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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핀과 스테이시의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 6부 혁명의 시대 - 19장 산업혁명과 19세기 사회 1: 머리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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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핀과 스테이시의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 6부 혁명의 시대 - 19장 산업혁명과 19세기 사회 1: 머리말

새샘 2025. 9. 10. 20:59

1760년 무렵에서 1840년 무렵 사이의 산업혁명 당시 유럽의 방직공장 모습(출처-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C%82%B0%EC%97%85_%ED%98%81%EB%AA%85)

 

프랑스 혁명은 유럽의 정치 및 외교적 풍경을 갑작스럽게 그리고 극적으로 변모시켰지만 업의 변화는 한층 더 점진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1830년대 또는 1840년대 동안 작가와 사회사상가들은 점차 자신의 경제 세계에서 예기치 못한 특이한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정치에서 계속되고 있는 혁명에 필적하는 것처럼 보이는 '산업혁명産業革命 industrial revolution'을 언급했다.

산업혁명은 1780년대 이후 100년에 걸쳐 진행되었다.

산업혁명은 농업적이고 장인적이며 압도적으로 농촌적인 경제에서 대규모 제조업과 보다 자본집약적인 사업과 도시화를 특징으로 하는 것으로의 첫 번째 획기적인 약진을 묘사하는 말이었다.

산업혁명은 에너지와 동력의 새로운 원천, 한결 더 빠른 수송, 기계화, 더 높은 생산성, 인간 노동을 조직하는 새로운 방식 따위를 포함했다.

산업혁명은 서양뿐만 아니라 서양과 관계된 세계에 혁명적 결과들을 수반하는 사회 변화를 일으켰다.

 

모든 변화 가운데서 아마도 가장 혁명적인 것은 바로 인간 활동의 근원에서 일어났다.

즉,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였다.

이전 2~3세대 이상의 기간에 걸쳐 필요한 대부분의 에너지를 물, 바람, 나무에서 얻어왔던 사회와 경제는 증기기관과 석탄에 의존하게 되었다.

1800년에 세계는 1,000만 톤의 석탄을 생산했다.

그리고 1900년에는 10억 톤의 석탄을 생산했는데, 이는 100년 전에 비해 100배나 많은 양이었다.

산업혁명은 화석연료의 시대를 열었다.

산업혁명은 이전 시대의 한계에서 벗어나 전례 없는 경제 성장의 시대를 열었으며 인류와 환경의 균형을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바꾸어놓기 시작했다.

이후 몇 세대 만인 19세기 말에 이르면 새로운 에너지 체제에 석유와 전기가 포함되었다.

역사가들은 이 시기를 제2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른다.

 

기계들은 일부 관찰자들을 감탄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게 만들면서 동시대인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예를 들면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 Charles John Huffam Dickens(1812~1870)는 "단조롭게 위 아래로" 움직이는 증기기관의 피스톤을 "침울한 광적 상태의 코끼리 머리"에 비유했다.

기계화는 일부 부문에서 엄청난 생산성의 증가를 가능하게 했고 일부 경우에 다른 것들을 쓸모없게 만들어 완전히 새로운 생활과 산업 지역을 창출해내면서 경제의 토대를 바꾸어놓았다.

하지만 기계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판단을 그르치는 일이 될 수 있다.

특히 애초에 기계화는 경제의 극소수 분야에 국한되었고 과거에 이용되었던 기술들과 항상 극적인 단절을 이끈 것은 아니었다.

더욱이 기술은 인간의 활동을 필요 없게 만들지는 않았다.

역사가들은 산업혁명이 물이나 철로를 나르고 도랑을 파며 목화를 따고 손으로 바느질하거나 짐승의 가죽을 두드리는 일 같은 인간의 노동을 훨씬 쉽게 해주기보다는 노동의 강도를 더해주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어느 역사가는 우리가 '부지런한 혁명 industrious revolution'에 관해 말한다고 넌지시 일러준다.

이 '혁명'은 기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었고, 훨씬 더 대규모로 자본과 노동을 동원하는데 토대를 둔 새로운 경제 체제의 빠른 성장에 있었다.

이 혁명의 광범위한 결과는 부, 영향력, 권력 따위를 재분배했다는 것이다.

이 혁명은 새로운 사회계급을 창조하고 새로운 사회적 긴장을 불러일으켰다.

 

산업혁명은 또한 심층적인 문화적 변화를 유발했다.

