조를 잊어버리지 않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그야말로 조상 숭배의 나무인 것이다.
○조삼모사朝三暮四
밤나무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교훈을 준다.
잘 알려진 것으로 '조삼모사'라는 고사성어가 있는데, ≪연감유함淵鑑類函≫이란 책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즉 원숭이(저狙)를 훈련하는 사람(저공狙公)이 원숭이들에게 산밤(모율茅栗)을 나누어주면서 "오늘부터는 아침에 세 알, 저녁에 네 알씩 주겠다"고 했더니 원숭이들이 모두 성을 냈다.
"그렇다면 아침에 네 알, 저녁에 세 알 주겠다"고 했더니 모두 기뻐했다는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차이만 알고 결과가 같은 것으로 모르는 어리석음을 비유하거나, 또는 사기나 협잡술로 남을 농락하는 행휘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다.
○밤알의 여러 이름
≪사류합벽事類合璧≫이란 책에서는 "밤송이 안에 보통 3개의 밤알이 들어 있는데 그중 가운데 있는 것을 율설栗楔이라 하고, 밤알이 작은 것을 산율山栗이라 하며, 산율 가운데서도 끝이 뾰족하게 생긴 것을 추율錐栗이라 하고, 밤알이 매우 작아서 손가락 끝만한 것을 서율芧栗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밤을 영어로는 체스너트 chestnut라고 하는데, 이는 '단단한 통'을 뜻하며 누구도 범접하기 어려운 가시밤송이 안에 들어 있는 열매 fruit라는 뜻이다.
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기에 이와 같이 금고 안에 모셔두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밤알이 부럽다.
밤나무를 뜻하는 '율栗'자는 꽃과 열매가 아래로 드리운 모양을 나타내는 상형문자라고 한다.
일본말로는 '구리'라 하는데, 구리는 '래來(왔다는 뜻)'자를 발음한 것이며, 전쟁터에 가서 이기고 왔다는 뜻으로 개선해온 용사를 축하할 때 밤을 쓴다.
한편 10세기 전반 일본의 ≪화명초和名抄≫에는 '구리久利'를 심어놓으면 오래오래 이롭다고 하였다.
'일본의 의성醫聖'이라고 불리는 가이바리(견원익헌見原益軒)의 ≪대화본초大和本草≫에는 '흑黑'자를 '구리'로 발음하고 이는 밤색같이 검은 갈색인 데서 비롯된 것이라 했다.
일본 풍속에서는 그들의 최고신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젯밥에 밤을 섞는다.
밤밥, 즉 약밥으로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밤나무 재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해충(혹벌), 줄기마름병, 동해冬害 세 가지이며, 여기에 퇴비를 추가할 수 있다.
혹벌은 작은 기생설 벌(봉蜂)로서 눈을 갉아먹으며, 줄기마름병은 병균이 나무 줄기에 생긴 상처를 통해 들어가 그 안쪽에 있는 나무의 속까지 썩게 만든다.
또한 동해는 겨울에 나무줄기가 동상凍傷을 입는 현상으로, 밤나무 과원의 성공은 동해를 어떻게 막느냐에 달렸다고도 할 수 있다.
끝으로 퇴비를 추가한 것은 밤나무는 관리가 잘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밤나무도 사과나무나 배나무처럼 비료를 많이 주고 알뜰하게 돌봐주어야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재배 역사
우리나라에는 예전부터 굵은 밤이 생산되었다고 한다.
중국 서진西晉 무제武帝(재위 266~290)의 명령으로 진수陳壽(233~297)가 쓴 ≪삼국지三國志≫의 '마한馬韓' 부분에, 마한에는 굵기가 배(이梨)만한 밤이 난다고 기록되어 있다.
송宋나라 문제文帝(재위 424~453)의 명령으로 범엽范曄(398~445)이 쓴 ≪후한서後漢書≫에도, 마한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누에를 치며 길쌈을 하고 큰 밤을 생산하고 있는데 그 크기가 배만 하다고 적혀 있다.
또 당唐나라 위징魏徵(580~643)이 편찬한 ≪수서隋書≫의 '백제百濟' 부분에 큰 밤이 난다고 기록되어 있고, 이연수李延壽(?~?)가 쓴 ≪북사北史≫에도 백제에는 큰 밤이 생산되고 있다는 기록이 있다.
명明나라의 이시진李時珍(1518~1593)도 한국에는 밤이 나고 크기가 계란만 하다고 쓰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밤은 옛적부터 굵기로 이름이 나 있다.
특히 서울 이남부터 황해도에 가까운 지방까지가 유명했다.
고려조 예종 13년(1118)에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는 땅 외에는 밤나무, 뽕나무, 옻나무, 닥나무를 심되, 알맞은 땅에 알맞은 나무를 골라 심을 것을 권장했다.
또 인종 때에도 비슷한 제령制令(법률과 제도)을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 시대에 이미 나무 심는 방법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나무의 성질을 따지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다.
