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겸재 정선 '통천문암' 본문
"그 시절의 추억 같은 겸재의 바닷가"

바다를 동경했다.
여고 선배가 전국 백일장에서 <을숙도의 바람>이라는 시로 상을 받은 뒤부터였다.
그 선배의 일화와 갈대숲 우거진 을숙도는 전설이 되어 '바람'처럼 교내에 퍼졌다.
1학년 여름 방학, 여학생 셋이서 부산행 기차를 탔다.
바다를 본다는 설렘은 대구를 벗어나는 두려움마저 잊게 했다.
구포에서 내려 어렵게 을숙도에 도착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한,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우리가 찾던 갈대숲도, 바다도 보이지 않았다.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강둑에서 낚시하던 아저씨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여기는 유흥지역으로, '학생 출입 금지구역'이라고 했다.
부산의 한 고등학교 선생인 그 아저씨는 방학 동안 탈선하는 학생들을 지도 중이었다.
우리는 부랴부랴 을숙도를 떠났다.
한동안 바다는 무서운 추억이 되었지만 여고시절의 무용담으로 곱씹는 일화가 되었다.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의 <통천문암通川門岩>을 보고 있으면, 여고시절 친구와 떠났던 여행이 생각나곤 한다.
두 개의 바위 문을 열고 여행객들이 일렁이는 파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신비스러운 작품이다.
조선시대 후기 여행객들의 표정을 읽을 수 있는 귀한 그림이기도 하다.
정선은 백악산(북악산) 아래 유란동 난곡에서 2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자字는 원백元伯이고, 30대 이후에는 "겸손은 형통하니 군자가 끝이 있으리라(겸형군자유종兼亨君子有終)"라는 주역周易(역경易經)의 겸괘謙卦(곤괘坤卦와 간괘艮卦가 거듭된 것으로 땅 밑에 산이 있음을 상징)를 따라 '겸재'란 호를 사용했다.
진경문화眞景文化(중국 산천이 아닌 조선의 산천을 소재로 표현한 문화예술로서 조선 후기인 18세기 문화 사조)를 이끌어낸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1653~1722)의 문하에서 겸재는 진경시眞景詩의 대가 사천槎川 이병연李秉淵(1671~1751)과 풍속인물화의 대가 관아재觀我齋 조영석趙榮祏(1686~1761)과 함께 성리학을 배우면 진경시대를 예비하였다.
18세기 전반, 조선은 우리 민족과 국토에 대한 자존과 자각심이 문학과 미술 분야에 나타났다.
조선의 고유색이 밴 그림을 시작한 것은 창강滄江 조속趙涑(1595~1668)으로, 그는 전국의 명승지를 유람하며 사생한 바를 시화詩畵로 표현하였다.
한글소설에는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1637~1692)의 ≪구운몽≫과 ≪사씨남정기≫가 있고,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의 한글 가사문학인 <관동별곡>이 있으며, 한글 시조에는 김창흡이 선두였다.
이들에 의해서 진경시대의 초석이 다져졌다.
진경시대를 꽃 피운 정선은 이병연과 같은 동네에 살면서 동문수학同門修學(한 스승 밑에서 함께 학문을 닦음)한 사이였다.
정선이 서른여섯 되던 해에 이병연의 초대로 금강산 유람을 시작해서, 몇 차례에 걸쳐 금강산을 다녀왔다.
이병연은 정선이 그린 금강산 기행 그림에 제시題詩(제목으로 붙인 시)를 붙여 ≪해악전신첩海嶽傳神帖≫을 만들어 간직했다.
이병연의 시집인 ≪사천시초槎川詩抄≫에는 "빛나는 필력 갖추고 관동에 왔건만/ 구름과 계곡은 아득하여 종이는 비었네. 술 취한 화가는 거둔 것 없이 말 타고 갔으나/ 바다와 산의 참 모습은 가슴속에 있으리"라는 겸재에게 바치는 시가 있다.
정선은 유람한 현장에서 바로 붓을 드는 것이 아니라 유람에서 돌아와 가슴에 담아온 감동을 화폭에 옮겼다.
쉰둘에 인왕산 자락인 인왕곡으로 이사를 한 정선은 여든넷으로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그곳에서 예술세계를 펼쳤다.
이웃에는 벗인 관아재 조영석이 살고 있었다.
조영석은 ≪관아재고觀我齋稿≫에 "정선은 본래 성격이 온화하고 부모에 효성스럽고 형제에게 우애가 있었다. 집안이 가난하여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으나 사람들에게 옳지 않은 일은 없었다. 경학經學(사서오경을 연구하는 학문)에 깊어 중용, 대학에 관통하였고 말년에는 주역에 힘을 썼다"며, 정선의 품행과 학문에 대한 열정을 증언한다.
<통천문암>은 파도가 일렁이는 바닷가에 두 개의 바위가 수문장처럼 서 있는 그림이다.
두 팀의 여핵객이 바위 문으로 들어간다.
시동을 대동하고 말을 탄 선비는 바다를 처음 본 경험에 놀라는 모습이 역력하다.
앞서가는 선비는 긴 지팡이를 짚고 시동만 거느리고 여행에 나섰다.
선비는 고개를 돌려 바다를 음미한다.
자유로운 걸음걸이에서 여행의 즐거움이 묻어난다.
파도가 검은 머릿결처럼 출렁인다.
짙은 먹으로 무장한 바위는 우람하게 솟아 있고, 인물들은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거대한 자연 속에 인물들이 장식품처럼 앙증맞다.
그림의 왼쪽 위에는 '통천문암通川門岩 겸재謙齋'라는 글씨와 '원백元伯'이라는 자가 새겨진 도장이 붉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를 아련하게 표현하여 공간에 깊이를 더했다.
사실적인 바위와 대범하게 처리한 파도에서 대가다운 솜씨가 드러난다.
정선의 만년작(18세기 중반)으로, 노련한 기백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을숙도에 간 적이 있다.
공원으로 단장된 을숙도를 둘러보면서 여고시절의 친구들이 떠올랐다.
한 친구는 서울 쪽 대학에 진학했고, 한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가까이 지냈다.
한동안 소식이 없더니, 어느 날 비구니가 되었다는 후문을 들었다.
그들이 있어서 그 시절이 잔잔하게 출렁인다.
정선의 바다가 보고 싶다.
※출처
1. 김남희 지음, '옛 그림에 기대다', 2019. 계명대학교 출판부
2. 구글 관련 자료
2025. 9. 2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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