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식인종들의 질병인 쿠루병과 프리온, 그리고 바이러스와 프리온 요약 본문
미국 바이러스 학자인 가이듀섹 Daniel Carleton Gajdusek(1923~2008)은 1950년대에 오지에 사는 원주민들의 질병을 연구하던 중 특이한 질병을 만났다.
남태평양의 섬 파푸아뉴기니 Papua New Guinea의 산속에 식인 풍습을 가진 종족이 있었다.
그들은 가족이 죽으면 고인을 기리기 위해 시신을 먹는 전통이 있었다.
시체가 벌레나 구더기에 의해 사라지는 것보다 사랑했던 후손들이 직접 먹는 것이 더 인간적 행동이라 여긴 것이다.
더구나 죽은 사람을 먹는 행위는 노약자인 여성과 아이들이 단백질을 섭취하는 유일한 기회이기도 했다.
그래서 남성들은 거칠고 딱딱한 부위를, 여성과 아이들은 부드러운 부위인 뇌와 골수를 먹었다고 한다.
나름대로 약자를 배려한 식인종이었다.
그런데 장례를 치르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시신을 먹은 사람들에게서 이상 증상이 발생했다.
그들은 초기에는 움직이기가 불편하고 말하는 것이 힘들었으며, 질환이 심해지자 심한 치매 증상과 기억력 장애가 나타났다.
그러다 결국 몸을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해지면서 사망했다.
원주민들은 그 질환을 '쿠루 kuru'라고 불렀는데, 원주민어로 '웃는 죽음'이란 뜻이었다.
가이듀섹이 그들의 시신을 부검하자 뇌 신경세포가 파괴된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쿠루병 Kuru disease의 원인으로 유전, 영양 장애 따위가 지목되었다.
하지만 가이듀섹은 이에 동의하지 않아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1963년 가이듀섹은 쿠루병으로 죽은 소녀의 뇌 조직을 추출해 침팬지의 뇌에 주사했다.
3년 뒤 놀랍게도 침팬지에게 쿠루병 kuru이 발생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쿠루병은 아주 긴 잠복기(18~30개월)를 가진 전염성 질환이었던 것이다.
가이듀섹은 느리게 진행되는 질환의 특징을 살려 자신이 발견한 질환의 병원체를 '슬로 바이러스 slow virus'라고 이름 지었다.
슬로 바이러스의 발견은 그동안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중추신경계의 불치병들이 특정 미생물에 의한 전염병일 수도 있다는 새로운 생각을 심어주었다.
가이듀섹은 어떤 경로로 환자들이 슬로 바이러스에 감염되는지 관찰했고, 환자들이 주로 성인 여자와 어린이였던 점에 주목했다.
그들은 장례의식에서 주로 사망자의 뇌와 골수를 먹지 않았던가!
가이듀섹은 그들이 먹은 사망자의 뇌에 감염물질(슬로 바이러스)이 존재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 연구로 가이듀섹은 1976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미국 수의학자 윌리엄 해들로 William Hadlow(1921~2015)는 우연한 기회에 쿠루병을 접하게 되었다.
쿠루병 환자의 뇌 사진을 보는 순간, 그는 과거에 자신이 연구했던 양의 질환인 스크래피(면양떨림병) scrapie와 그 양상이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뒤 해들로와 가이듀섹의 연구를 종합해 스크래피에 걸린 양에서 슬로 바이러스를 찾아 분리하려는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미국 생화학자 스탠리 프루지너 Stanley Ben Prusiner(1943~ )는 스크래피에 걸린 양의 뇌 조직을 추출해 실험용 쥐에게 주사했다.
그리고 스크래피에 걸린 쥐의 뇌에서 바이러스를 찾는 작업을 수없이 반복했다.
하지만 바이러스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유전물질(DNA 또는 RNA)을 발견하지 못해 애를 태웠다.
그때 프루지너는 중요한 생각을 해냈다.
"쿠루병의 원인이 바이러스라는 것은 가설일 뿐이고 완전히 새로운 병원체인 건 아닐까?"
정답이었다.
가이듀섹이 주장했던 슬로 바이러스가 아니라 감염성 단백질 infectous protein이 원인이었다.
프루지너는 자신이 발견한 감염성 단백질을 단백질 protein과 바이러스 virus를 합성해 '프리온 prion'이라 이름 붙였다.
그의 연구 결과는 1982년 발표되었다.
하지만 생명과학 이론에 비추어볼 때 프루지너의 설명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감염은 병원체가 증식해 타인에게 전파되고 그곳에서 다시 증식해 질병이 나타난다.
그리고 미생물이 증식하려면 DNA나 RNA 같은 유전물질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유전물질이 없는 프리온 단백질이 어떻게 스스로 복제해 전염을 일으키고 환자의 몸에서 증상을 일으키는가?
또한 건강한 사람의 뇌에서도 프리온의 존재가 발견되면서 프리온이 과연 질병의 원인인 맞는지에 대한 논란이 뜨거워졌다.
프루지너는 프리온 단백질의 3차원 구조 분석을 통해 답을 찾았다.
정상적인 프리온 단백질과 질병을 일으키는 프리온 단백질의 입체 구조가 달랐던 것이다.
위 그림에서처럼 정상적인 프리온은 빙글빙글 돌아가는 나선 구조를 갖고 있다.