영국의 문화비평가 레이먼드 윌리엄스 Raymond Henry Williams(1921~1988)는 18세기에 '산업 industry'은 인간의 자질과 관계된 것이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예컨대 열심히 일하는 여성은 '부지런하고 industrious' 야심찬 점원은 '근면 industry'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산업은 자체의 내적 논리에 따라 외관상 인간과는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의미를 지닌 경제 체제인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것이 산업이라는 용어에 대한 우리의 근대적 이해이며 이 용어는 19세기 초 동안에 탄생했다.

산업혁명이 경제의 기초를 바꾸어놓자, 그것은 사람들이 경제에 접근하는 이론과 경제에서 인간 존재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던 방식들을 변화시켰다.

이러한 새로운 이론들은 힘이 있다는 생각뿐만 아니라 무력감에 대한 우려도 길러주었다.

 

경제적·기술적 변화의 시대인 21세기 초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예외적이고 광범위하며 잘 이해되지 않는 변화라는 1840년대의 생각을 함께할 수도 있다.

우리는 경제적·사회적 세계가 변화하고 있지만 그 결과들을 파악할 수 없고 변화는 기분을 북돋워주면서도 동시에 고정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신기술의 결과들, 새로운 형태의 통신, 새로운 경제적 규범은 원인과 결과를 구별하기 힘들게 만든다.

신기술이 변화의 추진력인가 아니면 다른 구조적 변화의 결과인가?

경제의 어떤 부문이 그리고 어떤 종류의 고용이 확대될 것이고 어떤 종류의 고용이 쓸모없어질 것인가?

현기증 날 정도의 생산성 향상이 노동자에게 이로운 것인가?

모든 사회집단이 경제 성장을 공유할 것인가?

오늘날 우리를 떠나지 않는 이러한 문제들은 제1차 산업혁명 기간 중에 대두됐다.

우리는 오로지 되돌아보는 데에서 그에 대한 해답을 짜 맞출 수 있다.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의 극적인 변화는 앞선 시대의 발전 위에 세워졌다.

해외에서의 상업적 탐험과 개발은 유럽 무역에 새로운 영토를 열어주었다.

인도, 아프리카, 북아메리카 및 남아메리카 대륙은 유럽의 경제적 팽창의 유형에 따라 엮어졌다.

팽창하는 무역망과 금융망은 상품을 위한 시장과 원료 생산지를 창출했고, 투자를 위한 자본의 동원을 한결 더 용이하게 만들어주었다.

이 모든 발전이 산업화의 길을 닦아주었다.

17세기와 18세기에는 중대한 '원原산업화 proto-industrialization' 또는 특정한 농업 지대에서의 제조업 확산이 목격되었다(15장 절대주의와 제국, 1660~1789년 참조).

특히 영국에서 그것은 농업과 토지 보유에 광범위한 결과를 미치는 변화를 가져왔다.

18세기에 시작된 인구 증가 역시 핵심적 요인이었다.

또한 보다 더 안전한 재산권이나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이동성 같은 한층 더 파악하기 어려운 사회적·문화적 발전도 근대 산업 세계를 창조한 산업혁명에서 본질적 역할을 했다.

 

산업혁명은 18세기 말 동안에 잉글랜드 북부와 스코틀랜드 서부에서 시작되어 유럽 대륙 전역에 걸쳐 서서히 그리고 불균등하게 전파되어나갔다.

다양한 요인들(노동력, 자원, 자본의 공급 따위)과 중요한 발전들(기술 혁신, 새로운 경제 제도의 등장, 정부 보조금, 법적 변화 따위)이 상이한 순간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함께 나타났다.

그런 이유로 산업화는 유럽의 여러 지역에 걸쳐 단일한 경로를 따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전의 생산방식을 일거에 쓸어버리지도 않았다.

새로운 기계는 집약적이고 구식인 수작업과 공존했다.

제조업 지역은 동일한 국가 안에서 외견상 변화가 없는 생계형 농업이 이루어지는 방대한 지역을 따라 발전했다.

우리는 먼저 영국에서의 초기 산업화를 살펴보고 이후 다른 지역에서 나타난 한층 더 다양한 변화를 주의를 돌릴 것이다.

 

※출처

1. 주디스 코핀 Judith G. Coffin·로버트 스테이시 Robert C. Stacey 지음, 손세호 옮김,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하): 근대 유럽에서 지구화에 이르기까지, Western Civilizations 16th ed., 소나무, 2014.

2. 구글 관련 자료

 

2025. 9. 10 새샘