명종 18년(1188)에는 옻나무, 닥나무, 밤나무, 잣나무, 배나무, 대추나무 등을 알맞은 곳에 또 알맞은 때에 심어 백성의 수익을 높이도록 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이와 같은 고려시대 법전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신라시대의 것을 답습하고 이 위에 어느 정도 참작·가미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조선시대 최초의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밤나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장원서掌苑署(상림원上林園: 왕궁의 꽃과 과목을 담당하던 관청)의 과수원은 국가 공무원이 나누어 맡아서 나무를 심고 접붙이기도 하되, 나무의 숫자를 장부에 기록하고 기록한 내용은 공조工曹(기술과학을 담당하는 6조 중 하나)에 통첩하도록 한다. 수장首長인 공조판서가 이것을 살피고, 만일 관리와 지도를 잘못한 관리가 있으며 그 죄를 다스리도록 한다."
성종 22년(1492)에 나온 ≪속대전續大典≫에는 밤나무를 심어 밤을 생산하는 농민은 노동력을 국가에 제공하는 부역에서 제외되는 혜택을 받았다고 하였다.
잡역이 면제된 곳은 경기도의 과천, 고양, 강화, 양주, 남양, 부평 부근으로, 이러한 곳들은 모두 밤의 생산지로 이름이 나 있다.
또한 이 책은 밤나무 목재가 귀중한 것이므로 이것을 생산하고 보호할 목적으로 나라에서 밤나무 보호림(율목봉산栗木封山)을 지정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한편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에서는 고려 원종 때 조양필趙良弼이라는 사람이 일본에서 밤을 가지고 돌아와 의안현義安縣에 심었다고 했는데, 의안현은 지금의 경남 창원으로 이곳은 당시 일본과의 교류에서 하나의 요새지 같은 지역이었다고 한다.
≪산림경제山林經濟≫에도 밤나무 목재는 오래가고 성질도 좋으므로 귀중한 나무라 하였고, 따라서 심는 것이 장려되어 태종 7년(1407)에는 법령으로 강변 같은 데 밤나무를 심도록 함으로써 우리나라 하천가에 좋은 밤나무 숲이 만들어졌다.
경남 밀양의 밤나무 숲이라든지 대구 부근의 금호강 강변의 밤나무 숲은 지금까지도 유명하다.
밀양의 밤나무 숲은 시로도 읊어졌으며, 서거정徐居正(1420~1488)은 "밤나무 꽃이 피어서 눈이 온 것 같은데, 향기가 진동하고 밤송이가 달리고 달려서 하늘의 뭇별들이 내려앉은 것 같다(율화여설향부부栗花如雪香浮浮 첩첩결자여번성疊疊結子如繁星)"라고 표현하였다.
경북 선산善山에는 동지숲(동지수冬至藪)이 감천甘川(낙동강 지류) 북쪽 강변에 있는데, 이 숲은 조선시대 말엽까지 300여 년 동안 홍수 피해를 막고 밤도 많이 생산하였다고 한다.
≪경상도읍지≫에는 경남 밀양의 수산리 숲, 경북 고령의 밤나무 숲, 청도의 상지율림上枝栗林, 하지율림下枝栗林, 그리고 상주의 밤나무 숲이 유명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특히 상주의 밤나무 숲은 읍의 서쪽 지형이 지네 같아서 지네의 독을 누르기 위해 마주 보이는 읍의 동쪽에 밤나무 숲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한편 원효대사元曉大師(617~686)의 전기에 사라율紗羅栗(비단밤)의 유래가 나와 있는데, 대사의 어머니는 집 서남쪽에 있는 밤나무 아래에서 남편의 비단옷을 밤나무 가지에 걸어놓고 대사를 분만하였고, 그 뒤 이 밤나무를 '사라율'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필자는 원효대사가 쓴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이란 글을 즐겨 읽는데, 현 시대 사람들의 생활 철학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지만 마음의 수양에 크게 보탬이 되는 것 같다.
또한 중국 한漢나라 무제武帝(재위 서기전 141~서기전 87)의 과수원에 밤나무가 있었는데 밤이 굵어서 15개만으로 한 말이 되었다고 했고, ≪지리지地理志≫에는 월나라에 밤이 나는데 크기가 주먹만 하다고 했다.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하여튼 큰 밤이 있기는 있었던 모양이다.
옛적에 인간이 살 수 있었고 오늘날 우리 인류가 지구상에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밤나무 덕분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굵은 밤과 관련된 당나라 두보杜甫(712~770)의 시도 있다.
즉 '양다율과권穰多栗過拳'이란 시구는 벼농사는 풍년이 들고 밤은 주먹보다도 더 크다는 것으로, 좋은 시절과 평화로운 농가의 가을을 잘 표현하고 있다.
집 앞도 풍년이고 집 뒤도 풍년이라서 흥겹다는 것이다.
또 두보의 시에서 '산가증율난山家蒸栗暖'은 시골집에서 찐 밤이 따뜻하더라는 뜻으로,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대접할 것이 없어서 밤을 쪄 내놓은 것이 따끈따끈해 그 집 주인의 인정이 그 속에 담겨 있었다는 것으로 상상만 해도 흐뭇하다.
두보의 시 한 구절을 더 들면 '원수우율미전빈園收芋栗未全貧', 즉 '집 뜰에서 큰 밤(우율芋栗)을 거두었으니 내가 가난한 것만도 아니로구나'는 뜻이다.
청빈한 시인의 생활이지만 가난을 달갑게 받아들이고 거두어들인 밤알을 가지고 가난을 잊고자 하는 시인의 심정을 알 수 있다.
※출처
1. 임경빈 저, 이경준·박상진 편,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2,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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