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한국어의 기원을 만나다 본문
○언어의 역사를 밝히는 것

언어의 기원은 어떻게 밝힐 수 있을까?
특정한 언어의 역사를 따라가며 실체를 찾는 학문을 '역사언어학歷史言語學 historical linguistics'이라고 한다.
몇천 년 전 사람들이 사용했던 언어가 어떻게 분화되었는지를 언어에 남긴 흔적으로 밝히는 것이다.
'어족語族 language family(languages)'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여러 언어의 조상이 되는 한 언어가 어디에선가 기원했고, 그것이 사방으로 퍼졌다고 믿었다.
어족에 관한 연구는 유럽에서 근대 언어학을 연구하면서부터 발달했다.
여러 서양어를 분석해보면 닮은 점들이 상당히 많다.
숫자만 봐도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따위의 발음이나 구조가 서로 흡사하다.
역사언어학으로 연구한 결과, 이 언어들은 공동의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 조상 언어가 기원한 지역을 따라가 보니 동쪽 끝으로 인도까지 이어져 '인도-유럽어족 Indo-European languages' 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인도-유럽어족은 약 200년 전에 처음 발견된 이래 고고학적으로도 속속 증명되고 있다.
그들은 6,000년 전에 초원에서 발원해 유럽 곳곳으로 퍼져나갔는데, 지역을 옮기며 자신들의 문화와 새로운 기술을 함께 가져갔다.
언어의 확산과 함께 문화도 전파된 것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고조선의 형성에서 이미 설명했던 전차의 등장이다(새샘 블로그 2024. 8. 13 '청동기의 세 가지 의미 2 - 무기로서의 청동기 https://micropsjj.tistory.com/17041061 참조).
시베리아에서 개발된 전차는 서쪽으로는 유럽까지 퍼져나갔다.
인도-유럽어는 시베리아에서 기원한 전차가 유럽으로 전달되면서 그들의 언어도 함께 퍼져나간 결과였다.
전차라는 고급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전차를 만드는 기술은 물론 숙련된 말 조련사도 필요하므로 이를 배우는 과정에서 언어 역시 전파되었을 것이다.
불교를 연구하는데 필수적인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Sanskrit(범어梵語)도 인도-유럽어 계통이다.
이 역시 전차문화의 확산과 관련이 있다.
인도에 전차를 전파한 사람들은 서기전 15세기의 '아리안족 Aryan'이었고, 그들은 세계 최초의 경전인 <리그베다 Rigveda>를 남겼다.
지금도 전차 바퀴는 탱화에서 흔히 나타나는데, 인도 초기 불교에서는 태양족의 후예인 석가모니의 상징으로 전차를 사용했으며, 태양의 후예는 조로아스터교 Zoroastrianism(배화교拜火敎)와 힌두교 Hinduism의 태동과도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족을 만드는 최종 목적은 여러 언어의 공통적인 조상 언어를 밝히는 것이다.
즉, 오래되고 순수한 언어의 계통을 찾아내는 것이다.
언어 역시 민족의 기원을 좇는 것만큼이나 순수한 원형을 찾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
언어는 서로 교류하며 혼재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적으로 발전 및 쇠퇴, 분화를 거듭하기 때문이다.
언어의 본질은 인간들 사이의 교류를 반증해주는 자료다.
언어는 각 지역 사이의 교역을 증명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예컨대 마시는 차를 뜻하는 단어는 '차茶'와 '티 tea'라는 두 갈래로 나뉘어서 유라시아 각국에 널리 퍼졌다.
두 단어 모두 어원은 중국인데, 유라시아 대륙으로 전파되는 경로에 따라 서로 다른 단어로 생성되었다.
'티'는 차를 뜻하는 중국 남방지역의 방언에서 유래했다.
그래서 바다를 거쳐 중국의 차를 수입한 지역은 '티'라는 단어를 쓰게 되었다.
반면 중국 북방에서는 '차' 또는 '차이'라는 발음을 사용했으므로 대륙으로 차를 받아들인 유라시아 지역에서는 '차'와 비슷한 단어를 쓰게 되었다.