이런 모양일 때는 질병이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프리온의 모양이 변형되어 겹겹이 평평한 모양으로 바뀐 변형 프리온은 질병을 일으킨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위 그림 중 아래쪽 그림처럼 모양이 변형된 프리온이 근처의 정상 프리온까지 모양을 변형시키는 능력이 있다는 점이다.
프루지너는 변형 프리온이 가까이 있는 단백질부터 연쇄적으로 변형시킴으로써 유전물질 없이도 질병을 퍼뜨릴 수 있음을 증명하는데 성공했다.
이 업적으로 프루지너는 1997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프루지너에 의해 고정관념이 바뀌고 단백질의 변성變性 denaturation에 의해 뇌세포가 점점 파괴될 수 있음을 알게 되자, 그동안 숨겨져 있었던 같은 원리의 다른 질환들이 하나둘 발견되었다.
프리온 질환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단연 광우병狂牛病 mad cow disease이다.
소의 몸안으로 들어온 감염성 프리온은 뇌로 들어가 조직을 파괴해 스펀지 sponge처럼 구멍이 뚫리게 만든다.
그런데 초식동물인 소가 어떻게 변형 단백질에 감염되었을까?
그것은 양의 변형 프리온을 전달받았기 때문이다.
매우 오래전부터 양에게는 '스크래피 scrapie'라 불리는 질환이 있었다는 것을 앞서 언급했는데, 프리온 질환에 대해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에 양의 뼈를 이용한 영양 사료를 만들어 소에게 먹여왔던 것이다.
인간의 욕심을 위해 초식동물인 소에게 육식을 먹인 것이 문제였을까?
1920년 독일 신경학자 크로이츠펠트 Hans Gerhard Creutzfeldt(1885~1964)와 야코프 Alfons Maria Jakob(1884~1931)가 처음 언급한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 Creutzfeldt-Jakob Disease(CJD)은 노인에게 급속한 치매가 나타나는 매우 희귀한 신경질환이다.
그런데 1900년대 말부터 젊은 환자들에게거 CJD가 갑자기 보고되었다.
기존에 알려진 CJD와 질병 양상이 달라 의학자들은 변종 CJD variant CJD(vCJD)라 이름 짓고 질병을 분석했다.
변종 CJD 환자들의 직업이나 식사 습관은 광우병과 변종 CJD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소고기를 전혀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도 변종 CJD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어 프리온 질환의 전염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상태다.
◎바이러스와 프리온 요약
미생물과 면역에 대한 의학자들의 이해가 쌓이면서 감염병을 치료하기 위한 항생제와 백신이 만들어졌다.
그 과정에서 인간에게 감염병을 일으키는 병원체가 세균만이 아니라 다른 종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바이러스의 존재를 깨닫도록 도와준 병은 담뱃잎에 무늬가 생기는 담배모자이크병이었다.
질병에 걸린 담뱃잎의 즙이 다른 잎도 감염시켰는데, 즙에 있는 병원체는 세균 필터로 걸러지지 않았다.
세균보다 작은 감염성 미생물의 존재가 드러난 것이다.
네델란드의 바이에링크 Martinus Willem Beijerinck(1851~1931)는 그것에 '바이러스 virus'라는 이름을 붙였다.
바이러스는 쉼 없이 인류를 공격했다.
1933년 첫 발견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influenza virus'는 몇 차례 대유행을 거치며 수많은 사상자를 낳았다.
대표적인 것이 '스페인 독감 Spanish flu'이다.
2019년부터 전 세계를 감염의 공포로 몰아넣은 바이러스도 있다.
바로 '코로나-19 바이러스 COVID-19 virus'다.
전 세계 의학자들과 인류의 집단 이성은 이 바이러스를 극복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바이러스 감염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었고, mRNA 백신과 바이러스 벡터 백신 viral vector vaccine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백신도 알게 되었다.
1900년대 후반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던 에이즈 AIDS와 그 원인 바이러스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HIV라 불리는 에이즈 바이러스를 통해 '레트로바이러스 retrovirus'라는 개념도 알게 되었다.
대형 건물의 냉각탑에서 미지의 생물체를 발견하기도 했다.
바이러스보다 훨씬 큰 바이러스인 미미바이러스 mimivirus다.
미미바이러스 덕분에 우리의 세포가 단세포 생물과 바이러스가 합쳐져 생긴 것이라는 흥미로운 과학적 가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남태평양의 원시 부족은 시신을 나누어먹는 풍습이 있었다.
그들에게 발생했던 질병이 쿠루다.
미국의 가이듀섹은 쿠루로 사망한 사체의 뇌 조직을 동물에게 주사해 이것이 감염성 질병임을 입증했다.
그리고 매우 서서히 진행하는 '슬로 바이러스 감염증'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의 프루지너는 슬로 바이러스가 아닌 감염성 단백질 즉 프리온이라는 새로운 감염원을 제시했다.
기본적인 감염학의 상식을 뒤엎는 대담한 가설이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광우병과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의학의 역사를 살펴보는 긴 여행이 어느덧 마무리되어간다.
마지막 남은 두 가지는 '정신의학의 역사'와 '뇌과학의 역사'다.
이 두장은 매우 중요하면서도 재미있고 흥미로운 애기가 될 것이다.
※출처
1. 김은중, '이토록 재밌는 의학 이야기'(반니, 2022)
2. 구글 관련 자료
2025. 9. 7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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