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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생명체의 발견 - 미미바이러스

새샘 2025. 8. 29. 14:50

1976년 미국 필라델피아 Philadephia의 한 호텔에서 재향군인회 연례행사가 열렸다.

행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으나 행사에 참여했던 재향군인들에게 정체를 알 수 없는 폐렴이 발생했다.

처음에는 테러가 아닌가 의심했고, 호텔 음식에 문제가 없었는지 조사도 했지만 그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증상이 나타난 182명 가운데 29명이 사망했다.

높은 사망률이었다.

환자들의 검체 조사 결과 폐렴의 원인은 세균으로 밝혀졌다.

그 세균에 '레지오넬라 Legionella'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군부대 병사를 일컫는 레지오너리 legionary에서 딴 것이다.

우리는 이 병을 재향군인병 legionnaries' disease이라고 부른다.

호텔의 연쇄 폐렴 사건의 원인은 레지오넬라균이 호텔의 냉각탑에서 서식하다 에어컨을 타고 공기 중으로 이동해 재향군인들을 감염시켰던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미미바이러스 입자의 컴퓨터 영상(출처-https://www.statnews.com/2016/02/29/giant-virus-immune-system/)

 

거대바이러스와 그 오른쪽 옆의 바이로파지(화살표), 다른 바이러스에 감염하는 바이러스를 바이로파지 virophage라고 한다.(출처-출처자료1)

 

재향군인병 사건 이후 16년이 지난 1992년 영국 브래드퍼드 Bradford 지역의 한 병원에서 폐렴 환자가 집단으로 발생했다.

레지오넬라 감염을 의심한 보건 담당자들은 병원 냉각탑에서 시료를 채취해 분석했다.

역시 레지오넬라균이 발견되고 사건은 정리되었다.

냉각탑의 시료들은 그저 그런 냉동고에 몇 년 동안 방치되었다가 우연히 프랑스 미생물학자 디디에르 라울 Didier Raoult(1952~ )의 연구팀에게 흘러들어간 뒤 잊혀졌다.

 

2003년 어느 날, 연구팀은 확대 능력이 개선된 전자현미경으로 방치했던 브래드퍼드 냉각탑 시료를 관찰하다 깜짝 놀랐다.

세균처럼 동그랗거나 길쭉한 모양이 아니라 6각형, 입체로는 20면체의 기하학적 모양을 가진 미생물이 서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모양은 바이러스다!

하지만 발견된 미지의 미생물은 바이러스의 한 종류로 보기에는 크기가 너무 컸다.

그래서 모양은 바이러스지만 크기는 세균을 '흉내 내고 있다는 mimic' 뜻으로 '미미바이러스 mimivirus'라 불리게 되었다.

미미바이러스처럼 크기가 유난히 큰 바이러스를 거대바이러스 giant virus(또는 girus)라고 부른다.

 

미미바이러스가 다른 바이러스와 달리 이토록 커진 이유가 무엇일까?

원래 작았는데 커진 것일까, 아니면 훨씬 더 컸는데 그나마 작아진 것일까?

라울 연구팀은 후자를 지지했다.

매우 크고 기생생활이 아닌 독립생활을 하던 원시 바이러스가 점점 환경에 적응하면서 기생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구조물이 제거된 형태가 바로 미미바이러스라는 것이다.

생명체가 작아져 바이러스가 되었다는 미미바이러스에 대한 가설은 생명의 탄생에 대한 흥미로운 주제를 하나 더 더해주었다.

생명체의 세포 안에 들어 있는 세포핵 cellular nucleus이 원래 바이러스가 아니었을까?

생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바이러스가 단세포 생물 속으로 침입해 들어와  내부공생 endosymbiosis 하면서 그 자체로 핵이 되어버렸다는 가설이다.

그럴듯하다.

실제로 핵과 바이러스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일단 둘 다 유전정보(DNA 또는 RNA)를 갖고 있다는 점과 유전정보를 자신의 밖으로 내보내 단백질 합성을 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것을 '바이러스-세포핵 가설 viral eukaryogenesis'이라 한다.

 

라울 연구팀은 또 다른 거대바이러스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냉각탑을 조사했다.

그리고 2008년 파리의 한 냉각탑에서 미미바이러스보다 조금 더 큰 마마바이러스 mamavirus를 찾아냈다.

더욱 흥미롭게도 마마바이러스 안에 더 작은 바이러스가 감염되어 있는 것도 발견했다.

바이러스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다니!

거대바이러스 안에 든 작은 바이러스는 최초의 인공위성의 이름을 따서 '스푸트니크 sputnik'라고 이름 지었다.

과학의 최정점에서 연구자의 이름을 붙이지 않고 이렇게 감성 넘치는 이름을 지을 수 있는 여유가 멋지다.

지금은 바이러스에 감염하는 작은 바이러스를 바이로파지 virophage라고 부른다(세균 bacteria에 감염하는 바이러스 이름이 박테리오파지 bacteriophage인데서 유래).

그 이후로도 거대바이러스는 계속 발견되었다.

2013년에는 바이러스의 전형적인 각진 모양이 아니라 외피단백질이 없어서 세균처럼 보이는 판도라바이러스 pandora virus도 발견되었다.

발견의 끝은 어디일까?

우리는 아직 만나지 못한 어떤 생명체가 어느 지역의 냉각탑에서 기다리고 있을까?

그것이 과연 냉각탑에만 있을까?

 

※출처
1. 김은중, '이토록 재밌는 의학 이야기'(반니,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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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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