이렇듯 언어는 순수하지 않고 지역 간 교류와 깊게 관련되어 있다.
아무리 영어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생활 곳곳에서 알게 모르게 영어에서 유래된 단어를 쓰듯 과거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고대 한국에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유라시아 초원에서 전차를 몰던 사람들이 중국의 상나라로 퍼져나가면서 전차 용어는 모두 자신들이 사용하던 언어로 쓴 흔적이 남아 있다.
또한 앞서 올린 글에서 설명한 것처럼(새샘 블로그 2024. 8. 13 '청동기의 세 가지 의미 3 - 제사 물품으로서의 청동기https://micropsjj.tistory.com/17041062 참조) 청동 광산에서 구리 광석을 캐고 청동기를 만드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용어를 고조선에도 남겼을 것이다.
이성규 교수는 유라시아 일대의 알타이어족에서 사용하는 광산업 관련 용어는 서로 비슷하다고 한다.
이렇듯 언어는 하나의 언어에서 기원해 순수하게 이어진다기보다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을 그 안에 반드시 남긴다.
○한국어의 기원을 찾아서
한국어는 많은 사람이 우랄-알타이어족 Ural-Altaic languages에 속한다고 배웠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학계에는 한국어가 우랄-알타이어족에 포함된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한국어가 어느 어족에 속하냐는 질문에 속 시원하게 답할 수 있는 학자도 없다.
한국인은 지난 몇천 년 동안 한반도에 살면서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였고, 그 과정에서 언어도 복잡한 변화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언어의 기원을 밝히는 역사언어학은 단순히 단어나 문법을 비교하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다.
언어의 변화 과정을 밝힘으로써 고대인들의 생활상을 파악하고 언어에 담긴 함의를 분석하는 것이다.
학계에서 한국어가 우랄-알타이어족이라고 단정 짓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어가 우랄-알타이어족의 다른 언어와 공통된 특징도 있지만, 숫자나 가족, 신체 따위와 같은 기본적인 단어에서 다른 언어와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도-유럽어족이나 한반도와 이웃한 중국-티베트어족과 확연히 구분된다.
대체로 우랄-알타이어족은 몽골어 Mongolian 계통, 투르크어 Turkic 계통, 퉁구스어 Tungusic 계통 따위로 나뉜다.
그 범위는 동유럽에서 아시아까지 넓게 이어진다.
그러다 보니 한국어뿐 아니라 다른 우랄-알타이어족 사이에도 논란이 많다.
심지어 '동북아시아어족 Northeast Asian languages'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기도 했다.
한국어가 어떤 조상 언어에서 갈라져 나왔는지에 대한 확실한 대안은 없지만, 기존의 우랄-알타이어족 설에 문제가 많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우랄-알타이어족 설이 등장한 지는 100여 년이 지났다.
이후 이렇게 논란이 불거진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학계를 비롯해 많은 사람은 '순수한 한국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필자가 대학원에 재학할 때만 해도 한민족의 기원을 다루는 수업이나 연구서의 한 부분에는 반드시 한국어의 기원이 포함되어 있었다.
한민족의 기원을 밝히는 과정에서 한국어의 기원 역시 언급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순수한 한국어의 시작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한국은 오래전부터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요충지에 존재해왔고, 이곳에 다양한 민족이 들고 나며 한민족과 교류했다.
그 과정에서 언어도 여러 국가의 것이 섞여서 발전했고, 삼국시대 이후에는 한문이 유입되면서 문자도 중국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되었다.
근현대까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는 일본어가, 해방 이후에는 영어와 같은 외국어가 언어 생활에 상당해 반영되었다.
한국과 유라시아 어족 기원을 밝히는 연구는 약 300년 전 핀란드 Finland에서 시작되었다.
그 배경에는 유럽에서 처한 핀란드인의 특수한 상황이 얽혀 있었다.
핀란드와 헝가리 Hungary는 유럽의 큰 줄기와는 사뭇 이질적인 나라다.
그들은 인도-유럽어족이 아니라 시베리아, 나아가 아시아와 관계가 있는 우랄어족이기 때문이다.
핀란드인들은 19세기까지 자신의 나라가 없었다.
서쪽으로는 독일어 계통의 스웨덴인 Swedish들의 지배를 받고 동쪽으로는 슬라브인 Slavic들의 지배를 받았다.
수오미 Suomi(핀란드는 스웨덴어이고 핀란드어로는 수오미)라 불리던 이 사람들의 정체성을 확인해주는 것은 바로 인도-유럽어족과 구별되는 핀란드어였다.
핀란드인들은 러시아와 시베리아를 조사하면서 민족적 기원을 찾고자 했다.
약 300년 전, 스트랄렌베르그라는 핀란드인은 러시아와 전쟁을 하다 포로가 된 뒤 벌을 받는 대신 시베리아 일대에서 유적지를 조사했다.
그는 시베리아의 여러 지역을 조사하면서 아주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는데, 시베리아 원주민들의 언어가 핀란드어와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그의 조사는 이후 마티스 카스트렌이라는 언어학자에 의해 우랄-알타이어족으로 발전되었다.
알타이 Altai는 동아시아와 유럽이 교차하는 문명의 교차로다.
따라서 우랄-알타이어족은 한국뿐 아니라 유라시아 전역에 걸쳐 있는 모든 민족의 역사와 깊은 연관성이 있다.
하지만 카스트렌이 이 지역의 언어에 알타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언어가 알타이에서 기원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지역이 시베리아에서 가장 유명하기 때문이었다.
독립을 갈구하며 언어의 기원을 찾는 핀란드인들의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어를 강요받으며 한국어의 기원을 찾던 우리의 상황과 너무나 닮았다.
언어만큼 자신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는 것은 없다.
카스트렌의 연구는 이후 한국어의 기원을 찾는 데도 밑바탕이 되었다.
앞서 밝혔듯 한국어의 우랄-알타이어족 설에 대한 비판은 많지만 정작 아직까지 어떤 결론도 나지 않고 있다.
어떤 학자들은 알타이어보다 이전에 한국어가 분화되었다고 하고, 또 어떤 학자들은 한국어는 완전히 독립된 언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중 어떤 학설도 공식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어의 기원을 완벽하게 밝히지 못하는 이면에는 시베리아라고 하는 광활한 지역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진척되지 못한 탓도 있다.
한국은 1990년대 이후에야 비로소 시베리아 일대의 알타이어족에 관한 조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시베리아에 흩어진 몇십 개의 민족은 이미 대부분 자신의 언어를 잃고 러시아에 동화된 다음이었다.
○순수한 언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어가 어느 어족에 속하는지, 어디에서 기원했는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하지만 정답을 찾기 전에 먼저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한국어의 기원을 밝히는 연구가 논란이 된 이유는 '순수한 언어가 있을 것'이란 전제 때문이었다.
이제까지 역사학자들은 모두 한민족과 한국어의 기원을 밝히려 노력했다.
물론 이런 현상은 우랄-알타이어뿐만이 아닌데, 인도-유럽어는 언어들 사이의 닮은점이 비교적 많고 폭넓은 연구가 이루어졌음에도 그 기원에 대한 통일된 견해가 없다.
새로운 연구가 나올 때마다 시작점도, 발원지도 다른 곳을 향한다.
언어는 인간의 삶에서 의식주만큼이나 큰 비중을 차지한다.
당연히 단독으로 존재할 수도 없다.
개인적인 만남부터 시작해 공동체에서 농사를 짓고 사냥할 때, 물건을 교환하는 교역 상황에도 언어가 있어야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언어는 지리 조건과 생활상 따위위 물질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이 처한 환경에서 한국어의 기원을 추측해볼 수 있다.
한국어의 기원에서 학자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일관된 요소는 한반도 주변에 비슷한 언어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는 '고립성孤立性 isolation'이다.
또 하나의 구별되는 특징은 알타이어족과 관계가 있다 해도 아주 오래전에 분화했을 것이라는 '태고성太古性 ancientness'이다.
즉, 언어가 나뉜 지 오랜 시간이 흘러 다른 언어와의 유사성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한국어의 시작점은 무려 빙하기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동북아시아 지역은 전 세계 어느 곳보다 토기를 빨리 사용했다.
구석기시대인 1만 5,000년 전부터 중국, 러시아 연해주, 일본 따위에서 토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를 고고학 용어로 '원시고토기原始古土器'라고 한다.
한반도에 토기가 일찍이 등장한 이유는 1만 2,000년 전쯤 하나의 빙하기가 끝나며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의 경계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때 빙하기에서 현재의 기후로 바뀌는 과정은 상당히 급격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동아시아에서만은 그러한 변화가 비교적 서서히 이루어졌다.
그 결과 빙하기의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주변 지역에 점진적으로 확산되었다.
우랄-알타이어족과 관련 있는 유라시아 일대의 사람들이 오래전에 이미 분화되어 사방으로 이동했다는 뜻이다.
후기 구석기시대는 농업이나 청동기 또는 철기와 같은 고도의 제련 기술이 발달하기 전이다.
따라서 기술 전파가 이루어지지 않아 인도-유럽어족과는 달리 민족 간에 공유하는 단어가 거의 없을 수 있다.
한국어의 기원과 관련해서는 지금도 매일같이 새로운 연구와 자료가 쏟아지고 있다.
어떤 학자는 남쪽에서 기원했다고 보기도 하고, 어떤 학자는 약 9,000년 전 중국 랴오닝(요령辽宁/遼寧)성의 서부 즉 랴오시(요서辽西/遙西)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연구가 계속해서 나올 것이다.
역사와 문화는 해석에 해석이 더해져야 비로소 그 의미와 실체가 뚜렷해진다.
단순히 언어의 유사성만으로 쉽게 한국어의 기원을 단정해서는 안 된다.
처음 한국에 들어와 한국어를 연구한 서양의 학자들은 중국어나 일본어는 물론, 멀리 인도의 드라비다어 Dravidian가 한국어가 관련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심지어 고대 수메르어 Sumerian, 타밀어 Tamil, 동남아시아어 따위의 세계 곳곳 언어들과의 유사성을 주장하며 기원을 찾는 사례까지 있었다.
몇몇 단어와 문법적인 특성은 세계 곳곳에서 유사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진행된다면 언어 사이의 관련성을 밝힐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이러한 유사성이 인간의 보편성이나 우연의 일치에서 기인했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근대 이후 원거리 국제무역이 활발해진 결과일 수도 있다.
한국어의 몇몇 단어가 다른 언어와 닮았다는 것은 고대와는 관계가 없다.
순수한 한국어의 기원지를 찾는 것은 순수한 민족의 기원지를 찾는 것만큼이나 가능성이 희박하다
오히려 역으로 한국인이 환경에 적응해온 과정에서 한국어가 형성된 과정, 그리고 여기에 기여한 다른 언어를 분석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어는 언어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특히 어려움이 많다.
고대 한국어를 증명할 자료가 거의 없으며, 그나마도 한문으로 음차된 것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어와 비교할 만한 주변 민족의 언어는 이미 사라졌거나 소멸하기 직전이다.
따라서 한국어는 고대 언어의 수수께끼(미스터리 mystery)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우리 손으로 알타이나 시베리아를 비롯한 산간오지에 사는 소수민족을 샅샅이 찾아서 그들의 언어를 조사해야 하며, 부족한 자료는 DNA, 고고학, 지리학을 포함하는 통합적인 관점에서 발견해나가야 할 것이다.
앞으로 한국어의 기원뿐 아니라 한국인의 기원을 명확하게 이야기할 날이 머지않아 찾아오기를 기대해본다.
※출처
1. 강인욱 지음, 우리의 기원-단일하든 다채롭든, 21세기 북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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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9. 5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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